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기산(泰岐山 1,261m)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과 평창군 봉평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횡성군 최고봉이다.
진한의 태기왕이 신라군과 최후의 항전을 벌였다는 태기 산성 흔적이 남아있으며 화전민들이 들어와 살면서 세워진 태기분교가 남아있다.
이곳 태기산 일대는 원시식물이 많이 서식하고 있으며, 겨울철에는 풍부한 적설량이 빚는 설경이 유난히 아름다워 겨울의 정취를 즐길 수 있다.
태기산 정상은 풍력발전소로 유명하고 군부대가 위치한 까닭에 정상에는 오를 수 없지만, 북쪽으로 완만히 뻗은 태기산 자락을 따라 놓인 풍력발전기들이 하얀 눈꽃들과 어우러져 풍경을 만든다.
⛰️ 트레킹코스
겨울 눈꽃 성지로 꼽히는 태기산은 높이(1.261m)의 고산이지만 산행 들머리인 양구두미재(980m)까지 차로 올라갈 수 있어 최단 등산코스로 3시간이면 최고의 설경을 보실 수 있는 곳 입니다.모든 등산길이 임도로 되어있어 누구나 남녀노소 천천히 힐링하며 왕복 3시간의 산행하기 좋은 최고의 산행지 입니다.
⛰️ 눈 내리는 날의 풍경 - 횡성 '태기산'
눈 내리는 겨울이면 사람들로 붐비는 산이 있습니다.
겨울이 깊어가는 12월과 1월, 내려 쌓인 눈꽃이 예뻐서 찾는 산, 횡성 [태기산]입니다.
2월이지만 아직은 한겨울이라 제법 춥군요.
해발 1200m에 세워진 '하늘 아래 첫 학교'인 태기분교는 1968년 6월에 개교했는데, 처음엔 횡성군 갑천면 봉덕국민학교 태기분실로 문을 열었다가 1973년 행정구역 변경으로 둔내면 덕성국민학교 태기분교로 변경되었고 3년 뒤인 1976년에 문을 닫았다고 해요.
1965년 9월. 화전민 정착사업에 따라 횡성 군내에 흩어져 있던 74가구(399명, 1968년 7월 통계)가 태기산으로 올라와 화전민 부락을 이루었습니다. 3년간 정부 지원을 약속을 믿고 태기산 일대로 들어온 사람들은 원시림을 벌목하고, 산을 깎아 계단식 밭을 만들며 움막에서 생활했는데, 화전민에게 정부가 제공한 것은 밀가루가 전부였답니다.
10월 초부터 서리가 내리는 고원지대 기후가 작물 생육에 적합하지 않아서, 밭을 일구고 곡식을 심어도 제대로 수확하기 힘들었답니다. 해방과 분단, 6.25 전쟁으로 이어진 상황에서 생계가 막연했던 사람들에게, 어린아이라도 일하면 밀가루를 받을 수 있다는 태기산 화전민촌은 동경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는데, 횡성뿐만 아니라 평창, 홍천 등 120여 가구가 이주했었대요.
어려운 역경 속에서 못 배운 한을 대물림하게 하지 않으려는 화전민들은 자녀 교육에 대한 갈망이 무척 컸겠죠?
그렇지만 학교에 가려면 산길을 30㎞ 이상 내려가야 해서 가르칠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 국가에서도 어쩌지 못한 학교 건립은 당시 20대 중반이던 이명순 교사의 노력으로 이루어졌답니다.
태기산 화전민촌 아이들을 모아 한글과 산수를 가르치던 이명순 선생님이 횡성 교육장을 만나고 강원도지사를 만나는 등 백방으로 노력해서 국제 구호단체의 지원을 받아 학교 건물을 세울 수 있었대요.
76명의 학생을 전교생으로 첫 입학식을 한 태기분교는 한때 150여 명이나 되었지만, 정부의 화전지 개발사업 실패로 화전민을 다시 강제로 내몰면서 태기분교는 개교 8년만인 1976년 문을 닫았답니다.
화전민들이 모여살던 태기리는 1973년 7월 1일 행정구역 개편으로 갑천면에서 둔내면에 편입되었다가, 1976년 4월 행정공부(行政公簿)에서 사라진 마을이 되었구요
갈림길에서 태기분교를 지나가는 이 길은 '태기왕 전설의 길'입니다.
진한의 마지막 왕인 태기왕이 신라군에게 쫓기어 이곳에 태기산성을 쌓고, 군사를 길러 신라 박혁거세와 싸웠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그래서 태기산 자락인 성골 골짜기에는 허물어진 성벽을 비롯해 집터와 샘터 등이 흩어져 있답니다.
청일면 신대리에서 작은 성골을 거쳐 가는 등산로를 따라가면 태기 산성을 볼 수 있는데, 완만한 양두구미재 코스에비해 된비알이 많아 힘이 들지만, 태기 산성을 지나면서 부터는 경사가 완만해진다네요.
횡성 갑천, 청일, 둔내 일대에는 태기왕과 관련된 지명이 곳곳에 남아있는데, 신라군에 패해 횡성 일대로 들어온 태기왕 군사들이 냇가에서 갑옷을 빨아 널었다는 갑천, 태기왕 군대가 주둔했다는 병지방, 피난 온 태기왕이 화동 골짜기에서 볍씨가 나와 농사를 지었다는 둔내면 화동(禾洞)리, 태기왕이 군사들을 훈련한 활터에서 유래한 궁종(弓宗)리, 태기왕이 산성을 쌓았다고 해서 덕고산에서 명칭이 바뀐 태기산, 태기왕을 추격해온 박혁거세가 올랐다고 하는 어답산, 재기에 실패하고 태기왕마저 숨을 거둔 후 태기왕이 이끌던 병사들은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새로운 마을을 개척하고 살았다는 신대리 등이 이에 해당한다고 하죠.
⛰️ 태기산 풍력발전단지
태기분교 삼거리에서 정상으로 가는 길목에는 '태기산 풍력발전' 사무실이 있는데요, 2008년에 건설된 풍력발전 단지에는 풍력발전기 20기가 세워져 있는데, 그 발전기마다 풍력발전 직원들이 눈을 깨끗하게 치웠드군요.
2008년 11월 운전 개시한 태기산 풍력발전은 태기산 정상 바람의 힘으로 풍차를 돌리고, 그 힘으로 발전기를 돌려서 전기를 만드는데 풍력발전기는 높이 80m, 날개 직경 80m나 되며, 태기산 풍력발전단지 2MW급 20기 40MW 규모의 풍력발전을 조성하고, 바람을 최대한 이용할 수 있도록 바람 부는 방향으로 맞추어져, 24시간 365일 운전하여 횡성과 평창 지역 약 25,000여 가구가 쓸 수 있는 양의 전기를 생산한다고 합니다.
태기산 풍력발전단지 시설용량 40MW는, 지난 2006년 준공된 국내 최대의 대관령풍력단지 98MW의 절반 규모로, 발전량은 연간 약 9만8,300MWh이며, 이산화탄소 발생량을 연간 6만톤 줄이는 3000ha 규모의 산림 대체 효과를 갖게 된다고 해요.
풍력발전기를 관리하려면 차(車)가 다닐 수 있도록 눈을 치워야 해서, 풍력발전 직원들은 수시로 눈을 치웁니다.
⛰️ 양구두미(兩鳩頭尾)재 전설해발고도 980m의 고갯마루인 양구두미재와그 아랫마을인 둔내면 삽교3리 '구두미' 마을은 얼핏 같은 듯하지만 서로 다른 설화를 간직하고 있다.양구두미재에 얽힌 전설은 한자 지명에서 알 수 있듯이 비둘기가 주인공이다.옛날 어느 가난한 선비가 묘를 잘 쓰면 부자가 된다는 말을 듣고 용한 지관을 통해 아버지의 묘를 쓴 곳이 바로, 이 고갯마루다.한참이 지나도 재산이 늘지 않자 선비는 묘를 이장하기 위해 관을 들어냈다.이때 땅속에서 두 마리의 황금 비둘기가 나와 고개 너머로 날아 가버렸다.그 후로 이 고개를 '양구데미'라고 불렀다는 전설이다.
🎼 🎶🎵 music
1. 홀로 아리랑 ㅡ 홍진윤
2. 추억의 소야곡 ㅡ 남인수
3. 처녀농군 ㅡ 유지나
첫댓글 23,24시젼 마지막 눈꽃산행이 아닐까 십네요.
태기산 산행길의 이모저모와 설경이 아주좋네요.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우주만물이 생동하는 봄이왔군요
꽃피고 새우는 희망가득한 봄 ~~^^
언제나 건강하시고 즐겁고 행복 가득한 춘삼월이 되시길 ~~^^
산사랑산악회 를 위해 항상 염려해 주심에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