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월 마지막 날에
올해는 양력 윤년이라 이월이 29일까지 든 주중 목요일이다. 윤년에는 하계 올림픽이 열리는 해고, 미국서는 대통령 선거가 있다. 4년 전 열렸어야 하는 직전 도쿄 올림픽은 코로나로 이듬해로 미뤄졌고 올해 올림픽은 파리에서 열린다는 정도는 귀동냥으로 들었다. 미국 대선에는 고령의 현 대통령과 김정은과 핵 담판을 지어보려던 전직 대통령과 재대결이 흥미 끌만 한 뉴스지 싶다.
언제부터인가 신문과 방송은 거리를 두고 사는지 꽤 오래다. 청년기부터 구독하던 종이 신문은 교직 말년 임지가 거제로 정해지면서 절독했다. 지면에서 시사성 있는 기사를 접하기보다 명망 있는 필진의 칼럼이나 문화 기사에 대한 갈증을 해소해주어 장기 구독했는데 끊고 나니 아쉬움은 좀 남았다. 텔레비전이야 아예 근처도 가질 않아 요즘은 날씨 정보는 휴대폰에서 취하고 있다.
올겨울에는 날씨가 따뜻했고 비가 잦았는데 이월 마지막 날도 흐리고 강수가 예보되었다. 목요일 오전은 도서관에 머물다가 오후는 스마트 폰 교육장으로 나가는 일정이다. 지난 일월부터 목요일이면 연금공단에서 주선해주는 스마트 폰 활용 교육을 받는데 초급반이라도 내가 따라가기가 버겁다. 오후부터 온다던 비가 아침부터 당겨 내려 식후 현관을 나서면서 우산을 챙겨 들었다.
외동반림로를 따라 걸어 원이대로를 건너 창원레포츠파크로 갔다. 지난해 봄부터 근 1년 가까이 원이대로는 공사로 운전자와 보행자가 불편을 겪고 있다. 도계동 만남의 광장에서 가음정사거리까지 간선도로 시내버스 급행 운행 체제를 위한 노선 개량 공사는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차도 중앙에 새로운 정류장 시설물이 세워지고 공사 전 어딘가 보냈던 조경수는 다시 옮겨 왔다.
폴리텍대학을 지나니 높이 자란 소나무와 향나무와 동백나무가 많은 교정에 한 그루 산수유나무는 노란 꽃을 피웠다. 어디나 흔한 벚나무는 몇 그루 꽃망울이 부풀었다. 폴리텍대학에도 인적 구성에서 환경 부서 직원이 있음에도 수고를 들어주기 위함인지 조경수는 낙엽이 지질 않는 상록수 중심으로 식재되었다. 교정 수목에서도 실용성을 우선하는 교육 이념의 구현인가 싶었다.
대학 구내를 벗어나 교육단지 보도를 따라 걸으니 차도와 나란하게 도열한 벚나무들은 꽃눈이 도톰해져 갔다. 올해는 매화와 산수유꽃의 개화가 빠르듯 벚꽃도 예년보다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빠를 듯하다. 진해 군항제도 오는 3월 22일 개막해 4월 첫날에 막을 내린다는 기사를 봤다. 입학생을 환영한다는 현수막이 내걸린 전문계 공업고등학교와 중학교를 지나 도서관으로 향했다.
도서관 가는 길 가로등 기둥에는 겨울 분위기가 남은 시인들의 시구가 펄럭였다. 도서관에 닿아 사서들과 같이 2층 열람실로 올라 내 지정석이 되다시피 한 창가 자리로 가서 앉았다. 집으로 가져가 못다 읽은 100세를 넘겨 사는 철학자 ‘김형석의 인생문답’을 펼쳤다. 집에서 접어둔 부분은 모친과 아내를 보낸 뒤 허전했는데 두 친구가 곁을 떠나니 세상이 텅 빈 느낌이더라 했다.
노철학자의 행복론 한 부분을 옮겨오면 이랬다. “이기주의자는 자신을 위해 살아 인격을 갖출 여력이 없다. 인격은 인간관계에서 나오는 선한 가치다. 이기주의자는 그걸 갖추기 어렵다. 그런데 인격의 크기는 결국 자기 그릇의 크기다. 그 그릇에 행복을 담는다. 이기주의자는 그릇이 작기에 담을 수 있는 행복도 작을 수밖에 없다.” 폰에다 문자로 메모해 두었다가 몇몇 지기에 보냈다.
점심때가 되어 마트 폰 교육장으로 이동해 뷔페에서 식사를 해결하고 강의실로 올라가니 내가 제일 먼저 닿았다. 강사의 열성에 비해 학생 수준이 뒤처짐을 매번 절감한다. 손에 쥔 폰에 무궁한 세상이 있음에도 꺼내 써는 방법을 모르니 갑갑하다. 교육을 마치고 강의실 밖으로 나오니 비는 여전히 내렸다. 반송시장을 지나다가 캐놓은 쑥으로 끓일 국에 넣을 도다리를 두 마리 샀다. 24.0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