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금 이
어만사가 만난 10월의 동화작가
10월 25일 토요일, 푸른책들 출판사에서 이금이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려 바깥 날씨는 쌀쌀했지만
인터뷰가 진행된 세미나실은 선생님께서 들려주신 좋은 말씀 덕분에 참 따뜻했습니다.
바쁘신 가운데 긴 시간 내주신 이금이 선생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 본명이세요?
의외로 필명인 줄 아시는 분들이 많더라구요. 제 이름은 아버지가 지어주신 본명입니다. 소리 나는 대로 하면 ‘그미’잖아요. 우리말로는 그 여자를 그미라고 하지요. 한글로는 그렇고 한자로는 거문고 ‘금’자에 작은 바람 ‘이’자예요. 작은 바람 ‘이’자는 흔하게 쓰는 글자가 아니라서 작은 옥편에는 나오지도 않지요.
= 아버지께서 이름 짓는데 조예가 있으셨나 봐요?
아버지는 문학 애호가셨어요. 우리나라에서 나오는 문예지는 모두 구독을 하셨어요. 제가 문학을 전공하지 않고도 작가가 된 것은 그 영향이 컸어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가 구입하신 문예지를 모두 읽었거든요.
-.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은 계기가 있나요?
초등학교 3~4학년 때 아버지가 사 주신 세계문학전집을 읽기 시작하면서부터였어요. 그 것들을 읽으면서 ‘재미있다’로 끝나지 않고 ‘나도 이런 것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일었어요. 혼자 뒷이야기를 상상하고 친구들에게도 들려주기도 했지요. 숫기가 없어서 남 앞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는데도 이야기 들려주는 일은 좋아했어요. 그때는 동화작가가 따로 있는 줄도 몰라서 소설가가 꿈이었지요. 그리고 그 꿈은 한 번도 바뀌지 않았어요.
-. 글쓰기는 좋아하는데 상은 못 받았다는 인터뷰를 읽은 적이 있는데요. 수상을 못해서 의기소침한 적은 없었나요?
공부를 잘 하는 아이가 상을 못 받아야 의기소침할 텐데, 저는 공부도 잘 한 것도 아니고 어디 가서 주목 받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웃음)
글짓기 대회에도 많이 나가지 못했어요. 전국 규모의 대회는 딱 한번 나가봤는데, 주최 측에서 요구한 것은 자기의 경험이나 느낌을 산문으로 쓰는 거였어요. 그런데 저는 꾸민 이야기 쓰기를 좋아했고 대회에 나가서도 동화를 썼어요. 당연히 떨어졌지만 이야기를 만들어 쓰는 일이 즐겁고 좋았기 때문에 의기소침하지는 않았어요.
-. 이 일이 천직이다, 이 일로 밥벌이를 해도 되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언제였는지요?
예전에는 글 쓰는 일을 돈벌이로 생각하지 못했어요. 제가 등단한 것이 이십사 년 전인데, 그 때는 문학하는 사람들이 문학을 돈으로 환산하거나 밥벌이로 생각하는 일에 거부감을 느끼던 시대였지요. 저 역시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했고 만족스러웠고요.
결혼하고 십 년쯤 지나서 남편의 사업이 어려워진 적이 있는데, 그때야 비로소 글 쓰는 일을 직업으로 인식하게 되었어요. 작가가 된 지 15년 여년이나 돼서 말입니다. 그때 글 쓰는 일이 아니었다면 다른 직업이라도 구해야 할 때였는데 제가 작가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새롭게 깨달았고, 고맙게 생각하게 됐어요.
글 쓰는 일이 직업이라고 생각하게 되면서부터 독자에 대한 인식도 달라졌지요. 수많은 책 가운데서 내 책을 선택해서 읽고 편지까지 보내 주니 얼마나 고마워요. 그런데도 독자들은 오히려 제게 작품을 써줘서 고맙다고 하니, 감사한 일이지요. 그 때부터 팬레터에 꼬박꼬박 답장을 하기 시작했어요.
-. 가장 처음 쓴 동화는 어떤 것인가요?
세상에 발표한 적은 없는데 <새와 아이>가 첫 작품이라고 할 수 있지요. 할머니와 사는 장애아동과 도시에서 온 여자아이를 주인공으로 해서 자유와 우정, 사랑…… 뭐 그런 이야기를 쓴 작품인데 100장짜리였지요. 그 당시 중앙일보 신춘문예 아동문학 부문으로 어린이 잡지 '소년중앙' 에서 105매를 3회 분재하는 형식으로 중편 소년소설을 모집했는데, 당선작을 읽어보니 바로 제가 소설이라고 생각하며 쓴 제 작품들과 같은 거였어요.
그래서 별로 고칠 것도 없이 <새와 아이>를 응모했는데 최종심까지 갔어요. 지금은 공모전에서 떨어지면 제목이나 내용을 고쳐서 다른 곳에 또 응모하지만 저희 때는 그러지 않았어요. 한 번 평가 받은 작품을 다시 다른 공모전에 낸다는 것을 감히 생각하지 못했던 거죠. 물론 작가가 된 뒤에 발표할 수도 있었겠지만 낡았다는 느낌이 들어서 그러지 않았어요. 결국 제가 쓴 첫 동화는 세상에 나오지 못했지요.
그래도 처음 응모한 작품이 최종심에 오르게 되자 고무된 저는 그제야 제가 쓰고 싶어하고, 또 쓰는 글들이 소설이 아니라 동화라는 것을 깨닫게 됐어요. 목표를 소설가가 아니라 동화작가로 확실하게 정하고 나니까 쓸 거리가 더욱 많아지는 거예요. 이야기가 마음에서 흘러넘쳐 다른 일을 못할 정도였어요. 그 뒤, 1984년도에 단편 「영구와 흑구랑」과 중편 「봉삼 아저씨」를 각각 '새벗 문학상'과 '소년중앙 문학상'에 응모했는데 두 작품이 모두 당선 돼 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 거죠.
-. 선생님 작품은 발표한 지 20년이 넘은 것들도 여전히 사랑을 받는데, <새와 아이>를 낡았다고 말씀하시는 이유는 뭔가요?
모든 면에서 기왕에 나온 동화들을 뛰어넘을 만한 요소들이 없었어요. 동화가 어떤 것이라는 것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내가 어렸을 때 읽었던 작품들을 답습하고 있었던 셈이지요. 본격적으로 동화를 쓰기 시작하면서 내 첫 동화의 인물이며 주제, 스토리 모두가 진부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 선생님의 판타지 동화를 기대하는 독자도 많은데요. 사실동화 위주로 쓰는 이유라도 있나요?
저도 어렸을 때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나 『오즈의 마법사』같은 판타지를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나는데 어른이 돼서는 그다지 재미를 느끼지 못하겠더라고요. 저는 지금 여기에서 벌어지고 있는 아이들의 삶에 더 관심이 많아요. 자신에게, 혹은 친구에게서 일어날 법한 이야기로 독자들에게 공감을 주고 그들과 소통하고 싶어요.
언젠가 어머니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연회에 갔는데 참석자 한 분이, 자기 딸이 『유진과 유진』을 읽고서 '혹시 엄마가 이금이 선생님한테 내 얘기를 해 주었느냐'고 묻더래요. 또 어떤 어머니는, 작품들을 읽고 비로소 자신의 아이들이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이해하게 됐다고 하고요.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독자인 청소년들과 30여년 이상의 나이 차이가 나는 작가로서 무척 기쁘고 뿌듯했어요.
저도 다른 작가의 판타지 작품을 읽으면 독자로서 작가의 상상력에 감탄하고 신기해해요. 하지만 저는 제가 좋아하고, 또 더 잘 할 수 있는 사실적인 동화, 청소년소설에 더 매진하고 싶어요. 물론 작가로서 늘 새로운 시도나 도전을 할 필요와 의미는 있지만 새로운 장르에 대한 도전보다는 사실적인 작품 안에서 하고 싶습니다.
-. 동화와 소설은 어떻게 다른지, 또 구별을 해야 하는지요?
보다 명확한 개념 정리는 아동문학 연구자들이 하고 있고, 또 하겠지요. 그런데 저는 창작자 입장에서 이야기해 보고 싶어요. 창작자가 어린이들의 삶에 관심이 있어서 일차적인 독자를 어린이로 삼고 그들을 염두에 두고 쓴다면 그 작품은 아동문학의 범주에 들어가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 작가의 능력에 따라 작품에 대한 평가는 달라지겠지만요.
위기철의 『아홉 살 인생』이나 심윤경의 『나의 아름다운 정원』같은 작품들은 초등학생 어린이가 등장하지만 소설이란 말이에요. 아이들이 주요 인물로 등장하고 그들이 읽을 수 있는 작품인데 왜 소설이라고 할까, 그건 작가가 어른을 독자로 한 소설이라고 생각하며 썼기 때문이죠. 어린이나 청소년이 읽어도 되고, 읽을 수 있는 소설인 거죠.
동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제 작품은 어른들도 많이 읽는데,『너도 하늘말나리야』나 <밤티마을 시리즈>같은 작품은 아이들은 그저 재밌게 보았다는데 어른들은 울었다고 해요. 어른들이 아무리 많이 읽어도 저는 늘 저의 첫 번째 독자는 어린이임을 염두에 두고 글을 써요. 작가가 자기 정체성을 확실히 하고, 누구를 독자로 삼아 글을 쓰는지 잊지 않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 선생님의 책이 독자들에게 어떤 역할을 하기 바라시나요?
진부한 표현이지만 제 책이 아이들에게 마음의 양식, 그것도 즐겁고 행복한 양식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요즘은 책을 학습의 일환으로 생각하는데 그건 어린이에게 또 하나의 짐을 덧보태 주는 거예요. 책읽기가 단지 독후감을 쓰기 위해서, 숙제를 하기 위해서하는 의무 같은 일이 아니라 즐겁고 행복한 일이라는 걸 많은 어린이가 경험했으면 좋겠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작가들이 책을 재미있게 써야 하겠지요. 저는 동화의 첫 번째 덕목을 재미라고 생각합니다. 가뜩이나 과중한 공부와 성적에 짓눌린 아이들에게 재미없는 동화책을 읽으라는 건 폭력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하거든요.
-. 어린이와 청소년을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뭐라고 할 수 있을까요?
한 마디로 정의한다는 게 쉽지 않은데, 어린이는 틀이 없는 무정형 같아요. 어린 시절에는 창의력이 넘치다가 나이 들수록, 배우는 게 많아질수록 남들과 같아지려고 하잖아요. 어린이들이 무정형의 세계를 오래 간직할 수 있는 환경이 됐으면 좋겠어요.
청소년은 혼돈과 순수의 시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제 경험으로 볼 때, 청소년기는 모든 가치가 흔들리는 혼란스러운 시기였어요.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순수와 이상을 열망했지요. 돌아보면 제 인생은 청소년기에 책을 통해 배웠던 순수하고 고결한 이상과 가치에서 멀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 쓰며 살아온 것 같아요.
-. 동화작가 지망생들 가운데, 내게 동화작가로서의 소질이 있는지 고민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동화작가로서의 소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동화 작가라고 해서 다른 장르의 문학 지망생과 특별히 다르지는 않을 거예요. 모든 문학가들이 기본적으로 지녀야 하는 자질 위에 어린이에 대한 사랑과 이해가 더해져야겠죠.
그리고 습작기간을 즐기라는 이야기를 해드리고 싶어요. ‘동화가 소설보다 쉬운 것 같아서’, ‘아동문학 시장이 더 넓다니까’ 하는 마음으로 접근 한다면 더 힘들 것 같아요. 하지만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면 등단이 늦어져도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는 위안은 받을 수 있잖아요. 그리고 견딜 수도 있고요.
‘나는 동화를 쓰고 싶어. 설령 등단을 못한다고 해도 동화를 쓰지 않으면 삶이 무의미하고 행복하지 않을 것 같아.’ 이런 마음인 분들이라면 다른 사람보다 등단이 늦는다고 흔들리거나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일찍 등단하는 게 무조건 더 좋은 건 아니에요. 습작 기간이 짧으면 짧을수록 작가가 된 다음에 불안하고 힘들답니다.
-. 좋은 글은 어떤 글인가요?
지나치게 수식이 많거나 미사여구의 문장은 개인적으로 안 좋아해요.
제 생각에 동화의 좋은 문장은 쉽고 적확한 어휘를 사용한 간결한 문장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쓰는 것이 어린이 독자에 대한 배려이고요. 그렇다고 쉬운 이야기만 하라는 것은 아니에요. 어려운 이야기도 쉽게 표현해야 한다는 거죠. 어떤 작가의 글이 가슴에 와 닿는 건 어려운 말로 멋을 부려 써서 그런 게 아니거든요. 깊이 있는 내용도 쉬운 문장에 담아서 어린이가 쉽게 받아들이게 하는 것, 그게 동화에서는 좋은 문장이지요.
그런데 청소년 소설에서는 동화보다 감각적인 문체가 필요해요. 그래야 한창 감수성이 풍부하고 예민한 그 시기의 독자들을 충족시킬 수 있거든요. 드라마에서 명대사라고 하는 것들 있잖아요. 의도적으로 그런 글을 쓰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청소년 독자들의 마음을 건드릴만한, 그들 말로 ‘있어 보이는’ 그런 문장이 필요하지요.(웃음) 청소년 소설을 쓸 때는 동화 쓸 때처럼 쉽고 간결하게 쓰려고 하기보다는 은유나 비유, 상징 등이 적절하게 담긴 문장을 써요. 그저 사건의 정황이나 인물의 심리의 묘사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삶의 의미와 고뇌 등을 들여다 볼 수 있도록 하는 거지요. 그게 청소년들에게 문학작품을 읽히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 선생님 작품 가운데서 딱 한 권만 남긴다면 어떤 작품을 고르시겠어요?
한 작품, 한 작품 제게는 다 소중하고 의미 있지만 굳이 고르라면 저는 가장 최근 작품을 택하고 싶어요. 저는 늘 최근 작품이 가장 새롭고 이금이의 전 작품 가운데 가장 뛰어나다는 말을 듣고 싶어요. 물론 독자들한테 ‘이번 작품은 전 작보다 안 좋아’ 라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겠지만 저 자신은 항상 시대의 흐름에 뒤처지지 않는 작품을 쓰고 싶은 열망으로 가득차 있지요. 그것이 오래 활동한 작가로서의 역할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지금까지 나온 작품 중에서 한 권만 남기라면 항상, 가장 최근에 나온 걸 꼽고 싶어요.
-. 선생님 작업 스타일은 어떤가요?
어떤 작가들은 출근하는 것처럼 날마다 규칙적으로 쓴다는데 저는 기질적으로 그게 잘 안 돼요. 그 대신 한 작품에 들어가면 그동안은 온전히 몰입하지요. 작품을 쓰는 몇 달 동안은 그것만 생각하고, 어쩔 수 없는 것만 빼고는 외부 활동도 거의 안 해요.
그렇게 끝내 놓고 나면 당분간 맘 편히 놀아요. 비워냈으니까 놀면서 충전하는 거지요. 그렇다고 아무 것도 안 하고 놀기만 하는 건 아니고, 그 다음에 쓸 것까지는 정해 놓아요.놀면서 편한 마음으로 다음 작품 구상을 즐기지요. 그러면 책을 보아도, 영화를 보아도, 사람을 만나도, 여행을 가도 그 작품에 필요한 자양분을 흡수할 수 있게 돼요. 그러고 보니 휴식 기간이 곧 다음 작품을 위한 기간이 되는 셈이네요.(웃음)
-. <푸른책들>하고만 책을 내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1984년도에 저는 동화, 신형건 대표는 동시로 '새벗문학상'에 당선돼 문단 동기로 인연을 맺었지요. 저는 동화로 등단은 했어도 아동문학에 대한 이론이나 정보가 부족했는데 신형건 대표가 좋은 책이나 작품을 소개해 주어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신형건 대표가 1998년도에 출판사 <푸른책들>을 차린 뒤부터 함께 작업했는데 한 곳에서만 책을 내는 것이 단순히 등단 동기라는 이유 때문만이 아니라, 그를 문학에 대한 열정을 나눌 수 있는 동료이자, 신뢰할 수 있는 편집자, 그리고 내 첫 작품부터 보아온 냉철한 비평가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 서로 의견이 안 맞을 때는 어떻게 하세요?
나와 다른 시각은 내가 변화하고 발전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받아들이는 편이에요. 물론 내가 더 옳다고 생각하면 내 주장을 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기꺼이 받아들여요. 나의 독자는 대중이고, 편집자는 첫 번째 대중이라고 생각하니까요.
= 한 출판사와 작업해서 좋은 점은 어떤 게 있을까요?
예를 들면, 단편집은 문예지 등에 발표한 것을 묶어 책으로 내는데, 작가라면 세상에 발표한 작품은 모두 싣고 싶을 거예요. 그런데 한 출판사와 작업을 하니까 나름의 커트라인을 정하게 되고 거기에 못 미친다고 여겨지는 작품은 빼게 되죠. 그래서 발표하고도 책에 묶이지 못한 작품이 많지만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어느 정도의 수준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주니까 오히려 고맙지요. 만약 여러 출판사와 일하면 그런 자기 검열을 냉철하게 하기 힘들 것 같아요.
-. 선생님의 창작과정에서의 장단점은 무엇인가요?
남들이 이야기하고 저도 수긍하는 부분인데요.
섬세한 심리묘사가 장점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요. 청소년이나 어린이 독자들도 어떻게 우리 마음을 이렇게 잘 아느냐고 말하고요. 저는 인간의 심리를 들여다보고 표현하는 일이 재미있거든요. 덕분에 그런 칭찬을 들을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단점이라고 지적 받는 부분은 결말이에요. 저는 해피엔딩을 좋아하는데 그렇게 끝내지 않으면 제가 만들어 내고 생사고락을 같이 한 등장인물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요. 그래서 좀 더 치열한 갈등을 그려야 하는데도 끝날 때가 되면 내 마음이 먼저 조급해져 종종 쉽게 화해를 하거나 서둘러 행복한 결말을 내곤 하지요. 문학적 완성도 면에서 보자면 큰 단점이기도 해서 고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청소년 단편소설집 『벼랑』의 표제작「벼랑」은 끝까지 마음을 독하게 먹고 쓴 작품인데도, 완전한 비극으로 끝내는 게 너무 힘들어 주인공 난주가 경화를 밀어뜨리는 옥상을 4층으로 했어요. 4층이면 죽을 수도 있는 높이지만 살 수도 있는 높이잖아요.
= 죽음으로 끝난 게 아니었어요?
저는 안 죽었다고 생각해요. 「벼랑」 의 모티프는 신문에서 읽은 기사였어요. 한 아이가 다른 아이를 밀어 버렸다는 내용이었지요. 현실에서도 아이는 죽지 않고 다쳤어요. 민 아이가 빨리 신고를 했으면 덜 다쳤을 텐데, 방치를 해서 더 심하게 됐다고 기사에 나왔어요.
그래서 굳이 높지 않은 층에 아이들을 올려놓았죠. 떨어진 아이가 죽었다고 생각하면 난주의 인생이 정말 더 끔찍하잖아요.
-. 슬럼프는 없으세요?
몇 번 있었어요. 제 기억으로 가장 심했던 건 1996년도였던 것 같아요. 그 해에 세 권의 책이 나왔는데 세 번째 책을 보는데 더 이상은 쓸 게 없는 것 같고, 매너리즘에 빠진 듯한 제 작품에 막 염증이 나는 거예요. 그런데 저는 기질적으로 무얼 오래 괴로워하고 고민하는 일이 잘 안 돼요. 그래서 글 쓰는 걸 당분간 접어두고 이것저것 배우러 다녔어요.
그러다 주부연극반 활동을 시작했는데, 처음엔 주인공도 맡고 극본도 맡고 신이 났지요. 나중에 전문 연극배우한테서 본격적인 지도를 받게 됐는데 다들 아마추어이다 보니 기본이 안 돼 날마다 야단을 맞았어요. 그런데 어느 날 정신이 확 드는 거예요. 연극배우가 될 것도 아닌데 내가 여기서 뭐하고 있나 싶더라고요.
2년 남짓 딴짓을 하고 났더니 쓰고 싶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거예요. 그때 쓴 작품이 『도들마루의 깨비』와 『너도 하늘말나리야』지요. 사실 『너도 하늘말나리야』는 1988년도부터 쓰기 시작한 건데 10여년이 되도록 쓰다 막히고, 쓰다 막혀서 끝내지 못했던 작품이었는데 그때 미친 듯이 써서 마침내 끝냈어요. 두 권이 같은 시기에 출간되자, 어떤 평론가가 두 작품이 한 사람의 작품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분위기가 다르다는 평을 썼어요. 긴 슬럼프의 덕이 아닌가 싶어요.(웃음)
-. 선생님의 좌우명은 뭔가요?
제 삶의 좌우명은 '새옹지마'예요. 세상 일이란 게 좋다고 해서 영원히 좋을 것도 없고, 나쁘다고 해서 끝까지 나쁜 법도 없기 때문에 내게 주어진 삶을 매순간 열심히 살자는 주의지요. 우리가 가는 길에는 자갈길도 있고, 포장길도 있고, 언덕도 있고, 시원한 나무 그늘도 있는 거 아니겠어요?
물론 저도 살다보면 기쁜 일은 물론 화나는 일도 있고, 속상한 일도 있고, 슬픈 일, 괴로운 일도 다 있어요. 하지만 우리 인생을 크게 보면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생각하니까 감정의 기복이 별로 없고 무덤덤한 것 같아요. 다른 작가들은 감성이 풍부하고 예민하다는데 저는 계절도 잘 안 타서 가을에는 단풍 봐서 좋고, 봄 되면 꽃이 예뻐서 좋고 그래요. 제 나이도 사랑해요. 올해 마흔여덟 살인데 ‘와! 마흔여덟 살이나 됐네.’ 하고 스스로 대견한 생각이 들어요.(웃음)
긍정의 힘이라는 것을 믿어요. 내가 그렇게 될 거라고 믿고 노력하면 이루어지는 것 같아요.
-. 글감을 구하기 위한 노력은?
이런 말 하면 게으른 것 같은데, 글감을 고르기 위해 부러 여행을 한다거나 따로 취재를 하지는 않아요. 제 작품의 소재는 거의 다 일상적이잖아요. 남들과 다를 바 없는 일상을 살 다보면 어느 순간 글감이 내게로 오는 것을 감지해요. 노력은 그 다음부터 하는 것이죠. 글감을 어떤 모양으로 만들고 어떻게 주제로 승화시킬 것인가 고민하지요. 중요한 것은 글감의 특이성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과 관점인 것이죠. 그것을 위해 늘 열린 마음으로 살고자 노력합니다.
-. 후배들에게 한 마디 해주세요.
본질에 충실하면서 자기 일을 즐겼으면 해요. 문학에 대한 생각, 작가정신 같은 본질을 벗어나지 않으면 나머지는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본연의 작가정신은 등대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여러분도 본연의 작가 정신으로 부화뇌동하지 말고, 흔들리지 말고 굳건하게 이 길을 갔으면 좋겠어요.
공모전을 준비하는 동화작가 지망생에게
공모전 심사를 하다 보면 똑같은 작품을 여기저기서 보는 일이 흔해요. 여러 곳에 내는 것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한 번 떨어진 작품을 수정 한 번 안 하고 내는 건 자기 작품이나 심사위원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 사실을 심사위원들이 모르지 않아요. 주최측도 다른 공모제도의 심사평 등을 보면서 크로스체크 하고요.
내 작품이 한 공모제도에서 떨어졌으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거잖아요. 그럼 일단은 작품을 다시 돌아보고 수정 노력을 하는 게 옳은데, 제목만 고친다거나 그마저도 안 하고 또 다시 낸다면 요행수를 바라는 것처럼 비춰지거든요. 심지어 어떤 사람은 발표도 나기 전에 주최측에 전화를 걸어 당락여부를 알려달라고 한다더군요. 빨리 알아야 다른 데 낼 수 있 으니까요. 그건 문학 지망생으로서 기본 자세가 아닌 것이죠.
한 작품을 갖고 일 년에 다섯 번을 공모전에 냈다고 쳐요. 그래서 조금 일찍 등단할 수도 있겠지요. 그렇지만 작가로서의 삶을 등단작 하나로 끝낼 건 아니잖아요. 고칠 새도 없이 자꾸 내다보면 자기 작품을 돌이켜볼 시간이 없어져요. 길게 보았을 때 자신한테 해가 되는 일이지요.
예전처럼 문학이, 피를 짜내듯 한 글자, 한 글자 쓰는 것이라고 여기는 세상은 물론 아니에요. 상업적인 접근이나 전략도 필요하겠지만, 작가라는 직업은 어느 직업보다 준열한 자기 검열이 필요합니다. '나는 왜 글을 쓰는가?'하는 질문을 끊임없이 자신에게 해야 합니다.(*)
인터뷰 진행 : 넝쿨
사진 : 보바
정리 : 피린
함께한 분 : 나비잠
첫댓글 얼마전에 책 선포식을 위해 구미에 오신 이금이 작가. 이 작가의 2008년 인터뷰가 있길래 퍼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