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장사지 신우대 그 천년의 소리를 찾아
2007. 03. 25
아내와 둘이서
경주남산은 동서 4km, 남북 10km의 거대한 바위산에 40개의 계곡과 100 여곳의 절터, 80여구의 석불, 60여기의 석탑이 산재해 있는 노천 박물관으로 2000년에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재된 불국토이다. 남산을 오르지 않고는 경주를 봤다고 할수 없을 만큼 문화적 가치와 예술미가 뛰어난 문화재들이 산재해 있어 40여개의 다양한 답사 코스가 있다.
그중에서 이번에는 남산의 계곡중 그 길이가 가장 길고 깊으며 볼거리가 다양할 뿐만 아니라 산행의 묘미도 한껏 느낄수 있는 용장계곡으로 정하고,코스가 짧은지라 일요일 느긋한 시간에 출발하였다.
산행코스 : 용장1리 기와집 밥상 입간판 - 주차장 - 약수터 - 약사여래좌상 - 설잠교 - 용장사지 - 마애여래좌상 - 삼륜대좌불 - 삼층석탑 - 연화좌대- 이영재 - 샛길 - 용장계곡 상류 - 쌍봉 능선 - 고위봉 - 공룡능선 - 천우사
산행시간 : 오후 2 : 20 ~ 6 : 20 (4시간)
산행지도 : 부산일보 산&산 101회 기사의 개념도
산행들머리는 언양 봉계쪽에서 올라간 국도가 신설된 4차선 도로를 달리다 용장방향으로 빠지는 신호대에서 우회전해서 작은 다리를 건너고 ,구도로를 만나면 다시 좌회전해서 삼릉 방향으로 올라가다 용장1리의 기와집밥상 입간판이 보이는 골목으로 들어서면 된다. 골목길은 겨우 차가 비켜갈 만큼 좁은데 안쪽엔 두곳의 작은 주차장이 있지만 복잡할땐 입구에 주차하고 들어가는것이 훨씬 편하다. 두곳의 주차장중 첫번째 곳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관리하면서 1000원씩 받고, 두번째는 차키를 맡겨야하며 2000원이다. 주차후에 왼쪽 계곡을 끼고 5분 정도 오르면 산불 감시초소를 만나게 되고 ,직진하면 천우사 절로 가는길이라 오늘 산행길은 개울을 건너서 산자락으로 이어가면 된다. 이 삼거리에선 이곳에서 생산된 미나리를 팔고 있고 맛좀 보라는 아주머니의 성화에 못이긴척 먹어보니 제법 향이 진하고 부드러운게 용장골의 맑은 물맛을 느끼게 한다.
개울을 건너 산행길에 접어들자 아침에 올라간 사람들의 하산 행열이 이어져 좁은 등로에 비켜서기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듯 왼쪽 바위틈새의 약수터가 보이지만 초입길이라 그냥 오름길을 재촉한다. 개울을 오른쪽에 두고 거의 평지 수준의 길을 걷게 되는데 이곳은 따뜻해서 인지 제법 쑥도 많고 개울의 물소리도 정겨운 리듬을 이어간다.
잠시후엔 무속,취사,목욕을 금한다는 내용의 플랑카드와 팻말이 지켜서고 계곡엔 철조망을 친곳이 나타는데, 천우사로 해서 공룡능선으로 바로 오르려면 이계곡을 건너면 바로 연결되고 오늘의 하산지점도 바로 여기이다. (마지막 사진 참조)
이 분기점에서 5분정도 오르면 오늘의 첫번째 부처님을 만나게 되지만 부처님 친견이 그리 수월한건 아니다. 자칫 길을 놓치기 쉬워서 왼쪽으로 긴장의 시선을 이어가다보면 작은 개울이 보이고 ,개울 오른쪽으로 희미한 등로 흔적이 보인다. 모두가 그냥 지나 치는데 우리만 옆길의 숲속으로 빠지니 지나는 사람들이 몇번씩 힐끔 거리는게 오히려 더 구경거리다.
약사여래좌상은 다른 남산의 많은 부처같이 역시 목이 없다. 약사여래불이니 망정이지 얼마나 아프고 고통 스러울런지. 용장계곡의 절골을 혼자 조용히 말없이 지키는 모습에 합장하곤 침묵의 묵언정진을 깨트릴까 서둘러 돌아 내려온다.
다시 10분 정도 길을 이어가면 용장계곡 최악의 흉물인 설잠교가 나타난다. 보기에는 이쁘게 치장하고 이름도 거룩하게 김시습의 법명을 따서 설잠교라 지었지만 도대체 무슨 배짱 무슨 심뽀로 여기에 이런 인공 구조물을 설치해야 하는지 모를일이다.
설잠교를 건너면 바로 용장사지로 오르는 된삐알이 시작되는데, 오르막을 오르다보면 대나무숲 앞에서 두갈래 길이 나눠진다. 좌측은 대나무 숲으로 들어가고 우측 길은 능선을 따라 올라 가서 나중엔 만나게 되지만 이곳에선 꼭 좌측의 숲길을 따라야한다.
조릿대 혹은 신우대(울산말로 '시늘대 '라함)가 우거진 대숲길은 작은 터널을 만들고 갑자기 시원한 바람과 함께 댓잎의 사각거리는 소리가 귀를 간질고 들어온다. 댓잎의 내음도 진내나는 콧속으로 빨려들어 오고. 뒤따르던 마누라는 아예 올라올 생각을 않고 '여기 너무 좋다'며 걸음을 멈추고 섰다.
" 용장골 골 깊으니 오는 사람 볼 수 없네 가는 비에 신우대는 여기저기 피어나고 비긴 바람은 들매화 곱게 흔드네 작은 창가에 사슴 함께 잠 들어라 낡은 의자엔 먼지만 재처럼 앉았는데 깰 줄 모르는구나 억새 처마 밑에서 들에는 꽃들이 지고 또 피는데 " (김 시습의 용장사 詩 )
아! 그렇다. 신라 천년의소리. 잃었던 그 소리였다. 잊었던 그 냄새였다. 남산을 수없이 다녀도 이 감흥을 이느낌을. 오늘에야 신라의 소리를 신라의 냄새를 나는 찾은 것이다. 기쁜인연 감격의 순간 이었다. 동해바다에서 건져올린 신라의 보물. 만파식적(萬波息笛)도 이소리였을까? 한참을 감격에 젖어 가슴속 깊은 곳에서 솓아 오르는 뜨거운 희열을 맛보았다. 그리곤 그 소리와 내음을 기억의 세포마다 심어 놓았다. 신라인과의 만남이요 대화였던 것이다.
신우대숲이 끊나는 지점엔 'T'자의 갈림길과 만나는데 왼쪽길은 용장사지터 앞마당과 연결되니 절터를 먼저 밟는다. 용장사지는 절의 축대만 남아 있고 앞마당엔 묘지 두기가 자리를 차지해 버렸다. 다시 길을 돌아 나와서 직진을 하면 신우대숲 시작점에서 나눠진 길과 만나서 로프를 타고 오르는 길로 연결된다.
로프를 타고 오르면 바로 두 분의 부처님을 만나게 된다.
마애여래좌상. 남산에서 만나는 가장 씩씩하고 아름다운 청년기의 마애불로 어디하나 흠잡을데 없이 수려하고 세련된 불상이다. 자연스런 표정과 크지않는 1.62m의 등신불로, 새겨진 위치가 우리 눈의 높이와 같기에 눈맞추기가 편해서 불상의 표정을 온전히 읽을수 있다. 아니 우리 마음의 눈을 바로 들킨 것 같은 착각에 바로 용서의 예를 갖추게 된다.
삼륜 대좌불은 마애불이 새겨진 바위앞의 마당에 탑처럼 서 있는것으로 머리가 잘려 나갔지만 용장사의 주존불이다. 옛날 '대현 스님이 이불상을 돌며 염불을 외우면 석불도 스님을 따라 얼굴을 돌렸다'는 이야기가 들려 오지만 머리를 잃어버린 지금 석불의 표정을 읽을 수가 없다. 중생의 번뇌를 없애는 부처님의 몸과 입 그리고 뜻이 삼륜이랐는데 아마 그 불두도 용장골 어딘가 묻혀서 108번뇌를 씻어주고 있을 것으로 믿는다.
이 삼륜불은 그 기하학적 특색이 석굴암 본존불의 구도 만큼이나 기발하고 정확하다. 수미산을 형상화 한 것이라는 불상대좌는 탑모양으로 1,2층의 높이는 같고 3층이 약간 낮지만 반대로 원반석의 지름은 2,3층이 같고 1층의 것만 넓으며 3층은 연화문 장식으로 변화를 주고 있는 것이다. 마치 피사의 탑 같이 기울어 보이는 이 불상이 끄떡않고 지켜내는 수수께끼가 바로 이 힘의 균형에서 해답을 얻을 수 있다.
용장사는 경사진 곳의 좁은 곳에 자리한 까닭에 잡풀 무성한 아랫쪽에 대웅전을 두고 이곳에 두 부처를 모셨으며 제일 위쪽엔 삼층석탑을 배치한 특이한 형태이다. 이러한 용장사는 신라 유가종의 시조인 대현 스님이 주석한 이래 단종 폐위 사건이후 김시습이 출가하여 7 년을 머물면서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인 금오신화를 집필하였으며 조선 말까지 절이 유지되었다한다.
위 사진은 두 부처와 소나무 그리고 맑디 맑은 하늘이 멋들어지게 어울린 장면으로 여기서 마애불 앞 소나무를 돌아 들어가면 삼층석탑 가는 길이 열린다.
용장사지 삼층석탑. 이는 남산의 석탑 중에서 가장 좋은 자리에 앉았기에 가장 명당으로 꼽힌다. 금오봉과 고위봉 사이에 위치하여 가장 눈에 잘 띄며 보는 장소나 각도에 따라 그 모습이 달라 보이기고 언제 어디서 보아도 신비롭기만하다.
삼층석탑은 그자리 만큼이나 그 아름다움과 아이디어가 빼어나다. 남산의 바위 반석 을 조금 깍아서 탑의 하단으로 하고 상단과 탑신을 올렸기 때문에 남산 전체 아니 신라 전국토가 하나의 탑이되고 세상에서 가장 큰 탑으로 기네스북에 오를 만한 것이다. 이 대담하고 기발한 착상이 신라의 그 찬란한 문화를 이루게 한 밑거름이 되었을걸로 믿는다.
탑의 1층 탑신에 비해 2,3층이 급격히 줄어드는 모습을 통해 아래 절터에서 이 자리로 오르며 보는 비례미를 살리는 시각적 미를 노렸고, 지붕돌의 낙수면을 완만하고 끝에서 살짝 들어 올리는 각도는 가벼운 상승감을 느끼게 한다.
석탑이 내려다 보이는 전망좋은 바위에서 앞으로 가야할 고위봉의 지형과 용장골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조망한 뒤 떨어 지지않는 발걸음을 옮겨가면 곧 바로 금오봉으로 이어지는 임도를 만나게 된다. 임도를 가로 질러 정면의 능선으로 올라서서 오른쪽으로 이어가면 삼화령에 닿게되고 남산에서 가장큰 대연화대를 만날수 있다
대연화대는 연꽃을 새긴 연화좌대만 남아 있고 ,지름이 2m 인 좌대규모로 봤을때 엄청 컸을 불상은 흔적도 없다. 다만 임도 공사를 하면서 잘려 나가지 않고 보존된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여긴다.
그러나 카메라에 연화대를 담으려고 랜즈를 보는 순간 아~ 이걸 어쩌나 !!!!! "그래 처음 부터 불상은 아예없을수도 있었겠다." 연꽃무늬 좌대 위에 고위봉을 얹고 또 어렴풋한 영남알프스의 장대한 병풍능선을 보는 순간 '이 좌대는 올려 놓고 싶은 모두를 올릴 수 있고 ,본 만큼, 느낀 만큼 ,깨우친 만큼 올릴수 있는 저울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번개치듯 스쳐가는 것이다. 자기 그릇의 크기 마음의 도량을 재어 보는 신라의 저울일게다. 참 엉뚱한 퍼즐이라며 혼자 웃었지만...
연화대를 뒤로하고 다시 임도로 내려서면 그냥 스쳐가기 쉬운 작은 팻말이 눈에 들어온다. 남산에 심은 차밭에 대한 안내글인데 금오봉 방향의 임도 왼쪽 언덕 아래가 차밭이다. 사실 여기엔 차 뿐만 아니라 약초들도 많이 나서 가끔 나물 뜯는 산객들이 몰래 찜해두는 곳이다.
다시 걷기 싫은 임도를 따라 내려오면 위 사진의 표지판을 만날 수 있고 곧 바로 산길로 접어 들게되며 2분 정도의 거리에 고개안부인 이영재에 이른다.
이영재에선 직진하여 칠불암,봉화대를 거쳐 고위봉을 향하는 길과 오른쪽 용장계곡으로 바로 내려 서는 길이 있는데, 이 두길 사이에 표지판에도 지도에도 없는 가운데 길이 제법 넓게 보인다. 보통 등산객이 봉화대 능선으로 다니기 때문에 이길은 사람의 흔적이 별로 없고 진달래, 생강나무 등이 자지러지는 예쁘고 조용한 샛길이다.
당연히 맨질거리는 능선길과 사람 냄새 많은 일반로를 버리고 샛길로 빠져나간다. 이길은 용장골의 상류부에서 백운재로 이어 가는 계곡길과 만나게 되고 계곡길을 따르다보면 다시 칠불암을 가기위해 연결되는 재인 안부로 오르는 길을 왼쪽으로 열어준다. 그렇지만 또다른 길찾기를 좋아하는 끼를 주체하지 못하고, 계곡길 만나는 지점에서 오른쪽 으로 개울을 살짝 넘으면 용장사지 오를때 보다 더 길고 많은 신우대 군락지를 만나고 이어지는 오르막 끝에선 쌍봉에서 고위봉으로 향하는 오름길과 연결된는 멋진 길을 접할수 있다.
고위봉으로 오르는 길은 재미있는 바위길의 연속이다.
그런데 신기한것은 금오봉쪽에 그많던 바위 부처가 고위봉 쪽엔 구경하기 힘들다. 금오봉에 비해 고위봉은 아직 자연 그대로의 남산 모양으로 유지되고 있으며 바위부처도 아직 바위속에 감춰진 상태이다. 남산은 바위나 나무에 빌던 우리의 샤마니즘에 불교가 들어 와서 융합되면서 평소에 빌던 그 바위에 바로 부처를 새겨 넣은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부처를 새겨 넣은 것이라 하지 않고 숨은 부처님을 찾아 불러 낸것이라는 표현이 더 적당할 것 같다. 그렇다면 고위봉을 둘러싼 바위들은 아직 애기부처 그대로 이다.
헬기장을 지나 고위봉을 오른 뒤엔 다시 되돌아 나와야 하는데 헬기장으로 다시내려 와서 갈림길을 매우 조심해야한다. 공룡능선과 쌍봉으로 나눠지는 곳은 사진에서와 같이 표지판이 없고, 곧바로 길을 따르다 보면 쌍봉쪽으로 내려 서기가 쉽다. 급경사 내리막길 내려서는 갈림길에서 정면에 낭떨어지 같은 바위를 넘으면 곧 바로 눈앞에 공룡능선이 펼쳐지고 등로가 열리게된다.
공룡능선은 10개정도의 암릉구간에 8개의 봉우리를 넘게되는 정말 재미있는 코스로 , 굵은 밧줄이 설치되어 있고 크게 위험한 구간도 없다. 다만 남산은 많은 사람들이 다니지만 시그널을 달 수 없고 혹 달아도 모두 떼어 내기 때문에 갈림길에선 아쉬울때도 있다. 시그널이 달릴수록 사람이 안다니는 길이라 보면 된다.
남산은 답사 위주의 쉬어가는 산행길인데 이 공룡능선 만큼은 등산의 묘미도 느낄수 있다. 하산길의 마지막은 천우사로 연결되는데 천우사 앞길의 도로길 보다는 용장골로 내려서서 들머리길을 만나 는 것이 좋다. 개울에 발도 담구고.
용장계곡을 뒤로하고 나서는 길에선 아직도 용장사지 신우대 그 천년의 소리가 만파식적 피리소리되어 계곡을 넘쳐 흘러 석양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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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산길님, 매우 좋은곳 다녀오셨군요.. 합장하는 마음으로 한줄씩 읽으니 어느새 천년 역사의 소리들이 귓가에 맴돌듯 하며 웅장하고 신비스런 부처님 불상 혹은 바위를 보노라니 가고싶은 호기심이 생기게 하구요.. 울 대한백리에도 천년고도의 소리가 널리 퍼지길 기원하며.. 수고하셨습니다^^
산길님 가족분과 좋은 곳엘 다녀오셨군요. 저도 오년전인가 가족을 데리고 용장골 다녀온 기억이 생생합니다. 작은놈을 등에업고 곡예를 즐기면서 말입니다. 어릴적에는 남산 부처들 목이 잘린게 저는 일제시대 일인들의 짓이라 생각했었는데 알고보니 조선시대 불교를 탄압코자한 유림들의 짓이더군요. 목이 없는 부처들을 볼적마다 참으로 가슴이 시립니다.
남산에서 보면 경주가 쪽배 형태로 생겼습니다. 해서 신라땐 봉황이 내려앉을 장소로 왕릉 같이 큰 봉황대를 곳곳에 만들었죠. 건데 일본놈들이 이배를 가라앉힐 목적으로 경주 곳곳에 깊은 우물을 팠습니다. 남산도 당연히 수몰되고. 물론 해방후 모두 매립했구요. 봉황대와 우물의 아이너립니다.
사진과 기록으로 남겨주시니 현장감이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저도 지난번에 갔다 왔었는데 좋았습니다.
예 전에저는 산길님이 산행하신 역코스로 산행한기억이 나네요.저는 그냥 무턱대고 아 좋다만 외쳤는데 산길님의 자세한 설명으로 많은것을 배우고 갑니다.
석탑과 삼륜대불의 미적 감각은 오르면서 또 뒤돌아 보면서 여러각도로 보는게 제맛이구요, 공룡능선은 오름길이나 내림길 모두 좋습디다.
한때는 자주 갔던 곳이지요. 만파식적 피리소리...옛날 생각이 떠오릅니다.
목욜하루 내내 통도사 佛을 마음에 담고 채색하며 붓으로 장엄하고 왔는데~ 백리산방에도 부처세계가 펼쳐졌군요~ 좋은 길 안내해주셔 감사드리며, 시간내어 애들하고 이길을 함 가보고 싶으며 ,감사히보고 갑니다
산에 있는 부처도 참 좋습니다. 안가보셨으면 함 다녀오세요. 힘들지도 않고 애들도 좋아합니다. 칼국수에 파전도 드시고.
'대 연화대에 불상이 없었을 것...'이라는 산길님의 통찰력은 산길님만이 가진 자연에 대한 깊은 관심의 발로라고 생각합니다. 산길님의 안목이 부럽습니다.
미 투!
송강님. 깊은 관심이 아니고 객끼겠죠.
산길님 초보자도 찾아갈 수 있는 가벼운 산행길 2탄이네요 또 실천해 봐야지... 쌩유~~ 잘 읽어 놓았다가 아는척 해야지 ㅎ ㅎ
옛 신라의 향기를 산길님의 글을 통해 한 번 느끼고 갑니다![~](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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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님 좋은곳 다녀오셨네요, 천년의 고도 불심이가득한 경주 산길님의 멋진 글솜씨와 사진을 보면서 잘 다녀온것과 같읍니다 . 감사합니다.
산길님의 산행 모습이 눈에 선 합니다요. 도란도란 신라천년의 역사속으로 빠져들듯 여유있는 산행, 저도 몇번이고 걸었답니다. 석불을 세기며 부처를 따라 살으셨을 신라인의 삶을 떠올리며... 아내 손잡고 또오르고 싶어집니다.
잠시나마 천년여 이전 신라인의 마음이 되어봅니다 ..
천년! 신라!....산길님의 후기글로 인해.... 마음이 절로 산행한 기분드네요^^ 말씀대로..가족들과 봄꽃구경가야 겠어요^^......후기글과 사진들 잘 보고 갑니다... 산길니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