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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치키현변호사회와의 교류기
8.30(금)
아침 4:30 변호사회관 앞 11명이 모였다. 모두 잠들기 힘든 밤이었을 것이다. 김형태 회장님의 돌연 다리 부상 소식에 좌중이 긴장한다. 회장님은 그 동안 모아온 자료를 부회장에게 건네면서 리더 역할을 맡긴다. 새볔에 나온 회장님의 간 밤의 고민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인다.
아침 안개를 뚫고 가는 버스 안은 조용하다. 새로 생긴 서해대교를 밤으로 느끼고, 아침 해장국을 먹으니 인천 공항에서 가이드를 만난다. 티켓팅 하고 짐 부치고 수속하면 2시간이 금방이다.
나리타로 가는 비행기가 복잡하다. 창문 아래로 반도가 동해와 갈라지고 이윽고 섬이다. 공로상 우측 편에서는 바다만 보이지 혼슈가 잘 보이지 않는다. 좌측 창문으로는 후지산이 보였던 모양이다. 2시간여 비행 후 내린 나리타 공항. 새로 지은 간사이 공항은 청사의 규모 때문에 커 보이지만 나리타 공항은 넓은 부지에도 불구하고 작은 청사로 인하여 규모가 작아 보인다.(나리타 공항은 지바현 나리타시에 있는 시골에 소재한다) 생각 보다 입국절차가 간단하다. 공기가 대전 보다 따뜻하다. 난대림, 활엽수가 동경의 기온을 말해 준다. 작은 전세 버스에 올라 동경의 동쪽 도심 위 고가도로를 통하여 우츠노미야로 직행한다. 동경,사이타마의 복잡한 도시를 지나 시골로 가나보다 하니 도치키현이다. 산세가 높아진다. 침엽수림이 보이니 기온이 다른 모양이다. 우츠노미야는 작은 도시라서 변호사회관을 찾기 쉽지 않다. 인구 50만의 도시의 전모는 늦은 밤 만찬회 높은 빌딩에서 보았다.
우츠노미야 법원 앞에서 낯익은 다카키 변호사가 마중을 나왔다. 요네다 변호사도 보인다. 시간 상 먼저 지방법원의 형사재판을 보았다.(다카키,요네다 변호사 동행) 피고인이 한 명이라 방청석은 그의 가족들이 전부이다. 높은 단상에 판사(이 날은 사법연수원 출신이 아닌 특임판사가 진행한다. 원래는 일반판사가 진행하는 형사재판 방청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시간상 불가능하였다)가 그 바로 앞에 서기가 앉고, 좌측에 검사(역시 특임검사이다)가 앉고 오른쪽은 변호사(국선)이다. 두 명의 경찰(교도관인지 잘 모르겠다)의 호위 하에 사복 차림의 피고인이 서서 재판을 받는다. 검사와 변호사, 판사가 번갈아 피고인에게 질문한다. 검사와 변호사가 가지고 있는 기록이 우리와 다르게 편철되어 있지 않은 노트식이다. 변호사가 변론 도중 가끔 팔짱을 낀다. 문화의 차이겠지. 피고인과 증인으로 나온 피고인을 아는 사람의 답변이 매우 깔끔하다. 즉문에 미리 정리된 듯한 즉답을 또렷히 한다. 되묻거나 설명을 부가하지 않는다. 우리와의 차이를 느꼈다. 나중에 설명을 통하여 알았지만 여성 속옷을 많이 훔친 사건이다. 피고인은 엄청난 스트레스 때문에 한 행동이라 변명하지만 수긍할 수 없다는 법원의 분위기이다. 구속된 상태에서 재판이 진행되고 구형인지 모르지만 피해자들 변상 여부를 고려하여 1년 6월 정도의 실형 얘기가 있었다. 우리와 양형기준이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부분도 앞으로 교류회를 통하여 이해해야 할 것이다.(법원 방청 부분은 조진규 변호사가 자세히 정리하기로 하였다)
법원장 면담은 사정상 되지 않았고, 대신 법원 직원이 두툼한 자료집을 건넨다. 이윽고 버스로 토치키현변호사회관으로 이동한다. 주차장이 딸린 작은 2층집이다. 먼저 토치키현변호사회가 자료집과 함께 작은 다과를 건네준다. 40여 페이지의 자료집에는 내용이 모두 번역이 되어 있다. 지난 4월 시찰단보고서는 21 페이지다. 그 때 대전지방변호사회는 20 페이지의 자료집을 준비했고, 우리는 이번 간담회보고서를 작성하여 보내 줄 예정이다. 간담회로 들어가 보자.
대전의 12명 변호사(가이드 통역)와 토치키현 변호사 16명과 통역(일본 거주 한국인으로 토치키현 법정 통역을 담당한다)이 있다. 토치키현의 경우 참석자 중 여성이 7명이다.(대전 1명)(정확한 명단은 자료집에 나와 있다.) 나는 참석자 인원과 이름을 정확히 기록하지 않았다.(토치키현 보고서에는 이런 부분이 정확히 기록되어 있다)
토치키변호사 회장이 먼저 인사말은 한다.(토치키변호사회 회장 선출은 형식은 직선이나, 1명이 출마하는 사실상의 추천제로 순번으로 한다는 설명을 들었다. 신임 회장은 이번에 새로 당선된 다지마 변호사이고 임기는 1년이다)(신자유주의 세계경제와 규제완화, 법률시장 개방과 변호사 시장의 어려움, 배심제 도입에 관한 언급이다) 이어 정교순 부회장이 김형태 회장님의 소식을 전하고 대신 인사말은 한다. 시간상 식순에 나와 있는 토치키현변호사회 활동 개요는 자료집으로 대체하지만 토치키현변호사회의 주요한 활동인 위원회 활동보고가 이어진다.(각종 위원회 활동의 활성화는 대전변호사회와 많이 다른 부분이다. 그 이유를 아는 것도 향후의 과제이다) 먼저 인권공해위원회다. 자료집에 보면 신규회원은 의무가입해야 하고 60여명이 재적하나 그 활동이 강제적이 아니라서 명의상의 회원도 있다는 문제지적이다. 형무소 재감자 사건, 시설입소 어린이 학대 문제, 닛코 지구 사슴에 의한 생태계 손상 문제, 성희롱 규정 검토 등의 활동이 거론된다. 대전측의 질문으로 최근 한국에 보도된 토치키현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 무죄판결과 토치키현 변호사와의 관련, 국가기관으로서의 인권위원회 존부 및 한국의 인권위원회 활동 소개, 인권위원회 활동에 대한 감명과 인권위원회의 권고의 구속력 등이 있었다.
다음은 수사단계의 변호인 역할과 관련된 대전측의 질문에 대한 형사변호운영센터의 설명이다. 자료집에 의하면 체포전치주의로 수사 단계 구속기간은 최장 23일이다. 2006년 들어 피의자 국선제도가 도입되고, 취조 절차에 변호인이 입회할 수 없다. 체포에 관한 불복방법이 없다.(우리법상 영장심사제도가 없다는 것인가) "재판관은 대부분 검찰관이 말하는 대로 한다" "부인할 경우 변호인 외 다른 사람과의 면회가 금지된다" "인질 사법이다. 인권침해적인 사법으로 한국과 비교하면 모든 분야에서 뒤떨어 진다"라는 표현이 자료집에 나온다. 이 부분은 향후 토치키현변호사회가 대전측에 좀 더 자세한 현황을 알고 싶어할 것 같다.
다음은 범죄피해자 대책위원회의 보고이다. 드문 예지만 검사 출신 변호사의 발표이다. 2008년 도입된 범죄피해자의 형사소송절차에의 참여제도의 준비를 위하여 25명이 모여 법정에 익숙하지 않은 피해자나 유족들을 돕는 일을 한다. 이 부분을 위한 국선에 의한 대리변호사제도가 있다. 우리에게는 없는 변호사구조제도이다. 대전측의 질문으로 검사 출신으로서의 변호사 활동상의 장점에 대하여 이상의 활동 전반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답변하였다.
다음은 변호사업무개혁위원회의 보고이다.(위원 44명 8개 부회가 있다) 사법연수생의 취직문제, 시민에 대한 변호사 홍보 문제, 중소기업 지원활동, 시민 무료법률상담 등을 한다. 토치키현의 경우 매년 10% 정도 변호사수가 증가한다. 변호사 업무확대가 필요하고 일변련 차원의 전문변호사제도를 검토하고 있으나 토치키현의 경우 대형화와 전문화에 대하여 부정적이다. 참고로 토치키현의 경우 1인 변호사가 다수이고, 4인 합동이 가장 크다. 유료상담이 원칙이고, 시청사에서의 무료상담도 한다.
다음은 일본 배심재판의 현황 질문에 대한 개정형사소송법등 대응 PT활동에 대한 보고이다. 최근 일련의 일본 형사소송법 개정(배심제 도입, 범죄피해자 형사재판 참여, 배상명령제도)과 관련하여 PT를 구성하여 활동한다. 모의재판까지 하였다. 배심제와 관련하여 주요사건을 대상으로 재판관 3명과 배심원 6명이 등등한 권한으로 다수결로 유,무죄 여부와 양형을 판단한다. 법 시행 후 5개월 동안 예상과 달리 적은 12건 배심재판 기소에 그쳤는데, 그 이유는 피의자국선변호사의 활동성과와 검찰관의 무리한 기소자제이다. 배심재판의 평가로는 애초 증거개시 제도의 도입, 무죄판결이 두려울 정도의 검찰관에 의한 소송지휘와의 결별실무라는 입장의 찬성론과 비전문가가 재판을 할 수 없고, 일반 시민이 배심원 참여의지 부족, 배심원을 배려한 원칙 3일 안의 졸속 재판 우려라는 입장의 반대론이 있었고, 일정 정도 진행된 현재 평가는 검찰관 구형의 8할 정도의 형량이 내려지고, 법정에서 피해자의 피해 호소력이 더 먹히는 실정이다. 배심재판의 이러한 문제를 검토한 후 향후 3년 후 재검토하기로 하였다. 대전측의 질문으로 배심재판에 피해자가 참여하였는지 여부에 대하여 드문 예이지만 일부 있었다는 답변, 지금까지 배심재판에서 무죄를 다투는 사건은 없었다는 답변이 있었다.
다음은 파산관재인 활동의 실무상의 어려움과 보수 지급 절차에 대한 질문에 대하여 질문을 너무 포괄적으로 하여(다음에는 고쳐야 할 사안이다) 일본법상 도산절차 전부에 대한 답변이 자료에 나와 있다. 양해를 구하여 질문을 현장에서 수정하여 한 결과 보수 지급절차와 관련하여 법원과 담당 변호사가 협의하는 절차는 없다는 답변이 왔다. 이 부분 자료를 준비한 토치키 변호사님께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
마지막 질문은 일본변호사의 일과에 대한 것이나, 자료도 대체하기로 하였다.
신참 변호사 2인의 하루일과가 자료집에 있는데, 아침 8시 30분 내지 9시에 출근하여 평균 9시에 퇴근한다. 주말 업무도 있는 경우가 있다. 점심은 도시락으로 해결하는 경우도 많다. 맛있는 식사,골프,하이킹,영화감상,쇼핑,집안일 등이 휴일의 표정이다. 하루 종일 일하고 짧은 주일을 보낸다는 느낌이다.(자세한 정리는 이연숙 변호사가 담당)
2시간을 넘기고 더 질문을 하고 싶었지만 시간은 예정되어 있다. 우츠노미야 시내가 보이는 레스토랑에 대전측 변호사가 전망을 볼 수 있도록 자리를 배치하였다. 완벽한 통역이 가능한 3인과 중급 일본어가 가능한 대화인데, 어떤 얘기들이 오갔는지 알 수 없다.(참석자 수와 명단을 확인하지 못하였다)(자세한 정리는 이주형 변호사가 담당) 요네다 변호사님의 우범선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술이 돌고, 선물을 주고 받고, 닛꼬 관광을 위하여 병목을 피하러 키누가와로 버스이동한다.(8명이 직접 차를 몰거나 버스에 동행하여 닛꼬 인근 키누가와로 이동한다고 자료집에 나와 있고 정확한 명단을 확인하지 못하였다.)
키누카와 호텔은 산중이다. 산세는 험하나 가을은 우리를 닮아 있다. 호텔을 급하게 옮긴 덕분에 제대로 된 온천을 경험하고 피로에 지쳤지만 기분 좋은 밤이다. 몇 분은 한 방에 모여 우리 식의 잔치가 밤늦게 이어졌다.
8.31(토)
다음날 5시 기상 및 출발이다. 병목을 우려한 토치키현변호사회의 배려에 아침 도시락이 더해진다. 닛꼬에서 통역 하나가타(한국인)씨를 태우고 동조궁을 보기 전 중선호를 지나 용의 머리와 꼬리로 비유하는 큰 폭포를 본다. 이른 아침 추위가 있다. 토치키 변호사님들도 몇 년 만에 오는 장소란다. 화산 지형의 2,300미터급 높은 산에서 내려오는 칼데라호와 인근 중선사(관계자의 설명이 이어진다), 여름 외무성이라는 별칭의 유럽 대사관 여름 휴양단지에서 근대 일본의 단면을 보았다. 곡예운전길을 돌고 돌아 도쿠가와 사당인 동조궁, 인근 모찌 가게에서 세심한 배려를 확인한다. 동조궁까지 왔던 조선통신사의 흔적이 본다. 동조궁 별관 천장의 용 그림과 용 울음소리 이야기의 신비감에 대하여 회의적이다. 신앙은 만국공통어이기도 하지만 고유의 경험이 없으면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점심은 프랑스식 식당에서 와인을 마신다. 거의 막히는 길 없이 다시 우츠노미야 시내로 오던 중 대전 일행은 분리하여 외곽 호텔에 짐을 풀고 목욕을 한다. 잠시 피로를 푼 덕에 새벽 여행의 차가운 몸을 쉬게 하고 석별의 정을 나누러 시내 일식집으로 이동한다. 종업원이 요리를 설명하고, 맥주와 일본 술, 토치키현의 두부를 먹으면서 서로를 느낀다. 건강한 80대 변호사님이 참석해 주셨고, 마지막 다카끼 변호사님은 실질적인 교류를 제안한다. 그 말을 수첩에 적었다. 2차는 시내 칵테일 집이다. 취하지 않는 집이다. 택시로 호텔로 돌아올 때의 거리인사에는 회자정리가 묻어 있다. 나는 일찍 잠들고 그 날 반가운 우리식 잔치에 대하여는 모르겠다.(이 날 자세한 정리는 최락구 변호사)
9.1(일)
푹 자서 기분이 좋은 나는 호텔 인근을 산보하고, 호텔식 아침을 먹고 9시 동경으로 출발한다. 가는 도중 휴게소에 처음 들렀다. 사이타마 시내에서 월드컵 경기장을 보고 복잡한 동경으로 간다. 고속화된 도로이거나 고가화된 도로를 이용하여 신호등 없이 먼저 시내 중심 황거로 간다. 해자와 정원의 소나무를 보고, 안경 다리에서 기념사진을 찍는다. 대전보다 더운 날씨. 마라톤과 자전거가 많은 일요일의 동경에서 책 마츠리(축제)를 보고, 강에서 건져 올린 관음상 얘기를 가진 서민들의 비원이 있다는 아사쿠사지 가지 전 김치가 반가운 구기부페에서 점심을 먹고, 그 냄새가 걱정되는 아사쿠사지로 가니 입구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음식과 소품가게 앞에 붐빈다. 동경의 일요일이 소비되는 그 곳에는 외국인들도 많다. 복잡한 절에서는 오래 머물기 힘들다. 빨리 버스를 타고 동경만 매립 신도시 오다이바에서 뜻밖에 요사꼬이 마츠리를 구경한다. 축제는 일본문화를 이해하는 키워드의 하나이다. 압축 자유의 여신상 건너 동경에 도쿄타워가 불을 밝히는 밤이 오고 있다. 마지막 상품은 신동경청사 전망대. 밤이라 광활함을 느낄 수 없는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전망대 안 지도그림을 보는데, 그 안에 에도와 어제 본 동조궁 뒷산 남체산이 일렬로 그려져 있다. 비 오는 시부야에서 회전초밥을 맥주와 같이 급하게 먹고, 한 잔을 위하여 신주쿠 이자카야를 찾는다. 취한 젊은 사람들의 일요일을 보면서 양극화 오늘의 일본을 느끼는 것은 과장일까. 마지막 날 제법 독한 술을 마셨지만 다들 취하지 않는다. 택시로 호텔로 가 짐을 풀고 취하지 않은 야간전투를 위하여 술집을 물어 빗속을 가서 마지막 선술집에서 2차를 하고, 일부는 호텔에서 3차를 한 것 같다.
9.2(월)
아침 7시에 일어난 나는 호텔 주위에서 츄리닝 차림으로 출근하는 동경과 마주친다. 1시간 빠른 동경은 서울의 6시이다. 정돈된 강둑에서 한국의 4대강을 생각하다가 좀 늦게 호텔에서 아침을 먹고 버스로 나리타 인근 쇼핑센타로 이동한다. 몇 권의 책을 사고 인근 나리타산으로 걸어갔다. 인근에서 높은 곳이라 절이 있고, 죽은 자를 위한 공간인 일본의 절에서 엄숙해진다. 라면은 궁금증을 주지만 혹시나가 역시나다. 빗 속에서 다시 나리타공항으로. 북경의 폭설 소식을 듣고 이륙한 월요일 한산한 비행기 창 아래 동경이 보인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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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죄송합니다. 10.30(금)부터 11.2(월)까지의 일정입니다.
한동안 뵙기가 어렵더니... 토치키현을 다녀오셨군요. 교류기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