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본의 승려가된지도 어언3년의 세원이 흘러갔다 어느날 일본 조동종의 스님과 만났을때 명함을 교환한 적이 있었다 나의 명함을 한참 들여다보던 그스님은 고개를 갸우뚱 하더니 자기의 승려증을 내보이며 이런것 갖이고 있느냐고 물었다 나의 승려증을 본 그스님은 부처님의 큰가피와 대은혜를 입은분이라며 감탄의 감탄을 거듭했다 한국도 마찬가지겠지만 일본의 행자생활 3년은 정말 피나는 단련을 통하여 수업이 완료됐을때 정식 승려로써 자격이 얻어지게 되는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지 않고 육십이 넘은 나이에 종단에 등록되는 정식 승려가 됐다는것은 어떤 사명이 있지않나 하는생각을 해본다 폭염이 아직도 맹위를 떨치고 있던 8월 어느날 나는 혼자서 차를몰고 일본의 옛날 수도 교토에있는 히예쟌으로 기도를 떠났다 아무리 찿아도 산입구를 찿지못하여 오즈 사카모토에있는 천태종 종무소로 들어가 안내하는 아가씨에게 길을 물었다 서투른 일본말로 열심히 손짓 몸짓해가며 설명을 하였는데도 그아가씨는 도통 알아듣지를 못했다 그때 신선같이 생기신 할아버지 스님이 사무실 안으로부터 문을 열고 나오시며 소파에 앉으라고 자리를 권하는데 너무 황홀하여 그자리에서 3배를 올리며 "선생님!! 저요,선생님 밑에서 공부하고 싶습니다"라고 하니 "그러지 않아도 당신을 만날려고 했어요,나 오이타 사람입니다"하시며 명함을 주시는데 나는 너무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천태종 총무원장님이신 와사다 에슈 큰스님이시었다 불연은 때와 장소가 있나보다 느닷없이 내가 왜! 히예쟌으로 기도를 오고싶었는가!! 나는 히예쟌 정상에올라가 3일기도를하고 내려와 오사카에서 교토 오즈 사카모토까지 일주일에 한번씩 3개월간을 왕복하였다 나는 선생님의 허리와 어깨를 치료하여 드렸고 선생님은 나에게 반야심경을 설해주셨다 그먼길을 하루같이 오고갈때의 환희심은 최고의 극치였다 구도자만이 느낄수있는 행복이었다 어느날 와사다 큰스님께서는 나에게 승려가 될것을 권했다 그때까지도 나는 구도자이지 승려가 되고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나는 조건을 내세웠다 승려의 계는 받되 머리는 깍지 않겠다고 하였다 선생님께선 고개를 갸우뚱 갸우뚱 하시며 "네가 1200년 내려온 전통을 깰수는 없지않니? 득도식때 일단 머리를깍고 가발을 쓰고 다니면 어떻겠니?"하시는 것이었다 일본에서는 수계식을 득도식이라고한다 그리고 2개월이 지났다 "네가 이겼다"라고 말씀하시며 여러 차례의 회의를 거처 법을 뜯어고첬다고 하셨다 "너는 일본 최초의 천태종 한국인 승려가 되는것이야"라고 하시는 말씀속에는 너무도 큰 의미가 담겨져 있는것같았다 그렇게 나는 무어가 무언지도 모르면서 너무도 당당하게 일본에서 계율이 가장엄한 귀족종단에 승려가 되었다 그리고 선생님이 이끄시는대로 순순히 따랐다 일본에서 승려계를 받을때는 우리돈으로 약 천만원정도가 들어간다 가사와장삼,그리고 속에입는 기모노의값이 약800만원 정도 그외 등록비 기타등등하여 많은돈이 들어간다 이상의 모든것을 나의 은사스님과 와사다 에슈큰스님이 모두 준비하시고 나의 은사스님은 나의 득도식과 기모노를 맟추기 위하여 오이타에서 교토를 수차에걸처 왕래 하셨다 일본사람들은 공짜가 없었다 반듯이 은혜에 보답을 할줄아는것 같았다 득도식때 삭발순서에서는 머리끝만 잘랐다 그리고 몇일후 종정스님을 뵈오러 갔다 종정스님께서 의아해 하시자 "득도식때는 분명히 깍았는데 도력으로 밤새 자랐습니다"라고 와사다큰스님께서 말씀 하시어 좌중이 한바탕 웃었다 일본에서의 나의승려 생활은 어디에도 걸림이 없었다 문제는 한국에서부터 일어나기 시작했다 아상,인상,중생상,수좌상,을 없애라고 하였는데 형상으로써 비승 비속을 논하며 시비를 삼는것이었다 나는 언제고 한국에가서 한국스님에게 머리를깍고 싶었는데 구설과 마장을 도저히 견딜수가 없었다 관음사 관장님이신 원연큰스님을 찿아가 상의를 하였다 그래도 계를준 와사다큰스님에게 깍아야 한다고 했다 3년간 그렇게 버티어오던 한국인의 자존심은 줄기차게 쏟아지는 가을비속에 맥없이 씻겨지며 11월4일 사악삭 사악삭 소리를내며 나의 머리카락은 삭도에 밀려갔다 와사다큰스님은 정말 자상한분이었다 말하자면 두번의 삭발식이었는데도 은사 계사 법사스님들을 모두 초청하여 거창하지는않았지만 엄숙하게 진행을 하시었다 일본인들은 너무도 정확했다 그러기에 옛것을 그대로 보존하고 지키어 장삼의 모양과 예절이 그대로 보존되어지고있다 삭발후 와사다큰스님은 너무 좋아하시는 모습이 역역히보였다 머리깍은 모습이 너무 잘어울린다며 카메라를 들고오시어 삭발전의 모습과 삭발후의 모습을 앉저라,서라,웃어라,합장해라, 앞에서 찍고 옆에서찍고 법당안에서찍고 법당밖에서찍고...... 나는 생각해본다 무상심심 미묘법: 깊고깊은 미묘한법 백천만겁 난조우: 백천만겁을 지나도록 만나뵙기어려워라 아금문견 득수지: 나 이제 보고듣고 받아 지니오니 원해여래 진실의: 원하옵건데 여래의 진실한뜻 알아지이다 한평생 살아온 나의생이 영화처럼 스처지나갔다 그동안 많은 격려와 위로하여주신 모든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나로하여금 상처받은 분들께는 두고 두고 속죄하며 멸업장진언을 외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
첫댓글 묘우아이스님의 소개글을 이렇게 옮겨 보았습니다. 이 글을 올리신것은 2004년 7.9일자 입니다.참고 하시도록.. ^^*
묘우아이스님.......()()().....
예. 혜력화님, 감사합니다. 묘우아이 스님 꼭 성불하소서.......()()()
성불하십시요..()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