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동천 산수유꽃
삼월 첫째 화요일은 경칩이다.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깬다는 절기인데 올해 겨울은 유난히 따뜻해 지난 입춘에 산간 계곡 알을 슬어 놓고 그렁그렁 울던 소리를 들었다. 봄이 오는 길목 얼음이 녹은 웅덩이에 알을 스는 녀석은 무논에서 흔히 보는 참개구리가 아니고 북방산개구리다. 겨울잠을 자고 나온 녀석은 겉가죽이 까무잡잡한데 영양가가 좋아 식도락가 즐겨 찾는다고 들었다.
날이 밝기 전 경칩 새벽은 엊그제 다녀온 여항산 미산령 고갯마루에서 본 복수초로 시조를 남겨 몇몇 지기에게 사진과 같이 보냈다. “가랑잎 이불 삼아 삼동에 움을 살려 / 가녀린 햇살로도 꽃대를 밀어 올려 / 봉긋한 봉오리 맺어 노란 꽃잎 펼친다 // 추위를 녹이려고 따뜻한 색을 입혀 / 외로움 달래려고 여럿이 무리 지어 / 봄기운 오롯이 담아 화사하게 전한다” ‘미산령 복수초’
어둠이 사라진 후 베란다 밖을 보니 전날 예보처럼 비가 왔다. 우천인 날은 도서관으로 향하는데 이전의 통상적인 일정과 다르게 아침 식후 우산을 펼쳐 쓰고 산책을 나섰다. 도계동으로 나가 동읍을 거쳐 대산 들녘으로 가는 버스 번호를 살폈다. 신전 종점으로 가는 마을버스 1번과 같은 시간대에 송정으로 가는 42번도 동시 도착이었다. 둘 가운데 송정으로 가는 42번 버스를 탔다.
차창 밖으로 동판저수지 갯버들은 수액이 오르면서 연녹색으로 물들어갔다. 들녘을 에워싼 먼 산봉우리는 구름이 걸쳐져 비가 오는 날 특유의 운무가 드러났다. 용강고개를 넘어간 버스는 용잠삼거리에서 주남저수지를 지날 때까지는 1번 마을버스와 겹치는 노선이었다. 신등을 지나면서 1번 마을버스 노선과 다른 주남지 들녘 한복판을 지나 용산에서 합산을 거쳐 죽동으로 내달렸다.
송정 종점을 앞둔 구산마을 입구에 이르러 내리려고 하차 벨을 누르려는데 기사 양반은 마지막으로 남은 한 사내 행선지가 궁금했던지 종점이 가까워졌다고 했다. 나는 도중에 하차 지점을 놓쳐서가 아니고 죽동천이 시작되는 구산마을 들머리서 내리려는 참이었다. 그곳을 시간이 반나절 허여된 내 도보 여정의 기점으로 삼았다. 넓은 옥토를 휘감아 흐르는 하천이 시작된 지점이다.
십여 년이 넘었을 듯한데, 당국에서는 길고 긴 죽동천 천변에 산수유나무를 조경수로 심어 세월이 제법 흘렀다. 해마다 봄이 오는 길목에 산수유나무는 화사한 꽃을 피워 눈을 황홀하게 한다. 늦가을이면 십 리가 족히 될 천변에는 꽃이 진 자리마다 빨간 열매가 조랑조랑 달려 눈길을 끌었다. 열매가 엄청나게 많아 겨우내 새들이 쪼아 먹어도 못다 먹어 이듬해 봄까지 남아 있었다.
차량이 한 대 다니질 않고 행인도 없는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걸으며 산수유꽃의 열병을 받았다. 창원 근동에서 한 곳에서 많은 산수유꽃을 볼 수 있는 곳이 대산 들녘 죽동 천변이다. 산수유꽃은 개화 기간이 제법 길고 비가 와도 꽃잎이 쉽게 떨어지지 않아 앞으로 보름 남짓 꽃을 더 볼 수 있을 듯했다. 아쉬운 점은 농민들이 비닐이나 스티로폼을 냇가로 흘려보내 눈에 거슬렀다.
산수유꽃이 핀 둑길 근처 농지는 벼농사 뒷그루로 비닐하우스 당근을 키웠다. 간간이 과수도 보였는데 블루베리를 대단지로 가꾸는 농원이 나왔다. 25호 국도에 이르러 가술로 가서 점심을 해결하고 식후는 면사무소가 이전해 간 자리 마을 도서관으로 올라갔다. 오후 2시부터 수행할 아동안전지킴이 임무를 앞둔 자투리 시간에 서가로 다가가 마음이 내키는 책을 뽑아 책장을 넘겼다.
정한 시간이 되어 파출소를 찾아 2인 1조 2팀은 각자 부여받은 임무를 수행했다. 비가 가늘게 오다 그치길 반복해 우산을 펼쳐 육교를 건너 북가술과 남가술을 둘렀다. 우체국에서 산업단지 배후에 들어선 아파트단지 인근 신설 면사무소 청사를 거쳐 찻길 건너 제동리로 갔다. 야트막한 언덕에서 넓은 들판을 바라보게 띠처럼 형성된 마을을 돌아간 고개를 넘으니 초등학교가 나왔다. 24.03.05
첫댓글 참 보람있는 날을 보내셨군요! 죽동천을 이 글을 바탕으로 함 찾아가 봐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