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검(劍) 대(對) 검(劍) 뭉글…뭉글… 사방으로 음침한 기류(氣流)가 섬뜩하게 감돌고 있었다. 캄캄한 암흑(暗黑) 속에 존재하는 것은 노랗고, 붉고, 푸르스름한 삼색(三色)의 구슬이 뿜어내는 빛과 기괴무비한 기류의 흔들림 뿐이다. 삼색의 빛을 먹은 기류는 흡사 악마의 춤사위마냥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이곳은 온통 돌로 이뤄진 동굴(洞窟) 안이었다. 동굴 중앙에는 두 개의 연못이 자리해 있었다. 흐늘흐늘 피어오르는 기류는 두 개의 연못에서부터 비롯되고 있었다. 연못의 물은 흡사 피를 받아놓은 것처럼 붉었다. 혈지(血池)! 피의 연못이라 부르는게 더 나을 정도였다. 그런데 두 개의 언못 중앙에 두둥실 떠 있는 것은 놀랍게도 발가벗은 여체(女體)가 아닌가? 두 명의 나체여인이 죽은 듯이 누워 있었다. 두 여인들의 미모는 눈이 홱 돌아 버릴 정도로 빼어났다. 그녀들은 이십 세를 전후한 젊은 여인들이었다. 봉긋이 솟은 젖가슴의 연분홍빛 젖꼭지로 미루어보아 아직 남자의 손길이 닿지 않은 처녀(處女)의 몸이 분명했다. 그녀들은 일체의 미동도 없이 시종 그 형태처럼 굳은 듯해 보였다. 아아! 두 개의 혈지(血池)와 두 명의 나체여인(裸體女人), 거기에 흐늘거리는 사이한 기류(氣流)와 으스스한 삼색광채(三色光彩), 대체 이곳이 어디란 말인가? 지옥(地獄)의 한 부분인가? 그런데, 바로 그 두 개의 연못을 좌우로 하고 한 명의 은발노인(銀髮老人)이 발가벗은 채로 앉아 있었다. 그 노인은 마치 은(銀)으로 빚어낸 동상인 양 온몸이 은색이었다. 머리카락은 물론 피부까지 은색이었고 심지어 입술의 색갈로 은빛이 파르라니 배어 있었는데 그 입술 위로 유난히 돋보이는 것은 콩알만한 사마귀였다. 육순의 나이에 입술 위에 사마귀를 지닌 노인은 세상에 흔하다. 하지만 이곳 홍하곡 안 은밀한 연공실 안에 있는 노인은 이 세상에 단 한사람뿐이다. -신검황(神劍皇) 자운량(紫雲凉)! 천하제일검의 명예를 위해 평생을 걸어온 신검황 자운량이 아니고 또 누구겠는가? 헌데, 괴이게도 신검황이 호흡할 때마다 동굴 안에 감도는 기괴무비한 기류가 그의 코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그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점차 시간이 흘러갔다. 츠으으으… 그러자, 흐늘거리는 기류가 점자 엷어졌다. 그와 아울러 동굴 사방에 박힌 삼색의 구슬들이 더욱 영롱한 빛을 뿌리기 시작했다. 그 영롱한 빛을 받은 신검황의 몸이 실로 기괴하게 빛났다. 한 쪽은 노랗고, 다른 한 쪽은 파랗다가 다시 붉어지는 등 삼색 빛이 그의 몸은 구렁이처럼 휘감았다가 사라진다. 그 모습은 흡사 유부(幽府)를 떠도는 망량과도 같았다. 또 다시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동굴 안을 감돌던 기류가 거의 사라지고 그의 얼굴은 칠면조(七面鳥)의 얼굴처럼 시시각각으로 변했다. 노랬다가, 붉어지고, 다시 파래지길 수차례 반복한 것이다. 그러더니 일순, 버--언--쩍--! 신검황의 전신으로부터 눈부신 은광(銀光)이 폭출되었다. 그와 동시 그의 눈이 번쩍 뜨여졌다. 쩌정- 그의 두 눈으로부터 실로 무시무시한 은빛 번갯불이 한 자나 내뻗쳤다. [크흐흐… 성공이다! 크흐흐흐…] 실로 전신을 갈갈이 찢을 듯한 괴소가 석실을 뒤흔들었다. 그의 두 눈에는 음흉한 흡족감이 넘실거렸다. 그것은 마치 들판의 야수가 배불리 먹이를 먹어치운 후 뿜어내는 포만감과도 같은 흡족감이었다. [크흐흐… 백은살혼공(魄銀殺魂功)의 무궁한 힘이 체내에 광란한다. 이젠 그 누구도 노부를 죽일 수 없다.] 신검황의 흡족한 괴소는 한동안 동굴 안을 뒤흔들었다. [이제 곧 노부의 몸은 금강불괴지체를 이룬다. 그 어떤 신검으로도 벨 수 없는 완벽한 금강지체! 만독이 불침하고 수화가 침범하지 않으며, 더위와 추위를 모르는 금강의 신체를 이루는 것이다. 흐흐흐!] 번쩍! 그의 눈에서 연신 은광이 뱀의 혓바닥인 양 스물스물 피어났다. -백은살혼공(魄銀殺魂功)! 이 신공은 일종의 호신기공(護身奇功)이다. 외가무공(外家武功) 중 가히 백미(白眉)라 불리울 정도로 백은살혼공을 익히면 신체는 물론 오장육부까지 철석같이 단단하게 변한다. 그 어떤 외부의 충격에도 견뎌내는 금강불괴지체(金剛不壞之體)가 된다. [뿐만 아니다. 사백사십이 명의 계집들에게서 뽑은 음정(陰精)을 체내 단전에 응축(凝縮)시켰다. 앞으로 두 명의 계집만 더 흡정(吸精)하면 … 천하에서 가장 극음한 힘을 지니게 된 것이다.] 천인공노(天人共怒)할 짓이 아닐 수 없다. 사백사십이 명의 여인들 체내의 음기를 뽑아내 자신의 무공연마에 이용하다니… 정녕 인두겁을 쓴 인간이 할 짓이란 말인가? [크크크…노부의 일장(一掌)에 대지가 얼고, 노부의 일검(一劍)에 하늘이 꽁꽁 얼게 될 것이다. 음정을 마음대로 다스리고, 백은살혼공으로 온몸을 금강지체로 만든다면 검도 사상 가장 극냉(極冷)하다는 냉혼검법(冷魂劍法)을 펼칠 수 있게 된다.] 신검황의 은빛 얼굴 가득 득의의 미소가 번졌다. 헌데 지금 무엇이라 했는가? 정녕 냉혼검법이라 했는가? -냉혼검법(冷魂劍法)! 천하에서 가장 극음한 절대의 무상검법(無上劍法)이다. 단 일초식(一招式)의 검법(劍法)이지만 그 안에는 모든 검류(劍流)의 흐름이 어려 있다고 전한다. 하지만 그것을 익힌다는 것은 꿈이다. 냉혼검법의 연공은 모두 십이 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 일 단계, 일 단계 그 연공의 수위를 높일수록 체내의 음기가 충만되어 종국에 가서는 온몸이 음기투성이로 변한다. 하지만 인간의 몸은 음양(陰陽)의 도(道)가 어려 있는 소우주(小宇宙)라 하였다. 인체의 칠할을 차지하고 있는 혈맥만 하더라도 음맥(陰脈)이 있고, 양맥(陽脈)이 따로 흐른다. 심지어 오장육부(五臟六腑)에도 음과 양이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냉혼검법을 익히기 위해선 체내의 조화를 이루고 있는 음양의 균형을 깨고 오직 음으로만 생명을 유지하여야 하는데 그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음양의 균형이 깨진다는 것은 곧 죽음이다. 하나 만약 누군가가 십이 단계까지 연공하여 온몸을 음기 덩어리로 만들어 낸다면 그가 펼치는 냉혼신검에 주위 십여 장을 얼음천지로 만들 수 있다. 가히 한 줌 진기로 천하를 얼음의 세계로 만드는 혹독극랄한 마검법이 바로 냉혼검법인 것이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론상의 검법일 뿐 피와 살로 이뤄진 인간이 펼칠 수 없는 검법이다. 냉혼검법의 검론을 만든 사람은 대자연천력을 지닌 용왕(龍王)이었으니… [흐흐흐…꿈의 검법이라고? 웃기는 소리 하지 마라! 세상은 곧 노부에 의해 냉혼검법이 꿈이 아닌 현실임을 알게될 것이다.] 신검황은 입술 꼬리를 말아올렸다 . 그에 따라 입술 위의 사마귀가 춤을 추었다. [계집들의 음정을 뽑아 온몸을 음기 덩어리로 만들었다.] 그에게 희생된 여인들의 해골이 그것을 증명한다. [그러나 인간의 몸 전체를 음기로 화할 수는 없다. 양(陽)의 조화가 없으면 음기에 의해 온몸이 바스라든다. 그것을 막기 위해 난 백은살혼공(魄銀殺魂功)을 익혀 온몸은 금강불괴지체로 만들었다. 절대 부셔지지 않는 신(神)의 몸, 체내에 휘도는 음기조차 바스러뜨릴 수 없는 몸이 된 것이다.] 일순간 신검황은 피빛 연못에 두둥실 떠 있는 두 명의 나체여인들을 바라보았다. [이제 마지막 두 계집의 몸에서 음정을 뽑아내면 모든 것이 끝난다. 냉혼검법을 펼칠 수 있는 음기를 지니게 된다.] 이제 모든 것이 완연히 드러났다. 신검황은 인간은 절대 익힐 수 없는 냉혼검법에 도전(挑戰)하기 위해 악마(惡魔)가 된 것이다. 그는 우선 백은살혼공으로 자신의 몸을 철석보다 더 단단한 금강지체로 만들었다. 동시에 여인의 몸에서 음정을 뽑아내 체내에 응축시켰다. 음정의 도가 깊어져 끝내 체내의 음양균형이 깨질 때를 대비해 백은살혼공을 극성까지 익힌 것이다. 하나 그 모든 것은 단지 준비에 지나지 않았다. 꿈의 검법이라는 냉혼검법을 펼치기 위한 준비에… [크크크… 두 계집의 음정을 취하면 냉혼검법을 펼칠 수 있는 십이단계에 이른다. 검신(劍神)! 강호 무림사상 그 누구도 감히 불리워지지 못한 검신이 되는 것이다.] -검신(劍神)! 전에도 없고, 후에도 없을 검의 하늘! 검신이 되기 위해 결국 신검황은 인성(人性)마저 버렸단 말인가? 온몸을 인간도 아닌 음기의 괴물로 만들면서까지 검신이 되고자 했단 말인가? 대체 인간의 욕망은 그 끝이 어디인가… 신검황은 몸을 일으켜 오른 쪽 혈지로 신형을 돌렸다. 그곳 혈지에는 어림잡아도 이십 세를 갓 넘은 듯한 여인이 발가벗은 채 떠 있었다. [크크크… 네년부터 시작하겠다.] 신검황은 은빛 안광을 폭사해낸 후 손가락을 가볍게 튕겼다. 핑- 은광의 번갯불이 중지 끝에서 폭사되어 나체여인의 혈도를 풀었다. 나체여인은 차츰 제정신이 돌아오는 듯 낮은 신음을 발했다. [으음…] 잠시 후 그녀는 눈을 떴다. 허나 그녀의 눈동자는 몽유병에 걸린 환자처럼 몽롱했다. 동공의 초점이 파도처럼 흔들거리고 있었다. 자신의 죽음이 목전에 있거늘 나체 여인은 멍하니 천정만 바라볼 뿐이었다. 신검황은 여인을 바라보며 음흉스런 괴소를 흘렸다. [크크크…영광으로 알아라. 강호 무림에 영원불멸의 검신의 탄생을 위해 희생되었다는 것을…] 신검황은 음흉맞게 웃으며 다가갔다. 이어 그는 나체 여인을 향해 오른 손을 쭈욱 뻗었다. 슈아앙… 찰라 가공할 흡인력(吸引力)에 의해 붉은 물살이 갈라지며 두둥실 떠 있던 나체 여인의 몸이 연못가로 바싹 다가왔다. 신검황은 혈지가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이어 여인의 검은 비단 같은 머리칼을 헤치며 그녀의 천령개(天靈蓋)에 손바닥을 포개었다. 그 때까지도 여인은 멍청히 천정만 바라볼 뿐이었다. 신검황의 입가에 음충한 미소가 떠올랐다. [크크크…이 계집이 사백사십삼 명째… 이 계집의 음정을 취하고 남은 계집의 음정마저 취하면 노부는 냉혼검법을 펼칠 수 있는 음정을 모두 갖추게 된다.] 마음이 들뜬 탓인지 신검황은 길게 심호흡을 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자운량! 꿈에서 깨라!] 꽈우우우우… 차디찬 냉갈과 함께 가부좌를 틀고 있는 신검황 등줄기의 사혈(死穴) 명문혈(命門穴)을 향해 가공할 장경(掌勁)이 해일처럼 밀려들었다. 명문혈은 조금의 힘만 가해도 죽음으로 이르는 사혈 중 사혈이다. 비록 신검황이 백은살혼공으로 온몸을 금강불괴지체로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채 완성된 상태가 아니다. 그곳에 일장을 맞으면 즉사하지는 않는다 해도 적어도 막중한 중상을 입게 된다. 더욱이 지금은 대공을 눈 앞에 두고 있는 상태가 아닌가? [왠 놈이냐!] 별수 없이 신검황은 나체여인의 머리에서 손을 떼며 몸을 피해야만 했다. 동시에 그는 자신을 향해 닥쳐오는 장경에 일장을 후려쳤다. 펑! 신검황은 앉은 채로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신검황의 안색이 대변했다. 그는 급히 자신을 암습(暗襲)한 자를 바라보았다. 찰라지간 신검황의 눈동자에 경악의 물결이 출렁였다. [네놈은…!] 신검황 앞에 우뚝 서 있는 흑의인은 바로 단사영이었다. [신검황 자운량! 설마 나의 얼굴을 잊지는 않았겠지?] 단사영의 추상같은 일갈이 떨어졌다. 신검황의 입에서 나직한 웅얼거림이 흘러나온 것도 그 때였다. [네놈은 단사영!] [자운량, 오년 전 혈채를 받기 위해 왔다. 목을 늘어뜨려라!] 신검황은 이를 부드득 갈았다. [애송이 놈, 웃기지 마라. 오년 전 네놈을 놓쳤지만 오늘은 결코 놓치지 않겠다.] 신검황의 안색이 음산하게 돌변했다. [비록 백은살혼공을 십성밖에 터득 못했지만 그것만으로도 그 누구도 노부를 벨 수 없다. 노부는 불사신이거늘 어찌 네놈 따위에게 죽는단 말이냐! 크크크…죽을 곳을 찾아 스스로 왔구나. 단사영!] [흥! 여전히 몽상에 젖어 있구나.] 단사영은 냉랭히 코웃음을 쳤다. 이때, 신검황의 음산한 괴소가 뼈에 서릴 듯 울렸다. [으흐흐… 애송이 놈, 맛을 보아라.] 순간, 단사영 목전에서 가공할 광경이 일어났다. 화르르르…휴류륭… 신검황의 은빛 몸이 돌연 시퍼런 불길에 휩싸이는 것이 아닌가? 찰나지간 시퍼런 불길은 그의 몸 주위로 일 장까지 내뻗쳤다. 그리고 곧 뻗어진 시퍼런 불길이 뭉쳐지면서 한 자루 거대한 검(劍)의 형상을 이루기 시작했다. 그 광경에 단사영의 안색이 냉막하게 변했다. (음, 무서운 사공(邪功)이다. 더우기 진기의 힘으로 무형(無形)의 검을 만들 정도로 자운량의 검도는 극상승에 이르렀다.) 단사영은 검가(劍家)의 후예(後裔)다. 지금 신검황이 보여주고 있는 기상천외한 광경은 상승검도경인 심검(心劍)의 초입(初入) 단계이다. -무형검경(無形劍境)! 수중엔 검이 없으나 진력의 힘으로 검의 형상을 만들어내 상대를 격살하는 무형검경(無形劍境)임을 어찌 모르랴? 단사영은 경각심을 곧추세우며 내심 중얼거렸다. (놈의 경지는 오 년 전에 비해 적어도 세 배는 더욱 강해졌다. 아마도 지난 오 년 동안 순음지정을 흡수하여 내공이 극증했기 때문일 것이다. 조심하지 않으면 내가 당한다.) 일순 단사영은 등에 짊어멘 여섯 자루의 검 가운데서 하나를 뽑아 들었다. 쨍- 쇳소리와 함께 칙칙한 철기(鐵氣)가 검신에서 발출되자 문득 신검황의 얼굴에 어이없는 웃음이 번졌다. [크크크…그깟 녹슬은 철검으로 노부를 상대할 수 있다고 보느냐?] 누가 봐도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한쪽은 상승검도경인 무형검경을 떨치고 있고 다른 한쪽은 녹슬은 철검으로 상대하려 하니 그야말로 스스로 폭탄을 쥐고 불길 속에 뛰어드는 꼴이 아니고 또 무엇이겠는가? 하지만 단사영은 태연했다. [네놈은 철검에 피조차 묻힐 자격이 없는 자다.] [크크크! 누가 피를 쏟을지 볼까?] 신검황의 음산무비한 일갈이 괴후처럼 터져올랐다. 그의 양 손바닥으로부터 섬득한 시퍼런 불줄기가 검기로 화해 격출되었다. 쩌정-! 찰라 단사영은 부지중에 일검을 그었다. [벽력도전(霹靂倒轉)!] 아아! 철혈검제 단천학의 성명검법인 철혈대운검법(鐵血大雲劍法)이 전개되는 순간이었다. 우르릉- 검에서 일어난 검명(劍鳴)이 흡사 우뢰와 같이 터지며 동굴을 뒤흔들었다. 뒤이어 두 사람의 검기가 허공에서 폭발했다. 꽝-! 일진굉성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단사영은 거센 충격을 느끼며 뒤로 무려 다섯 걸음이나 물러서고야 말았다. 한편, 신검황은 한 걸음 뒤로 물러선 뒤 만면에 희색을 떠올리고 있었다. [흐흐흐…철검이 반검(半劍)이 되었구나.] 과연 그러했다. 단 한 번의 격돌로 인해 단사영이 들고 있던 철검이 반이나 댕강 부러져 나간 것이다. 신검황은 득의하며 다시 서서히 손을 끌어올렸다. 화류류류… 그러자 그의 전신으로 살기등등한 청색 불길의 무형검이 다시금 피어올랐다. [애송이놈! 이번에는 네놈 몸뚱아리를 반으로 부러뜨려 주겠다!] 신검황이 버럭 대갈을 내질렀다. 이어 동굴 안은 흉흉한 빛으로 충만해졌다. 엄청난 위력의 암경이 단사영의 전신으로 덮쳐들었다. 쌔애애액-- 한편, 단사영도 지체없이 금강부동신공(金剛不動神功)을 을 극성으로 끌어올려 일신을 보호함과 동시 혈염지기(血炎之氣)을 검신에 주입시켰다. 촤라라랑… 그의 전신으로 핏빛 혈광이 한 차례 휘몰아쳤다. 피빛 혈광은 그의 전신은 물론 반검을 핏빛 검으로 바꾸어 버렸다. [대광무혼(大光武魂)!] 철혈대운검법의 제 육초가 전개된 것이었다. 콰르르릉- 엄청난 경천동지의 굉음이 동굴을 무너뜨릴 듯 후려쳤다. 그러자 푸른 검경과 핏빛 혈광이 현란히 부딪치는 가운데 동굴에 커다란 웅덩이가 파이며 자욱이 난석과 돌가루가 날렸다. 이윽고, 분분히 날리던 난석과 돌가루가 가라앉고 두 명의 인영이 드러났다. 헌데, 그들의 상태는 완전히 막상막하의 호각지세(互角之勢)를 이룬 것이 아닌가? 그들의 얼굴에는 한결같이 경악의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단사영은 한일자로 입을 굳게 다물고 냉막하게 서 있었다. (놀랍다, 혈왕무학 중 하나인 혈염지기를 일으켰는데도 놈을 죽일 수 없다니…) 한편, 신검황은 두 눈을 휩뜨고 단사영을 멍하니 응시하고 있었다. (이럴 수가? 정녕 소문대로 놈이 혈왕의 문을 열었단 말인가? 지금의 내 실력은 오 년 전 철혈검제조차 능가한다. 그런데 그 자의 아들놈에게 동수를 이루다니…이럴 수 있단 말인가?) 그의 안색은 수시로 급변했다. (대체 저놈의 무공은 과연 얼마나 깊고 오묘하단 말인가? 도저히 추측을 불허하는구나. 하지만…) [천비살(天飛煞)!] [쌍룡개월(雙龍開月)!] 츄츄츄츄… 슈슈슈… 꽝! 우르르르…우르릉… 그들은 계속 개세무비의 절초들로 경천동지의 결투를 벌였다 . 단사영은 철혈대운검법의 모든 정수를 다 펼쳤다. 또한 신검황 역시 백은살혼공을 전신에 운용하며 자신의 성명검초인 천음살검(天陰殺劍)을 뿌려댔다. 통천가공할 대결투! 무쇠보다도 단단한 청옥석들이 갈라지고 이곳저곳에 무수히 많은 웅덩이가 패였다. 또한 분분히 날리는 난석과 돌가루는 온통 석실 안을 자욱히 메우고 있었다. 허나, 막상막하의 결전일 뿐 아무도 쉽사리 패색이 드러날 성 싶지 않았다. 이대로 계속 싸운다면 결국 양패구상을 면치 못하리라. 헌데 이때 돌연 단사영이 왼손 소맷자락을 떨치며 우렁차게 소리치는 것이 아닌가? [좋다. 신검황! 놀랄만큼 실력이 향상되었구나, 허나 이번에는 네놈도 끝장이다.] 순간 신검황의 얼굴에 칼끝같은 긴장이 감돌았다. 단사영은 분연히 오른손을 하늘로 치켜들었다. 자연 그의 수중에 쥐어진 부러진 철검이 번쩍 쳐들려졌다. [혈하(血河)의 별(星)! 천괴(天魁)의 힘이여, 혈왕의 위대함을 떨쳐라!] 찰나, 촤라라랑… 단사영의 오른 손에서 찬란한 혈광이 현란하게 내뻗쳤다. 그 빛은 삽시간에 음침한 석실을 피빛으로 밝혔다. 신검황은 웬지 그 붉은 빛을 대하자 천 근 같은 공포감을 느꼈다. 신검황은 주춤주춤 물러났다. (혈왕의 무공! 놈은 지금 혈왕의 무공을 발출하고 있다!) 단사영의 두 눈에 기묘한 신광이 번뜩였다. [후후후… 자운량, 두려우냐?] 그말에 신검황은 울화가 치밀었다. [빌어먹을…] 신검황은 어깨를 크게 들썩여 양손을 주력으로 펼쳤다. 그의 장심으로부터 무시무시한 새파란 불줄기가 격사되었다. 쩌쩡! 쩌--쩡! 석실 안은 온통 붉은 빛과 푸른 빛이 한데 어우러져 으시시한 공포를 자아냈다. 그 모습은 마치 청룡과 혈룡이 치열하게 싸우는 듯했다. 한순간 단사영이 슬쩍 오른손을 흔들어 혈광을 뻗었다. 앗-! 찰라 격사되어 오던 청광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아니!] 신검황은 대경실색했다. 단사영은 검을 비껴들었다. [혈왕의 분노가 대지를 피로 씻는다! 노왕세지(怒王洗地)!] 단사영은 지체없이 반검을 휘둘렀다. 촤라라랑… 번쩍! 허공에 수천만의 혈광이 현란하게 난무했다. 또한 그곳으로부터 뿜어나온 핏빛 검영은 흡사 우박치듯 떨어져 내리는 것이었다. 단사영의 어마어마한 검기가 자신으로 덮쳐내리자 신검황은 도저히 피할 수가 없음을 느꼈다. [백은살혼공이 온몸을 도검불침의 금강지체로 만든 이상 두려울 것이 없다! 놈, 최후다!] 다음 순간, 삽시간에 그의 전신이 은빛으로 화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더니 돌연 전신이 풍선처럼 부풀어오르고 모발이 쇠철사처럼 무섭게 곤두섰다. 동시에 그의 두 다리가 여덟 팔자(八)자도 아니고, 정(丁)도 아닌 기이한 자세로 변하며 말을 다듯 기마 자세를 취하는 게 아닌가? 게다가 전신의 모공으로부터 싸늘한 음기(陰氣)가 뻗어나오기 시작했다. 츄츄츄츄츄츄… 그 광경에 단사영은 대경했다. (아니, 저 수법은 혈왕이 언급한 바가 있는 용왕의 무예 중 하나인 냉혼검법의 기수식! 그렇다면 놈이 여인들의 몸에서 음정을 취한 까닭은 냉혼검법을 익히기 위해서…) 그렇다. 언급한바와 같이 지금 신검황이 펼치고 있는 자세는 냉혼검법의 기수식이었다. 한편, 한구석에서 숨을 죽이며 지켜보던 냉군향도 대경실색(大驚失色)했다. [앗! 저것은 냉혼검법! 어떻게 저 자가 저것을…!] 냉군향의 얼굴엔 불신(不信)의 빛이 가득했다. 믿을 수 없는 일이다. 아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용왕의 문을 열 수 있는 구운룡주(九雲龍珠)는 분명 빙백용녀 냉가려 수중에 있었다. 구운령주는 십여 년 전부터 그녀의 품을 떠나지 않았다. (구운룡주 때문에 아버님과 여러 형제들이 죽었다. 본궁에 화(禍)를 가져온 마물이지만… 언니는 복수를 다짐하며 구운룡주를 연구, 끝내 구룡비예 중 네 가지 절기를 익히지 않았던가… 그 중 하나가 바로 냉혼검법인데 어떻게 저 자가…) 파르르… 냉군향의 교구가 떨렸다. (혹시 저 자가 본궁을 배신한 악도(惡徒)? 아니다. 본궁에 닥친 참화는 십 년 전 발생했고, 신검황은 그 이전부터 강호에서 활동했다.) 냉군향은 떨리는 시선으로 신검황의 기수식을 살폈다. 그녀는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분명 냉혼검법이다. 언니가 연마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봤기 때문에 알 수 있다. 더욱이 저 자의 성취는 적어도 십성의 경지! 어떻게 이런 일이… 구운룡주를 지니고 있는 언니는 고작 삼성(三成)밖에 이루지 못했는데 저 자가 어떻게 십성의 경지까지 끌어올리 수 있었단 말인가?) 불가사의한 일이다. 냉가려가 익힌 구룡사예 가운데 냉혼검법의 구결이 있다. 냉가려는 냉혼검법을 삼성까지 익혔다. 헌데, 구운룡주도 없는 신검황이 냉혼검법의 구결을 어디서 얻었으며 십성의 수준까지 끌어올렸다는 것은 냉군향에게 크나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냉군향은 다급해졌다. (만약 저 자와 공자님이 맞부딪치면 둘다 죽는다. 한 쪽은 용왕의 무공이요, 한 쪽은 혈왕의 무공, 더욱이 두 사람 모두 미완(未完)의 무공이다.) 천오백 년 전에도 승부를 가지 못했던 사대신왕(四大神王)이다. 그 무공들이 천오백 년의 시공(時空)을 넘어 다시금 재현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완벽하게 연성치 못한 미완성의 무공을 극성까지 끌어올리고 있었으니…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냉군향은 두 사람의 격돌이 가져올 결과를 뻔히 알 수 있었다. 냉군향은 급히 핏빛 혈지(血池)에 두둥실 떠 있는 두 명의 나체여인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언니…) 그녀의 시선은 오른 쪽 혈지에 담겨져 있는 나체 여인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갓 이십을 넘긴 듯 아름다운 나신을 빛내고 있는 나체여인은 바로 빙백용녀 냉가려였다. 면사를 벗은 그녀의 진면목이 드러나 있는 것이다. (언니만 깨어났어도 어떻게 방법을 찾을 텐데…) 냉군향과 죽은 듯 혈지에 누워 있는 냉가려를 응시하며 미간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계 속 |
첫댓글
감사 합니다
기쁜 시간 되십시요..
잘 읽어 보았어요
포근한 밤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