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 ‧ M ‧W 로 딸네 집 가다
- 문하 정영인 수필
차를 처분했다. 9년 정도 탔고, 주행거리가 9만km 쯤 된다. 딸과 사위가 내 칠순 기념으로 사준 차다. 나이가 드니 인지감각이 떨어지고 인적 사고는 없었지만 잡다한 물적 사고가 잇달아서 자동차 보험료가 엄청 올랐다. 작년 보험을 갱신할 적에 모든 보험사가 1년에 사고가 많다고 보험을 들어줄 수 없다고 한다. 여러 군데 사정하여 겨우 보험에 들었다. 하기야 내가 낸 사고가 아니지만 서 있는 차를 두 번이나 뒤에서 추돌하여 애를 먹었다. 단골 자동차공업사 사장님이 그런다. “참 이상해요. 받히는 차는 계속 받히더라고요.” 하여간에 딸 덕분에 고맙게 자동차를 끌고 다녔다.
운전이 부실해도 발과 같은 차를 처분했으니 당분간 여러 모로 불편할 것이다. 한편으로 생각을 하면 차를 처분한 것이 한갓지기도 하다.
오늘은 차 없이 B‧M‧W로 딸네 집을 가야 한다. 딸아이가 자기 집 오는 길을 자세히 카톡으로 보내주었다. 인천 지하철 2호선을 타고 검암역에서 서울행 공항철도로 환승한다. 김포공항역에서 까치산역으로 가는 5호선으로 바꾸어 탄다. 까치산역에서 양천구청으로 가는 2호선으로 환승한다. 환승은 3번, 지하철 노선은 4개를 거치는 셈이다.
양천구청역에서 내려 딸이 가르쳐 준대로 갔으나 결국 반대편으로 갔다. 길가는 할머니에게 물으니 반대편으로 가라고 한다. 12단지로 가야 할 것을 14단지 쪽으로 갔으니 말이다. 애먼 집사람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 할머니가 웃으면 하는 말이 우리 집 노인네도 저렇게 소리를 지른다고 집사람에게 “남자들은 늙으면 다 그런가 봐유.”한다. 나는 뻘쭘했다. 1시간 반 정도 걸렸다. 승용차로 갈 때보다 한 30분 더 걸렸다.
길옆 가로수 은행나무는 노랑 낙엽을 흩날린다. 낙엽 길은 가을 정취를 물씬 풍긴다. 할망구는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네. 이렇게 낙엽을 밟으니 ……. 차를 처분 한 것 잘했지유.” 하면서 지기 공치사까지 늘어 놓는다. 그제야 벌써 가을이 가고 있음에 마음속이 가을 물감이 노랗게 물들어 온다.
오늘 점심은 딸네가 살 차례다. 한번은 우리가 사고, 다음에는 딸아이가 산다. 번갈라 가면서 사는 편이다. 일종의 더치페이다. 점심은 집사람이 그렇게 먹고 싶어 하던 보쌈을 시켜 먹었다. 따끈하게 잘 삶아진 수육과 매콤한 비빔막국수는 가을 맛이 맴도는 것 같다. 한국에서 시작한 매콤한 음식들은 세계적으로 유행 트렌드가 되어가고 있다고 한다. 매운불닭면, 신라면 등.
점심을 먹는데 외손녀가 용돈 때문에 갸우뚱한다. 우리 부부는 손자가 한 명, 외손녀가 한 명이라 초등학교 때부터 다달이 용돈을 준다. 대학생인 손자에게 5만원, 고등학생인 외손녀에게도 5만원. 그런데 지난 추석 때 추석 특별상여금 5만원과 용돈을 합해서 10만원을 주었는데 잘못 계산한 모양이다. “○○아, 다음부터는 용돈 영수증을 받아야 되겠는데…….”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반대편으로 가기로 했다. 양천구청역에서 신도림역, 신도림역에서 인천 가는 1호 전철, 주안역에서 인천지하철 2호선으로 갈아타면 된다. 시간을 권여 비슷했으나 환승은 2번, 지하철 노선을 3개다. 도낀개낀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신도림역이 편한 것 같다. 신도림역에서 인천행 급행을 탔으니 말이지 보통열차를 탔으면 더 걸릴 것이다.
이젠 우리는 B‧M‧W(Bus‧Metro‧Walk)로 살아가야 한다. 버스‧지하철‧걸어서……. 하기야 B‧M‧W는 독일의 명차이기도 하다. 또 한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외제차란다. 그런 걸 보면 나의 B‧M‧W는 외제차이기도 하다.
완정역에서 내려 노브랜드 햄버거를 저녁 삼아 먹고 가기로 했다. 어김없이 거기에도 키오스크 버티고 있다. 용기를 내어 키오스크로 주문을 했다. 햄버거 세트를 주문을 했다. 주 메뉴 햄버거를 주문했더니 다음엔 음료를 선택하란다. “음료 값은 따로 내는 거유.” 매장 아가씨가 나와서 도와준다. 음료는 세트에 포함 된 것으로 콜라, 사이다 등을 선택하란다. 그렇게 키오스크 주문이 끝나니 대기표가 나온다. 대기번호는 5030이다. 한참 후 전광판에 5030이 뜬다. 세트 메뉴는 햄버거, 감자튀김, 콜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콜라는 주지 않고 커다란 잔만 준다. “아가씨, 콜라는 안 줘유?” “할아버지, 저 옆 음료수 기계에서 따라 드시면 됩니다. 얼음 나오는 곳은 그 옆에 있어요.” 음료수는 무제한인가 보다.
갈수록 우리 부부는 디지털 문명 앞에 어리버리해진다. 모바일이나 키오스크에 익숙하지 못한 할망구는 아예 그런 주문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젠 바야흐로 디지털 키오스크 시대다. 은행의 ATM 기계도 그렇고 특히 무인점포는 다 키오스크가 설치되어 있다. 심지어 동네 김밥 집에도 키오스크가 설치되어 있다. 갈수록 비대면 시대가 되어 간다. 디지털 기계와 싸움을 해야 한다. 아니 그 기계와 친해져야 한다. 사람끼리 만나야 하는 세상에 기계가 떠억 버티고 있으나 말이다. 바구니에 담은 물건 값이 자동으로 계산된다고 한다. 이젠 우리 부부도 저 노란 은행잎처럼 되가는 나이이기 때문이다. 길에 떨어진 젖은 낙엽처럼 이리저리 밟히는 처지가 되어 가는 것은 아닌지…….
딸에게 요구했다. 차를 반납했으니 네가 우리에게 교통비를 주어야 하는 것이 아니니? 딸이 버럭 소리를 지른다. “아빠, 우리 집에 오는데 전철로만 오기 때문에 교통비 하나도 안 들잖아? 그거 우리들이 내는 세금이야.” 그러자 사위가 싱글벙글 웃으면서 말했다. “아버님, 차가 없기 때문에 1년에 한 3~4백은 버는 것 아닌가요? 자동차 보험료, 휘발유값, 자동차세, 범칙금이나 과태료, 수리비 등을 생각하면 그 정도가 넘을 걸요.” 혹 떼러 갔다가 혹 붙인 꼴이 되고 말았다.
이젠 운전면허증만 반납할 일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