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슈타트에서
김남희
오스트리아로 여행을 온지 사흘이나 지났다. 비엔나에서는 ‘키스’로 유명한 구스타프 클림트 작품도 만나고, 인터넷에서 소개한 유명한 카페에서 줄을 서 기다리며 비엔나커피도 마시는 여유를 즐겼다. 비록 서툴고 힘은 들지만 직접 계획한 여행을 한다는 것은 가슴 뛰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난생처음 접하는 유럽에서의 자유여행, 그것도 차를 렌트해서 여기저기 찾아다녔다. 혼자서는 엄두도 못 낼 일을 가족과 함께여서 용기를 낸 것이다.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동화 같은 작은 마을 할슈타트를 향하는 길은 더욱 가슴을 설레게 했다. 작지만 아담한 지상의 낙원 같은 휴식을 주는 마을이라고 해 여행의 휴식을 얻고 싶었다. 유럽초기 철기문화의 흔적과 세계최초 소금광산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이라고도 했다.
눈 내리는 오스트리아의 고속도로는 아름다웠다. 알프스 산자락에 자리를 잡은 집들은 우리나라주택과는 모양과 형태가 달랐기에 모든 것이 새로웠다. 거리의 풍경에 취해 요들송을 부르며 달렸다. 여행의 즐거움에 푹 빠져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버린 탓일까? 날은 저물고 도로에는 눈이 쌓이기 시작했다. 속도를 줄이니 벌써 도착해야하는 할슈타트가 가도 가도 보이지를 않는다. 도로에는 차도 몇 대 없고 집들도 흩어져 있어 더욱 낯설었다. 설상가상으로 차에는 스노 체인도 없다. 차를 렌트할 때 스노 체인에 대해서 물었더니 렌터카 직원은 ‘No, problem!’이라며 딱 잘라 말했었다. 날씨가 변화무상한 동유럽에서 스노 체인이 있어야 할 것 같았으나 현지인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속도를 줄인 채 미끄러운 도로를 몇 시간이나 달렸을까? 고속도로가 끝나자 마을길이 나타났다. 마을로 들어서니 이번에는 내비게이션이 가파른 산길을 안내한다. 이 밤에 산길이라니. 눈이 이렇게 많이 쌓여 있는데. 내비게이션을 다시 설정해 보아도 다른 길은 없는 듯 계속해서 산길만 가리켰다. 스노 체인이 없는 승용차를 몰고 있다는 것도, 산길에 눈이 쌓여 통행이 어렵다는 것도 기계인 내비게이션이 알 턱이 없었다. 되돌아 갈수도 다른 길을 찾을 수도 없어 고갯길 운전이 시작 되었다. 가파른 산길을 남편은 혼신을 다해 운전했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눈보라 속, 오르막길을 지나니 내리막길이 나오고 평평한 길인가 싶더니 다시 오르막이 나오고 길은 온통 절벽을 물고 있었다.
‘만약 여기서 차가 굴러 떨어진다면... 긴급구조 요청은 몇 번을 눌러야 되지? 언어도 통하지 않는 타국에서 구조요청은 어떻게 해야 하나?’
운전에 방해 될까봐 말도 못 붙이고 숨소리도 제대로 못 내고 있었다. 온 몸에 용을 쓰며 몇 번의 고갯길을 휘돌았을까? 멀리서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왔다. 눈보라 사이로 비친 것은 분명 할슈타트 주차장 불빛이었다. 마침내 할슈타트에 도착한 것이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자 차도 사람도 맥없이 후들거렸다.
전쟁터에서 살아 돌아온 병사마냥 호텔 문을 열었다. 여행객들에게는 아담하고 특이한 공간으로 이미 입소문이 자자한 호텔이라고 했다. 알프스 소녀 하이디처럼 옷을 입은 직원이 ‘CLOSE’ 라고 한다. 순간 호텔에 빈방이 없나 싶어 가슴이 철렁 했다. 미리 예약했다고 하자 그녀는 겸연쩍은 웃음으로 1층 레스토랑은 ‘CLOSE’라며 2층으로 안내한다. 눈길 속 늦은 시간에 손님이 방문하니 아마도 레스토랑 직원은 호텔손님이 아니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예쁜 테이블이 놓여 있는 레스토랑을 가로질러 2층으로 올라갔다. 주인인 듯 보이는 여자가 눈 오는 날씨에 여기까지 온다고 고생했다며 인사를 건넸다. 그녀는 아침 식사시간과 장소를 일러 주며 3층 객실로 안내했다.
호텔은 중세시대의 저택, 난장이가 머무는 저택을 연상케 했다. 일어서면 머리가 닿을만한 천장 높이에 벽에는 양초를 꼽아 분위기를 더했다. 나선형으로 된 나무계단을 밟고 올라서니 복고풍으로 장식한 복도가 나온다. 주물열쇠를 꺼내 방문을 여니 세월을 품고 있는 빈티지가구들과 침대가 한눈에 들어왔다. 마치 빌보 배킨스 하우스(반지의 제왕 속)에 온 기분이다.
창문을 열어젖히니 아름다운 밤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조명에 반짝이는 하얀 지붕들을 타고 이웃집을 가보고 싶은 충동에 빠졌다. 늘어진 나뭇가지에 유럽풍 꽈리모양을 한 주황색 등이 눈과 어우러져 빛났다. 저 멀리 호수가 보이고 가로등에 비친 눈은 호수 속으로 떨어져 살포시 호수의 품에 안기는 듯 했다.
시장기가 돈다. 할슈타트 현지 식을 맛보고 싶었으나 식당이 문을 닫아서 어쩔 수가 없었다. 커피포트에 물을 끓이며 라면을 꺼냈다. 라면국물에 지친 몸을 녹이자 방금 지나온 눈길이 꿈결처럼 지나간다. 하얀 침대시트의 포근함 속으로 잠을 청했다.
다음날이다. 겨울왕국의 영감을 준 고즈넉한 할슈타트 호수마을이 눈앞에 펼쳐졌다. 제설차가 아침부터 눈을 치우더니 여행 온 관광객들이 하나 둘 인사를 건넸다. 빵 굽는 소리, 커피 향 떠도는 소리, 자전거 체인 돌아가는 소리가 뽀드득 거리며 할슈타트 마을을 휘감았다. 푸나쿨라(케이블카)를 타고 전망대도 보고 세계최초의 소금광산도 둘러볼 생각이었으나 아쉽게도 눈 때문에 운행이 중지 되었다. 광부의 모습을 한 포토 존 앞에서 사진으로 추억을 담고 박물관을 둘러보는 것으로 대신했다. 아득한 옛날 소금을 뜻하는 ‘할 ’에 마을을 뜻하는 ‘슈타트 ’를 붙인 할슈타트 소금마을이 바다였다며 소금덩어리들이 즐비했다. 바다 속 길을 밟듯 눈길을 걸어 보았다.
눈이 그치자 햇살에 비친 마을이 민 낮을 드러냈다. 화장을 하지 않은 민 낮이 이보다 더 아름다울 수가 있겠는 가. 민 낮 속에 우리가 왔던 길 반대 방향으로 시원한 도로가 나 있었다. 차들이 쌩쌩 달리는 도로를 보자 우리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저 길이 어제저녁 우리가 와야 했던 길 임을 비로소 알았던 것이다.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산길을 헤매던 기억도 면역체 같은 할슈타트를 거닐며 점점 잊혀졌다. 붉은 소금덩이를 만지듯 뜨거운 가슴으로 여행을 즐겼다.
첫댓글 얌모, 얌모, 꼽빠 얌모야
가자, 가자, 꼭대기로
푸니쿨리 푸니쿨라, 푸니쿨리 푸니쿨라
케이블카, 케이블카
푸니쿨리 푸니쿨라라는 나폴리민요와 케이블카를 타고 바다를 건넜던 기억이 떠올라 신납니다. 덕분에요!
푸나쿨라를 타보셨군요 아쉬웠습니다. 거기까지 가서 그냥 돌아서는 길이~^^ 감사합니다
저는 일본 여행에서 첫날 그것도 아침부터 차선을 잘못잡아 사고를 냈지요.
다치지는 않았지만 바퀴 휠이 다 날아가고 했어요.
다행히 렌트회사에 연락했더니 다른 차로 그자리에서 바꾸어줬어요.
물론 보험으로 해결되어 추가 비용은 없었지만. 해서 이제는 페키지가 제일 편하고 좋아요.
난감하셨겠습니다. 자동차 사고라니~^^
렌트회사가 서비스가 좋네요.
저는 일본에 가서 중죄인 취급 받아 (동명인인줄 알고)공항에서 못나올뻔 했습니다. 향후5년 동안은 일본 오지 말라고 해서 일본 안가고 있습니다. 아직 몇년 남았습니다.
할슈타트를 읽으니 저는 오스트리아를 겉핥기로만 어슬렁거렸다는 생각이 듭니다.
잘 읽었습ㄴ;다.
렌트카 여행이 보기보다 스릴이 있었습니다.
빈대때문에 하루를 꼬박 빨래방에서 머무르기도 했지요.
감사합니다. 회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