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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구 이적에대한 진실 - 왜 바르셀로나에서 피구를 그렇게 싫어하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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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피구와, 그의 친구이자 에이전트이기도 한 호세 베이가. 그들이 공동작업을 해 나가는데 있어서 기본이 되었던건-피구의 선수 생활이 계속 되는 동안, 가능한한 많은 재산을 쌓아올린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이것을 토대로, 그들이 다양한 클럽을 이용하고 현재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성실함과 우정, 약속과 감상주의 따위는 제2의 문제였다. 풋볼 비지니스가 거대화되버린 현대에 그들은 그저 빙산의 일각일지도 모른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스캔들의 역사는, 1995년에 시작한다. 바르싸와 계약하기 반년 전의 일이다. 스포르팅 리스본의 선수였던 피구는 이 해에, 우에파컵 레알 마드리드전에서의 활약으로, 유럽의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된다. 하지만 이탈리아의 클럽은 1991년 U20월드컵부터 피구를 주목하고 있었다.
스포르팅 리슨본도 다른 많은 포르투갈의 클럽들과 같이 중대한 경제적 문제를 떠안고 있었다. 이 해에 계약만기가 되는 피구의 재계약 문제도 좀처럼 진행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거기에 유벤투스가 정식으로 오퍼를 넣었따. 유벤투스는, 선수 개인과 교섭하기 전에 소속되어 있는 클럽에 최초의 오퍼를 넣는다고 하는 예의바른 교섭 수단을 사용해왔다. 그들의 오퍼는 5억 페세타였다. 클럽은 물론이었고, 그 이야기를 들은 베이가 역시 승낙을 했다. 유벤투스와 피구의 교섭에 있어서 시간은 거의 필요치 않았따. 피구, 베이가, 그리고 유벤투스의 대표자가 참여한 가운데, 가계약서가 오고갔다. 이 가계약 시점으로부터 별로 멀지 않았던 1995년 1월, 파르마가 피구에게 접촉을 시도했다. 그들의 오퍼는, 유벤투스가 피구에게 넣었던 금액을 웃도는 오퍼였다. 피구와 베이가는 그들만의 독특한 도덕관을 가지고 있던터라, 가계약을 한 유벤투스에서 파르마로 옮겨 타는데, 많은 시간도 토론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들은 갑자기 스포르팅 리스본의 회장을 모든 언론을 이용해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우리도 모르게 유벤투스와 교섭하여, 우리를 팔려고 하고있다- 유벤투스와 파르마는, 이탈리아 축구 협회에 각각 피구와의 계약서를 제출한다. 놀란 협회는 양클럽이 대화를 하도록 중재하였지만, 양클럽 모두 원하지 않아, 어떤 해결 방법도 찾아내지 못하였기 때문에, 결국 협회가 결정을 내렸다. 협회는 피구에게 2년간 이탈리아에서의 플레이를 금지하였다. 유벤투스, 파르마도 결국 협회의 결정에 따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것은 피구에게 있어 처음있는 일은 아니었다. 유스시절 벌써 이중계약(벤피카&스포르팅)문제로 포르투갈 축구협회로부터 45일간의 플레이 금지라는 제재를 내렸었다. 2년간 이탈리아에서 뛸 수는 없었지만 피구는 파르마와의 본계약서에 싸인을 했기 때문에 그는 그 다음 시즌부터 환상의파르마 선수가 될 수 있었다. 마드리드의 회장 라몬 멘도사는 피구 계약건을 이야기하려고 했지만, 당시의 마드리드에는 자금이 없었기 때문에 베이가는 바르싸에 이야기했다. 파르마 대표, 베이가, 가스파르트가 3자 회의를 했고 그 내용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바르싸는 스포르팅 리스본에 3억 5천만 페세타의 이적료를 지불한다.
1995년 여름, 피구는 -꿈꾸던 세계 최고의 클럽에 입단할 수 있어 정말 행복합니다-라는 말을 하며, 바르싸 입단 발표 기자회견을 가졌다. 한편 스포르팅 리스본의 회장은 피구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책임을 물어 사임하였다. 또 피파는, 어떤 클럽으로부터도 요청이 없었기 때문에 이 사건에는 개입하지 않았지만, 블래터 회장은 -한번에 3개의 계약을 하는 것이 도대체 무슨 짓인가. 정말 한심스럽다--라는 개인적인 코멘트를 남기기도 했다. 바르싸는 1년후인 1996년 여름에 피구의 권리를 파르마로부터 사고 있었다. 파르마가 왜 간단하게 피구의 영입을 단념했는가. 그것은 법률적으로, 그들이 소유하고 있는 계약서가, 합법적인가 아닌가에 대한 망설임이 있었다는 것이 대부분의 의견인 것 같다. 하지만 이로부터 반년 후 베이가는 또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피구에 흥미를 나타내는 클럽으로 이적해서 연봉을 올릴까-혹은-다른 클럽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구실로, 바르싸에서의 연봉을 올릴까-. 어느쪽으로도, 결과는 연봉 인상이었다. 당시 마드리드의 회장은 로렌소 감독은 카펠로가 되어 있었다. 사실 카펠로는 피구의 영입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1995년 11월, 마드리드의 언론들이 -레알 마드리드가 피구 영입에 흥미를 나타내고 있다-라고 하는 뉴스를 대대적으로 퍼뜨렸다.
11월 29일, 베이가는 산띠아고 베르나베우에 있었다. 물론 동석하고 있던 것은, 로렌소 회장이었다. 이 날 이적료를 비롯하여 연봉에 관한 이야기가 오고갔다. 다음 날 피구는, 포르투갈의 언론에 말했다. -나의 에이전트는 마드리드에게 오퍼를 받고있다. 하지만 나는 세계 최고의 클럽에 있고 도시도, 사람들도 마음에 든다. 바르싸의 사람들은 안심하세요. 나는 계약이 끝날때까지 아무 곳에도 가지 않습니다-. 이 코멘트로부터, 2주도 지나지 않은 12월 초, 피구는 바르싸 부의장이었던 가스파르트와 새로운 계약 조건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를 마드리드에 뺏긴다면, 과거 라우드럽의 실패가 반복된다고 생각한 바르싸는 어쩔 수 없이 교섭을 시작했다. 이날의 교섭 후 피구는 -나는 바르싸에 남고싶다. 하지만 요즘 같아서는 꽤 어려울지도 모르겠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교섭 후, 마드리드의 피구에 대한 관심은 날이 갈수록 희미해져 갔다. 이유는 마드리드에게 충분한 자금이 없었고, 카펠로가 계속 마드리드의 감독으로 남을지도 불투명했기 때문이다. 다음 해 1월, 이탈리아의 언론에서, 밀란이 피구의 영입에 뛰어든다는 보도를 했다. 당시 카펠로는 밀란의 감독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바르싸는 피구에게 -어떤 계약서에도 싸인하지 마라. 우리의 제안을 기다리도록 해-라고 말하고 있었다. 베이가와 밀란의 매니저 사이에 밀회가 리스본에서 몇 번인가 있었다. 그리고 1997년 3월 18일, 바르셀로나의 엘 쁘랫 공항에서 밀란의 매니저와 베이가 사이에 가계약서가 오고갔다. 독특한 도덕관을 가진 그들은, 이 곳에서도 밀란과의 계약에 싸인한 것이었다. 피구의 조건은 세금 별도의 연봉 2억 2천만 페세타의 4년 계약. 베이가와 피구의 싸인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피구가 바르싸에 다양한 문제를 떠안고 입단하고 나서, 아직 2년도 지나지 않은 때였다. 바르싸의 회장 누네스가 이 사실은 아는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첫번째로 바르싸는 밀란과의 관계가 우호적이었기 때문에 밀란측으로부터 정보를 얻을 수 있었고, 두번째로 베이가측도 굳이 이 사실을 숨기려고 하지 않았었다. 누네스는 피구가 밀란과 계약서를 주고받은 날로부터 한달 후인, 4월 18일, 베이가를 불러 대화를 가졌다. 베이가는 밀란과의 가계약서까지 지참하고는 -이런 오퍼가 있지만 피구 본인은 바르싸에 남고 싶어한다. 물론 바르싸측이 새로운 오퍼를 넣어줘야 하지만-이라고 했다. 그들의 상투적인 수단을 이용해 대화에 응하고 있었던 것이다. 누네스가 베이가에 의해서 시작될 수 있었던 이 교섭은, 가계약서를 소유하고있는 밀란에게 아무런 손상도 주지않고, 평화롭게 할 수있는 방법이 무엇인가에 집중되었다. 왜냐하면 베이가로써는 그들의 요구대로 바르싸가 연봉을 책정한다는 조건 아래, 이 회담에 참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누구도 생각치못한 것을 꾸며냈다. 그것은 피구의 이적료인 12억 페세타라고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국내의 클럽으로의 이적에만 해당하는 것이고 해외의 클럽 같은 경우는 37억 페세타라고 하는 것이었다. 실제 피구와 바르싸 사이에 오고간 최초의 계약서에 이러한 조항이 있었는지는 알 수가 없을뿐더러 대부분의 전문가 견해로써는 불가능한 것이라고 한다. 게다가 그것이 법률적으로 합법인지에 대한 것도 검토해봐야하는 것이라는게 법률가들의 의견이었다. 결국, 피구와 베이가 콤비의 의도대로 상황이 흘러갔다. 바르싸는 밀란이 제시해온 연봉에 20%를 더한 2억 7천 5백만 페세타를 피구의 새로운 연봉으로 책정했고, 계약 기간은 5년간(2002년까지), 이적료는 50억 페세타로 정하였다. 계약서에 사인을 한 후 피구는 말했다. -마드리드에 갈 생각도 없었다. 난 세계 최고의 클럽과 팬 앞에서 뛰고있기 때문에-. 슈퍼스타 호나우두가 떠난후에, 같은 브라질리언인 히바우두가 입단했다. 하지만 인기라는 측면에서 피구는 히바우두를 압도하고 있었다. 과르디올라가 결장할 때는 캡틴 완장을 찼고 득점을 할 때마다 바르싸의 엠블렘에 입술을 가지고 갔다. 팬들이 보면, 그는 마치 바르싸 유스 출신과 같은 존재였다. 아무리 이름이 널리 알려져도, 마드리드에는 가지 않을 선수라고 느껴졌던 것이다. 이 같은 상황이 흘러가는 동안 베이가는 또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1999년 5월의 일이었다. 리그 우승이 결정된 다음 날, 피구는 매우 만족스러운 얼굴로 누깜프의 회장실을 나왔다. 그의 연봉은 4억 5천만 페세타, 계약 기간은 2004년까지, 이적료는 100억 페세타였다. 이것들은 사실상 바르싸에서의 은퇴라고 하는 계약을 의미하기도 했다. 2004년이면 32세, 게다가 이적료가 100억. -바르싸가 나를 보내기 전까지, 이 곳에 있을 것이다-라고 하는 그의 발언이 본심이었는지, 아니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단지 분명한 것은 영원한 바르싸, 피구가 지금으로부터 단 1년만에 붕괴된다는 사실이다.
2000년 5월 21일, 마드리드의 아스紙는 '루이스 피구, 마드리드로!!'라는 기사를 싣는다. 2000년 5월 10일 바르싸는 챔피언스 리그 준결승에서 발렌시아에 패했다. 그 날 누깜프에 모인 관중들은 시합이 끝나자마자, 흰 손수건을 흔들며 불만을 표했다. 그것은 바르싸 수뇌부와, 반 할 감독을 향한 것이 분명했다. 이 경기가 있었던 다음 날, 두명의 캡틴인 과르디올라와 피구는 기자회견에서 -어제의 누깜프와 같은 상황 아래서 뛰는 것은 아주 어렵다-라는 말을 하였다. 이 발언은 언론에 의해 다양하게 해석되었다. 반 할의 경질, 바르싸 수뇌부와 크루이프의 관계 회복, 언론과의 관계 정상화, 의장 선거의 소집등등. 하지만 누네스에 있어서 22년간 계속 되어온 장기 집권의 임종을 결의시키는 발언이었다. 2000년 5월 13일 문도 데뽀르띠보紙에서, 누네스 의장이 시즌을 마지막으로 사임한다는 기사를 내보낸다. 기사가 나온 후에, 베이가는 새로운 라치오의 오퍼를 가지고 누네스를 찾아갔다. 그러나 누네스는 사임을 결의했기에 교섭에 응할 수 없다고 했다. 2000년 5월 21일 마드리드의 아스紙는, '루이스 피구, 레알 마드리드로!'라는 기사를 발표했다. 다음 날 피구는, 바르셀로나의 스뽀르뜨紙에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누누히 말하지만 마드리드로는 가지 않는다. 그것은 바르싸에 대한 배반이기 대문이다.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만약 바르싸를 떠나야 한다면 해외의 클럽으로 가게될 것이다-. 2000년 5월 25일 베이가가 누네스에게 마지막 교섭을 시도했다. 이것에 대해 누네스는, 자신에게는 선수의 연봉에 대한 교섭 권한이 없을 뿐더러 만약에 있었다고 해도, 불과 1년전에 싸인한 재계약서를 다시 검토할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베이가의 보고에 의해 누네스가 교섭의 의사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된 피구는 유로2000에 참가하기 위해 포르투칼로 합류했다. 2000년 6월 16일 독특한 도덕관의 베이가는 예전부터 성공을 거뒀던 상투적인 수단을 다시 이용했다. 피구에 흥미를 나타내고 있는 클럽과의 가계약. 이번에도 라치오의 이야기가 나왔다. 이 날 베이가와 함께 라치오 회장의 아들 그리고 제너럴 메니저가 런던에서 최종적인 교섭에 돌입했다. 이 만남이 있기 며칠 전 라치오 회장의 아들은 피구와 개인적인 전화 통화를 통해 개인적인 승낙은 모두 받아낸 상태였다. 피구의 연봉은 바르싸에서 받고있는 연봉의 두 배인 8억 페세타라는 것이었다. 이 다음 날 네덜란드에서 유로2000을 뛰고있던 피구는 누네스에게 전화를 했다. 하지만 누네스의 생각은 전과 같았다. 이 단계에 있어서 바르싸 회장 선거에 나온 후보는, 가스파르트, 바사트, 카스테이로스, 쟈우라드등 네 명이었다. 이들은 당시 임시매니저로 일하던 사람으로부터, 팩스를 받는다. -의장직의 부재로, 후보자들이 모여 피구의 일에 대해, 논의를 해야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내용의 것이었다. 며칠 후 후보자들은 한 레스토랑에 모여 회의를 갖었다. 후보자들의 공통된 의견은 베이가가 동석한 교섭은 어디까지나 새로운 의장이 행해야할 것이라는 것이었따. 그러나 개인별로 베이가측과 만남을 가지는 것은 자유라고 결론지어졌다. 2000년 6월 24일 후보들의 결론을 알게된 베이가와 피구는, 바르싸 수뇌부에 대한 불신을 가지게 된다. 다음 날 터키와의 경기를 앞둔 피구는 아무도 자신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며 불만을 표하고 있었다. 불과 1년전에 연봉 인상과 함께 새로운 계약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2000년 6월 25일 까딸루냐의 까날 33의 프로그램에서 마드리드 회장 후보 중 하나인 페레스가 자신이 회장이 될 경우 피구의 영입에 나서겠다고 말한 내용을 보도했다. 하지만 실제로 페레스가 생각하고 있던 것은 단지 회장이 되기위한 공약으로써 선수 영입을 내세운 것이었다. 처음 생각한 것은 지단이었지만지만, 나이로 보나, 확실치않은 이적료로보나 지금 유로2000에서 활약하고있는, 피구가 더 나을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는 지단보다 젊고, 게다가 라이벌 클럽의 핵심 선수였다. 임팩트는 훨씬 강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렇게 레알 마드리드의 회장 후보였던 페레스는 피구를 조준했다. 페레스는, 과거 아뜰레띠고 마드리드의 선수이자, 베이가의 친구였던 파울루를 통해 베이가와 교섭을 시작할 수 있었다. 최초의 컨택은 6월말에 이뤄지고 있었다. 당시 베이가는, 이 이야기를 반신반의로 듣고 있었다. 하지만 라치오와의 이야기가 정체되고 있는 상황에서, 페레스와의 컨택이 가치가 있을거라는 생각을 했다. 어차피 회장은 로렌소가 유력했지만 베이가는 일단 한번 저질러보자는 식의 행동을 취하였다. 2000년 7월 1일 ACS(페레스의 회사)에 베이가, 페레스 그리고 그의 변호사였던 호세 루이스가 모여서, 피구에 대한 기본적인 계약서를 -베이가는 피구에 대한 모든 권리를 위임받는다. 베이가는 아무 망설임도 없이 싸인을 했다. 피구는 이 날의 회의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따라서, 그의 계약서에 그의 싸인은 들어가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베이가가 ACS에서 뭘 하고 있었는지 모두 알고 있었고, 그에게 모든걸 위임하였다. 후에 페레스의 측근에 따르면, 지금까지 세계를 돌아다니며 어려운 계약을 해온 페레스에게 있어, 이렇게 간단하고 짧은 시간이 소요되는 대형 계약은 처음이었다고 한다. 실제로 50억 페세타의 위약금 항목을, 베이가가 왜 그토록 긍정적으로 승낙했는지 페레스로른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 같다. 2000년 7월 5일 페레스는, 이 폭탄 계약을 발표하는 시기를 신중하게 선택하고 있었다. 최대의 임팩트를 주기 위해서는, 투표일 직전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부거절한 시기는 바르싸의 대응도 걱정해야만 했으니까. 어디에서 빠져 나갔는지 계약서를 주고받고 불과 나흘후에 이 폭탄 계약이 빛을 보게 되었다. 마드리드의 한 언론에서 계약에 대해 폭로르 한 것이다. 이 날 모든 라디오와 티비 프로그램은 이 뉴스를 소개했다. 물론, 다음 날의 모든 스포츠 일면 기사는 이 계약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했다.
누녜스는 기겁하고 있었다. -이런 일이 정말 있는건지?피구의 이적료는 100억 페세타가 아닌가-. 그가 처음으로, 전화를 한 것은 베이가였다. -그 보도를 부정하는 공식 성명을 해줬으면 한다-. 하지만 베이가는 부정하기는 커녕, 페레스와의 교섭을 인정했다. 놀란 것은 누녜스뿐만이 아니었다. 두 명의 유력한 의장 후보였던 가스파르트와 바싸트도 깜짝 놀라 기겁하고 있었다. -까삐딴 마크까지 붙이고 있던 남자가-, -도대체 피구는 어디까지 가는지-, -왜 바르싸의 의장이 선출될 때까지 기다릴 수 없는 것인지-라고 했지만 망설이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바싸트는 티키를 필두로 하여 피구에게 사람을 보냈다. 티키는 변호사를 동반하고 있었다. 목적은 단지 피구의 설명을 듣기위한 것만이 아니라 바싸트가 준비한 계약서에 사인을 시키려고 했다. 그 계약서에는, 바싸트가 의장 선거에서 승리했을 경우 5년의 계약 기간에 초년의 연봉을 8억 페세타, 마지막 해는 12억 페세타라고 한다, 라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피구는 이 내용을 납득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연락을 받고 왔던, 베이가가 피구에게 사인해서는 안된다고 말해 계약은 무산되고 말았다. 하지만 마지막에 그는 자신들이 페레스와의 약속을 무효로 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라는 말을 했다. 티키는 그들과 헤어질 때 피구는 틀림없이 마드리드에 갈 것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한편 가스페르트가 최초로 한건 베이가에게 팩스를 보낸 것이다. 거기에는 페레스가 제시한 금액을 자신들도 제공하겠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베이가는 공식적인 서류 제출을 해주길 바랬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스뽀르뜨紙의 기자이자, 피구의 친구이기도 한 토니가 피구의 독점 인터뷰를 한다는 것을 알고 토니를 통해 서류가 들어있는 봉투를 건내주었다. 사실 봉투안에는 이미 가스페르트 서명의 편지가 들어가 있었다. 거기에는 페레스와 주고받은 계약서로 인해 생기는, 모든 트러블에 관해 모든 노력을 가할 것이라는 약속이 들어있었다. 왜냐하면, 가스페르트는 그 계약서에 피구의 싸인이 없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사자의 사인이 없는 계약서는 무효라고 하는 확실한 생각이 있었다고 보인다. 피구는 지금도 이 편지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어느 주간지가 이 편지를 2천만 페세타에 사려고 했지만 그는 팔지 않았다고 한다. 있었기 때문이다. 당사자의 사인이 없는 계약서는 무효라고 하는 확실한 생각이 있었다고 보인다. 피구는 지금도 이 편지를 베이가와 피구는 마침내, 갖고 싶은 것을 손에 넣었다. 가스페르트가 이기던, 바싸트가 이기던, 같은 것을 얻을 수가 있었다. 페레스가 이기면. 아니 그가 이길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로렌소는 회장 취임 중 두 번이나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했던적이 있으니까. 하지만 바르싸내에서 이미 퍼지고 있는, 안티피구의 영향이 걱정되기는 했다. 피구로써는 어떻게 해서든지, 페레스와의 약속을 공식적으로 부정해두지 않으면 안됐다.
2000년 7월 9일 피구의 독점 인터뷰가 스뽀르뜨紙에 실렸다. -모든 소시오 그리고 바르싸의 팬 여러분들. 루이스 피구는 새로운 시즌이 시작되면 누깜프에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떠한 루머들이 흐르고 있다해도 나는 바르싸를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번에 놀란 것은 페레스였다. 페레스는, 피구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가 궁금했다. 페레스는 베이가와 주고받은 계약서의 합법성에 대해 몇 번인가 검토를 해봤다. 결론은 효력이 약하다, 라는 것이었다. 역시 당사자의 싸인이 필요했다. 동시에 피구와 바르싸에 압력을 걸기위한 행동이, 선거일이 가까워진 지금 아무래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2000년 7월 12일 의 합법성에 대해 몇 번인가 검토를 해봤다. 결론은 효력이 약하다, 라는 것이었다. 역시 당사자의 싸인이 필요했다. 동시에 페레스는 기자회견을 소집했다. -만약 내가 회장으로 당선되고 피구가 마드리드에 오지 않는다면 모든 마드리드 소시오의 연회비를 내가 지불하겠습니다.- 어떻게 그가 이런 말을 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간단한 일이다. 만약 베이가측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위약금으로써 50억 페세타를 지불하지 않으면 안됐기 때문이다. 그 자금으로 소시오의 연회비를 조달할 수 있으니까. 물론 베이가측에서 50억 페세타를 지불할 능력은 없을 것이었다. 그렇다면 바르싸가 어쩔 수 없이 바르싸의 자금으로 마드리드 소시오의 연회비를 조달하게 되는 것이었다. 얼마나 통쾌한 일인가. 그리고 그것은 피구의 싸인이 있으면 완벽하게 되는 것이었다. 피구는 바캉스를 보내고 있었다. 페레스는 피구에게, 싸인하지 않으면, 형무소에 가게될지도 모른다는 말을 했고 피구는 가스페르트에게 전화를 했다. -절대 싸인하지 마라. 싸인이 없는 계약서는 무효가 되는거야-. 2000년 7월 14일 마드리드의 회장 선거까지 앞으로 이틀을 앞두고 피구는 다시 자신의 카멜레온상을 발휘했다. 스뽀르뜨紙의 기사였다. -페레스가 이기던 지던 나는 마드리드에 가지 않습니다. 이것이 현재 그리고 장래의 나의 셔츠입니다.- 라며 자신이 입고있던 아술그라나를 가르켰다. 2000년 7월 16일 페레스가 마드리드의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2000년 7월 18일 피구와 마드리드와 싸인을 했다. 그가 왜 싸인을 해버렸는지는 필자에게도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페레스나 베이가의 상상을 넘는 압력이 있었는지 예정된 행동이었는지. 어쨋든 악마에 영혼을 팔았다라는 말이 잘 어울렸다. 페레스는 마드리드의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다음과 같이 피구 영입 작전을 설명했다. -피구에게는 5억 페세타, 베이가에게는 6억 5천만 페세타. 그리고 몇몇 협력자에게는 약 2억 페세타의 보상을 해주었다.- 2000년 7월 23일 바르싸의 의장에 가스페르트가 선출되었따. 이날 새벽 3시, 피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지금 나는 마드리드행의 항공 티켓과 바르셀로나행의 항공 티켓 모두를 가지고 있다. 만약 바르싸가 50억 페세타의 위약금을 지불해준다면 나는 페레스와의 약속을 무효화할 생각이 있다.- -바르싸에게는 마드리드의 소시오를 위해 지불할 돈은 전혀 없다.- 루이스 피구가 레알 마드리드의 새로운 선수로써 기자회견을 열었다. -마드리드로부터의 이야기가 있던 처음부터 이 곳에서 뛸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나는 지금 정말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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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Culecorea Funkyass님
이거 아주 인간쓰레기네요(강등 ㅠㅠㅠ...그래도 욕은 한마디 해야겠습니다) 호스틴이나 이놈이나 이런 쓰레기를 레전드라 칭한 제가 한심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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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정말인가요? 흠.................................................................
그냥 바르샤에서 레알간거부터가 레전드 가치가 떨어지는 인물아닌가요
실력은 인정해도 한클럽에서의 레전드 칭호는 절때 받을수 없는선수죠
바르셀로나 입장에서는 그렇지만 레알입장에서 보면 갈락티코의 서막을 연 선수 굳이 타팀팬들이 발끈할 필요는 없을거같네요
사실이라면 시르망임
이게 사실이라면 진짜 실망이군요 ㅡㅡ;;
으 너무 길다 ㅋㅋㅋ
아흥..대충은 알겠는데..너무 복잡해..어찌되었든..사실이라면 실망이 큰데..
멘탈이ㅎㄷㄷ..
아 눈아파 죽는줄알았네 포루투갈인은 원래 저런식인가
어쩐지 생긴게 돈 밝히게 생겼드만 ㅋ
피구가 클럽에서 레전드 소리 들은 적은 한번도 없죠... 누 캄프에 피구 가면 거의 증오 수준의 야유가 ;;
어쩐지 심하드라 바르샤에서.. ㄷㄷ
쭉내리신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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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요점정리좀;;ㅠㅠㅠㅠ다못읽겟어가지고 ㅋㅋㅋㅋㅋ
이런 망할;; 이런 게 가능하다니.. 다른 선수들이 따라할까 무섭네요;;
여태까지 나쁜놈이라고 불렀던 흘렙,캐쉴리,호날두의 엄마뻘;;;
캐쉴리나 피구나 마찬가지지
날도 안좋은건 열라 빨리 배운다니깐 ;;;
Anti Figo의 추억. 일부 공감은 하지만은 지극히 바르샤 입장에서 쓴글이요. 현축구계에서 돈밝히는 선수가 어디 피구 뿐이요? 그래도 레전드는 레전드요. 사생활 어지럽고 도덕적으로 문란해도 실력하나 갖추면ㅋ 대접받는게 스포츠의 세계지요..뭐 엄연히 프로세계니깐요...사람 생각하기에 따라 다른겁니다만 하나의 콘텐츠로서 상업위주로 보는 축구팬들도 있는 반면 그래도 또하나의 사회처럼 열정과 충성 이런걸 더 중요시 보는 축구팬들도 있으니깐요. 뭐 누가 옳다 그르다 이런건 논할 가치가 없는것 같습니다.
그 당시 동료 선수들은 조용했었져..과르디올라의 경우 "그의 의견을 존중하겠지만 하얀색옷을 입은 피구의 모습은 상상이 안간다" 라고 말했고요, 아벨라르도 역시 "피구는 자신의 길을 갔을뿐이다"라고 말했던거 기억나네여..바르샤 선수들은 피구가 이적한것에 대하여 악평하진 않았었졉. 게다가 피구의 처절한 누캄프 경기가 끝난후 푸욜과 과르디올라, 세르히가 피구랑 포옹하던것도 기억나는군요. 당시 결과는 2대0이었져 ^^; (시마우와 엔리케의 골). 저땐 정말 바르샤 쏘시오들이 엄청 난리 ㅋ 피구가 운영하던 일식집 박살내버리고..
근데 피구의 영입도 너무 전광성화여서 말이져, 페레스가 공약했고 당선되자마자 곧바로 데려온 피구여서 뭐 화제도 뭐고 뿌릴 시간도 없었쪄, 피구의 경우는 이적하기전보다 이적후의 후폭풍이 정말 장난아니었습. -.-; 피구에 비하면 엔리케나 사비올라는 시기에 맞게 이적한 케이스라고 해야 되나...무튼 쩝;
캐쉴리랑 흘라또는 피구랑 클래스가 다르니깐요. 암튼 돈을 너무 추구한건 옹호할수없는 부분이군요.
전 충성심이고 뭐고 이런거 따진적 거의 없습니다...선수가 돈보고 팀을 옮기겠다고 하면 이것도 한편으로서의 프로정신이고(프로세계는 돈의 입각한다 라는 주의). 난 우리팀에 뼈를 묻겠다 이런 주의도 프로정신이져. 다만 그 외에 프로세계에서도 용납안되는 행위..그에 대해서만 비판해야 한다고 봅니다..예를 들면 전체로 보면 교묘한 룰을 이용해서 선수를 이적시키거나 승부조작..등이 있겠고 선수 개개인을 보면 폭행, 음주 사고..등 각종 사회에 혼란을 주는 행위를 했을경우가 있겠네요..피파나 유에파도 엄격히 용납 안되는 행위에 대해서만 제재를 가하지 돈보고 이적했네 충성심이 뭐네 이런걸로 제재 가하지 않습니다.
2중계약이 풀리는데 바르셀로나에서 도움을 주기도 했고 그것을 빌미로 약간의 노예성 계약을 강요당하기도 했습니다. 아마 피구는 그것으로 바르싸에 대한 악감정이 없지는 않았을거라고 하던데욤. 아무튼. 레전드 아님. 돼지머리나 받으샴. ㅋㅋ
게스코인 조지 베스트 에릭 칸토나 에펜페르크 미하일로비치 이런사람들도 레전드라 불리는데 피구가 쓰레기라고 불릴이유는 없을듯...
위에 언급하신 선수들이 이중계약보다는 거친 때로는 지나친 플레이와 사생활같은 것때문에 언급이 되는거 같은데 이 선수들은 대신 레전드로 불러주는 클럽에서의 충성심과 활약상은 그 클럽에서 인정할 수 있는거기에 서포터들이 레전드라고 말하는거겠지요. 피구는 실력은 전세계적 레전드지만 그 어떤 클럽에서도 자신들의 레전드 선수라고 말하지는 않을겁니다.
돈밝히는게 인종차별-알콜중독-개매너보다 나아보이는데요..흠..스페인현지에 사는게 아니라서 모르겠습니다만 한국레알마드리드 펜사이트에서는 피구 레전들로 불리고 있습니다. 또 개매너든 사생활이 더럽던 돈을 밝히던 경기력에 지장만 안주면 되죠. 돈을 내고 경기장에 가서 보는 팬들에게 성과를 보여주면 그게 프로선수라고 생각하는 접니다..
그 거너스님과 제가 언급하는 레전드의 초점이 달라서 나타나는 문제같네요. 개매너문제는 좀 더 이야기가 필요할 거 같지만 당연히 인종차별이나 알콜중독이 돈선호보다 나은 건 아니죠. 다만 제 이야기는 그 선수들이 속해있는 클럽의 서포터즈들이 어떻게 보는지라는 시각의 이야기입니다. 클럽서포터즈 입장에서는 확실히 밝혀지지 않은 개매너보다 돈보고 이중계약이나 자신들의 팀을 버린사람이 밉고 레전드로 인정하지 못하겠지요. 그리고 레알 레전드로는 피구보다 1년 늦게 영입된 지단이 언급되죠. 피구는 레알의 역대 베스트11에 들 선수라도 레전드라고 말해지는 선수는 아닙니다...
음... 제생각에는 프로 세계라고 해도 유명인이기에 올바른 가치관을 가질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많은 유스선수들이 그들의 플레이와 그들에게 많은 관심을 가지기에 바른행동을 해야할 유명인이 돈밝히는 거나 인종차별등 머가 좀더 나은거라고는 할수가 없겟죠...
바르샤 입단 전의 다중계약건은 블래터가 개인인터뷰로 직격을 날렸기에 나름 유명한 이야기였죠...그리고 피구를 옹호하려면 당연히 호날두나 아이스크림조차도 옹호받아야겠네요...이 선수들도 돈을 추구하고 이면 계약을 시도했지만 동료들의 비난 인터뷰를 받지 않았지요...실력은 실력이고 비판받을 부분은 비판받아야지요...
'또하나의 사회처럼 열정과 충성 이런걸 더 중요시 보는 축구팬들' 중에 한명으로 보는 저는 정말 토요미스테리,이야기속으로,서프라이즈 보는 듯 했어요. 소름끼치고 경악을 금치 못했답니다...
혹시 아데바요르도 이런 짓 했나요? 흘렙도? 그 안속까지는 잘 몰라서 그냥 배신했기에 양다리 걸쳤기에 욕하는것 뿐인데..
데발이는 사전접촉이나 이중계약은 아스날에서 없구요 흘렙과 콜같은 경우는 구단끼리의 이적요청 전에 사전접촉 및 구체적 논의가 있었습니다...그래서 콜은 캐쉴리, 흘렙은 아이스크림이라 불리는거지요...
피구를 떠나서... 단지 돈만보고 움직이는 선수를 레전드라 하는 팬이 있다면 그 '팬'이 냄비수준이 아닐까 의심되는군요. 실력만큼 대접받는게 프로의 세계지만 스포츠라는건 단지 그것만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사람 생각하는것마다 다 다르죠. 그쵸? ㅋㅋ 실력만큼 대접받는게 프로의 세계지만 스포츠라는건 단지 그것만 있는것이 아닌것과 같이 레전드라고 생각안하는 팬이 있다면 또 레전드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것이니까요. 그사람들보고 냄비수준이라고 하는건 그 선수를 좋아하는 그들의 입장에선 막말로 들리지 아닐까 의심되는군요..
팀의 팬이 아닌 선수 개인의 팬이 어디의 '레전드'라고 칭할 수 있는것일까요?(국대의 레전드라 칭할 수는 있습니다만 이곳에 있는 분들이라면 국대와 클럽을 구분할 정도의 '개념'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혼자만의 꿈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좋겠군요.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의 문제가 아닙니다. 축구라는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시는 것은 어떨런지요? 축구는 기록경기가 아닙니다. 팀이라는 것은 한 선수만으로 움직이는 것도 아닙니다. 물론 객관성이 결여된 주장이라고 해도 막을 권리따위는 없습니다만 아스날의 팬이라고 한다면 '냄비'와는 달랐으면 하는 바람으로 내뱉은 말입니다.
참고로.. 제 말이 막말로 들리는 부류에게는 더 드릴 말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할 생각자체가 없으니 더 이상 잡음 만들지 않도록 자중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