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다양한 꿈 키우는 ‘문화 사다리’ [‘공정한 사회, 문화복지에서도’] ③명예교사들 문화예술
정부의 국정운영 기조인 ‘공정한 사회’는 문화에서도 예외일 수 없다. 경제적으로 부유하더라도 문화적 소양이 뒷받침되지 못 하면 진정 풍요로운 삶이라 할 수 없다. 또 그런 나라를 선진국이라 할 수도 없다. ‘모든 국민이 어려서부터 문화예술을 접할 수 있는 나라, 생활 형편과 상관없이 누구나 문화를 누리는 나라’를 만드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공정한 사회를 실천하는 정부의 문화복지 정책들을 살펴봤다.<편집자 주>
“사진은 일기야. 빛으로 쓰는 일기지. 우리가 일기를 쓰듯이 사진을 찍는 거야. 손재주가 없어도 마음만 있다면 얼마든지 자신의 세상을 펼칠 수가 있지.”
16일 서울 삼성동 올림푸스홀. 홀을 메운 중학생 40여 명의 시선이 연단에 선 한 남자에게 집중돼있다. 반바지와 단화 차림에 레게머리를 땋아 묶은 독특한 차림새, 게다가 쉰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친근한 동년배처럼 느껴지는 말투에 툭툭 내던지는 이야기 또한 예사롭지 않다. 사진작가 김중만이다.
초창기 프랑스에서 찍은 사진부터 시작해 현재까지 작업해온 사진들을 쭉 정리해 보여주는 것으로 강연은 시작됐다. 슬라이드 화면에 비친 사진들은 그가 본 세상과 삶을 가감 없이 말해주고 있었다. 자신의 역사를 기록하듯 사진을 찍어온 그가 ‘사진은 곧 일기’라며 말문을 연 것도 이때문인 듯 했다.
16일 서울 삼성동 올림푸스회관에서 김중만 사진작가(가운데)가 성남문원중학교 학생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김 작가는 “사진은 구구절절한 설명을 하지 않아도 내가 원하는 걸 설명해줄 수 있는 좋은 툴(도구)이다. 특별히 위대한 사진가나 예술가가 되겠다는 생각에서가 아니라 그냥 마음 내키는 대로 재밌어서 찍기 시작했다”며 사진작가가 된 동기를 설명했다.
그러기를 36년째. 그의 인생이 그렇듯 열다섯 살 난 학생들에게도 그는 거창한 꿈을 강요하지 않았다. 그는 “꿈은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가능성이 열려있는 나이이니 만큼 일단 달성할 수 있는 목표, 실현가능한 꿈을 정하고, 조금씩 이뤄나가는 경험을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문화예술 접하고 꿈꾸게 하는 것도 예술가의 역할”
미술과 음악 같은 예술교과마저 암기과목으로 치부되는 요즘. 이런 현실 때문인지 아이들도 이 날 강연에 큰 흥미를 느끼는 듯 했다. “연예인 몇 명 찍어봤나” “휴대폰 사진기로도 찍어봤나” 같은 아이들다운 질문도 자유롭게 오고갔다.
강의에 참석한 성남문원중학교 박주호 학생은 “사진이란 분야에 대해서 새롭게 알 수 있었고 관심도 생겼다. 막연하게 알고 있었던 것을 간접 체험한 느낌”이라며, “앞으로 이런 기회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강연이 끝난 뒤 사진 촬영을 요청하는 아이들에 겹겹이 둘러싸인 김 작가는 “강연 요청이 많은데 그 중에서도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라서 더욱 마음이 끌렸다”며,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문화예술의 다양한 장르를 접하게 해주고,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도 예술가들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정명훈·강수진 등 문화소외층 아이들 위해 ‘문화전도사’ 자처
김중만 씨는 문화체육관광부가 학교 문화예술교육사업의 일환으로 도입한 명예교사다. 정명훈 서울시향 예술감독을 비롯해 조수미·강수진·은희경 씨 등 각 분야의 내로라하는 예술가 17명이 문화예술교육 명예교사로 위촉됐으며, 이들은 지난해 10월부터 학생들과의 만남을 이어오고 있다.
명예교사제는 전국 초중고교 학생들에게 문화예술교육을 현장에서 경험할 수 있도록 하고, 특히 서민층, 저소득층 등 문화적으로 소외되기 쉬운 아이들에게 희망과 꿈을 불어넣기 위한 일종의 ‘문화사다리’를 놓는 작업이다. 2008년 처음 시작돼 지난해까지 33회에 걸쳐 1만3000여 명의 학생이 명예교사의 교육을 받았다.
문화예술교육 명예교사들은 문화적으로 소외되기 쉬운 아이들에게 희망과 꿈을 불어넣기 위한 ‘문화전도사’ 역할을 하고 있다. 사진은 명예교사로 활동중인 정명훈 서울시향 감독.
이들 명예교사는 단순 관람형 행사가 아닌 해설이 있는 공연이나 문화예술 현장탐방, 관현악단과의 협연, 캠프 등 학생들과의 소통이 가능한 프로그램을 통해 문화예술교육의 효과를 높이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이다.
명예교사로 활동중인 박종원 한국예술종합대학 총장은 “명예교사로 경북 봉화초등학교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세 집 가운데 한 집이 다문화 가정이나, 한부모 가정이었다”며 “이처럼 문화혜택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예술을 통해 삶의 가치와 향기를 알려주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문화예술교육 아이들의 쉼터 됐으면”
정부는 이 같은 명예교사제를 통해 문화예술 교육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계기를 마련한 뒤 현장에서 지속적인 교육을 담당할, 제대로 된 예술강사를 꾸준히 양성해나간다는 계획이다. 이미 전국 4천800여 곳의 초.중.고교를 비롯해 복지시설, 교정, 소년원, 군부대 등에서 총 4천여 명의 예술강사들이 활동 중이다.
김중만 작가는 “청소년들이 가지고 있는 비전이나 꿈이 너무 제한적이다. 문화예술을 체험케 해주는 예술강사들을 통해 아이들이 세상을 더 넓게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다.”며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계속 참여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문화예술교육이 아이들에게 어떤 가르침보다는 하나의 쉼터 같은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는 말도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