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다섯미만의 청소년은 보호자의 시청지도가 필요한 열나는 이야기.
어느 장례식장 안.
장례를 치를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소리가 나온다.
유족에게 위로가 아닌 축하를 전하는 조금은 낯선 분위기.
과연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광동씨의 장례는 보통의 장례식과는 다른 분위기를 풍기게 된 것일까.
장례식의 주인공인 이광동씨.
하지만 보이는 사진과 달리 그의 나이는 43세.
(지난 2012년 6월 8일 방송분)
[충주병원에 사망한지 12년이 지나도록 방치돼 있던 시신을 방송을 본 한 어머니가 찾아온다.
극심한 영양실조가 있었던 시신이 냉동고에 갇힌 채 방치되었던 것은 모두 한 남자 때문이었다.]
[장광성(이광동)씨의 법적아버지인 장씨(30년전 어머니가 광동씨를 맡겼던 사람)의 장례거부때문]
(1994년 추적 60분 방송분)
[1980년대부터 장애아동을 돌보는 목사로 언론에 소개됐었던 장씨.
이광동씨의 어머니도 장애가 있는 아들을 장씨에게 보냈는데
믿었던 좋은 목사님, 천사 아버지란 수식어의 장씨는 12년간 시신을 냉동고에 방치했던 것.]
(다시 원래 방송)
강원도 원주(사랑의 집)에서 아직도 장애인을 돌보며 살고 있는 그를 제작진이 찾아갔다.
그런데 정식 기독교 목사가 아니라
자식을 '목'숨버려 '사'랑해서 '목사'라고 하는 그.
안으로 들어가자 삭발을 한 4명의 자녀가 있었다.(누가누군지 알아볼 수 없음.)
한 번 잃어버린 후 자녀의 몸에 연락처를 문신으로 새긴 장씨.
21명의 장애인을 입양했는데 함께 살던 집이 철거되는 바람에 뿔뿔이 흩어졌다함.
...장애아동을 보살피며 힘들었던 이야기, 소망 등등을 울먹거리며 이야기하는 장씨
그 후
장씨의 사랑의 집을 나온 제작진. 그런데
원주의 한 병원에 10년째 냉동시신으로 보관되고 있는 장성희라는 이름의 여성.
그녀 역시 장씨가 입양한 지적장애인이였다.
두 자녀를 냉동고에 가둔이유는 뭔가했더니 결국 '돈'
(재판으로 의료과실이 아님이 확인 됐는데도 장례를 거부하며 병원측에 돈을 요구)
게다가 두 자녀의 사망신고도 하지 않음. 10여년이 넘었는데도..
다시 찾아간 제작진.
처음의 그 온화한 말투와 손짓은 어디가고 대뜸 제작진 사진을 찍어대더니
112에 강도가 들어왔다고 신고.
그렇게 지난해 6월부터 장씨와 제작진간의 긴 싸움이 시작.
(그 후 3개월간 어머니가 소송에 매달려 친권을 찾아 9월 24일 맨 위 사진처럼 이광동씨의 장례를 치룬 것)
하지만 법적 아버지인 장씨의 고집으로 또 다른 냉동시신은 여전히 냉동고 속에 있음.
돌아가신 분을 놓고 흥정을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눈시울을 붉히는 직원.
10년째 그녀의 제사를 지내오고 있는 직원..
사람이라면 모두가 가여워하는 그녀를 정작 아버지라는 사람만이 철저히 외면하는 상황.
제작진은 누구보다 장씨에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을 찾아감.
바로 장씨에게 입양되었다가 10년전 이 시설로 옮겨온 장성수씨.
이곳에서 심지어 장씨가 장애아동을 학대했음이 드러난다.
(밖에 나갔다는 이유로 때리고 물고문을 했다는 것.
보다보면 장씨는 광적으로 아이들을 구속하려함)
심지어 옷도 안입히고 촬영이나 후원금을 내는 손님이 올때만 입혔음.
그때가 제일 무서웠다며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다는 장성수씨.
장씨에게 아들을 맡긴 또 다른 어머니.
(그당시 신문이나 언론에 장씨는 천사아버지로 감동의 아이콘이였음)
아픈 아들과 여관방을 전전할 수 없어 1년만 맡긴 것인데
장씨가 아이를 데리고 사라져버렸다는 것.
갑자기 사라진 장씨 때문에 생이별을 하게 된 가족이 한 두명이 아님.
가족들이 찾아가니 철문은 굳게 닫혀있고 소리를 지르는 장씨부인.
1박 2일을 기다려 철문이 열리고 가족들은 집안으로 들어가게 됨.
(21명의 장애인을 입양했지만 정부는 이곳을 장애인 시설이 아닌 일반 가정으로 보기때문에 관리가 되진 않음)
장씨부인과 장씨는 격렬히 저항하고 장씨부부 곁에 있어야할 장애인이 사라져있었음.
이곳에서도 어김없이 사진촬영과 동영상 찍기에 여념없는 장씨.
끝까지 당당한 장씨부인.
(사실 저말이 그럴듯해 보이지만 시신방치와 이후에 드러난 장씨부부의 소행으로 보아 길러주긴 개뿔)
아니 보아하니 젊은 제작진같은데 대뜸 싸대기를 날리는 장씨부인;;
화가 잔뜩난 장씨부인 그리고 제작진사진 찍기에 여념없는 장씨를 멀리하고
자녀들에게 가보니 편히 살고있는 장씨부부와 달리 4명의 자녀들은 쓰러져가는 움막에서 지내고 있었음.
서로찍기.
말씹고 사진찍기.
가족들은 경찰서로가고 제작진은 자녀들을 데리고 병원으로 갔는데.
주민등록상 남성인 한 자녀가 알고보니 여성으로 밝혀짐.
그때 장씨가 자녀들을 찾아 병원으로 오고
학대가 의심되는 상황에서 자녀들을 돌려보낼 수 없었던 제작진은 자녀들을 보호하기로함
그리고 몇개월이 지나 2013년 1월 장씨에게서 벗어난 네 자녀는
성별에따라 서로 떨어져 잘 지내고 있음.
중간에 귀가 안들려 이비인후과에가보니 귀에 귀지가 너무 많아서 그랬다고 함.
얼마나 관리가 안되었던 것인지 짐작할만 함.
그리고 팔에있던 연락처문신도 조금씩 지워나가고 있음.
모두들 원주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아함.
이날은 네명이서 서로 만난 날.
다들 머리가 자라니 정말 딴 사람이 되었음. 웃음도 많아지고
그런데 안타깝게도 한 여성 자녀는 이미 직장암 3기.
길어야 3개월을 더 살수있다는 시한부 선고..
자녀들과 같이 웃던 그녀가 갑자기 끔찍한 고통에 울기 시작함.
장씨와 살때부터 잦은 복통으로 괴로웠을거라는데
답답한 것은 장씨때문에 지금 치료도 편히 받을 수 없음.
무서운 장씨.
하지만 법적인 제도 아래서는 자녀들을 지원하지 못하고
숨어서 지내고 있는 상황..
여기서 또다른 의문
법적으로 21명을 입양한 장씨
그런데 장씨곁엔 단 4명만이 남아있고 2명은 시신으로 발견됐다.
그러면 나머지 15명의 자녀들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아무리 물어도 장씨는 대답이 없자
제작진은 검찰쪽에 문을 두드리고
결국 장씨집이 압수수색에 들어가게 됨.
검찰의 압수수색중 이상한 사진 발견.
한 자녀가 심하게 다쳐 피를 흘리는데 그 모습을 찍은 장씨.
뭔 상황만 터지면 사진부터 찍나봄 --
그리고 역시 뭔가가 찔렸던지 장씨는
먼저 손을 써서 종이 등 자료를 불태워 버림.
그래서 제작진은 6개월간 생사조차 모르는 15명을 찾아다녔고
그 결과 한 시설에서 지내는 성수씨와 또 다른 자녀 성만씨는 만나게 됐던 것.
이로써 확인된 자녀는 모두 8명.
근데 알고보니 장씨는 이중출생신고하고
성별을 바꾸고해서 부풀렸던 것
21명의 자녀사진은 합성.
악착같이 21명의 숫자를 유지해온 장씨의 의도는
역시나 '돈'이였다.
천사아버지로 방송을 탄 뒤 장씨에게 엄청난 돈이 들어왔다고 한다.
방송이 나간 후 매스컴의 위력과 돈의 맛을 함께 본 장씨..
30년이란 세월동안 속여왔다. 결코 짧은 세월은 아니였음에
녹음기와 사진.. 무엇을 자신의 무기로 삼으려는건지 의도가 보인다.
하지만 그것이 무기가 될수있고 방패막이 잠시나마 될지언정
거짓으로 진실을 덮어버리기엔 이미 진실이 너무나 많이 보였다.
그럼에도 그는 끝까지 거짓으로 일관한다.
위 사진처럼 후원을 받지 않았다고 했지만 상식적으로 그건 누가봐도 거짓말
경찰이 알고있는 계좌로 받은 확인된 후원금만 5억여원이며
국가보조금 2억여원도 장씨가 챙겼다
그 외 현금으로 받은 것들까지 합치면...
하지만 사건 자체가 오래된 일이고 21명의 자녀들의 일이 현 주거지인 원주가 아닌
10여년 전 서울에서 이뤄진 일이기 때문에 운좋게 법의 심판은 피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를 믿었던 사람들의 배신감은 피할 수 없었다.
20년간 장씨를 물심양면으로 도운 이모씨.
그리고 다른 후원자들..
허나 끝까지 당당한 평면적 인물의 부부.
심지어 제작진, 경찰관, 단체관계자를 고소하기에까지 이른다.
(공갈미수, 횡령, 주거침입, 영리유인, 무고, 명예훼손..)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고
함께 힘을 보태 행정당국의 지지부진함을 성토했고
그 결과 작년 12월 국가위원회에서 조사를 시작하게 된다.
생각보다 그는 더 나빴음.
그리고 12월 26일 그는 구속됨.
어디서 많이 본 휠체어를 탄 풍경.
췌장이 아프다며 배정훈이가 돈 3억을 안줘서란 이상한 헛소리를 하기 시작함
그냥 하는소린 아닌 것 같은데 왜 저런 헛소리를 하는지는 모르겠음.
본인은 췌장암이라는데 진단서는 없고 순전히 자가진단에 의한 본인 의사일뿐.
끝까지 자신의 잘못은 인정하지 않았고 현재 재판 진행중.
아버지에게서 벗어난 후 놀이동산에 놀러간 네 자녀.
하지만 아직까지 장씨가 친권을 가지고 있는 상태.
여행을 다녀오고 3주 뒤.
2013년 1월 26일 결국 장성아씨는 세 자녀곁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아직 그녀의 친권을 장씨에게 있고
장씨는 부인, 지인을 통해 네 자녀를 찾고있다고 합니다.
장씨에게 갇혀 살았던 30년, 벗어난 뒤에 항암치료 6개월
그녀에게 삶은 고통의 연속이였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냉동고에는 한 구의 시신이 방치되어 있습니다.
겨울 밤의 날씨처럼 춥고, 하늘처럼 참 어두운 일입니다.
출처: 쭉빵카페
첫댓글 ㅁㅊㅅ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