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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3040산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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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행♡사진 ◆ 스크랩 정기산행 사진 20111211_경주남산 문화재탐방 정기산행
라임 추천 0 조회 479 11.12.12 12:46 댓글 60
게시글 본문내용

 

 

 

2011년의 끝 12월, 경주 남산 정기산행.

얼마 전 1박2일에 나와서 더 유명세를 타는 경주 남산

tv에서 본 것 처럼 정말 문화재가 많았던 보물산이었다.

다시 한 번 1박 2일을 보고 문화재 공부를 다시 해야 겠다~

산이 높지는 않았지만 오르락 내리락 조금 길어서 힘들긴 했지만

오랫만에 산행 즐거웠어요~^^

모두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나름 맘에 드는 사진  경주 남산 마애석가여래좌상에서 기도하시는 분들.. 

 오랫만에 산에 나온 해피버블~

 해피버블 보다 더 오랫만에 산에 나온 수필언니.

 그리고 지리산 이후로 두달만에 나온 나.

 

 차니오빠와 지구인언니.. 도시락이 정말 끝내줬다~^^

 

 

 사진을 항상 찍기만 하시는 하늘날개님.

 특별회원답게 로프도 아주 잘 타는 해피버블.

 꼭 시범을 하는 듯.

 6개월만에 본 듯한 킹콩오빠. 예전보다 정말 까칠하지 않다...ㅋ

 

 줄이 아주 길었던 난코스... 난 줄을 타지 않고 옆으로 스르륵 내려왔다..

 

 

 

 

 

 

 

 

 

 셋이서

 도깨비님, 수필언니.. 뒤로는 음...~~

 여훈, 해피버블, 라임(나), 수필언니.

 지구인언니 추가~

 여기도 롱다리 커플..

경주 남산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 

통일신라시대의 마애보살반가상. 경주 남산 칠불암 위에 수직절벽 바위에 얕게 조각되어 있다.

높이 1.4m. 얼굴은 풍만하며 후덕한 상이고, 다른 불상에서 보기 드문 유희좌의 자세를 취하고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 ‘유희좌’란 오른발을 대좌 밑으로 내리고 왼발을 무릎 위까지 올리지 않고 대자 위에 얹은, 아주 편히 앉은 자세를 일컫는다. 깎아지른 듯한 벼랑 위 경사진 한쪽 바위면에 불상을 새겨 놓아 마치 구름을 타고 있는 듯 보인다. 예배할 수 있을 정도의 공간만 남겨둔 채 바로 아래가 낭떠러지이다. 보살상 앞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세상이 소나무 숲 아래로 아득하게 보이고, 보살상과 같이 하늘에 떠 있는 느낌이다.

경주 남산은 유물·유적의 보고(寶庫)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에 가면 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 후기까지의 불상들을 모두 만나볼 수 있다. 그 중에 하나인 높이 1.4m의 마애보살반가상은 칠불암(七佛庵) 위에 곧바로 선 남쪽바위에 새겨져 있다. 마치 구름 위에 앉아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머리에 삼면보관(三面寶冠)을 쓰고 있어서 보살상임을 알 수 있다. 얼굴은 풍만하고, 지그시 감은 두 눈은 깊은 생각에 잠긴 모습으로 구름 위의 세계에서 중생을 살펴보고 있는 듯하다. 오른손에는 꽃을 잡고 있으며, 왼손은 가슴까지 들어 올려서 설법하는 모양을 표현하고 있다. 천의(天衣)는 아주 얇아 신체의 굴곡이 사실적으로 드러나 보이며 옷자락들은 대좌(臺座)를 덮고 길게 늘어져 있다. 머리광배와 몸광배를 갖춘 광배(光背) 자체를 불상이 들어 앉을 공간으로 이용했기 때문에 보살상이 더욱 두드러져 보이며, 통일신라시대 8세기 후반의 작품으로 보인다.  <문화재청 홈페이지에서>

 

 

 버블이랑 동갑이었던 깜장스머프군.

 

 

 

 

 1박 2일에 나왔던 곳... 조금 위험해 보였는데 실제로 가보니깐 생각보다는~ 괜찮았고.. 멋졌다

 아래 보이는 곳이 칠불암. 내려가서 보고 다시 올라와야 할.

 칠불암 내려가는 곳 멋진 길에서~

 

남산 칠불암 마애불상군


통일신라시대에 산비탈을 깍아 만든 바위에 새긴 불상들이다.병풍바위에 새긴 삼존불과 그 앞 사각 돌기둥 사면에 새긴 사면석불상을 합쳐 ‘칠불암마애석불’이라 부른다.


삼존불 가운데 있는 본존불은 석굴암의 본존불과 같은 자세로 앉아있고, 미소가 가득 담긴 얼굴과 풍만하고 당당한 자세를 통해 자비로운 부처님의 힘을 드러내고 있다. 본존불의 좌우에 서있는 협시보살은 온몸을 부드럽게 휘감는 옷을 입고 있다. 불상군이 축대 위에 자리잡고, 주변에 기왓조각들이 흩어져 있는 점으로 보아 이곳에 사찰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가파른 산비탈을 평지로 만들기 위해서 동쪽과 북쪽으로 높이 4m 가량되는 돌축대를 쌓아 불단을 만들고 이 위에 사방불(四方佛)을 모셨으며, 1.74m의 간격을 두고 뒤쪽의 병풍바위에는 삼존불(三尊佛)을 새겼다. 삼존불은 중앙에 여래좌상을 두고 좌우에는 협시보살입상을 배치하였다. 화려한 연꽃위에 앉아 있는 본존불은 미소가 가득 담긴 양감있는 얼굴과 풍만하고 당당한 자세를 통해 자비로운 부처님의 힘을 드러내고 있다. 왼쪽 어깨에만 걸치고 있는 옷은 몸에 그대로 밀착되어 굴곡을 실감나게 표현하고 있다. 손은 오른손을 무릎 위에 올려 손끝이 땅을 향하게 하고 왼손은 배부분에 대고 있는 모습이다. 좌·우 협시보살은 크기가 같으며, 온몸을 부드럽게 휘감고 있는 옷을 입고 있다. 삼존불 모두 당당한 체구이며 조각수법이 뛰어나다. 다른 바위 4면에 새긴 사방불도 화사하게 연꽃이 핀 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 방향에 따라 손모양을 다르게 하고 있다. 원래 불상이 들어 앉을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 모셨을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도 이곳 주변에서 당시의 구조물을 짐작케 하는 기와조각들이 발견되고 있다. 조각기법 및 양식적 특징으로 미루어 보아 이 칠불은 통일신라시대인 8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문화재청 홈페이지>

 요리 봐도 조리봐도... 멋지다.

 마주보고 있는 부처님.

 

 불상 찍은곳에 양희선 회장님 계심

 하늘날개님이 절에서 얻어주신 맛난 떡을 먹고.. 그 떡 정말 맛났다.

언니도 정말 맛났다고 했다.. 절 노란 시루떡....

 

 해피버블과 요즘 자주 나오시는 윤슬님

 도깨비님, 나, 단군대장님, 해피버블.

 

 

  

 

 

 

 금오봉 가는길에 점심시간.. 5가지, 아니 밥까지 여섯가지를 만들어오신 지구인 언니, 차니오빤 좋겠네~ㅋ

점심먹고 다같이 인증샷 두명, 아니 세명 네명인가?? 눈을 감았다. 

왼쪽부터. 불여우, 육사화, 킹콩오빠, 류태콩님, 수필언니, 도깨비님, 지구인언니, 차니오빠, 나(라임), 해피버블 

요건 옆에 하늘날개님 포함한거. 

금오봉 가다가.... 잠시 쉬면서 사진찍으러 뛰어오는 시월윤정 

 

류태공님 자세가 참 다소곳 하시당~ 

문화재 상세 정보 공식명칭 경주 남산 용장사곡 삼층석탑

통일신라시대의 석탑. 경주 남산 봉우리에 위치해 전망이 좋고 자연과의 조화가 뛰어나다. 용장사는 매월당 김시습이 머물며 금오신화를 쓰던 곳으로, 지금은 몇 개의 석축만이 그 흔적을 짐작케 한다. 무너져있던 이 탑은 1922년에 복원되었다.

 

자연암석을 기단으로 삼아 그 위에 단층 기단을 쌓고 탑신을 세웠다. 머리장식이 사라져 원래의 정확한 상태는 알 수 없고, 현재는 3층의 지붕돌(옥개석) 꼭대기에 찰주공(불탑 꼭대기 장식의 중심에 세운 기둥을 끼우는 구멍)만이 남아 있다.

 

“매월당 김시습이 금오신화를 쓰며 머물던 용장사”

 

매월당 김시습은 어려서부터 신동으로 이름나서 세종대왕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그러나 세조의 왕위찬탈을 계기로 방랑길에 오르게 되었고, 조선팔도를 떠돌아다니며 많은 시편과 글을 남겼다. 매월당은 용장사에서 문학적 황금기를 보냈는데, 그가 이곳에서 지은 대표적인 한문소설이 바로 <금오신화>이다. 뿐만 아니라 수많은 시편들을 <유금오록(遊金鰲錄)>에 담았으며, 집구시(集句詩)인 ‘산거백영(山居百詠)’도 이때 쓴 작품이다. 이후 세조와 예종이 죽고 성종이 왕위에 오르자 매월당은 한양으로 올라와 생활하였으나, 폐비윤씨사건이 일어나자 다시 관동지방 등지로 방랑길을 나섰다.

 

용장사는 매월당 김시습이『금오신화』를 쓰며 머물던 곳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현재 몇 군데의 석축(石築)이 남아있어 절터였음을 짐작하게 해줄 뿐이다. 절을 감싸고 뻗은 동쪽 바위 산맥의 높은 봉우리에 서 있는 이 탑은 2단의 기단(基壇) 위에 세워진 3층 석탑이다. 자연암석을 아래층 기단으로 삼고, 그 위로 바로 윗층 기단이 올려져 있다. 즉, 자연암석이 아래층 기단일 수도 있고 그 아래 바위산 전체가 또한 아래층 기단일 수도 있는 셈이다. 윗층 기단은 네 모서리와 중앙에 기둥조각을 새기고 2장의 판돌로 덮어 기단을 마감하였다. 탑신(塔身)은 지붕돌과 몸돌을 별도의 석재로 조성하였다. 1층 몸돌은 상당히 높은 편이고 2층부터는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각 층 4단이고 처마는 직선을 이루다가 귀퉁이에서 경쾌하게 들려 있다. 꼭대기의 머리장식은 없어져 원래의 상태를 알 수 없고 쇠막대를 꽂았던 구멍만 남아 있다. 쓰러져 있던 것을 1922년에 재건하였는데, 사리장치는 없어진 지가 이미 오래되었다고 한다. 각 부의 조화가 아름다우며 주변 자연과의 조화 속에 장관을 이루고 있는 통일신라 후기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가장 많은 회원들을 볼 수 있었던 곳. 

지쳐보이는 둘. 

양희선 회장님과 류태공님. 같이 찍으려고 한건데 실패다 

사진찍어주던 시월윤정 총무. 

 

여기로 내려가면 절터가 있다는데... 힘들어서 포기 ^^;; 1박2일에선 갔던거 같은데....? 

여기도 무슨 '터' 갔았다. 

이쁜 소나무 길에서. 

 아름님과 숙이님.

 

 

 같이 찍어도 되는데.. 아싸가 안보일줄 알고 저리 숨었다.. 귀엽네... 아싸한테 재밌게 노는법 교습받아야 겠다 ㅋㅋ

 

 

여기로 가면 금오봉도 나오고... 화장실도 나왔다~~ 

 화장실 인테리어(?)가 참 멋지다.ㅋㅋ

 화장실을 갔다가 금오봉에 들렀다.. 화장실에 가는 바람에 꼴찌가 되었다..그래도 금오봉은 들렀다 가야 할 거 같아서~

 

 

 

 

 

 

 

 

상사바위

상사바위(想思巖)는 국사골 굴바위에서 서북쪽으로 약 400m 정도 떨어진 산 정상에 있습니다.
바위가 절벽 위에 있어 더욱 높아 보이여, 오랜 풍화작용으로 다리로 받치고 있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 높이는 약 10여m에 이릅니다.

 “상사바위는 금오산에 있다. 그 크기가 배경 발이나 되는데 그 생김새가 가파르게 솟아 있어 오르기가 어렵다. 상사병에 걸린 사람들은 이 바위를 위하고 빌면 병이 낫는다.” “산아당은 금오산에 있는데 아기를 낳는 모습을 돌에 새겨놓았다. 신라 때 아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빌던 곳이라 전하는데 가위와 칼자국이 남아있다.”.

위의 글은 [동경잡기]에 실려 있는 상사바위에 대한 기록이다.

상사바위는 높이가 약 13m, 길이가 약24미터 가량 되는 큰 바위로 이 바위를 서편에서 보면 냉골 여울에 뿌리 내리고 수십미터 높이로 솟아오른 첨탑처럼 보이고 동쪽에서 보면 산등성이 위에 직사각형으로 육중하게 솟아 있어 염라대왕의 궁전을 연상시키는 험상궂은 상이다.

바위 중간 쯤에 가로 파인 틈에 돌을 던져 그 곳에 얹히면 소원이 이루어지고 던진 돌이 떨어지면 바위신이 뜻을 받아주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있으며 상사바위의 남쪽편에 아기를 낳는 듯 한 가라진 바위인 ‘산아당’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상사바위 전설]

상사바위에는 할아버지와 피리 소녀에 담긴 애틋한 이야기가 전해옵니다.

예전에 주변의 마을에 혼자된 할아버지와 피리라는 이름의 소녀가 있었습니다. 피리는 할아버지를 잘 모셨고, 할아버지 또한 피리를 무척 아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피리는 다른 곳으로 이사 가고 말았습니다. 할아버지는 늘 자신을 보살펴주던 피리가 없어진 것을 무척 허전해 하였습니다. 그러다 할아버지는 자신이 피리를 생각하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깨닫고 나무에 목을 매어 목숨을 끊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 일이 있었던 후 피리는 밤마다 무서운 꿈을 꾸게 되는데, 꿈에 뱀이 자신의 몸을 휘감고 혀를 내밀어 괴롭혔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할아버지의 혼이 뱀이 되어 피리를 괴롭히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꿈에 피리를 괴롭히던 뱀이 할아버지로 변해 아무리 잊으려고 해도 잊을 수가 없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그래도 잊지 못하여 그동안 괴롭혔던 것이라고 눈물을 흘리며 사죄하고는 국사골로 들어가 바위가 되었습니다.

 

피리는 자신을 그리워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할아버지를 불쌍하게 여겨 할아버지가 변한 바위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렸습니다. 피리의 영혼도 바위가 되어 할아버지 옆에 서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바위를 상사바위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경주 남산 마애석가여래좌상

경상북도 경주시 배동의 거대한 자연 바위벽에 새긴 앉아 있는 모습의 석가여래불로 높이는 6m이다. 몸을 약간 뒤로 젖히고 있으며, 반쯤 뜬 눈은 속세의 중생을 굽어 살펴보는 것 같다. 머리에서 어깨까지는 입체감있게 깊게 새겨서 돋보이게 한 반면 몸체는 아주 얕게 새겼다. 전체적인 양식으로 보아 통일신라 후기에 유행하던 양식의 마애불로 추정된다.  

 

  

 작은 암자.. 이곳에도 불상이 있었던거 같은데... 파괴되었다고 한... 표지판같은것만 있었다..

 

삼릉계곡선각육존불 

문화재 소개자연 암벽의 동서 양벽에 각각 마애삼존상을 선으로 조각한 6존상으로, 그 조각수법이 정교하고 우수하여 우리나라 선각마애불 중에서는 으뜸가는 작품으로 꼽히고 있다. 오른쪽 삼존상의 본존은 석가여래좌상이며, 그 좌우의 협시보살상은 온화한 표정으로 연꽃을 밟고 본존을 향하여 서 있다. 왼쪽 삼존상의 본존 역시 석가여래로서 입상이며, 양쪽의 협시보살상은 연꽃무늬 대좌 위에 무릎을 꿇고 본존을 향해 공양하는 자세이다. 이 2구의 마애삼존상은 만들어진 시대나 조각자가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대체로 통일신라시대로 추정되며, 오른쪽 암벽의 정상에는 당시 이들 불상을 보존하기 위해 법당을 세웠던 흔적이 남아 있다.

 

 

 

 

바위를 깨는 방법. 저렇게 해서 물을 넣으면 겨울에... 어름이 얼어서 돌이 쪼개진다고 그랬다. 나무토막을 꽂아서  물을 붓는 방법도 있다고...

 

 

삼릉계곡 석조여래좌상

이 석조여래좌상은 1964년 8월 동국대학교 답사팀에 의해 현재의 자리에서 약 30m 남쪽 땅 속에서 머리가 없는 상태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1970년 중반까지 근처 개울에 엎어져 있는 것을 현재의 위치에 세운 것이다. 조선시대 때 유생들에 의하여 파괴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높이 1.6m, 무릎 높이 1.56m 규모의 좌상은 머리 부분이 사라지고 양쪽 무릎도 파손되었지만 나머지 부분은 비교적 형태가 뚜렷하게 남아 있다. 가사의 유려한 주름, 특히 왼쪽 어깨에서 흘러내려 매듭진 가사끈과 아래 옷을 동여맨 끈, 그리고 무릎 아래로 드리워진 두 줄의 매듭이 매우 정교하고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어 용장사 삼륜대좌불과 함께 복식사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전체적인 형태로 미루어 통일신라시대 것으로 추정된다.

 

 

 

 

 

 

경주 삼릉

 

신라시대 왕릉. 총 3개의 왕릉이 있으며, 제8대 아달라 이사금, 제53대 신덕왕, 제54대 경명왕 등 박 씨계 세 명의 왕이 묻힌 곳이라 전한다.

 

무덤의 형태는 흙으로 둥글고 봉긋하게 쌓은 원형토분이며, 가운데에 위치한 신덕왕릉은 깬돌로 쌓은 굴식돌방무덤(횡혈식석실분)의 양식을 따르고 있다. 또한 신덕왕릉 내부 벽에는 병풍을 세운 것처럼 색이 칠해져 있는데, 경주 신라 무덤에서는 처음 발견된 사례이다. 삼릉 앞에는 계곡이 있는데, 사시사철 시원한 계곡물이 끊이지 않으며 남산에서 가장 많은 불상조각이 있다.

 

 

배리삼릉은 경주 남산의 서쪽 기슭에 동서로 3개의 왕릉이 나란히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밑으로부터 신라 8대 아달라왕, 53대 신덕왕, 54대 경명왕 등 박씨 3왕의 무덤이라 전하고 있다. 무덤은 모두 원형으로 흙을 쌓아올린 형태를 하고 있다. 신덕왕릉이라 전해오는 가운데의 무덤은 1953년과 1963년에 도굴 당하여, 내부를 조사한 결과 굴식돌방무덤(횡혈식석실묘)임을 확인하였다. 무덤에는 돌방 벽면에 병풍을 돌려 세워 놓은 것처럼 동·서 양벽의 일부에 색이 칠해져 있는데, 이것은 본격적인 벽화는 아니지만 벽화가 그려지지 않은 경주의 신라 무덤에서는 처음 발견되는 것으로 주목되는 자료이다. 색은 붉은색, 황색, 백색, 군청색, 감청색으로 되어있고, 12폭으로 되어있다. 배리삼릉의 주인공이 신라의 박씨 3왕이라 전하고 있지만 확실한 기록은 없고 신라 초기의 아달라왕과 신덕왕, 경명왕 사이에는 무려 700여년의 차이가 있어 이들의 무덤이 한곳에 모여있다는 사실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또한 신라 초기에는 이와 같은 대형무덤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었다.

 

 

 

청수막걸리. 마지막쯤 맛난 쿠키로 우리들에게 힘을 불어 넣어 준 청수 막걸리. 장인정신이 들어간 편의점표 쿠키가 완전 맛났어~ㅋ

 

경주 삼릉 소나무숲. 굽은 소나무들이 멋졌다. 

하얀 낙지 삼겹살인줄 알았다.. 

속에 고추장이 들어있는걸 처음엔 몰라서~ 맛난 6시 저녁식사를 끝으로

이날의 일정을 모두 마치고 9시 안되서 대전으로 컴백~

 

모두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한해 잘 마무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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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1.12.13 23:26

    사진 잘 보고 가요~오랜만에 본것 같에요~방가웠구요~수고 하셨습니다`^^

  • 작성자 11.12.14 09:04

    저두 방가웠어용~^^ 담에 또봐요~~^^

  • 11.12.14 15:32

    라임아 오랜만에 함께해서 참 좋았어~담에도 자주자주보자 사진 고마워~^____^

  • 작성자 11.12.15 09:32

    수고 많으셨어용~ 저도 오랫만에 산행 즐거웠어요~~^^

  • 11.12.15 19:35

    오랜만에 사진 잘 보고 갑니다.
    어휴~ 한참 봤네

  • 작성자 11.12.19 13:11

    감사합니다~^^

  • 11.12.17 00:31

    우와~ 여기서 새롭게 공부하고 가네요 ㅎㅎ
    고생 많으셨어요~ 사진 잘 보고 가요~

  • 작성자 11.12.19 13:11

    감사합니다~~^^

  • 마지막에 내려와서 누나들이 맛있게 먹어준 쿠키..ㅡ0ㅡㅋㅋ 다음에도 드릴께요~

  • 작성자 11.12.19 13:11

    그랴.. 꼭.. 건포도 들어간 거 그거 주라~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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