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은 할매할배 마음은 동심이었네!
솔향 남상선/수필가
나이가 들면 도로 어린애가 된다는 말이 있다. 아마도 그냥 나온 속설이 아닌 듯싶다.
전에는 무감각하게 들리던 그 말이 언제부터인가 실감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중학교 동창회 모임 얘기가 카톡방에 올라왔다. 이걸 보고 어렸을 적 소풍날 운동회 날을 기다리던 그 시절이 떠올랐다. 이 나이에 동심의 그 세월을 그리워하다니 내가 다시 어린애가 돼 간다는 말인가!
나이 탓인가 묵상에 잠겨보니 인생무상(人生無常)은 특별한 사람의 전유물이 아닌 것도 같다.
카톡방에 기다리던 대흥중학교 14회 동창 모임을 갖는다는 문자가 눈길을 끌고 있었다.
모임 날짜시각은 5월 16일 12시 30분, 장소는 서울시 용산역 근처 ‘기와집 한정식’이었다.
중학교 졸업하고 강산이 6번이나 바뀌었으니 변하지 않은 게 무엇이 있으랴!
대전에는 중학교 동기가 셋이나 살고 있다. 정낙창, 김성재, 남상선 아마도 죽마고우(竹馬故 友)라 해도 이상할 게 없는 친구들이다.
동창회 날짜가 박두했다. 예약해 두었던 승차권으로 서대전 역에서 ktx를 타고 11시 7분에 용산역에 도착했다. 동창 하나는 사정이 있어 못 가고 성재 친구와 나는 용산역에서 내려 1번 출구로 나갔다. 최낙영 회장이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악수와 포옹으로 만나는 기쁨을 대신했다.
마련된 오찬 장소에는 오는 대로 앉아 있는 할매할배가 옛날을 회상하며 정담을 나누느라 야단들이었다. 중학교 교복을 입고 교모를 썼던 모습은 온 데 간 데 없고 한결같은 할매할배의 모습밖엔 없었다. 작년 모임에 내 이름(남상선)을‘박상선! 반갑다’부르던 그 친구도, 공을 잘 차서 볼의 귀재라 불렀던 그 얼굴도, 새침데기였던 그 여학생은 할매가 되어 나타났는데 하급생에게 못살게 굴었던 그 동창은 보이지 않았다. 쉬는 시간만 되면‘빵구러 가자(하급생을 괴롭히러 가자는 은어로 통용됐던 말)’했던 그 친구는 뭐가 그리 급했는지 소풍 길 재촉해 가느라 보이지 않았다. 인생 일장춘몽이라더니 그 말이 남의 얘기가 아닌 것 같았다.
속담에‘길동무가 좋으면 먼 길도 가깝다’는 말이 있다. 내가 바로 그런 심정으로 살고 있다. 중학교 동창들을 비롯해서 좋은 친구, 지인들이 힘을 나게 해 주어 황혼 인생이 즐겁기만 하다.
무엇을 하든 흥이 나게 해주고 힘을 북돋워 주는 그런 사람들이어서 내 생에 보약 같은 분들이라 하겠다.
토마스풀러의 명언에.
‘보지 않는 곳에서 나를 좋게 말하는 사람은 진정한 친구이다.’
라 했는데 우리 대흥중학교 14회 동창들이 바로 그런 얼굴들이다. 가슴이 따뜻하고 포용력 있는 친구들이다. 웬만한 실수는 눈감아 주고 항상 내편이 돼 줄만한 그런 동창들이다.
연중 두 번 갖는 동창 모임인데도 박일상 같은 친구가 있어 회비걷는 걸 거를 때가 많았다. 여유가 있어서라기보다는 부처님 같은 심성에 용광로가슴으로 사는 친구였기 때문이다. 그저 동창들한테 밥 한 끼 사고 싶어 술 한 잔 같이 하고 싶어 그런 선심을 발동한 거였다. 이번 동창회 모임은 30명 남녀 동창들이 참석했다. 그저 옛날 얼굴들이 그리워서 원근을 가리지 않고 모여든 것이다. 그야말로 얼굴은 달라도 마음은 하나였다. 30명의 한정식 식대가 1백만 원이 한참 넘는 큰돈이었는데 이걸 박일상 친구가 혼자서 완불했다. 동창이지만 자랑스러운 친구다.
또 인천에서 온, 멋지고 사람답게 사는 김영선도 가만히 있질 않았다. 기꺼이 금일봉을 쾌척(快擲)했다. 기회가 되지 않아 그렇지 우리 대흥중학교 14회 동기들은 모두 이런 얼굴들이다.
지난 4월에는 입맛 나게 하는 귀한 두릅 순이 우리 집에 소포로 배달됐다. 중학교 동기 강환근 친구가 용인에서 보내온 사랑의 징표였다. 느꺼운 우정에 먹으면서 울컥울컥했다. 또 내가 전립선 4기 암 환자로 몸부림차고 있을 때 인천 사는 이두영 친구가 내 전립선 암을 걱정하여 성당에서 미사 봉헌까지 해주는 사랑을 받았다. 이렇게 알게 모르게 나의 암 질환 쾌유를 위해 전국 예서제서 기도를 해주고 걱정해주는 친구들의 사랑이 있었기에 하늘도 무심할 수 없어 나한테 기적을 주신 것 같다. 또 정낙일 친구는 내가 이번 모임에 와서 작년처럼 대전서 못 내리고 동대구까지 갈까봐 걱정이 됐던지 열차 좌석까지 잡아주고 내려갔다. 최낙영 회장과 김성숙 총무는 연수받은 요원보다 더 열정적 봉사적이다. 동창이지만 고개가 숙여진다, 일일이 열거를 못해서 그렇지 우리 대흥중학교 14회 동기들은 이렇듯 가슴이 따뜻하고 매사에 귀감이 되는 얼굴들이다. 늦었지만 느꺼운 감사를 표한다.
쇠붙이라도 끊어낼 만한 사귐이라는 단금지교(斷金之交)란 단어가 있다. 이 성어가 왜 나왔는지를 이제야 알 것 같다. 지금껏 그랬듯이 우리 대흥중 14회 동창들이 그런 우정으로 송무백열(松茂栢悅: 소나무가 무성하면 잣나무가 기뻐한다는 뜻으로 친구가 잘 되는 걸 좋아함)이란 단어를 더욱 빛나게 하리라.
‘얼굴은 할매할배 마음은 동심이었네!’
우리 얼룩지지 않은 세월로 돌아가
넘치는 술잔에 우정의 추억까지 함께 하세나 !
솜사탕 같은 송무백열(松茂栢悅)의 향기에
즐거웠던 날의 추억을 반추하며 동심으로 함께 하세!
얼굴은 모두가 할매할배인데 마음은 동심이었네..
봉수산 정기 받아 펄펄 뛰던 그 시절은 다 어디 갔는가!
노을처럼 아름다운 백발은 황혼인생이 되어버렸네!
얼마 남지 않은 소풍길에 삶의 무게는 왜 이리 버거운가?
살아온 날보다 더 값진 내일을 위하여
우리 변하지 않는 우정을 술잔에 가득 채워보세나!.
첫댓글 강산이 6번 바뀌기까지 우정을 나누시는 정경이 너무 훈훈하네요.
모쪼록 동기 여러분들 강건하셔서 쭈욱 그 만남의 장을 이어가시길 바랍니다.
오랫동안 동창회가 유지되고 만날 수 있는 이유가 다 있었네요. 훌륭하신 글로 감사한 마음을 공유하는 남선생님을 비롯해 친구들을 위해 거액의 점심을 사시는 분, 물심양면으로 봉사해주시는 회장, 총무님, 친구의 안부를 물으며 귀한것을 보내주시는 분, 건강회복을 위해 기도해주시는 분들이 계시니 동창회가 잘 유지되고 빛날 것입니다.
오늘 글을 읽으며 50후반의 저에게는 늦게까지 이어지는 동창회가 부럽고 마음이 따뜻해 지네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를 좋게 말하는 사람이 진정한 친구이니, 저도 다른 사람들 칭찬을 많이 하면서 살아야겠네요! 진정한 친구가 많은 선생님 참 좋으실 것 같습니다. 멋지십니다. :)
멋진 동창회.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