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웜(Blueworm)-27
“제임스! 그건 안되요. 어서 같이 가요. 같이 가자니까요!”
“지영아. 어서 출발해. 시간이 없어. 계속 남쪽으로만 가면 돼. 알았지?”
“안돼! 안돼. 이 바보야! 야! 제임스. 이 바보같은 아저씨야! 안돼. 지영이 혼자 못가! 안가! 이 바보같은 아저씨야! 어서 같이 떠나요!”
지영은 뺨에 흐르는 눈물을 닦지도 않은채 악을 쓰며 제임스를 불렀다. 이건 안되는 것이다. 어떻게 혼자 두고 간다는 말인가. 죽도록 두고 가는 것이다. 다시 돌아간다면 틀림없이 그는 죽을 것이다. 지영은 어떻게 할 줄 몰랐다. 그냥 악을 쓰며 같이 가자고 매달리는 방법외에는.
“아저씨. 엄마가 기다려요. 김선애가 기다린단 말이예요. 아저씨가 사랑하는 여인 김선애가 기다려요. 그러니 같이가세요. 네. 응? 엄마는 어떻해요? 이 바보같은 아저씨야!”
제임스는 분리된 스키두에 시동을 걸었다.그리고 울고있는 지영에게로 갔다.
“지영아. 이건 휴대폰이야. 곧 벨리스에게서 전화가 올거야. 그 번호로 다시 전화해. 잊지말아. 벨리스가 보내주는 번호를. 그리고 어서 출발해. 추적대가 쫏아올거야. 내가 그들을 막을테니까 어서 출발해. 내가 네 뒤를 곧 쫒아 갈테니. 김지영 박사는 많은 무고한 사람들을 위하여 해야 할 일이 있어. 그 점 명심하고 꼭 그 백신을 만들도록해. 내가 네 뒤를 곧 쫒아 갈테니. 걱정말고. 나를 믿으면 돼. 알았지? 자 어서 출발해.”
지영은 눈물이 가득하여 얼어붙고 있는 얼굴에 미소를 짖고 고개를 끄득였다. 제임스는 빨강색 휴대폰을 지영이에게 주고 앞 주머니에 넣는 것까지 지켜봤다. 그리고 지영이의 스키두를 밀었다.
“아저씨. 꼭 살아서 돌아오셔야 해요. 약속해줘요. 아저씨!”
스키두는 서서히 출발하였고 지영은 뒤를 돌아보며 외쳤다.
“그래. 약속했다. 곧 살아서 뒤따라가겠다.”
제임스는 그렇게 소리친 후 그가 탄 스키두를 출발시켰다. 고개를 돌려 뒤를 보니 지영이의 스키두가 점차 멀어졌다. 그는 어깨에 맨 M16의 장탄을 확인하고 스키두 뒤에 실어둔 가방에서 탄창 두개를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여름이었으면 강이었을 곳의 눈덮힌 나무 사이를 지나 다시 그들이 튀어 나왔던 건물을 향하여 달렸다.
49.
눈발이 작은 눈송이가 되어 쏫아지기 시작하였다. 제임스는 잠깐 고개를 돌려 지영이 간 쪽을 바라보았다. 멀리 까맣게 보였다. 제대로 가고 있었다. 내리는 눈속에 선애의 얼굴이 떠 올랐다 사라졌다.
제임스는 지영을 혼자 떠나보내고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러나 곧 추격대가 또 다른 스키두를 타고 나타날 것 같은 생각에 그들이 튀어 나올 것이라고 예상되는 게라지 출입구 앞의 눈덮힌 나무숲 뒤로 스키두를 옮겨두고 사격자세를 취했다. 그가 채 숨을 고르기 전에 부르릉하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스키두가 그들이 나온 문을 뚫고 튀쳐나왔다. 스키두는 예상과 같이 다른 곳에 또 있었던 것이다. 제임스의 예상이 맞았다. 제임스는 앉아쏴 사격자세로 겨눈 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막 튀쳐나온 첫번째 놈이 앞으로 나가 떨어졌다. 두번째 놈은 머리에 쓴 헬멧이 터지며 옆으로 떨어져 나갔다. 세번째 놈은 그제서야 복병이 있다는 것을 알고 브레이크를 밟았으나 늦었다. 그의 스키두는 맞은 총알에 의하여 폭발하며 그를 하늘 높이 날려버렸다. 제임스는 온힘을 다하여 그들이 나온 출구를 향해 뛰었다. 아직 출발하지 않고 놀라 총을 든 채 밖으로 나오던 3놈들과 마주쳤다. 제임스는 앞으로 달려가며 총을 자동으로 하여 그들을 향해 사격하였다. 그들은 안전장치를 풀지 않았든가 예측하지 못하였든지 한방도 쏴보지 못하고 불의의 사격에 쓰러졌다. 제임스는그들을 헤치고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 안 광장에서는 총격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아직 둘 다 살아있었다. 제임스는 별관으로 가는 입구에서 사격을 하고 있는 놈들에게 조준사격을 하였다. 그들은 예기치 못한 총격에 그대로 쓰러졌다.
"제임스! 왜 돌아왔오?"
반대편에서 벨리스가 큰소리로 물었다.
"김지영 박사 빽쌕을 찾으러 왔오. 어디에 있는지 보았오?"
"5번 연구실에 있는 걸 봤오. 바로 옆 방이요."
"지체말고 탈출하시오. 이곳 게라지에 스키두가 더 있오. 키스는..."
더 이상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별관 출입구 옆에 있는 연구실 문이 열리며 경비병들이 사격을 시작하였다. 벨리스가 대응사격을 하며 큰소리로 외쳤다.
"제임스. 우리가 엄호사격을 하겠오. 그리고 탈출하겠오. 곧 탈출하여야 하오!"
대답할 여유가 없었다. 제임스는 벨리스와 키스의 엄호사격을 받으며 방금 지영이와 같이 나왔던 5번 연구실로 뛰어 들어갔다. 한 놈이 쓰러진 쿠르타이스 박사 옆에 있었다. 이 와중에 그가 있으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가 총을 쏘는 순간 엎드리며 방아쇠를 당겼다. 그 놈은 유리로 된 쉘브위로 떨어졌다. 제임스는 옆구리가 뜨금하였다. 그가 쏜 총알이 옆구리에 맞았다. 그는 주춤하며 고개를 돌려 지영이의 청색 빽쌕을 찾았다. 지영이의 빽쌕은 창가의 테이블 옆 철재로 만들어진 문이 열린 케비넷 아래에 붉은색 플라스틱 박스안에 있었다. 그는 달려가 그 빽쌕을 열어 보았다. 그리스에서 가져 온 것들이 있었다. 그들은 이것을 자세히 보지 않았음이 틀림없다. 제임스는 그것들을 다시 확인하였다. 거의 모두가 들어있었다. 그는 빽쌕을 들어 등 뒤로 메었다. 이제 어서 지영이를 쫏아가야 한다. 그는 앞의 출입문으로 나가기가 좋지 않을 것 같았다. 컴퓨터가 올려져 있는 테이블위의 서쪽벽은 유리창으로 되어있었다. 옆구리에서는 피가 흘러 흥건하였다. 그는 의자를 들고 유리창을 향해 의자 다리를 앞으로 하여 힘껏 던졌다. 역시 원샷이어야 했다. 유리창은 방탄용이 아니었다. 방한용이었다. 이중 강화 유리창이 펑하며 터졌다. 그와 동시 총알들이 출입문을 뚫고 맞은 편에 박혔다. 지체없이 깨어진 유리창을 헤치고 눈덮힌 밖으로 뛰어 내렸다. 그때 우측편 별관에서 3대의 스키두가 허드슨 베이쪽으로 달려 가는것을 보았다. 추격대였다. 위기였다. 머리카락이 쭈볏서는 것 같은 느낌을 가졌다. 본능이 그를 움직이게하였다. 제임스는 즉시 달려가 눈덮힌 나무 뒤에 숨겨둔 스키두에 올라 그들을 향해 출발했다.
50.
그 시각, 동아시아 각국은 블루웜의 공격에 의한 피해가 속출하자 무능한 정부를 규탄하는 데모가 연일 일어나고 있었다. 돼지와 소 사육농가와 치명적인 피해를 입고 사망하거나 사경을 헤매는 사람들의 가족들이 연합하여 대 정부 보상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각국 정부는 감염이 예상되는 지역의 가축 돼지와 소들을 제거하라고 독려하였고, 정부들은 수십억 달러에 이르는 보상문제로피해축산가들의 협회와 블루웜에 의하여 사망한 피해자의 유가족협회과 대치하고 있었다. 그들 데모대들은 트럭에 도살된 가축들을 싣고 또 다른 데모대들과 합류하여 연일 대규모 정부 규탄(糾彈)대회를 열었다.
“블루웜을 속히 박멸하라!”
“블루웜 백신을 제공하라!”
“피해보상을 속히하라!”
“하루속히 대책을 마련하고 무능한 농축산부 장관을 경질하고 대통령은 사과하라!”
이러한 뉴스들은 긴급으로 전파를 타고 세계 각국에 알려졌다. 토론토의 글로벌 미생물협회가 구성한 블루웜박멸대책반의 비상상황실 벽에 붙어있는 대형 스크린에도 24시간 방영되고 있었다.
캐나다도 예외는 아니었다. 캐나다정부는 Hogs Farmers(가축 돼지농장 주 협의회)협회의 압력으로 다음 정권의 연속적인 확보에 대한 기대가 무산될 것 같이 불안이 요동 칠 정도였다. 한국과 일본 중국은 돼지사료와 Hog의 밋트를 무기한 수입 중단하기 시작하였으며 심지어는 가장 큰 수출 시장인 미국까지도 사료는 물론이고 밋트까지 수입중단을 고려하고 있으므로 사료와 돼지고기 수출업자들은 그야말로 캐나다를 뭉개버릴듯 요동치고 있었다. 그들 정부 관계자는 다각적인 해결방법을 모색하고 있으며 글로벌 특이 미생물학회의 백신에 대한 결과에 사활을 걸다시피 하였다.
“아직 김지영 박사의 위치를 확인하지 못했습니까?”
윌 박사가 초조한 음성으로 컴퓨터 요원에게 물었다. 컴퓨터 팀은 이번 블루웜 사태 발생 후 정부로 부터 지원 받았다. 그들 6명이 정보관리 지원을 하고 있다.
“퀘벡 노스지역을 집중 수색하고 있습니다. 위성으로 부터 받은 실시간 자료에도 아직은 없습니다.”
“미세스 김은 어디에 있습니까?”
윌 박사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정인구 박사가 물었다.
“온타리오 북쪽 경계에 있습니다.”
“계속 잘 지켜봐주십시요. 화면을 와이드 업해 주실 수 있는지요?”
정인구 박사가 화면을 유심히 보며 요원에게 물었다.
컴퓨터 앞에 앉아 화면을 주시하고 있던 한 요원이 윌 박사를 보았다. 아무래도 한인 박사가 낮설어서 일 것이다. 윌 박사가 고개를 끄득이자 곧 위성화면이 나타나며 푸른점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화면의 지도상에는 허드슨베이와 그 경계에 온타리오가 있었고 우측에 퀘벡이 있었다. 지금 그 점은 온타리오와 허드슨 베이 경계에서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은 그 움직이는 점을 집중 감시하며 더 명확한 이미지를 포착하기 위하여 부지런히 손가락을 움직이고 있었다. 아마도 김선애가 탄 헬기일 것이다. 정인구는 더 묻지 않고 지켜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