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냄새 나는 품성
오래전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어느 날 아침신문에서 아름다운 사진 한 장을 봤다. 삼나무 숲에 둘러싸인 녹색의 차밭이 보였다. 사진 속에서 향기로운 맑은 바람이 불어오는 느낌이었다. 그곳에는 하룻밤 재워줄 숙박시설도 있다고 적혀 있었다. 그날 밤 아홉시경 나는 보성 부근의 봇재 고개를 지나 어둠 속에서 차밭이 있는 그곳을 찾아가고 있었다. 네비게이션이 없던 시절이었다. 신문에 난 약도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어 간신히 그 다원에 도착했다. 중앙에 자그마한 목조건물이 있고 안을 지키고 있던 오십대 쯤의 여성이 이렇게 말했다.
“여기는 방이 셋 밖에 없는데 벌써 손님이 찼네요. 어떻게 하죠? 며칠 전에도 밤늦게 어떤 분들이 찾아와서 헛간이라도 좋으니 묵어가자고 하더라구요.”
나는 서울서 줄곧 달려온 바람에 몸이 솜처럼 피곤했다. 아직 저녁도 먹지 못했다. 하는 수 없이 차를 돌려 어둠 속의 길을 다시 갈 때였다. 갑자기 뒤쪽에서 헤드라이트가 번쩍거렸다. 정지하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차를 세우고 윈도우를 내렸다. 뒤의 차에서 나온 사십대후반쯤의 남자가 다가오더니 말했다.
“그냥 간다는 소리를 듣고 따라왔어요. 내가 자는 작은 방이 있는데 괜찮다면 나랑 같이 자요. 같이 자기 싫으면 내가 다락에서 자면 되고.”
인정이 있는 사람 같았다. 나는 차를 돌려 그의 차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의 차는 나사못 같은 산길을 돌아 올라가 자그마한 통나무 집 앞에 섰다. 그와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마치 오랜 친구라도 만난 듯 양말을 벗어 던지고 벽에 기대어 텔레비전드라마를 보았다.
“혹시 이 다원의 주인입니까?”
내가 물었다. 일꾼같이 입었지만 그렇지 않아 보였다.
“그래요”
그는 더 이상 말이 없이 드라마에 눈길을 꽂고 있었다. 묻지 않으면 한마디도 하지 않을 무뚝뚝한 성품 같았다. 나는 배가 고파서 그에게 말했다.
“먹을 거 없어요? 라면이라도”
“애들 교육 때문에 가족이 모두 서울에 있어서 내 방에 먹을 게 없네. 차를 타고 율포 근처 바닷가에 가면 식당이 있으니까 거기서 먹고 오슈.”
잠시 후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저기 이불과 요가 있으니 주무슈”하고 다락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오분도 안되서 그가 코를 고는 소리가 문틈으로 새어 나왔다. 다음날 아침이었다. 창문을 통해 멀리 차밭에 나가 있는 그의 모습이 보였다. 그의 옆에는 스님 한 분이 서 있었다. 그들에게 다가가 인사를 하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그에게 차밭을 일구게 된 사연을 물었다.
“아버지가 젊은시절 여기서 녹차 밭을 일구기 시작했어요. 녹차는 안개가 잘 끼는 습기가 많은 바닷가에서만 잘 자라기 때문이죠. 아버지는 절들을 찾아가 스님들에게 차에 대해 배웠어요. 먹고살기 힘들던 그시절 기호품인 차에 대해 아는 건 스님들뿐이었으니까요. 아버지는 산등성이에 자를 대고 일정 간격으로 삼나무를 심었죠. 그리고 그 안에 차밭을 만들었어요. 그때는 아무도 차를 사 마시는 사람이 없었어요. 그래도 아버지는 녹차 밭을 고집했어요. 아버지는 소금같은 사람이었죠. 안 먹고 돈도 안썼어요. 이상하게 저는 어려서부터 차를 좋아했어요. 차하고 맞는 것 같아요. 그래서 농과대학에 진학했고 졸업을 하고는 바로 아버지의 차 밭으로 내려와서 다시 지금까지 이십년간 일하고 있어요. 아버지대부터 투자에 투자만 하다 보니까 저의 대에 와서는 봉지쌀 사 먹는 팔자가 됐지만요. 무엇보다 힘든 건 외로운 거죠. 돈을 준다고 해도 어디 도와주는 사람을 구할 수 있나요? 녹차라는 건 기계로는 안되고 일일이 사람 손이 가야 하는 건데 말이예요.”
그 옆에서 묵묵히 듣고 있던 스님이 끼어들었다.
“이 양반이 진짜 힘든 건 말하지 않는군요. 차에 미쳐서 다원에서 가족과 살다가 아이마저 잃어버렸어요. 지금도 좋은 차만 나면 절에 차를 가지고 와서 맛을 감정해 달라고 해요. 아주 열정적인 사람이죠. 그리고 베푸는 사람이예요. 여기 다원에서 파는 찻값도 거의 공짜인 셈이죠. 그리고 이 넓은 다원을 일반인에게 다 공개를 하고 있어요. 숨 막히게 아름다운 자연을 함께 즐기자는 거죠.”
나는 오랜만에 품성이 좋은 외고집을 만났었다. 천재보다 흙냄새나 차향이 나는 품성이 훨씬 중요하는 생각이다. 품성이 나쁜 천재가 정치에 관여하면 잔꾀를 부린다. 욕심많은 농부가 밭을 가꾸면 돈이 자라나기를 바란다. 위대한 일은 좋은 품성에서 이루어지는 게 아닐까. 그 품성은 천재같은 유전이 아니라 사람마다 좋은 교육과 노력으로 높일 수 있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