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관계 4
"그동안 고생하셨습니다. 잠시 신분대조를 하겠습니다. 이름은?" "조진복입니다." "생년월일은?" "63년 11월 13일입니다." "죄명과 형기는?" "폭력..2년입니다." "이쯤하고...이제...이곳에 그만 오셔야지요...나이도 있는데... 사회생활을 열심히 하길 바랍니다. 그만 가셔도 됩니다." 보안계장의 뒷말을 등에 쥐고 나는 육중한 대구교도소 철문을 나서게 된다 . 11월인데 새벽공기는 겨울바람과 맞먹는다 . 바깥공기는 내가슴의 비장함을 쉽게도 꺼내놓는다. 다시는 이곳에 발을 담그지않겠노라고 자신과의 수없는 다짐은 매번 공염불에 불과했었다. 건달이 직업으로 손색이 없다고 자부했었던 나자신! 결과는 18년 6개월이라는 긴 영어생활을 낳았고 가정은 깨지고 나이는 어느덧 불혹의 나이로 접어든다. 교도소바깥에서 나를 기다리는 아우들... "형님! 고생하셨습니더..춥습니더...어서 차에 오르시지예." "종발아! 원도야! 그만 돌아가거라..나는 새로운 인생을 살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오늘부터 너거 형도 아니고 건달도 아니야.. 그동안 고마웠다..차후에 연락하자." 택시에 오르면서 나는 새롭게 태어난다. 적어도 난 내속의 또 하나의 내자신을 발견하게 된것이다. 늘 불안속에 영위되어졌던 내삶이 그때부터 활기차게 이어진다. "애비야! 은주..우석이를 생각해라..깡패도 1등이 있다카더라... 길이 아니면 과감히 꺾어야지... 인자는 니가 그곳에 가면 어미는 니를 내아들로 인정하지않는데이." "어무이! 명심하겠습니다." 출소한지 며칠후..나는 글을 쓰기 시작한다. 모질게 마음먹고 밤낮으로 씨름한다. 건달의 얘기..자전실화소설 남자의 그늘 1.2편을 6개월만에 내놓는다. 마치 혁명같은 내삶이 시작된것이다. 변화는 나를 선과악의 갈림길에서 망설이게 놔두질 않았다. 인생의 진정한 가치가 나를 포위하고 만다. 천지개벽을 맛본다. 그렇게 세월이 1년이 지났다. "진복아! 얼굴 한번 보자." 나는 고등학교동창의 전화를 받고 분위기좋은 민속촌에서 조인한다. 그곳에서 아내를 처음 만난것이다. 귀부인같은 외모...당당한 자태..시원시원한 성격에 나는 쉽게 매료된다. 음식을 직접 해주는데 맛깔나게 입에 맞는다. "이사장! 이친구가 건달밥 접고 책도 쓰고 마음잡고 사는데 두사람 잘 한번해봐! 가게에도 큰 도움이 될걸!" "호호호...그래예...책을 썼다고하니 사람이 고마 달라비네예. 작가님! 저도 한잔주이소." "무슨 띠?..." 나는 갑자기 생뚱한 질문을 내놓고 말았다. "나는 코끼리띠라예." 세사람은 한바탕 웃고 말았다. 나는 그녀의 가게에 융단폭격을 가한다. 선배.후배.친구들을 한달내내 끌어모은다. 모잘것없는 나의 능력을 은근히 인정하는 그녀의 눈빛에 한껏 취하고만다. "오늘 가게를 마치면 드라이버를 가던지 아니면 썩 괜찮은 찜질방이 있는데 같이 한번 갑시다." "좋아예." 나의 제안에 기꺼이 응하는 그녀가 너무도 살갑다.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했는가.. 내차는 그녀를 태우고 옥포용연사쪽으로 향한다. 서막이 열린다. 우리 재형이가 뱃속에 있을때 그이가 돌아가셨어예... 결혼한지 일년도 채 안되었을때라예.. .마른 하늘에 날벼락도 어느정도지...하늘이 무너지는 순간이었지예... 지애비 얼굴도 모르고 태어난 재형이를 생각하면 지금도..." 그녀는 말을 잇지못한다. 크다란 눈망울에 물기가 퍼진다. "사고로 돌아가신 모양이지?" 친구가 룸싸롱을 개업했는데 여럿이 축하하러갔다가 그이가 술이 과해서 룸에서 잠을 잔 모양이라예.. .손님들이 싸우면서 난로가 넘어지고 불이 삽시간에 번져서 다른 사람은 다 대피를 했다는데 그이는 그만 자다가..." 그녀의 말속에 죽은 남편에 대한 뿌리깊은 연정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과거를 한치도 벗어나지못한것은 오로지 그녀만의 불행으로 느껴진다. 그녀의 입이 다시 열린다. "나는 재형이를 위해서 여지껏 한길로 걸어왔어예... 친정엄마보고 재형이를 좀 봐달라고 했을때 냉정하게 거절하데예... 시집에 애를 줘버리고 새출발을 하라고 지독하게 권유를 하데예... 난 도저히 그렇게 할수가 없었어예... 하루는 시집에 가서 시어머니보고 어무이 재형이를 좀 봐주이소... 제가 돈을 벌어야하는데 생활비를 심심찮게 드릴테니 하면서 부탁을 하는데 이할망구가 내가 재형이를 놔두고 가버리는가싶었는지 끝끝내 거부를 하는기라예... 그렇게 나는 양쪽한테 서러움을 받으면서도 이빨을 깨물고 살았어예... 지금 판단해도 후회는 없어예." 모진 풍파와 시련속에서도 그녀는 살아남았고 더없이 고귀한 여자라고 인정해주고 싶은 순간이다. 나는 그녀를 이미 사랑한다. 차는 용연사입구를 지나 작은 다리를 통과한다. 모텔과 찜질방이 동시에 보이기 시작한다. 갈등이 온다. 그녀가 값어치있게 보인 까닭이다. 그런 내마음을 알기나하는지 그녀는 아랑곳없이 입을 가만히 두질못한다. "재형이가 다섯살때인데 나는 시내백화점에서 일을 했어예... 주인할머니한테 재형이를 부탁하고 다닐때인데, 하루는 할머니가 재형이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없다카면서 전화가 온기라예... 나는 미친듯이 집으로 달려갔어예... 파출소에 신고를 하고 온동네를 이잡듯이 찾아해맸지만 없는기라예. 실성한 여자처럼 축 처져있는데 마침 재형이 또래꼬마들이 몇명지나가길래 물었는데 학교에 있다카는기라예... 뜀박질로 달려가보니 운동장에 학생들이 보이지않는기라예... 그래서 수업을 하는 교실을 모조리 빼꼼히 들여다보면서 찾아가는데... 우리 재형이가 어떻게 하고 있었는지 압니꺼?.. 일학년교실의 맨 뒤에서 빗자루를 들고 혼자 놀고 있어예... 나는 곧장 교실로 들어갔어예." "희한하네...수업하는 교실에 재형이가 왜 있지?" "그러니까예." 그녀의 얼굴에 생기가 돈다. "선생님한테 자초지정을 말하는데... 재형이가 빗자루를 끌고 다니면서 운동장에서 놀다가 수업이 시작되면 애들이 교실로 우르르 들어오니까 무조건 따라들어온다는기라예.. .점심시간에도 가지도 안하고 있으면 애들이 밥도 주고 또 운동장에 우르르 나가면 후다닥 따라나간다는기라예... 학교에서 재형이를 모르면 간첩이라나... 나는 선생님한테 그말을 듣고 고맙다는 인사를 골백번 더하고 참 많이도 울었어예." 그녀는 울보다...나도 울컥한다. 오른팔이 그녀를 감싼다. "삼겹살 좋아해?" "소주를 더 좋아하면 안됩니꺼?" 우리는 찜질방으로 들어간다. 황토굴에서 땀을 진득하게 뺀다. 온몸의 찌꺼기가 그냥 빠지는 느낌이다. 구석에 계란한판이 보인다. 익혀서 파는 모양이다. 그만큼 굴속은 용광로다. 그녀의 맨얼굴이 눈부시다. 물어쥑이고 싶을만큼 이쁘다. 단둘이 술을 먹어보는것은 처음 있는일. 상추에다 숙갓을 듬뿍 붙이고 잘익은 삼겹살을 골라 포개고 마늘과 된장을 썪어 오물여 그녀의 입에 넣어준다. "이런 면도 있었어예?" "하하...당신이 내스승이야!" "그건 무슨 뜻이라예?" "당신이 좋다는거지." "호호호...디기 어렵게 얘기하네예." 마사지실로 그녀를 데리고 가서 요금을 지불한다. 그녀의 입이 째진다. 여자의 마음은 촉촉히 내리는 가랑비라 헤피엔딩으로 찜질방을 다녀온후 그녀는 나를 받아드리겠다는 저의가 곳곳에 나타났다. 다음날 오후늦게 전화가 왔는데 가게에서저녁준비를 해놓았다고 해서 가보니 반찬이 열두가지에다 뚝배기에 동태찌개까지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처음으로 그녀에게 밥상을 받아보는데 그동안 밀어붙였던 나의 노고(?)가 헛되지않았음을 입증하는 순간이었다. 원래 음식을 가리지않는 체질이지만 밥두공기를 거뜬히 비웠다. 그녀의 표정은 대만족으로 변한다. "입맛에 맞습니꺼? 다음에는 갈치찌개를 해주께예... 내가 제일 잘하는게 그건데,,,오늘 시장에 가니 싱싱한게 보이질않아서..." "아주 좋아...이정도면 밥장사해도 되겠다. 갈치찌개도 은근히 기대되는데..." "내일쯤... 바람한번 쐬어주이소." 그녀의 입에서 드디어 항복선언이 나왔다. 스스로 빤스를 벗겠다는 야기가 아닌가... 아! 얼마나 기다리던 순간인가! 나는 심호흡을 고른다. "음...그러지...어디로 우리 사모님을 모시나? 해인사는 어때?" "그래예...해인사에 안가본지도 꽤 되었는데." 그녀가 말을 마치자마자 무엇을 꺼내놓는다. "한번 입어보이소...대자를 사왔는데." 그녀가 풀어헤친것은 다름아닌 휄라티였다. 기분이 묘하다. 이여자와의 관계가 과연 숙명인가...스쳐가는 인연인가! 그녀는 입혀준다. "됐습니더...검정색깔인데 마음에 들어예...안들면 바꿔도 돼예." "고맙다...나도 선물을 해야되겠군." "받자고 하는게 아입니더...내마음입니더." 나는 부랴부랴 가게를 나섰다. 무엇에 쫓기듯이 금방에 갔다. "여자 목걸이 하나 주소...삼십만원정도하마 되겠네." 나는 빚지고는 못사는 성격인데다 결벽증이 워낙 심해서 떠오른 생각을 바로 실행을 못하면 하루종일 우울해지는 강박관념이 있는 사람이었다. 한마디로 병적이다..아니 병자로 보면 된다. 오랜 감옥생활때문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한개샀다...내가 걸어주께...목을 이리 댕겨봐라!" "와이캅니꺼? 나는 집에 패물이 많아예...이거 어디서 샀습니꺼?" "그런것은 묻지말고 목에 걸어봐라..이쁠긴데..." "사양하께예...이런 목걸이는 내취향에 맞지도 않고예.. .받은거로 하고예...고마 내하고 교환하러가입시더..얼른예?" 그녀의 고집은 안하무인이다. 혼자다녀온다고해도 막가파다. 할수없이 그녀를 태우고 금방으로 향했다. 금방주인보기가 민망하지만 엉거주춤 따라들어갔다. 시근퉁한 금방주인은 금세 현찰을 내놓는다. 가게로 돌아오면서 그녀의 손에서 건네오는 삽십만원을 손을 포개어 화장품이라도 사라고 쥐어주고말았다. 그게 마음이 편할것같았다. 그녀는 잠시 나를 응시했다. 사랑은 믿음이라...그공식을 나는 안다. 사랑은 아낌없이 줄때 피어나는것이라고 배웠다. 가게로 돌아와서 그녀가 술상을 봐온다. "한잔하이소..가볍게 맥주로 하입시더." "당신은 소주타입이잖아!" "나는 전천후아입니꺼? 호호호!" 박치기를 한번하고나자 그녀가 정색을 한다. "내가 그래 좋습니꺼?" "응!" "당신은 용기있는 사람입니더. 내가 먹고살라꼬 비록 술장사를 했지만 남자 한번 쳐다보지않고 살았는데... 당신한테 무너지네예." "아직 당신하고 잠도 안잤는데 무너진게 있나? 하하하!" "집요하고 끈기있는 당신같은 사람이라면 나도 마음을 한번 열고싶어예." "그말! 책임져래이...여기 CCTV같은것은 없나! 하하하!" "내일 바람쐬러가기전에 한가지 내하고 약속할게 있습니더. 그것을 약속해야 내가 당신을 따라갑니더." 거까이! 디기 무섭데이...말해봐라?" "첫째, 당신이 내하고 살면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딴여자를 보마 안됩니더. 둘째, 어떤 일이 초래하더라도 거짓말을 하마 안됩니더. 그게 서로간의 신뢰감이니까예. 마지막으로 세째, 노력없는 삶을 살면 안됩니더... 불로소득을 절대 바라지마이소...열심히만 살아주이소, 당신이 리어카를 끌면 내가 뒤에서 미께예. 이세가지를 지켜주면 나는 당신을 믿고 한번 뭉쳐주께예." 오냐! 알았다...지킬게." "됐습니더...그라마 내일부터 2박3일은 당신손에 달렸습니더." "가게는 문닫고?" "지금 가게가 문제입니꺼? 여행스케줄을 잘 짜보이소. 호호!" 나는 그녀의 손에다 키스를 해주고 가게를 빠져나오는데 손님들이 들이닥쳤다. 나의 발걸음은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 차는 구름위를 달리는것처럼 술술 잘나간다. 태진아의 옥경이를 털었다. 나는 콧노래를 멈추지않는다. "그래! 이여자와 멋지게 한번 살아봐야지!" 눈을 뜨니 그녀가 옆에 없다. 심한 갈증이 온다 . 침대에서 일어나 그녀를 불러본다. 화장실에도 없다. 정신이 번쩍 든다. 핸드백이 보이지않는것이다 . 옷장에 옷도 보이지않는다. 그렇다면... 휴대폰의 발신을 누른다. 그녀의 휴대폰은 보란듯이 꺼져있다. 몸이 갑자기 오싹해진다. 처음으로 겪어보는 일인지라 심장이 돌연 건설현장으로 잠입한다. 커튼을 걷는다. 포항의 바다가 시야를 쭉 당긴다. 시간은 오후 2시를 넘었다. 나를 놔두고 포항에서 대구로 혼자 훌쩍 가버린 그녀에 대해서 나의 생각은 여러각도로 갈라진다. 어제 대구를 떠난시쯤부터 시작해서 포항에 도착하여 일어난 일련의 과정을 빠짐없이 되돌려보지만, 특별히 내가 잘못한게 있는지 아무리 되뇌어도 도저히 발견할수가 없다. 고급 자연산회를 남기지않을만큼 그녀는 맛있게 먹어주었고, 그녀가 원하는데로 가요방까지 가서 목청이 터져라 호흡을 맞췄고, 호텔에 투숙하여 나로선 최대한 봉사를 한 기억이 나는데... 대구로 돌아오는 시간은 암흑처럼 길고 깊었다. 그녀와의 만남에서 첫 시련이 다가온것일까. 대구에 도착하여 전화를 걸어봤지만 여전히 불통이다. 초라한것은 배부른 소리다. 도리어 그녀가 미치도록 보고싶다. 가끔씩 가게에서 집근처까지 그녀를 태워준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집은 알지못했다. 그런데도 핸들은 그녀의 집근처로 이끌려간다. 평소에 내려준곳에 주차를 한다 . 눈앞에 수퍼와 세탁소가 보인다. 먼저 수퍼로 들어갔다. "아줌마! 담배한값주세요? 한가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여잔데 나이는 사십대후반이고 아들하나데리고 살고 저쪽 송현동에서 민속주점하는데... 눈이 부리부리하고 피부가 아주 하얀데.. "모르겠는데예...웬간한 사람은 내가 다아는데 이동네 산다캅디꺼?" 나는 담배한보루를 더 사주면서 장황하면서도 세세하게 설명을 했지만 소득없이 나오고 말았다. 다시 세탁소로 발길을 옮긴다. "아저씨! 사람을 좀 찾습니다." 수퍼에서 한 얘기를 빠짐없이 주절주절 늘어놓았을때 세탁소아저씨한테서 돌아온 말은 이랬다. "들어보이 외모는 우리 마누라하고 똑같구만... 근데우리 여편네는 장사는 안하지... 지금 방에서 코골고 낮잠을 자니까!" 집집마다 다 부르면서 찾아볼수도 없고 난감하다. 골목에서 담배를 한대무는데 누가 고함을 고래고래 지른다. 지나가는 차의 목소리다. "야 인마! 귀가 먹었어! 재수없게!" 운전자의 목소리다. 얼추 나보다 열살은 어린 놈이다. 난 게이치않는다. 배에서 소리가 난다. 평소에 자주가는 회집으로 차를 돌린다. 알코올이 필요하다. 이순간을 모면하지않으면 돌지경이다. 회가 나오기전에 소주를 세명이나 비운다. 뱃속에서 아우성친다. "동생! 무슨 일있나? 와카노! 생기나 낮술은 안묵으면서..." "누부야! 혼자있게 해줘!" "오냐! 오냐! 천천히 묵어래이...몸상한데이." 회는 고스란히 제모양대로 그대로다. 빈병은 쌓여만 간다. 기다리지않는 전화는 수없이 온다. 진동으로 바꾼다. 혼자 울다가 웃다가 실성한놈처럼 몰골이 처참해진다. 포항에서 대구까지 택시를 타고갔을 그녀의 얼굴이 클로즈업되었다가 사라진다. 그렇게 수없이 반복된다. 앞이 시커멓게 변한다. 내가 술이 취한것이다. 소변을 보러 갔는데 조준이 잘안되고 칠칠맛게 소변을 바지에 묻힌다. "물! 물 좀 줘! 얼음물!" "동생! 고마 묵어래이...우야노! 제대로 걷지도 못하네...이카는거 처음본데이... 자자! 내가 부축하께..좀 자거래이 고마! 야! 영심아! 비개없나? 퍼뜩 갖고오나!" 나는 독특한 버릇이 있다. 횟집도 한곳에, 고기집도 한곳에, 노래방도 한곳에, 주점도 한곳에, 딴곳은 가질못했다. 타인이 가자고해서 따라가는경우를 제외하곤 단골집을 무조건 고집한다 . 그래서 편하다. 대우도 받는다. 주인이 베개에다 내머리를 붙힌다. 나는 누운 상태로 휴대폰을 또 건다. 아...신호가 간다. "여보세요?" "당신 어디고?" "술을 많이 드셨네예? 내일 통화하입시더." "흐흐흐...니가 나를 시험하나? 뒷통수를 이렇게 치면 아주 곤란하데이... 영희야! 내 있제...니 사랑한데이...내한테 이러지마라!" "난...솔직히 자신이 없어예." "뭣때문에?" .내일 맨정신에 통화하입시더." "지금 말해라?" 좋습니더...자고 일어나서 당신을 보면서 나는 많이 갈등했어예.. .당신의 신체가 영 아니었어예...너무나 짧은 다리, 심하게 나온 배하고, 또 옆에서 한숨도 못잘만큼 코를 골지예, 나는...이건 아니다싶어서 도망치다시피 대구로 왔어예...미안합니더. 당신은 내인연이 아닌것같습니더. 이쯤해서." "으하하하하하..으하하하하...으하하하하하하!" 내가 그녀를 볼수있었던것은 정확히 3일이 지난후였다. 그녀는 가게의 문을 3일동안 열지않았었다. 나는 밤이면 어김없이 가게앞을 서성거렸고 그녀에게 보낸 문자와 전화는 헤아릴수조차없을만큼 어지러웠다. 그랬던 그녀가 뜬금없이 내게 전화를 걸어와 한말은 이랬다. "당신! 진짜로 나아니면 안되겠어예? 정...그렇다면 지금 내하고 만납시더." 그녀가 나를 부른곳은 다름아닌 자신이 사는 집이었다. 3일동안 심하게 구겨졌던 자존심은 일순간 다리미로 다린것처럼 쫙 펴지는 느낌이었다. "들어오이소, 밥은 먹었어예?" "자...이거..." "집에 과일이 넘치는데 말라꼬 사왔어예...재형아! 잠깐 나와봐라!" 그녀가 자기아들을 내한테 인사를 시킨다. 얼굴이 선하게 생겼다는 느낌, 키도 후리했다. 인사를 하는둥 마는둥 지방에 쑥 들어가버린다. 그녀의 방으로 나는 들어간다. "커피나 한잔 줘!" 나는 그녀가 커피를 가져오는동안 방안을 둘러본다 .한켠에 불교서적이 보인다. 염주도 눈에 들어온다 .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그녀가 작은 액자속에서 나를 쳐다본다. 아무리봐도 이쁘다. 이여자가 없으면 결단코 내가 살수없다란 생각만 든다. "흑설탕입니더...알아서 넣어보이소." 나의 눈은 그녀를 찬찬히 분해한다. 눈물이 날 지경이다. "미안합니더..당신이 나를 많이 좋아한다는것을 이번에 더 깊이 깨달았어예... 내 인자 도망안갈테니 걱정하지마이소... 며칠새 얼굴이 많이 수척해졌네예, 지금 인삼넣고 닭한마리 푹 고으고 있습니더." 병주고 약줘도 좋다...그녀만 내곁에 있어준다면. "재형이한테 미리 말을 해놓았심니더... 당신하고 우선 같이 산다꼬예. 내가 재형이 놔두고 당신하고 두살림은 차릴수가 없잖아예. 딴것은 필요없잖아예... 옷이나 몇벌가지고 오이소." 으음...그라자..당분간!" "그라고예...당신이 여유되면 돈을 좀 융통하이소.. .저 가게 너무 작아서 돈이 크게 안됩니더.. 어제 교차로에 팔려고 내놓았습니더..팔고 그 돈만큼만 가져오이소... 그래서 더 큰가게를 같이 하입시더... 당신이 본격적으로 도와주마 우리는 금방 일어섭니더. 그렇게 해줄수있지예?" 알았다...며칠만 기다려봐라." 나는 그녀와 같이 살수있다는것 자체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커피향은 온몸으로 파고든다. 이영희는 자기 친구에게 민속주점을 어렵지않게 처분했다. 나에게 가게판만큼의 돈을 융통하라는 메세지를 주고 난후 딱 일주일만에 가게를 판것이었다. 건물주인은 대구에 있지않았다. 울산에서 병원을 운영하고 있었다. 나는 이영희와 여자친구를 대구에서 울산까지 왕복으로 태워주는 봉사를 할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새로 개설했는지 가게 판돈이 찍힌 통장을 내앞에 내놓으며 그 금액만큼의 돈을 어떡하던 융통하라고 반강제로 억압을 해왔다. 정확히 이천오백만원이었다. 사실 내게는 그만한 돈이 없었다..고작 오백만원정도. 만약 그녀의 요구를 거절하면 나는 용도폐기될것이 자명했다. 나는 이틀을 고민했다. 그리고 결정한다. "당신! 30분후에 갈테니 집앞에 나와있어! 참...통장가지고 나와야돼?" "알았심더." 계 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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