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8 미터, 26만5000톤의 FLNG선 진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보다 길어...섬 같은 해상 정유공장
인류가 신석기 때 배를 사용하기 시작한 이후 새로운 배는 탐험과 개척의 상징물이었다. 노아가 대홍수에서 살아남거나 컬럼버스가 신대륙을 개척할 때에도 배가 함께 했다. 중국 명나라 시대 정화 장군이 남쪽 바다 대원정을 떠날 때에도,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때 혁혁한 전과를 올릴 때에도 전례없던 규모와 형태의 배가 등장했다. 새로운 배는 기술의 진보를, 그리고 인류의 새로운 삶을 의미했다.
바다를 통해 세력을 확장하려면 배가 필수품이다. 동·서·남 3면이 바다인 한국인에게 크고 좋은 배를 만드는 것은 오랜 꿈이었다. 세계 1위의 한국 조선업계는 이러한 꿈을 현실로 만들어왔다. 그것이 최근의 한국 조선사(史)이다. 이 조선사에 새로운 한 페이지가 더 추가됐다. 경남 거제의 삼성중공업 조선소가 지난해 12월 3일 인류 역사상 가장 큰 배를 만들어 거제 앞바다에 진수(바다 위에 띄운 것)한 것이다. 네덜란드·영국 합작의 세계적 정유회사인 로열더치셸이 주문한 ‘프리루드(Prelude) FLNG’이다. FLNG(Floating LNG)는 해상에서 천연가스를 채굴한 뒤 정제하고 LNG로 액화해 저장·하역할 수 있는 해양플랜트 설비이다.삼성중공업이 만든 프리루드는 세계 최초의 부유식 LNG 생산설비이다.
로열더치셸에서 수주한 FLNG 이미지/삼성중공업 제공
현재 바닷속 LNG 생산과정을 보면 해저 가스전에서 뽑아 올린 천연가스를 파이프라인을 통해 육상으로 보낸 뒤 액화해 저장한다. 그리고 LNG 수송선으로 수요처까지 운송했다. 하지만 FLNG는 이러한 모든 과정을 해상에서 수행할 수 있다. 배는 배지만 사실상 바다 위에 떠 있는 가스공장인 셈이다. FLNG를 이용해 해저 가스전을 개발할 경우 평균 2조원에 달하는 육상의 액화·저장설비를 건설할 필요가 없다. 해저 파이프를 설치하지 않기 때문에 가스 누출로 인한 해저 생태계 파괴도 막을 수 있다. 프리루드는 선체 골격만 건조된 상태로 세부 시설물까지 갖추려면 아직 2~3년간 추가공정을 거쳐야 한다. 하지만 벌써 각종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
도크에 물이 가득차자 프리루드 FLNG가 해상으로 떠올랐다. 길이 640 미터, 폭 97.5 미터의 도크를 가득 채운 모습이 이채롭다.
여의도 63빌딩의 약 2배, 뉴욕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보다도 길어
Q : 인류 역사상 가장 큰 배라는데 얼마나 큰 가.
A : 길이 488m, 폭 74m, 높이 110m, 중량 20만톤(2013년 12월 3일 기준)이다. 길이 488m는 남산 서울N타워(236.7m)나 여의도 63빌딩(249m)을 눕혀 놓은 것보다 2배나 길다. 국내에서 현존하는 제일 높은 건물인 부산 해운대 두산위브더제니스(301m)는 물론, 뉴욕 맨해튼의 엠파이어 스테이트빌딩(381m)보다 길다. 세계에서 3번째로 높은 건물인 대만 타이베이 금융센터(508m)에는 다소 못 미친다.
중량 20만톤은 세계 최대 항공모함의 2배이다. 세계 최대 항공모함인 니미츠함의 만재(전투기 등 화물을 모두 채웠을 때) 중량이 10만6000톤에 불과하다. 최근 명명식을 가진 미국의 신형 항공모함인 제럴드 포드함은 중량이 다소 늘어난 11만2000톤이지만, 프리루드와는 비교가 안된다. 몸무게가 평균 5~6톤인 아프리카 코끼리 3만5000마리를 합한 무게에 해당한다. 프리루드는 향후 2~3년 동안 상부 플랜트 설비 탑재 등 추가공정을 마치면 선체 무게가 26만5000톤으로 늘어난다. LNG 액화설비 등 각종 플랜트 모듈이 설치되는 상부 면적은 축구장 5개를 합한 것보다 넓다. 이 모든 과정을 마친 뒤 LNG를 가득 채우게 되면 총 중량은 60만톤이 된다. 최대 배수량도 세계 최대규모 항공모함의 6배에 이른다.
Q : 역사상 다른 유명한 배들과 비교해 본다면.
A : 2012년 8월 네델란드의 사업가 요한 휘버스가 구약 성경에 나온 크기 대로 노아의 방주를 실물로 재현했다. 크기는 길이 300큐빗(약 137m), 높이 30큐빗(약 14m), 폭 50큐빗(약 21m)이다. 창세기 신화에 나오는 방주의 규모가 과장됐다고 하더라도 방주의 크기는 프리루드의 3분의 1도 안된다. 중국 명나라 시대의 정화 장군은 영락황제의 명령에 따라 1406년 6월부터 모두 7차례에 걸쳐 남쪽 바다 대원정을 떠났다. 명사(明史)에 따르면 1차 원정을 떠날 당시 함선 62척, 승무원 2만7800명으로 이뤄진 선단을 이끌었는데, 가장 큰 배는 길이 44장(丈·약 137m미터), 폭 18장(약 56m)이었다. 유럽에서 아프리카 남단을 돌아 인도에 이르는 항로를 개척한 바스코 다 가마의 함대는 120톤급 3척(승무원 170명)이었고,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의 함대는 250톤급 3척(승무원 88명)이었다. 대서양에서 침몰한 타 이타닉호(4만6000톤)보다는 프리루드가 5배 이상 크다. 현재 기네스 기록에 따르면 가장 큰 배는 1975년 일본 오파마 조선소가 건조한 유조선 ‘자르 바이킹’(458.5m)인데, 프리루드가 30m 더 길다.
Q : 배를 건조하는데 얼마나 많은 철강재가 사용됐나.
A : 선체 중량 26만5000톤 중 철강재의 무게는 약 26만톤이다. 호주 시드니 하버 브릿지(Sydney Harbour Bridge) 건설에 사용 된 철재량의 약 5배이다. 26만톤의 철강재 중 후판이 약 15만톤을 차지하는데, 포스코가 이 15만톤 전량(공급 금액 1200억원)을 공급한다.
아침 햇빛을 맞으며 프리루드 FLNG가 도크 밖 해상으로 나오고 있다.
Q : 배인가, 해상구조물인가.
A : 배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자체 동력을 갖고 있지 않다. 왜냐하면 물건을 싣고 운항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호주의 북서쪽 프리루드 유전지대에서 20~25년간 정박하면서 LNG 가스를 채굴하고 액화시키고 저장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력이 필요없다. 이런 점에서 배 형태를 띤 해상구조물, 혹은 바다 위 공장이라고 볼 수도 있다. 미국 공영라디오방송인 NPR은 “배라기 보다는 떠 다니는 섬”이라고 표현했다. 만약 동력이 필요하다면 엔진을 달면 된다.
Q : 동력이 없다면 거제 앞바다에서 호주까지 어떻게 이동하나.
A : 마치 소인국 소인들이 걸리버를 묶어 운반하듯, 4척의 예인선이 앞에 3대, 뒤에 1대가 붙어서 방향을 조절하며 끌고간다. 그리고 적도를 지나 태평양 남쪽으로 호주까지 간다. 30일이 걸린다. 태풍 시기를 피해 2016년 초에 예인이 이뤄질 예정이다.
Q : 프리루드는 호주에서 어떤 일을 하나.
A : 호주 서부의 육지에서 약 200㎞ 떨어진 바다에 정박하면서 20~25년간 심해 가스 채굴 및 처리 작업을 한다. 채굴된 천연가스를 영하 162℃에서 600분의 1 부피로 액화시킨다. 이 때 천연가스를 냉각시키기 위해 퍼올리는 바닷물의 양이 시간당 5000만리터에 이른다. 저장된 액화가스는 LNG 운반선들이 와서 옮겨 싣고 소비자들에게 나르게 된다. 2주간 교대근무하는 형태로 항상 100명의 직원이 상주한다. 프리루드는 폭풍우나 최고등급의 사이클론(태풍)에도 끄덕없이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됐다.
국내 LNG 소비량의 11%를 생산
Q : 프리루드의 연간 LNG 생산량은 얼마나 되나.
A : 연간 360만톤이다. 국내 1년치 소비량의 11%에 해당한다. 홍콩의 연간 LNG 소비규모의 117%에 이른다. 선체 내부 45만5000㎥ 부피의 저장 탱크에는 국내 3일치 소비량에 해당되는 LNG를 저장할 수 있다. 45만5000㎥는 올림픽 공식 수영장 175개를 가득 채울 수 있는 규모이다. 완공 후 프리루드의 자체 중량은 26만5000톤이지만, 저장탱크를 모두 채우면 총 중량이 60만톤에 달한다.
Q : 총 건조비용은 얼마나 되나
A : 삼성중공업은 프랑스 설계회사인 테크닙(Technip)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2011년 5월에 프리루드 프로젝트를 수주했다. 설계는 삼성중공업과 테크닙이 공동으로 실시하고, 제작은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 중 삼성중공업의 수주 금액은 약 30억달러(3조1500억원)이다. 30억 달러는 국내에서 생산하는 중형 승용차 약 12만대의 수출 금액과 맞먹는다. FLNG 1척 수주가 중형차 12만대 수출 효과와 맞먹는 셈이다.
Q : 해상에 석유시추시설을 만들듯이 바다에 해상구조물을 만드는 것이 비용이 더 저렴하지 않은가.
A : 수심이 깊지 않은 대륙붕일 경우에는 해상에 고정구조물을 설치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대륙붕 자원이 점점 고갈되면서 채굴업자들이 계속 바다쪽으로 멀리 나가고 있다. 수심이 너무 깊으면 고정물을 만드는 것보다 배 형태로 만들어 섬처럼 띄워 놓는 것이 경제적이다. 그래서 FLNG(부유형 LNG) 선박이 각광을 받고 있다. 현재 석유와 천연가스를 생산할 수 있는 심해유전이 정유업계의 새로운 큰 시장으로 형성되고 있는데, 호주, 동남아시아, 쿠바 지역이 주목을 받고 있다. 호주의 경우 2010년 490억㎥인 천연가스 생산이 프리루드 덕택에 2020년까지 곱절 이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거제 앞바다에 떠오른 세계 최초 FLNG의 웅장한 모습. 축구장 크기 5개 면적의 선체 상부에는 8만톤 규모의 플랜트 설비가 설치될 예정이다.
Q : 총 인력은 얼마나 투입됐나.
A : 선박을 건조할 때 한 사람이 한시간 동안 일한 노동단위를 1시수(時數)라고 한다. 보통 초대형 컨테이너선을 만드는데 60만 시수 정도 든다. 프리루드는 지난 2년 동안 선체를 만들어 진수하는데 670만 시수가 필요했다. 앞으로 2~3년간 추가공정을 하려면 더 많은 시수가 들 것이다. 설계에 투입된 인원만 600명이다.
Q :앞으로 2~3년간 진행될 추가공정은 어떤 작업인가.
A :선체 내부의 LNG 저장탱크 제작, 선체 상부의 플랜트 설비 설치, 내·외부 의장 작업 등이다. 특히선체 위에 8만톤 규모의 플랜트 설비를 설치하는 작업이 핵심 공정이다. 6000톤 규모의 모듈 14개로 나눠 제작한 뒤 8000톤급 해상크레인을 이용해 순차적으로 탑재하게 된다.
Q : FLNG 선박 시장은 전망이 어떤가.
A : 로열더치셀 등 글로벌 석유 회사들은 호주와 동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FLNG를 이용한 가스전 개발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만 20여개에 달한다. 특히 중형 FLNG를 통해 채산성을 확보할 수 있는 매장량 1억톤 미만의 중소형 가스전이 전세계적으로 350여개에 달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향후 FLNG 시장은 더욱 확대될 것 같다.
[Kim’s Thought] 한국인은 엔고 덕택에 세계 조선업의 주도권을 일본에서 넘겨 받았다. 그리고 ‘프리루드 신화’를 썼다. 이 신화는 얼마나 갈까?
최근의 해외언론 보도를 보면 미국 플로리다에 위치한 '프리덤 쉽 인터내셔널사'는 인류 역사상 가장 큰 배 ‘프리덤 쉽’(Freedom Ship)을 건설하는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라고 한다. 길이 1.4㎞, 폭 228m, 제작 비용이 무려 100억달러(약 10조6000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길이가 프리루드의 3배이다. 배 안에 학교, 병원, 쇼핑센터, 위락시설, 스포츠시설을 갖추고, 옥상에는 항공모함처럼 비행기와 헬기가 이착륙 할 수 있는 공항시설을 설치했다. 5만명의 사람들이 1년에 지구를 2바퀴 돌며 세계여행을 즐길 수 있는 호화 유람선이다. 언론은 이 프로젝트를 ‘현대판 노아의 방주’라고 이름 붙였다. 만약 한국이 국제입찰 경쟁에서 이겨 이 배의 제작을 수주하면 ‘프리루드 신화’를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2016년 초, 프리루드는 거제항을 떠나 호주로 향한다. 배 주인인 로열더치쉘과 배를 만든 삼성중공업 사람들은 태평양을 가로지르며 적도를 넘어 지구 남쪽으로 내려갈 프리루드를 위해 축배를 들고 축가를 부를 것이다. 새로운 여정을 출발한 선원들은 낮에는 꿈에 부풀고, 밤에는 태평양을 요로 삼고 달빛 은은한 밤하늘을 이불로 삼아 프리루드를 베고 단잠을 잘 것이다. 멋질 것 같다.
첫댓글 자강 스럽 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