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랴 선지자는 백성들에게 봄비가 제때에 올수 있도록
하나님께 소낙비를 내려 달라고 간구하면
하나님께서 비를 내려 주셔서 밭의 채소들에게 주신다고 하신다.
봄비가 제때에 내리지 않고 한 보름만 늦게 내려도
그 지역에서는 커다란 재앙을 만나게 된다.
사막에서 시로코라는 열풍이 불어 오게 되면 대부분의 곡식이
말라 죽게 되기 때문에 봄비를 제때 내려 달라고 구하는 것이다.
이 말씀은 필요한 것을 간구하라고 하시는 말씀인데
요즈음 우리들은 우리가 꼭 필요하지 않은 것도 간구하면
들어 주실줄 아는 사람들이 더러 있는데
그건 욕심으로 구하기 때문에 들어 주실리가 없다.
아이가 큰 돈을 달라고 하면 달라고 한다고 다 주는 부모가 없듯이
달라고 하는 그 욕심으로 인하여서
멸망의 길로 갈수도 있으니까 그건 주고 싶어도 못 주신다.
안 주시는 것도 우리의 복임을 알아야 할것이다.
여기서 이 비는 생업에 아주 중요한 비이기도 하지만
농사 짓는데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 비가 제 때에 내려 주는게 복인데
비가 너무 많이 내려도 안내려도 살아가기가 힘들어 진다.
그래서 이 비를 내려주는 신들이 있다고 하여 우상 숭배의 원인이 된다.
바알신의 정자에 비를 내리는 씨앗이 있으므로
음란한 성 행위를 하게 될때 비를 내려 주신다고 믿었기 때문에
비를 내려 달라고 빌고 또 비는 것이다 그 신이 가나안의 신 바알이다..
원래는 하나님께서 내려 주셔야 하는 것이 마땅하거늘
그들은 성행위의 즐거움에 빠져서 우상에게로 달려가니까
스가랴 선지자는 진실로 비를 내려 주시는 하나님께 간구하라고 한다.
2절에 보면 드라빔이 나오는데..
이 드라빔은 가정의 수호신으로 숭배 되었던
사람 모양의 작은 우상이기도 한데
간혹은 사람 크기 모양의 커다란 모형으로 만들기도 했다.
다윗의 아내 미갈이 아버지인 사울이 사위를 죽이러 올때
드라빔을 다윗이 누운것 처럼 잠자리에 눕혀 놓고 속였던 것 같이
큰 모양의 드라빔도 있고 아주 수호신으로 작은 드라빔도 가지고 다녔다.
이 드라빔으로 점을 치기도 했고 상속권의 증표로 사용 되기도 했다.
복술자는 진실하지 않은 것을 보고 거짓 꿈을
말하고 다니면서 위로를 하는데 그것은 모두 헛된것들 뿐이며
백성들을 양 같이 유리 하면서 목자가 없으므로 곤고를 당하나니...
이 말씀은 복술자들이 거짓 예언을 하며
백성들을 괴롭게 하는 자들인데
백성의 고통은 생각지도 않고 자기 잇속만 챙기는
유다 백성들의 지도자급 사람들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유다 백성에게 주시는 말씀이다.
그들이 징계를 받았던 이유 중에 하나가
하나님을 버리고 아니 하나님과 우상을 함께 섬겼기 때문인데
그들이 섬겼던 가나안의 우상 중에 가장 큰 것은 바알 신이고
그다음으로 널리 퍼진 것이 바로 가정의 수호신인 드라빔 이었던 것이다.
바알신은 비를 내리게 하는 신이니 비를 구하고 싶을때는
가나안의 바알신에게 비를 구했고
가정의 대소사를 위해서는 사람들이 가정에서 섬기던 수호신인
드라빔을 조상들의 신처럼 섬겼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것들은 다 허탄한 것들이며
복술자는 귀신이 주는 거짓 환상을 보고 계시를 받았다고 하며
꿈을 꾼 것으로 점을 치는 자들이라고 하시면서
백성들을 이끌지 않고 방치하며 귀신놀이들이나 하고 있으니
그들에게 비를 구하지 말고 하나님께 구하라고 하신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가랑비가 아닌 소낙비를 내려 주셔서
모든 각 사람들에게 풍성한 열매를 거두게 하실것이라고 말씀 하신다.
3절에 보면...
목자들에게 진노 하셨다고 하시며 숫 염소들을 벌하신다고 하신다.
숫 염소들은 그 뿔로 다른 짐승들을 들이 박아 버리는 습성이 있어서
못된 통치자들을 숫 염소로 표현을 하신 것 같다.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잘 돌보라고 그들에게 권세를 주셨는데
그들은 권력을 자기 마음대로 휘두르며 자신들의 잇속만 챙겼던 것이다
백성들이야 죽전 말던 자기들 배만 부르면 땡이라는 마음으로...
그렇게 자기 것만 챙기고 권력을 유지 하려고 하는 못된 통치자들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여 그들이 징계를 받을 것이라고 하시면서
그들을 싹 다 치워 버리고 하나님께서 친히 유다 백성들을 돌보시겠다고 하신다.
유다 백성들로 하여금 전쟁터에 나갈때 준마와 같이 하시겠다고 하신다.
현재 그들은 못된 통치자들로 인해서 소와 나귀 처럼 버림 받고
천대 받으면서 불쌍하고 가련한 사람들이 되어 있지만
하나님께서 보호하시면 전쟁터를 달리는 준마 같이 되겠다고 하신다.
4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불쌍하고 연약한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서
그를 보내 주시는데 그 분이 바로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님께서 친히 모퉁잇 돌이 되어 주시고 말뚝이 되어 주시고
싸우는 활이 그에게서 나오고 권세 잡은 자가 다 일제히 그에게 나와서
싸울때에는 용사 같이 거리의 진흙 중에 원수를 밟을 것이라..
여호와가 그들과 함께 한즉 그들이 싸워서 말 탄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리라..
싸우는 활은 모든 대적을 물리치고 승리자로 오시는메시야를
비유 적으로 표현하는 말씀이고..
권세 잡은 자는 앞으로 강림하여 악한 세력과 싸워 이기는 메시야를
예표 적으로 일컫는 말씀이다.
이스라엘에서는 나무 말뚝과 못으로 천막을 치거나 벽에 박아
옷이나 물건을 걸어 두는데 사용 했었다.
모퉁이 돌은 벽과 벽을 연결하여 건물이 튼튼하게 서게 하는 것이고
말뚝은 천막을 든든히 서게 하는 것인데 이렇게 비유로 하신 말씀은
하나님 나라의 모든 힘과 능력을 그들에게 부어 주시겠다는 말씀이다.
5절에 보면 싸울때에 용사 같이 거리의 진흙 중에 원수를 밟을지라..
지금은 진흙과 같은 고통 속에서 힘겹게 살아 가고 있지만
장차 하나님의 능력을 받게 되면 진흙탕 같은 시련이 오고 고난이 와도
쳐 들어오는 적군을 밟으며 당당하게 나가는 용사 같은 자들이 될것이라고 하신다.
6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들을 견고하게 하시고 요셉 족속을 구원 할지라
여기서 유다 백성은 남 유다를 말씀하시고 요셉 족속은
북 이스라엘 지파 에브라임을 말씀 하시면서 다 통틀어 한 민족이 되길 원하신다.
북 이스라엘이 앗수르로 인하여서 혼혈족이 되어 버렸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내버린 일이 없었던 것 같이 될것이라 말씀 하시면서
그들을 긍휼히 여겨 구원하여서 그들을 데려 오시겠다고 말씀 하신다.
이 말씀은 북왕국 이스라엘은
이미 혼혈 족이 되어서 이방인이 된 사람들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방인이 되어 버린 이스라엘의 사마리아 사람들도
불쌍히 여겨서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가리지 않고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은 누구나 할것 없이 다 구원 하시겠다는 뜻이 된다.
하나님의 사람이 된 그들은 에브라임의 용사 같이 되어서
적을 물리치고 축배로 포도주를 마심 같이 마음이 즐거울 것이요
그들의 자손들은 그 역사를 보고
기뻐하며 여호와로 말미암아 마음에 즐거워 하리라.
8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향하여 휘파람을 불어서 그들을 모은 것은
그들을 구속 하였다는 증표이고 전에 보살핌을 받아 번성하였던 것 같이
그들 주변에 울타리를 쳐서 항상 돌보시고 번성하게 하시겠다는 말씀이시다.
9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구별하여 복을 주신 사람들을 여러 백성들 가운데 흩으려니와..
여기서 흩으신다는 뜻은 버리기 위해서 흩으신다는 것이 아니라
씨를 파종 하듯이 흩으시듯이 그들을 세계 곳곳에 다 뿌리신다는 말씀이다.
그들이 먼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고 하나님을 기억하며 살다가
그들의 자녀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즉 하나님께로 돌아 오게 하신다고 하신다.
주님의 복음이 세상 땅끝까지 전파 되리라 하시는 말씀의 예언이다.
10절에 보면..
그들을 애굽 땅에서 돌아오게 하며
그들을 앗수에서 부터 모으며 길르아 땅과 레바논으로 그들을
이끌어 가리니 그들이 거할 곳이 부족하리라..
이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애굽이나 앗수르, 바벨론에서 다 모아 들이실 때에
예루살렘에는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져서
길르앗 땅과 레바논 땅으로 이끌어 가신다고 하신다.
그 땅은 이스라엘의 국경 지대 이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을 그곳으로 이끌어 가신다는 것은
그곳까지 다 하나님의 말씀이 전파 된다는 것을 예언 하시는 것이다.
11절에 보면..
그러나 그들이 고난의 바다를 지나 갈때에 바다 물결을 치리니..
그들이 애굽의 나일 강과 같이 풍성함을 자랑 했을때에도 그 물결을 치셔서
바다를 가르고 애굽에서 탈출하게 하셨던 것 같이
또 교만한 앗수르가 그 풍성함을 자랑하며 의기 양양 했을때에도
어디 한번 우리를 쳐 보라고 의기 양양했던 앗수르의 교만도 낮아지고
유프라테스 강 바닥을 마르게 하셔서 멸망 시켰던 바벨론도 규가 없어지리라..
규는 지도자의 지팡이인 왕권인데 나라가 멸망 당함을 뜻한다.
즉 그 나라들 같이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고 백성들을 괴롭히고 있는
숫 염소 같은 못된 통치자들도 다 멸망 당하고 말것이라고 말씀 하신다.
12절에 그들이 나 여호와를 의지하여
견고하게 되리니 그들이 내 이름으로 왕래 하리라.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찾고 부르 짖은 자들이 신앙을 회복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이런 복을 주셔서 견고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왕래하는 자들이 될것이라고 말씀해 주시고 계신다.
이것은 1절에서 스가랴 선지자가 하나님께 구하라고 했는데
그 구하라는 기도의 응답이 바로 이것이 된다...
즉 하나님과 동행하며 왕래하는 사람이 된다는 뜻이 된다..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과 동행하는 우리가 되어야 복된 삶을 누릴수 있다.
왜 이것이 복된 삶일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악한 마음을 버리라고 하신다..
다른 우상들은 악한 마음이든 선한 마음이도 다 상관 없으니 내게로만
오라고 하면서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어서 사람들은 편하다 하고 그길을 가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악한 마음을 버리고 선한 사람으로 살라고 하신다.
그런데 우리 안에는 악이 항상 존재하고 있으므로 양심이라는게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거부감을 느끼게 되고 힘들어 지게 되는데
하나님께서는 아픈 그곳을 자쭈만 찌르면서 회개하라고 하신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것이 부담 스럽고 살아가는데 걸림돌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악을 인정하고 그것이 고개를 들지 못하도록 눌러서
선한 마음이 하는 일을 방해 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바라시고 원하시는 것이고
인간은 또 이웃을 사랑하며 함께 공존하며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 세상을 무인도 처럼 나 혼자 만이 살아 갈수 있는 세상이 아니길래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