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3.28.수
요한 복음 8장 31-42절 | ||
“종은 언제까지나 집에 머무르지 못하지만, 아들은 언제까지나 집에 머무른다.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는 정녕 자유롭게 될 것이다.” | ||
자유 허찬란 신부 | ||
복음에 예수님은 당신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종은 언제까지나 집에 머무르지 못하지만, 아들은 언제까지나 집에 머무른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중동을 생각해보았습니다. 유일신이신 같은 하느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서로가 평화를 바라지만 그곳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공포의 화약고입니다. 하느님이 주신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땅에서 자유를 누리기보다는 참된 주인인 하느님을 앞에 두고 반목과 불신이 끊일 날이 없습니다. 자신들 모두가 유일신을 믿는다고 자신 있게 자부한다면 전쟁과 지역분쟁은 중단될 터이지만 그런 희망 섞인 세상의 염원은 우롱당하고 있습니다. 주인으로서의 참된 자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천 년 전에 하느님을 계시하시며 진리를 외치신 예수님도 “나는 너희가 아브라함의 후손임을 알고 있다. 그런데 너희는 나를 죽이려고 한다.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을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신 스스로 이 세상에 온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보내신 것임을 계시하시며 진리 안에 자유를 역설하셨지만 그들은 하느님이 보내신 분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분뿐만 아니라 그분의 말씀을 담아둘 마음의 자세가 전혀 없었습니다. 진리를 대면하면서도 종의 신분에 놓여 있다면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 ||
결혼 조건 | ||
차라리 혼자 살겠다고 한다는 것이다. 말을 뒤집어 놓고 보면 이것은 결혼의 첫째 조건이 집이다. 친구는 그 말을 듣고 뭐라고 말을 해줄 수가 없더란다. 나 역시 참 씁쓸하기만 했다. 그리고 문득, 내가 결혼했을 때의 아스라한 기억들이 가슴속을 파고든다. 벌써 20년 전이다. 달동네 방 한 칸 셋집이었던 시댁, 학생이었던 남편, 밑으로 시동생들, 홀시어머니에 맏며느리까지. 어디를 봐도 만족할 만한 조건 하나 없는 찢어지게 가난한 살림, 그때 내 결혼조건은 사랑이었다. 부부 사이에 사랑만 있으면 어떤 어려움도 헤쳐나갈 수 있다는 확실한 신념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최소한 20평 정도의 아파트를 해주어야 아들 장가를 보낼 수 있다고 한다. 게다가 요즈음 아가씨들은 전세로 사는 것도 싫어한다고 한다. 집값이 너무 비싸기 때문에 집 장만하려고 궁상스럽게 살기 싫다는 것이다. 나를 더 씁쓸하게 하는 것은 장모될 사람조차도 집 없는 남자한테는 딸을 시집보내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친구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갑자기 두 아들 장가보낼 일이 걱정이 되었다. 왜냐면 나는 두 아들 집 장만해줄 능력도 없고, 있다고 해도 해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햇볕도 들어오지 않는 단칸방에서 가난하게 살았던 때, 그 때 얼마나 행복했던가! 좋은 집을 가지고 사는 지금보다 훨씬 행복했다. 정말로 행복했었다. 아들들에게 작은 행복의 소중함을 아는 여자를 고르는 지혜를 가지라고 가르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으로 벽시계 하나를 사다 걸어 놓고도 행복해할 줄 아는 여자를 만날 수 있기를 하느님께 기도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박 율리안나 | 부산시 사하구 당리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