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고마움이 모이면 정이 생기고 정이 생기면 상대방의 요청을 거절하기 어려워진다. 그러다 보니 정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간수해야 하느냐가 주요 문제로 등장한다. 특히 우리와 같이 이웃 간의 정을 중요시하는 유교 문화권에선 그 운용의 묘에 따라 덕이 될수도 악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은 우리나라가 예전부터 중요시하는 덕목이다. 서로 살뜰히 챙기고 언제 밥 한번 먹자고 말을 건네는 생활문화는 서구권에선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문화이다. 이처럼 우리의 근간을 이뤄온 정의 문화는 때로는 보배로 느껴지는 인간관계의 핵심이다.
그러나 업무에 있어서 만큼은 예외이다. 정으로 얽힌 이해관계는 위험하다. 넌지시 오고 가는 일상적인 말속에서 청탁이 스며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심지어 부정청탁이나 금품 수수를 금지하는 법률까지 생겨났다.
김영란법 공직자 등에 대한 부정 청탁 및 공직자 등의 금품 등의 수수(收受)를 금지하는 법률. 공직자 등의 공정한 직무 수행을 보장하고 공공 기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확보하는 것을 목적으로 2016년 9월28일에 시행되었다. 정식 명칭은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다. 그만큼 청렴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작은 것 하나라도 나를 이롭게 한 사람에게는 상대의 청을 단호히 거절하기가 어렵게 만든다. 나에게 베푼 것들이 자꾸 떠올라 중립의 입장에 설 수 없게 하고 사고를 흐려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없게 만든다. 혹시나 사사로운 것을 멀리하고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는 굳은 마음의 소유자라고 해도 금품을 받는 것이 합리화될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정약용이 쓴 목민심서 청심(淸心)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선물로 보내온 물건이 비록 아주 작은 것이라 하더라도 은정(恩情)이 이미 맺어졌으니 사사로운 정이 이미 행하게 되는 것이다. 격 고을의 수령 원의가 조신에게 뇌물을 보내어 명예를 사고자 일찍이 산도에게 실 백 근을 보냈다.
산도가 남달리 하고 싶지 않아서 실을 받아 대들보 위에 얹어 두었다. 뒤에 원의의 일이 탄로 되었는데, 산도가 대들보 위에서 실을 가져다가 아전에게 내주었다. 이미 몇 해가 지났기 때문에 실에 먼지가 끼고 누렇고 검게 되었는데, 봉인한 것은 처음 그대로였다.
위 글을 보면 조신의 저의가 무엇이었든지 간에 그는 원의가 보내온 뇌물을 받은 것으로, 객관적으로 드러나는 사실은 명확하나 심중은 보이지 않으니 조신은 뇌물수수죄로 처벌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가 수행한 공무가 뇌물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해도 또는 그 물건에 관심이 없어서 방치해놓았다 하더라도 그가 받았다는 사실은 없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위 글은 처음부터 받는 것을 거부해 책잡힐 일을 만들지 않아야 했었다고 말하고 있다.
공직자는 누구보다 청렴의 견본이 돼야 하며 청렴결백을 으뜸으로 삼아야 한다. 공직자의 이해관계에서 비롯된 잘못된 판단은 사소한 것일지라도 공정한 업무수행에 지장을 주게 되고 그 피해는 결국 주민, 시민, 국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모든 공직들도 청심을 마음에 새겨 잔바람에 흔들리는 갈대가 아닌 곧은 대나무의 자세로 임해야 한다. 공직에서부터 모범이 되는 청렴 문화가 정착되고 사회 전반에까지 확산돼 부정부패가 근절되는 나라로 나아가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