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동
임성용
동동슈퍼 아저씨가 얼레절레 와서
누가 내 목을 따주거든 자기 전재산을 주겠다고 했다
동동슈퍼 아줌니가 얼퍽덜퍽 와서
누가 저놈을 죽여주면 세상천지 있는 복 없는 복 다 받을 거라 했다
아저씨는 한쪽 바지를 무르팍에 걷어부치고
목줄기 떨어진 내복 바람에 희끔한 머리털은 떼까치가 짓다 만 집이다
눈은 불구덩덩, 입은 삐뜨르 댕댕, 귓딱지 콧구멍엔 피가 엉겨붙었다
아줌니는 파마머리 누렁물 들이고 그렁그렁 눈은 퍼뜩 치올랐고
앙당그러진 이빨에 두 주먹 불끈 쥐여 발길질도 망아지
갈퀴손 걸머들어 아저씨 며가지를 휘잡는다
일루 와, 일루 와!
저리 못가, 잡년아!
한바탕 소바탕 개바탕 쌈박질에 더구덩덩 원산길 늘보 같은 기차가 가고
저 먼데 마차산 솔나무 잣나무 흐드득 하니 얹힌 눈발이 가지를 턴다
어허야, 문득번득 빗방울 지고 날은 차차 어두워 가고
나는 갈 바 없이 막걸리 뚝빼기 목 말라 어정어정 발 딛고
어쩌지 저쩌지 못하고선 동동슈퍼 귀 떨어진 문을 슬그시르르 연다.
동지 팥죽
메주네 누님은 얼굴이 부순방 꾸들장에 뜬 메주 볼따구에 지라죽 깨진 뒤웅박에 훌렁 낯바닥 몰랑지가 죽은 듯기 벌씸벌씸 콧등사니 우아래 썩음털털 뻐드렁니가 삐쭘 누가 웃는 낯으로 실금 쳐다보기도 어려웠던 것인데
싸전머리 국밥집 돼지 대그빡 꼴랑지에다 쎗바닥 염통 간에다 창자구 긁어모다 막소주 되로 퍼주고 시한엔 동지 팥죽 맛이 참이 일품이어서 팥죽 새알에 훈김 입김이 모락모락 끊이질 않았던 것인데
포목장수도 소장수 개장수도 그릇전 옹기전 어물전 쩔룩배기도 너도 나도 메주네 서방이라고 서방 아닌 사람이 없다고 소문이 팥죽 끓듯 자자했던 것인데
장 보러 나온 메주네 동생 얼간이 꺼멍이놈 사람들이 그저 오나가나 어이, 쩌어기 느그 매형 간다 어이, 쩌기도 느그 매형 온다 이놈 저놈 죄다 매형이라고 얼릉 넙쭉 인사를 해라는 것인데
묵다 둔 쑥떡 같은 꺼멍이놈 불뚝 지게 작대기를 들고 으뜬 씨벌놈이 내 진짜 매형인디 그려? 앵기는 대로 다 때려 죽인다 메주네 누님 국밥집 찬장이고 상이고 주발이고 뭐고 눈에 불이 씨게 박살을 내버렸던 것인데
그때사 펄펄 가마솥 동지 팥죽을 뒤집어쓴 매형들이 아이고 뜨거라, 아이고 뜨거라, 부자지가 빠지게 내빼고 그 덕분에 엎어진 국밥솥에서 돼지 뼙다구를 물고 시장통 흰둥이도 누렁이도 좋아라고 발발 뛰어다녔던 것인데
봄이나 칭칭
봄이라고 칭칭
능수야 버들은 너울너울 춤만 추고
뜨거움에 겨워 지친 생각 하나 지우면
또다시 떠오르는 생각 두 개 칭칭
물은 흘러흘러 먼 데로 가고
짓무른 얼굴은 눈을 감네
별다방 미스별이
한 사람을 미치도록 사랑해서
미쳤다지
그게 뭐 미칠 일이라고
정다방 미스정이
죽도록 한 사람을 사랑해서
죽었다지
그게 뭐 죽을 일이라고
미치거나 죽거나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의 몫이지
별다방 미스별과 정다방 미스정이
한 사람을 사랑해서
얼씨구, 봄이 오고 말았네
귀산리 옛집
귀산리를 귀신리라고 불러보니
아흔 두 살 먹은 아버지가 오시네
여든 여덟 살 먹은 어머니가 오시네
살아 싸울만큼 싸운 것도 모자라
겅중겅중 뛰며 끌며 오시네
새끼줄에 목을 걸어 매고
죽는 거이 낫겄지야
쇠스랑으로 정지문짝을 찍어내도
떨어진 문고리조차 애절하지 않았네
한 포기 풀이라 생각했네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어머니는 어머니다운
징그럽고 역겨운 색깔을 짊어지고
병 들어 아픈 줄도 모르게 졌다는 것
그렁그렁 외롭게 말라갔다는 것
너무 격하지 않게
너무 사납지 않게
무성한 풀들이 키를 넘는 옛집에서
휘청, 가죽나무 뻣뻣한 잎사귀만
무너진 담장 밖을 바라보고 섰네
까악 까악
아침 감자탕집 감자 먹은 사내들 몇이
뜨거운 감자를 먹고
뼈다귀 풀어진 처녀 둘은 풀어진 눈으로
뼈다귀를 먹고
달그락 수저 놓는 소리도 잠시 코 풀어
물수건 먹먹 젖어드는 침묵
후우 먼지 바람 일어 날 밝아도 침침
처처에 잠든 것들 깨난 소리 후우
까막까치 까악 까악 까불대는 울음 깃들어
이빨 자국 점점 찍힌 감자 몇 알이 툭
세상 뜨거운 저주 이리도 깊게 식은 날
- 계간 《문예바다》 (2015. 여름)에서
임성용 - 전남 보성 생, 1992년 '삶글' 등단, 2002 전태일문학상,
시집 - <하늘공장>, <풀타임> 外
첫댓글 지방색이 짙어 낯설긴 하지만
친근함을 주면서도 재밌는 독특한 시 같아요..
글맛 님, 더운 여름 지치지 마시고
모쪼록 건강하고 시원하게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