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사대(決死隊)는 근대에 생긴 용어이고 과거에는 사사(死士), 또는 감사사(敢死士)라고 한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선비란 뜻인데, 일본어의 시(士)는 무사를 뜻한다. 사사(死士)는 『사기(史記)』 ‘월왕 구천세가(越王句踐世家)’에 이미 나올 만큼 유래가 오래되었다. 『사기』는 ‘오왕 합려(闔廬)가 월왕 윤상(允常)이 죽은 틈을 타서 공격했지만 월(越)의 새 군주 구천(句踐)이 보낸 사사(死士)에게 오히려 죽임을 당했다’고 전하고 있다. 서기전 4세기께의 인물인『묵자(墨子)』는 ‘기치(旗幟)’편에서 성을 지킬 때 사용하는 여러 깃발 중 “사사는 창영기(倉英之旗)를 사용한다”고 적고 있다. 창영(倉英)에 대해 푸른 매, 또는 푸른 대나무 깃발이란 해설이 있다.
전쟁에서 사사의 존재는 승패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쳐왔다. 사형 위기에 처했던 이순신(李舜臣)을 변호하는 차자를 올렸던 정탁(鄭琢)은 『약포집(藥圃集)』 ‘명유 호환에게(與明儒胡煥)’에서 ‘각각 수만 군사가 서로 싸우지만 불과 한두 명이 고함과 함께 적진에 돌입하면 많은 군사들이 그 뒤를 따라 전세가 결정된다’면서 “십만 군사 중에 사사를 모집하면 많아도 수십 인을 넘지 못하지만 이를 얻으면 승리하고 얻지 못하면 패배한다”고 쓰고 있다. 『고려사절요』에 따르면 예종 3년(1108) 윤관(尹瓘)은 만주에 건설한 9성 중 여진군 2만이 영주성(英州城)을 공격했을 때 감사사(敢死士)를 이끌고 나가 북쪽으로 격퇴시켰다고 한다.
일본은 사사에 관한 이야기가 많은 나라다. 겐로쿠 아코우 지켄(元祿赤穂事件)이라고도 불리는 주신구라(忠臣藏)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1701년 아코우번(赤穗藩)의 번주 아사노 나가노리(淺野長矩)가 억울하게 할복당하자 2년 후 주군을 죽게 만든 기라 요시히사(吉良義央)의 목을 베고 집단 자살한 47명의 가신(家臣) 사사(死士) 이야기다. 에도(江戸)시대 말기 무너져가는 막부를 지키려던 치안 조직 신선조(新選組 : 신센구미)도 일종의 사사였다. 이 역시 시바 료타로(司馬 遼太郎)가 『신선조 혈풍록(新選組血風録)』이란 소설에서 묘사한 것처럼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죽음을 두려워 않는 무사 이야기다. 후쿠시마 원전의 방사능 유출을 막으려는 결사대 이야기가 화제다. 정탁은 앞의 글에서 “사사 수십 명을 얻으면 전투에서 항상 이긴다”고 말했다. 이 전투에서 사사들이 이기기를 바라는 마음은 필자는 물론 전 세계인이 같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