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가락이 닮았다_한국단편문학
M은 30살이 넘은 노총각이다. 그 덕에 주변에서는 항상 결혼을 하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M은 방탕한 생활을 하며 무시했다. 그러던 어느날, M은 친구인 의사에게 자신의 성 기능이 멀쩡할지를 물어본다. 하도 방탕한 생활을 해왔기에 멀쩡할리는 만무했으나 친구는 아마 괜찮을 것이라고 대답하였다. 얼마 후, M은 갑작스럽게 결혼을 하였다. M이 그의 젊은 아내를 학대한다는 소문이 들려오기도 하였으나 얼마 후 그의 아내는 임신을 하게 된다. M은 자신의 성 기능이 정상적일리가 없으며 자신의 아내가 임신한 아이가 자신의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희망을 버릴 수 없었기에 자신의 아이로 받아들이고 산다. 아이가 태어난 후, M은 친구에게 찾아와 말한다."이놈의 발가락 보게. 꼭 내 발가락 아닌가. 닮았거든..."
먼저 M이 어떻게 해서라도 아이에게서 자신과 닮은 모습을 찾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 아내와 아이에 대한 의심, 그렇지만 그 의심이 틀렸을 것이라는 희망, 가족의 평화를 원하면서도 아내에게 사실에 대해 추궁하고 싶고, 그러나 자신이 한 짓이 있기에 원하는대로 행동할 수 없는 모습을 보면 이 장면은 복합적인 마음이 담겨져있나보다 싶다. 되게 애매한 느낌이다. 무엇도 할 수 없으니 아이가 자신과 닮았을 것이라는 그 희망에 집착한 것 같다.
사실 내가 위에서 요약한 글만 보면 M이 많이 안타까워보이지만 사실 그에게 측은지심을 가지고 싶지는 않다. 자신이 먼저 방탕한 짓을 했고 그렇기에 아내에게 화를 낼 수 없었다. 자신과 아내는 똑같은 짓을 했으니까 말이다. 만약 아내에게 진실을 추궁하고 가정을 파토냈다면 스스로에게 화를 내는 꼴이니까 말이다.
또 이 소설은 일제강점기에 쓰여진 단편소설이다. 그렇다보니 확실히 일본어도 중간중간 섞여있고, 옛날 문체로 쓰여져있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 나타나는 바는 우리가 사는 현재에서도 적용되는 것 같다.
M은 적어도 양심의 가책은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업보를 알고 있으니 아내에게도 화를 낼 수 없다. 그정도의 가책은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사람들, 그 중에서도 소셜 미디어 속 사람들은 양심을 버리고 행동한다. 현재의 사람들은 한 사람이 조금만 잘못을 해도 죽일 듯이 달려든다. 그러면서도 남들이 자신에게 죽자고 달려드는 것은 싫어한다. 물론 익명성이라는 특성 때문에 좀 더 대담해지고 실제로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라 죄책감도 덜 가지게 되는 것이기는 하다. 그렇기에 자신이 한 짓을 돌려받았을 때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받아들이는 가책을 가지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인간이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것은 인간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점점 인간성을 잃어가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러니 나는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말하고 싶다. 만약 잘못을 했다면 그리고 사과도 할 용기가 없다면, 적어도 가책을 가지고 살아가자. 또한 위의 가책을 가지지 않은 현재 사람들은 익명성이라는 특성이 있을지라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죽자고 달려들듯이 비난하는 모습을 줄여야 한다.그것이 우리가 인간성을 지키는 방법이자 이 소설에 나타나있는 인간성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글을 너무 오랜만에 쓰는 것이기도 하고, 뭔가 이 책에 대한 생각이 확실하게 떠오르지 않다보니 정리된 느낌이라기보다는 의식의 흐름대로 적은 느낌이라서 앞뒤가 좀 안 맞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