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자신을 허물어야 한다. 하늘의 성전을 세워야 한다. 우리가 할 일은 하나이다. 보이는 성전을 헐어버리고 보이지 않는 성전을 세우는 것. 그것이 삶이라면 그래서 살만하다. 적어도 자기가 할일은 분명히 알고 있으니. 이것이 내가 매일 새벽을 깨우며 내 자리에 앉는 이유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일생 던져지는 삶의 질문이다. 그 답을 얻기 위해 여기까지 걸어왔다. 날마다 치열한 삶의 질문을 던져왔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어떻게 돌아갈 것인가? 그래서 수행자들은 날마다 자기를 벗는다. 자기를 벗어 죽음의 강물에 던진다. 광야로 나아가 소멸의 하늘을 바라본다. 거룩한 물에 잠기며 죽음의 세례를 받는다. 이것이 그들의 삶의 고백이었다. 말만이 아니라 삶으로 그것을 살았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 이것이 아니라면 모든 것이 거짓이다. 그를 따르고 그를 믿는다는 것이. 무엇을 믿는 것인가? 그는 성전을 헐라고 했는데 너의 몸으로 다시 성전을 세우라 했는데 그를 따른다는 사람들이 높은 성전을 지으며 거기에 무릎을 꿇는다. 복을 주시옵소서! 삶을 지켜주옵소서! 진정한 복은 성령의 복이며 구원의 삶은 성화의 삶이다. 날마다 자신을 쳐서 하늘에 복종하는 삶이 아니라면 백년을 산들 그 삶이 무엇을 위한 것인가? 그래서 그는 피맺힌 절규를 하는 것이다.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리라. 그는 죽어야 사는 것을 믿었다. 하루를 더 연명하기 위해 자신을 욕망에 팔지 않았다.
첫댓글하나님의 꿈을 꾸고 그리스도의 삶을 따라 오늘도 설산을 오르시는 님! 라삐 쥬시아의 말처럼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너는 왜 모세의 삶을 살지 않았느냐? 너는 왜 아브람의 삶을 살지 않았느냐고 묻지 않을 것이다. 다만 너는 왜 너, 쥬시아의 삶을 살지 않았느냐고 물으실 것이다."
첫댓글 하나님의 꿈을 꾸고 그리스도의 삶을 따라 오늘도 설산을 오르시는 님!
라삐 쥬시아의 말처럼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너는 왜 모세의 삶을 살지 않았느냐?
너는 왜 아브람의 삶을 살지 않았느냐고 묻지 않을 것이다.
다만 너는 왜 너, 쥬시아의 삶을 살지 않았느냐고 물으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