인곡마을~북암산~문바위~하인계곡
연일 30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위,사계절 가운데 여름(夏)의
지극(至)인 염천(炎天)이 지글거린다.
이런 때일수록 시원한 그늘에서 서책이나 펴놓고 영혼 나들이가
제격인데, 심산(深山)의 검은 그늘을 찾아나섰으니 이열치열이라는
개념설정보다는 무모한 객기나 다름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해발 785m의 구만산(九萬山)은 밀양시 산내면 가인리가 주소지다.
얼음골과 운문산 그리고 가지산 골짜기에서 발원하는 산내천를
건너서면 곧바로 들머리인 인곡마을이다.
인곡다리 우측(동쪽)의 개울바닥은 허연 배를 드러낸 물고기처럼
바짝 말라 붙어있고,다리 좌측(서쪽)의 바닥은 개울 가운데로
개울물이 조금이나마 졸졸 흐르고 있다.인곡마을 뒷편의 봉의저수지
덕분인게다.인곡교 다리 주변에는 이미 도착한 관광버스 두어 대가
서있다.인곡마을 복지회관 맞은편의 커다란 느티나무가 드리운
그늘이 시원하다.인곡(仁谷),어진이들의 고을,'인(仁)'은 인간 본성의
첫번째 덕목으로 인간이 인간임을 증표하는 호패나 다름없는 필수
덕목이다.어짐을 인간본성의 첫째 덕목으로 삼으라는 선조들의
지극한 바램이 지명에 담겨 있으리라.
마을 한가운데 고샅을 지나면 과수원 길이나 다름없는
마을 길이다.호두나무,감나무,사과밭,취나물밭 등이 이어진다.
마을 길은 마을을 뒤로하고 맞은쪽 저만치 성벽처럼 치켜보이는
봉의저수지 뚝방을 바라보며 구불구불 산객을 안내한다.
'인골산장'이라고 씌어있는 입간판이 화살표를 그으며 슬그머니
안내에 끼어든다.인골산장 입구를 지나면 곧바로 봉의저수지 수면이
드러나는 지점이다.우측으로는 파란 물탱크가 보이고 그 옆으로
산길이 보인다.여기까지는 '구만산'을 오르기위한 예비과정에
불과한데, 인솔하는 길라잡이(M 산악회)의 실수로 반 수의
인원들이 '북암산'으로 등산지가 바뀌게 된다.
앞서 도착한 다른 산악회들의 후미행렬을 뒤따르다 저지른 우연한
사태지만 북암산의 정기가 산객들을 잡아끌었다고 이해하는 것이
편하다.'오만 분의 일'지도에도 오르지 못한 멧덩이에 불과하지만
오늘 이곳을 찾은 다른 산악회 모두가 북암산을 찾은 까닭은 분명
이유가 있을터이다.산길을 잘못 인솔한 것을 곧바로 인식하고 수정할
기회는 있었다고 생각된다.그러나 한편으로는 다른 산악회 회원들이
부지기수인데다가 산길은 초장부터 코가 바닥에 닿을 정도로 된비알
이고 게다가 산길은 한사람 간신히 이동할만큼 비좁으니 어찌할
방도가 마땅치 않았을게다.
어쨋든 이제부터는 북암산 산행이 시작된 셈이다.
벼랑이나 다름없는 오르막은 갈지(之)자 형태를 보이며 숲그늘속을
타고 오른다.숲의 그늘은 짙고 푸르다.그러나 무더위를 식혀주려면
바람이 거들어야 가능하다.그러나 바람도 이미 더위를 먹은 모양이다.
밀양 119소방대에서 일정한 거리마다 세워놓은 북암산 신고처 말뚝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봉분이 평지나 다름없게 주저앉은 묵묘
뒤의 대여 섯평의 그늘아래 여럿의 등산객들이 땀을 식히며 숨을
고르고 있다.숲그늘이 두텁게 드리운 산길을 따르면 푸른이끼가
덕지 낀 거뭇한 괴석 곁을 지나게 되고 이내 된비알을 구불거리며
오르막을 기는 산길이 산객의 땀을 내놓으라 한다.
119신고 말뚝 두엇을 지나면 더욱 가파른 벼랑의 오르막이 기다린다.
팥죽땀은 이미 온 몸을 타고 흐른다.된비알에 코를 박은 얼굴에서
산길바닥으로 방울방울 땀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이리구불 저리구불거리며 고도를 높여나가는 된비알 끄트머리를
자꾸 올려다 본다.나무가지들 사이로 혹여 끄트머리인 하늘이 올려다
보이려나,하늘이 말갛게 눈에 들어오면 고지는 멀지 않았다는 나름의
경험으로 얻은 선견이다.게으른 선비 책장만 넘긴다 했는가,
걸핏 치켜 뜬 눈빛에 짜증과 원망이 서리기 시작한다.팥죽땀은 이제
기나긴 장을 준비하고 있다.겨드랑이와 사타구니는 이미 물을 끼얹어
놓은 듯하고 손수건은 물수건으로 바뀐지 이미 오래다.
된비알 바윗길이 앞을 막아선다.기다란 로프에 젖은 몸을 의탁하고
비알을 탄다.마춤맞은 자리에 노송이 그늘을 드리우고 쉬어감을
권한다.마른 목을 적셔본다. 길섶의 소나무에 몸을 기댄 채 헐떡거리는
등산객들이 자주 목격된다.물을 뒤집어 쓴 몰골의 딱한 어느 아낙의
모습도 보이고, 길 한켠에 아주 주질러 앉아 등산포기 행태를 보이는
지친 등산객들도 이따금 눈에 띠곤 한다.
애면글면 올려 친 주능선 삼거리,스텐레스 재질의 산행안내 말뚝이
세워져 있다.우측의 산길은 문바위 1.2km,억산3.9km를 알린다.
좌측으로도 선명한 산길이 나있는데 그 쪽으로는 아무표식이 없다.
이 쯤에서 구만산으로의 행로를 따르려면 왼쪽의 산길로 봉의저수지
상류계곡인 하인계곡으로 내려서서 구만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으로
올려붙는 방법을 선택할 수도 있지싶다.
그러려면 동행할 동료를 기다려야 겠다.여남은 명이 이와같은 산행에
동반한 셈인데 한데 뭉쳐야 하지 않겠는가.
과일 몇 조각,빵과 우유 한 봉지를 점심삼아 해치우고나니 동료들이
하나 둘 이곳 삼거리로 모이기 시작한다.
왼쪽의 산길을 잠시 살펴보니 산길은 선명하고 확실하게 나있는데
가파름의 경사가 벼랑을 방불케 한다.이제까지 오른 산길의 경사는
이에 비하면 양반 산길이다.
별 수없이 다른 산악회 회원들(그들 대부분은 근교의 경상도 지역분)
에게 자문을 구해본다."이곳 삼거리에서 왼쪽 길을 따르더라도 구만산
으로의 등행이 가능하고 문바위 쪽인 우측으로 좀 더 가도 구만산으로의
삼거리가 있으니 그 쪽이 안 낫겠능겨!" 하고 의견을 내놓는다.
문바위 쪽을 향하는 산길을 따르기로 의견을 모으고 가파른 산길을
오르고 내리친다.다시 한번 오르막을 올려치니 이 멧부리가
해발 806m의 북암산 정상이다.정수리에는 검은빛의 빗돌이 세워져
있으며 돌조각들이 한 무더기 쌓여있다.잡목으로 조망은 남쪽 방면
으로만 틔여있고 문바위쪽으로는 녹음이 산길만 빼꼼이 열어두고
있다.문바위를 따르는 능선길은 이따금 너럭바위나 멍석바위를
내놓으며 전망대를 제공한다.
문바위봉의 우뚝함이 파란하늘을 찌르고 있으며 푸르름의 지나침으로
멍울이 맺혔는가, 온 멧덩이가 거뭇한 기색을 띤다.
울멍줄멍한 바윗길을 오르고 내려도 구만산으로의 등행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산객에게 삼거리 갈랫길은 모습을 보이기를 주저한다.
얼마 쯤을 지났을까,눈을 치켜뜨니 현재 위치는 문바위봉의
턱밑 쯤에 다다른 느낌이다.여러 등산객들이 마춤맞은 자리를
차지하고 산상의 오찬을 즐기고 있는 삼거리 능선길,오른쪽의
된비알을 오르면 문바위봉이고, 죄측의 벼랑같은 내리막은
가인계곡으로 내려서는 하산길이다.가인계곡에서 구만산으로의
등행은 가인계곡에서 결정할 일,이제는 문바위봉을 찍고 되돌아
가인계곡으로의 일정을 세운다.
다른 동료들은 아직도 점심을 거르고 있으니 이후의 산행은
홀로산행이나 다름없게 진행할 수밖에 없다.애면글면 허위단심
팥죽땀을 연신 닦아가며 오른 문바위봉,해발 884m의 거대한
암봉으로 이루어진 사방팔달의 일급전망대 봉우리다.
가지산과 운문산 그리고 문바위쪽으로 이어지는 울룩불룩
산등성이는 억산을 솟구쳐 놓고 이내 문바위봉과 북암산을 일궈놓고
있다.구만산이 아스라하게 조망이 된다.문바위봉에서 바라 본
구만산의 아슴맞은 조망이 이곳에서 가인계곡으로 내려서서 내처
구만산 등행을 결행하리라 하는 마음가짐을 매정하게 흔든다.
문바위를 다시 되 내려서서 가인계곡쪽 벼랑같은 산길을 내리
꽂히 듯 이어나간다.얼핏 어느 여행사 가이드 북에서 본 차마고도
(茶馬古道)의 험하고 지루한 산길의 사진들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차마고도는 고대의 비단길보다 더 앞선 무역로다.
중국 윈난성,쓰촨성에서 시작되어 티벳,인도,파키스탄 등지를 거쳐
비단길로 이어지는 길,'마방(馬幇)'이라는 상인들이 말과 야크를
이용하여 중국의 차와 티벳의 말을 서로 사고 팔기위해 지나다녔던
아주 오래 된 산길이다.
너무 길고 험한 길의 대명사인 차마고도가 아직은 내가 직접 걸어보지
않은 미답의 산길이지만 지금 이곳의 내리막 산길처럼 험하고 고달픈
산길일 것이다.아직 계획은 없으나 차후의 차마고도를 밟기위한
전지훈련 쯤으로 치부해 두자.한시도 한눈을 팔 겨를이 없는 벼랑같은
내리막은 끝없이 지루하게 꼬리를 이어나간다.
연신 물보충 신호를 보내는 마른 목은 타들어가는 뙤약의 햇살에 더욱
비명을 지른다. 발밑을 허투루 여길 틈을 주지않는 절벽같은 벼랑길,
돌부스러기와 마른 모래로 장식이 된 벼랑길은 한시도 여유로움을 주지
않는다.
어느 정도 계곡에 다다른 느낌이지만 여러 겹으로 층을 이룬 거뭇한
녹음으로 계곡의 바닥이 가늠이 안 된다.
라면 끓이는 냄새가 코끝을 자극한다.옳지! 이젠 골짜기로 내려섰구나!
젊은 사내 서넛이 발을 물에 담그고 라면 그릇에 코를 박고 있다.
조금 더 아래 쪽으로 발길을 옮기니 이제는 삼겹살익는 냄새가 폴폴
코를 유혹한다.한쪽에서는 웅덩이같은 소(沼)에서 물놀이를 하고
또 한켠에서는 고기를 굽고 음식을 펴놓고 만찬을 준비한다.
첨벙거리는 물소리,깔깔 낄낄거리는 웃음소리를 뒤로하면 계곡
오른편의 오르막 초입에 구만산으로의 산행안내 말뚝이 보인다.
구만산 3.5km를 가리키는데, 1시간을 부지런히 걷는다면 도달할
수 있는 거리다.현재 시각 13시,잠시 망설인다.15시 30분까지
하산시간을 정해놓은 공규가 있는데, 앞으로 남은 시간을
계량해보면 가능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식수가 이미 바닥을 드러냈다.평소의 수분
섭취량을 비교해보면 배 이상의 식수소비를 한 셈이다.
운행에 필요한 연료가 바닥을 드러냈다면 진행은 무모할 수밖에.
앙앙불락할 이유가 없다.
군데군데 계류의 지절거림 그리고 계곡을 찾은 유산객들의
재잘거림이 뙤약의 볕속으로 시나브로 녹아든다.
긴 계곡을 빠져나오면 중간 치의 사과 묘목이 한참 커나가는
과수밭 곁을 지나가게 되고 이윽고 봉의 저수지가 나타난다.
명경의 수면이다.하늘나라 천사가 목욕을 하려 내려앉았는가,
티끌같은 물비늘 주름조차 보이지 않는 에메랄드 수면 저 깊은
곳까지 하얀 명주솜을 찢어 흩어놓듯 구름이,코발트 빛 하늘이
떡하니 들어앉아 있으니 말이다.
오늘의 산행계획의 날머리는 구만계곡 입구 주차장이다.
그러니 그곳으로 이동을 해야한다.콜택시의 도움으로,주차장의
실비샤워장에서의 시원한 땀닦아내리기와,콩국수와 막걸리의
덧붙임으로 혹서의 한낮은 그렇게 지나간다.
"폭염주의보가 내려졌으니 어르신들은 건강을 위하여 뙤약볕을
피하고 시원한 장소로 이동을 하시기 바랍니다."
동네 이장님이 발송하는 마이크소리가 골안을 가득히 메운다.
(2016,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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