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기다리던 소식이 저에게 전해졌습니다.
그 동안 소중한 문화재에 대해 스스로 보고 즐기기만 했지 내가 스스로 문화재를 위해 뭐하나 해본 일이 없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러던 중 지인의 소개로 문화재청에서 전개하는 ‘1인 1문화재 지킴이’ 운동을 알게 되었고 지난 4월에 지킴이 신청을 했었는데 아무런 연락이 오지 않아 궁금해하던 차였습니다.
그러다 지난 7월 말 문화재청에서 등기 우편물이 하나 도착했을 때는 그러한 사실조차 잊고 있었던 차에 내용물을 열어보고서야 지킴이 신청이 생각났습니다.
제가 문화재 지킴이를 신청한 문화재는 보물 제93호 파주용미리 석불입상입니다. 아마 이름을 처음 듣는 분도 계실지 모르지만 답사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한 권쯤을 보셨을 답사여행 길잡이 중 9편 경기북부와 북한강 편에 표지 모델로 고양파주를 대표하는 문화재라 할 수 있는데 파주 광탄면 용미리에 소재하고 있는 용암사라는 조그마한 사찰과 함께 있습니다.
용미리 시립묘지입구에서 본 석불. 절을 보이지 않고 석불도 아주 귀여워 보인다
제가 용미리 석불입상을 선택한 이유는 몇 가지 있는데 그 중 첫째는 거리상의 이유입니다. 지킴이 활동을 제대로 하려면 우선 집에서 멀지 않아야 하는데 파주 용미리는 제가 살고 있는 고양시에서 30분이면 도착 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파주 용미리 석불 바로 옆에 군부대가 하나 있는데 바로 그곳이 제가 군대생활을 했던 곳입니다. 군대 생활 중 일요일 종교활동 때 이 곳에서 법회도 참가했었고 그 후로도 여러 번 가보았던 매우 익숙한 곳이기도 합니다.
세 번째 이유는 3~4년 전 제가 처음으로 고양시 사람들과 함께 문화재 답사모임을 처음 만들어 답사길잡이 자격으로 답사를 했던 아주 의미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 답사모임은 비롯 두 번밖에 하지 못하고 제 개인적인 이유로 중단되었지만 그때 함께 했던 기억은 저에겐 잊지 못할 추억입니다.
솔직히 말씀 드리면 그 답사를 끝으로 단 한번도 그곳을 가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문화재지킴이를 신청하려 했을 때 제일 먼저 그곳이 떠올랐나 봅니다.
위촉장이 도착한 후에도 이런저런 사정으로 가보지 못하다가 9월 첫째 일요일 날 드디어 그곳을 찾아갔습니다. 특별한 활동을 위해서가 아니라 상견례 정도의 가벼운 마음으로 찾아 갔습니다.
절 입구에 도착했을 때 주차장이 잘 정비되어 있어 매우 흐믓했습니다. 원래 외부주차장은 아예 없었고 절 안쪽에 몇 대만 주차해도 꽉 차버릴 것 같은 조그만 공간이 전부였는데 외부 주차장도 잘 정비되었고 입구도 잘 정비하여 지금은 웬만큼 차가 몰려도 충분히 수용 할 수 있습니다.
용암사는 일주문도 사천왕문도 없는 조그마한 사찰이다.
용암사는 97년에 화재로 사찰 주요 건물이 전부 불에 타 새로 조성되어 고풍스런 맛을 느낄 수 없고 건물도 대웅전, 요사체, 종루, 삼성각 딱 네 개 밖에 없는 조그만 사찰인데 그나마 산신각은 너무 낡아 새로 조성하기 위해 마당 한 켠에 임시로 마련 되 있습니다.
절 마당에 들어서도 석불입상은 보이지 않습니다. 석불입상은 대웅전 왼편으로 난 계단으로 올라가면 만날 수 있는데 계단 수를 세며 올라가는 것도 재미입니다.
계단을 오르면 드디어 보물93호 용미리 석불입상이 그 우람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석불은 두기로 보이지만 하나의 돌이 갈라진 것이고 그것을 이용해 마애불을 두 기로 조성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왼쪽에 보이는 석불은 편의상 둥근 모자를 쓰고 있어 원립불(圓笠佛)이라 부르고 오른쪽 석불은 네모난 모자를 쓰고 있어 방립불(方笠佛)이라 불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남녀로 구분하여 보는 것은 불교 교리상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불교에서 여래나 부처는 성별 구분이 없습니다. 인간을 넘어선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미륵도 마찬가지인데 남미륵, 여미륵이란 구분은 있을 수 없습니다.
어떤 분들은 모자의 형태를 보고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났다 라는 천원사상에 따라 왼쪽 마애불을 여자 오른쪽을 남자라고 보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으나 모두 불교와는 관계 없는 주장입니다. 이 마애불이 불상이 아니라면 모를까 불상이라 점은 부정 할 수 없기에 남녀 구분은 불가하나 두 불상의 비례와 중량감의 차이로 남녀 한 쌍으로 보이는 건 사실입니다
천연암반을 이용해 조성되었기에 신체비례가 잘 맞지 않으나 그것은 토속적인 맛과 친근함을 불러 일으킵니다. 왼쪽 원립불은 마치 갓을 쓰고 있는 것 같은 모양이고 연꽃을 들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이런 연꽃을 들고 있는 석불입상은 부여 대조사 석불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법의는 통견으로 세로무늬가 있고 가운데 띠 매듭이 아주 멋있으며 그 아래는 U자 모양으로 선각했습니다.
오른쪽 방립불도 원립불과 거의 비슷한 수법인데 두 손을 모으고 합장하는 모양이 매우 인상적인데 일부러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합장한 손이 얼굴 중앙에서 약간 옆으로 조성되어 있어 석불입상치고는 매우 동적인 느낌을 주면서 엄숙함 보다는 매우 여성적인 느낌을 줍니다.
용미리 석불입상은 여러 가지 수법을 보았을 때 고려 시대 불상으로 쌍 미륵이라 불렸는데 그 조성에 관련된 설화가 하나 전해져 옵니다.
고려 선종(宣宗, 재위 1084∼1094)은 뒤를 이을 후사가 없어 고민하고 있었는데 하루는 후궁인 원신공주(元信公主)의 꿈에 두 도승이 나타나 말하기를 “우리는 파주 장지산에 산다. 식량이 떨어져 곤란하니 그곳에 있는 두 바위에 불상을 새겨라. 그러면 소원을 들어주리라” 하였습니다. 원신공주는 이상하게 생각하여 사람을 보내 알아보았더니 그곳에 실제로 커다란 바위 두 개가 서 있었으므로 서둘러 불상을 만들게 했습니다. 그때 꿈에 보였던 두 도승이 다시 공사장에 나타나 왼쪽바위는 미륵불로, 또 오른쪽 바위에는 미륵보살상을 조성할 것을 지시했습니다. 그리고 말하기를 “모든 중생이 와서 공양하며 기도하면, 아이를 바라는 사람은 득남을 하고 병이 있는 사람은 쾌차하게 될 것이다” 라고 말한 뒤 문득 사라졌습니다. 그 뒤 불상이 완성되고 그 아래에 절을 짓고 나니 곧이어 원신궁주에 태기가 생기고 사내아이를 출산하게 되니, 그가 곧 한산후 물(漢山侯勿) 라고 합니다.
이 전설은 사실 치명적인 오류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산후는 실재 원신궁주와의 아들이고 선종의 다음인 현종의 동생이기에 후사가 없어 고민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란 걸 알 수 있습니다. 또 한산후는 태자가 아니라 서자로서 이름도 물이 아니라 윤이라 합니다. 또 원신공주는 원신궁주의 오류라 합니다.
이러한 전설로 인해 지금도 자식이 없어 고민하는 사람들이 발걸음이 이어진다고 하니 문화재가 단순한 옛 흔적이 아니라 우리의 생활과 연결되어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고 있습니다.
석불 주변은 낮은 철책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뒤로 돌아가면 바위 위 석불 머리 부근까지 올라갈 수 있는데 저는 어던 석불입상이든 가능하면 석불에 눈높이에서 올라가 보곤 합니다.
석불 가까이 다가가면 위험하니 아이들과 함께라면 조심해야 합니다.
가까이서 보니 얼굴과 목 모자는 따로 조성하여 올라놓았고 조각은 그리 세부적이지 않으나 천 년이 지난 지금 보아도 모던한 현대적 느낌을 줍니다.
석불 오른쪽 뒤쪽 바위에 조성설화와 관련된 명문이 바위에 새겨져 있는데 관리가 전혀 되지 않아 훼손이 심각한 상태입니다. 조금만 더 훼손이 진행되면 어찌 손쓸 수 없는 상황이 될 것입니다. 앞으로 제가 문화재 지킴이로서 명문을 보존하도록 문화재청에 요청할 예정입니다.
이 석불이 있는 용미리 지역은 옛날부터 미륵뎅이라 불리었는데 이 석불 앞길이 바로 한양에서 벽제 혜음령을 넘어 개성으로 길목에 위치한 곳이라 오가는 사람들의 안녕을 빌어주곤 했을 것입니다. 하늘 재 고개 밑에 미륵사지 석불, 중국과의 바다 뱃길을 안녕을 빌어주던 서산 마애삼존불 등 숱한 석불과 마애불들은 그 시대의 사람들의 염원이 담겨 있습니다.
지금 용미리 석불은 옛날 아주 중요했던 도로가 아닌 왕복 2차선의 작은 지방도로에 불과하지만 석불이 바라보고 있는 곳은 용미리 시립묘지로써 수많은 사람들이 잠들어 있는 곳입니다. 옛날에는 살아있는 사람들의 안녕을 기원했다면 지금은 수많은 영혼을 위로하는 형세입니다.
두 석불은 무슨 이야기를 나누며 그토록 오랜 시간을 견디어 왔을까?
보물 제93호 용미리 석불은 거의 천 년 동안 인간을 위로하고 발원을 들어주는 자신의 사명을 잊지 않고 오늘도 당당히 서 있습니다.
날씨가 좋은 주말 가족과 함께 나들이 삼아 한번쯤 방문하여 석불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또 석불의 눈높이에서 용미리 묘지를 보면서 인간사 새옹지마를 느껴보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될 것입니다.
첫댓글 잘 보고 배웠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문화재 사랑에 찬사를 보냅니다. ^^
국도4호선님 감사합니다. 선생님이라뇨...당치않습니다.. 늘 옛님 회원님들이 존경스럽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참. 대구 매일 연재글도 잘 보고 있습니다.
선과님 잘 지내셨는지요? 자주 글을 올리지 못해 미안합니다.. 참..대구매일에 글 올린적 없는데요 ^^
엥? 저는 이순우님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ㅎㅎ 죄송해유
글 잘보았습니다. 저도 이 곳을 참 좋아합니다. 제가 일산에 살기 때문에 오다가다 자주 보는 곳입니다. 그만큼 애정이 가는 곳입니다. ' <사찰 그 장엄한 세계 코너>의 <875>글에 제가 쓴 용미리 마애불 답사기가 있습니다. 조금은 다른 관점에서 본 글입니다. 읽어보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최성호님..댁이 일산이시군요...저도 일산인데...하하 시간날때 같이 한번 가보고 싶습니다..답사기는 읽어보겠습니다. 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흔들리는 별님// 이번 주는 제가 바빠서 힘들고 다음 주에 시간을 내서 술한잔하였으면 좋겠습니다. 제 전화번호는 011-705-6396입니다.
술도 좋고...지금쯤 소령원의 햇살이나 파주 3릉의 단풍도 고을때니 나들이도 좋습니다..연락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