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록 [소설 심문모전]
제3부 함안댁(제52회)
6. 중근이 찾다(4)
(처음부터 읽지 못한 분을 위한 재수록입니다.)
그런데 그날 중근이가 자기한테 붙들린 것은 빨갱이 앞잡이거나 간첩 끄나풀로 보이는 아이를 찾는다고 첩보해 준 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이는 예닐곱 정도로 돼 보이는 어린아이이기는 하지만 필시 그 어린 아이를 이용한 간첩이나 빨갱이가 있을 테니까 그 아이를 잡아야 한다고 한 것이다.
물론 처음 그 첩보를 접했을 때는 공연한 이야기로 들었다고 했다. 아무리 간첩들이 설치기로서니 예닐곱 살짜리 어린 아이를 이용하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첩보해준 이가 사십대 초반의 남자였는데 평안도 피란민이었다.
그는 양키시장에서 군복장사를 하는 이였다.
그가 어느 날 자기 가게 가까운데서 자리 잡고 구두를 닦는 아이들이 있는 곳에서 구두를 닦이고 있었다.
그는 구두통 위에 구둣발을 올려 구두닦이에게 맡겨 놓은 채 동그란 나무 의자에 엉덩이를 올려놓고 신문을 펼쳐들고 읽고 있었다.
그때 그들 곁에서 어린 소년이 휘파람을 불고 있었다.
껌이랑 드롭스 같은 것들을 담은 이른바 껌판이라고 부르는 납작한 매대의 멜빵을 목에 걸치고 그 판때기는 앞가슴에 두 손으로 받쳐 든 채.
그 남자가 보기에 나이는 예닐곱 정도밖에 안 되어 보이는 아주 어린 아이였다.
그는 오가는 사람들이 들으랍시고 휘파람을 불면서 장사를 하는 것이었다.
별 희한한 아이로구나 하면서 그것도 장사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구두 닦는 형뻘 되는 소년들이
“걔는 노래도 잘해요. 목청이 끝내줘요.”
“목소리가 꼭 지지바[계집애] 같아서 꾀꼬리가 따로 없던데예.”
노래 부르고 휘파람을 불면서 장사하니까 사람들이 잘 사 주더라고요-했다.
정말 어린 것이 신통하게 휘파람을 아주 선명하게 소리를 내어 불렀다.
그런데 그 평안도 남자는 그 껌팔이 아이의 휘파람 노래 소리에 깜짝 놀랐다는 것이다. 그가 부는 가락은 ‘장백산 줄기줄기 피어린 자국’으로 시작되는 김일성 찬가였던 것이다.
물론 이 노래를 모르는 피란민도 없을 것이고, 대구에서 조금만 벗어나서 인공 치하에 시달렸던 곳에서 학교 다녔던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배웠던 노래였으므로 그 아이가 거기서 그렇게 불렀어도 심상하게 여길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곳은 다른 곳도 아닌 대구 아닌가?
대구는 인공 치하에 있은 적도 없으므로 아이들이 인민군들에게 그 노래를 배웠을 리 없다. 피란민 고아인가보다 싶었지만 피란민도 고향에서나 불렀지 피란 내려오면서부터는 그 노래는 스스로 알아서 금기시해서 누가 부르라고 해도 눈을 흘기고 부르지 않았고 아이들에게도 입단속을 철저히 해서 못하게 했었다. 그러므로 대구 시내에서 그런 노래를 들을 수 없는 것은 당연했다. 그가 알기로는 대구 시내에서 그 노래를 아는 아이들도 없었다.
그래서 평안도 남자가 그 아이에게
“느거 고향이 어디메냐?” 하고 물었다고 했다.
그랬더니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너 어디서리 피란 왔네?”
하고 다시 물었으나 그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너 방금 휘파람으로 부른 노래 누구레 가르테 주었네?”
하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 아이가 얼굴빛이 하얘지며 돌아서서 다른 곳으로 바삐 가버리더라는 것이다.
“그기사 김일성 노래 아이니껴? 뺄갱이들이 부르던 노랜데요.”
하고 구두 닦던 소년이 아는 체 했다.
“그렇티 그렇티. 그런디 자네는 우때 그 노래를 알디비?”
“하, 우리 고향이 예천이시더. 예천 인공 시절 그 빨갱이 여전사한테서 안 배웠십니꺼? 그런데 인자 그 새끼 그 빨갱이 노래를 겁대가리 없이 여게서 불렀으꼬?”
하면서도 더 관심이 없다는 듯이 구두의 마지막 광을 내고 구두통을 두들겼다. 끝냈다는 소리였다.
평안도 남자는 일어서서 사라진 아이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주변을 둘러보았으나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 며칠 뒤, 시장 끝자락에 있는 송죽극장에서 서부 영화를 한 편 보겠다고 표 파는 창구에 다가가는데 껌판을 자기 앞에 쑥 내미는 아이가 있었다.
“아저씨, 아까다마도 있심더.” 하며 소근댔다.
양담배도 판다는 것이었다. ‘아까다마’란 당시 미군에게 지급되는 담배 중 가장 흔하게 보급된 ‘럭키스트라이크’의 별명이었다. 껍데기 겉면의 브랜드 디자인이 마치 일장기처럼 가운데 빨간 동그라미가 들어앉아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이 담배가 있다는 말은 곧 양담배가 있다는 말인 것이다.
그래서 돌아서보니 바로 그 휘파람 소년이었다.
평안도 남자는 다짜고짜 그 소년의 한 손의 손목을 꽉 잡았다.
그의 껌판에는 물론 담배가 없었다.
담배는 그때나 지금이나 국가 전매 물품으로 지정한 담배 가게에서만 팔도록 되어 있다. 그러므로 담배를 아무나 팔다가는 압수될 뿐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처벌 대상이었다.
더구나 미군 피엑스에서 부정한 루트를 통하여 흘러나왔을 것이 분명한 양담배를 거래한다는 것은 더더욱 가중 처벌 대상이었다. 그러므로 조심스럽게 암거래하는 것이었다.
아이는 일단 자기 매대를 남자에게 붙잡히지 않은 손으로 탁 접어 덮었다. 매대 판대기 곧 껌판은 경첩으로 이은 두 짝으로 되어 있어서 접었다 폈다 하면서 여닫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는 아이는 붙잡힌 손을 그 남자의 손아귀에서 빼려고 용을 섰다.
그 피란민 남자는 무릎을 오그려 키를 그 아이만큼 줄여서 눈을 마주대다시피 하고서
“아까다마가 어데 있네?”
하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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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주말[토&일]마다 2회분씩 이틀간 게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