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했던 국민학교의 추억
1987년 나는 '길동국민학교' 에 입학했다. 지금으로부터 30년 7개월쯤 전의 일이다. ㄷㄷ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는 학교에 너무너무 가고 싶었지...(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점부터 지금의 딱 중간 시점이 2002년 월드컵이다. 15년전 월드컵의 기억은 생생한데, 2002년이나 지금이나 87년의 기억은 비슷하게 희미하다. 2002년에도 희미한 기억이었거, 그 때에 비해 별로 까먹은 게 없다.)
나는 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안경을 썼었다. 같은반 친구들을 생각해 보면, 주변에 그림을 잘 그리는 친구가 하나 있었고, 이쁘장했던 여자 쌍둥이 자매가 있었는데, 내 기억에는 나는 그 둘을 내심 좋아했으나, 겉으로는 적대관계였다. (애들이 다 그렇지.) 반에서 가장 친했던 친구는 왕승선 이란 이름의 친구였다. 그 때, 승연이라는 친구도 있었다. 이 친구는 1학년 시작 직전에 친해진 것 같기도 한데, 1학년 아니고 2학년 때만 같은반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할머니랑 친한 분의 손자 및 어찌저찌 친해진 동네 애들이랑 같이 다녔는데, 승선이만 같은반이었다.
당시, 승선의 아버지는 양복점을, 어머니는 미장원을 경영하셨고, 승연의 아버지는 전자제품 가게를 운영하셨다.
나는 가끔 그 친구 집에 갈 때면, 그 양복점을 지나가다가 그 아저씨와 마주칠때면, 크면 용돈 모아서 아버지 양복 맞춰드린다고 했었다. 그 친구는 그 후에 길 건너에 꽤 괜찮은 아파트로 이사를 갔었다. 2000년대 초반에 싸이월드 덕에 딱 1번 연락했었다. 그 후 어떻게 지내는지는 모르겠다. 승연이네 집에서는 부모님이 TV를 샀던 기억이 난다. 성은 이씨였을 거다.
나는 학교 들어가기 전에 한글을 독학으로 익혀버렸으나, 맞춤법이 정확하진 못 했다.(이건 지금도...-_-;;;; ) 받아쓰기 시험을 본 기억도 나고, '왕승선' 및 다른 친구들을 따라서 '길동교회' 에 나갔던 적도 있으나, 당시 내가 교회에서 배운 몇가지를 잘못 이해하고 얘기하자, 아버지께서 못 나가게 했던 적도 있다. (참고로 지금은 전가족이 카톨릭이지만, 그 때는 아니었다.)
글을 쓰다 보니, 또 하나 또렷히 기억나는 게 있다. 무궁화 색깔이 몇가지가 있는지를 선생님께서 가르쳐주시는 과정에, '이하얀' 이란 이름으로 기억되는 여자아이(이뻤을거다. 내가 기억하는 걸 보면)의 옷에 있는 색깔이라 그래서 내가 '보라색' 이라고 해서 맞췄던 기억도 난다.
나는 그 때 시험상으로는 반에서 2~3등 정도를 했던 것 같은데,
이는 가풍의 영향이다. 어느정도는 부모님께서 강압적으로 공부를 시키셨던 것 같다. 수우미양가 가 나뉘는 1학년 2학기 때 체육에서만 수를 받지 못 하였다.
그리고 이것도 가풍빨인데, 학교 주변 헌책방에서 옛날 만화책을 사서 보고 그랬다. 헌책방 주인 아저씨가 나를 매우 기특해 하셨다... -또한 길동시장 문방구에서 100원자리 200원짜리 조립식 하나를 고르느라 너무 오랜 시간을 소모해서, 문방구 아저씨가 어머니한테 클레임을 걸었던 적도 있었다. -0-;; (진상)
나는 지금이나 그 때나 호기심이 미친듯이 많아서 선생님한테 질문을 하면 자제당했으며, 우리나라 교육제도에 대해 비판적이던 성향은 아마도 이 때부터 생겼던 것 같다.
지금 연락하고 지내는 최초의 친구들은 어머니 친구의 아들이기 때문에 아는 친구들을 빼면, 대부분 1988년 5월에 전학 온 방이국민학교에서 만났던 친구들이다. 아, 유치원 때 알았다가 한참 까먹다가 2000년대에 성당에서 다시 본 친구도 있는데, FB에서만 연락된다. (20살 넘어 다시 보는 순간 기억난 것인데, 어릴 때 그 사람이 내 종이비행기를 밟아버렸다는 게 기억났다. 나만 기억나므로 다른사람일 확률도 있다.)
아, 길동국민학교 때 알던 친구들은 대체 어디서 뭘 하고 지내나 싶다. 길동국민학교 다음 카페에도 가입해서 가입인사도 썼는데, 오랫만에 그 카페에 들어가보니, 카페는 죽어있네...2000년대 초반에 정모라도 나가 볼 걸 그랬나. (사실, 3~4학년 때 입학한 애들도 있을테고, 같은 반이었던 애들은 별로 없을테고)
다른 기억들도 좀 있는데, 서서히 내 삶에 큰 영향을 주지 않은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묻혀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