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간에게 *
무엇을 사랑했느냐고 묻지 마시게 누구를 사랑했느냐고 묻지 마시게사랑할수록 무슨 할 말이 남아 있겠는가 밥이 눈물이 될 때까지 열심히 살았을 뿐 이미 길을 잃고 저만치 혼자 울고 있다네
밤이 깊어가도 해가 지지 않아 아침이 찾아와도 별이 지지 않아 혼자 기다리다가 울 때기 있었지만 무엇을 어떻게 사랑했느냐고 묻지 마시게 진실 또한 침묵속에서 혼자 울고 있다네
무엇을 사랑하고 인생을 잃었느지 사랑이 증오를 낳고 증오가 사랑을 낳았는지 진정한 사랑을 깨닫기 위해서는 미움과 증오가 필요하고 가치가 있었는지 진정한 사랑을 깨닫기 위해서는 미움과 증오가 필요하고 가치가 있었는지 묻지 마시게 부디 사랑할수록 사랑을 잃은 내가 무슨 인생의 길이 될 수 있겠는가
* 시간도 신[神]의 피조물이다 *
인생은 시간이다. 오늘도 내 삶의 시간속에서 이루어진다. 내 삶이 지구나 집이라는 공간속에서 이루어지듯 소년과 청년, 장년과 노년이라는 시간 단위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생물인 나 자신이 그렇게 변할 뿐 시간은 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존재한다. 내 존재의 변화에 따라 과거, 미래라는 이름으로 달리 불릴 뿐 시간은 늘 불변의 존재다.
그렇다면 내 삶을 주관하는 시간은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누가 창조한 것일까. 나는 지금까지 신이 공간을 창조했다고 생각해 왔다. '거대한 우주라는 공간을 하느님 외에는 아무도 창조한 분이 계시지 않다. 누가 그 위대한 작업을 해낼 수 있겠는가.' 늘 이렇게 쉽고 단순하게 생각해 왔다. 만일 우주가 저절로 생성되었다고 해도 생성의 주체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 주체를 하느님으로 생각해 왔다.
그러나 시간은 누가 창조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시간은 원래 우주가 생성되기 전부터 있는 그대로 존재해 온 것으로 생각했다. 시간과 공간과 물질이 창조되는 빅뱅의 순간 이전에는 시간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나는 막연히 이미 존재하고 있는 시간 속에 우주라는 공간이 창조된 것이라고 생가해왔다.
그런데 최근에 시간도 하느님이 창조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천문학자 이영욱 박사가 '과학과 신앙'에 대해 강연하는 동영상을 보다가 "시간도 하느님의 피조물 입니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 시간도 하느님이 창조하신 것이라니..... 하느님은 얼마나 위대한 분이신가.'
나는 한동안 멍한 기분이 들었다.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결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봉착되자마자 곧바로 답을 얻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느님의 시간에 대한 이영욱 박사의 요지는 이렇다.
"하느님은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다. 하느님은 시간을 초월하신 분이다. 우리처럼 시간에 갇혀 계신 분이 아니다. 따라서 천지를 창조할 때 걸린 이레 동안의 하루는 오늘날 우리와 같은 시간이 아니다. 관찰자의 속도에 따라 고무줄처럼 줄었다 늘었다 할 수 있다. 누가 하느님의 시간을 평범한 인간이 느끼는 시간과 같이 느낄 수 있겠는가."
나는 하느님이 천지를 창조할 때 걸린 '이레'라는 시간을 오늘날 내가 느끼는 '일주일'이라는 시간하고 똑같이 생각했었다. 일주일 만에 창조하셨으니 참 빨리 창조 하셨다. 초스피드다. 역시 전지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이시다.' 하느님의 시간이 현재 내가 생각하는 물리적 개념의 시간이 아니라 나의 시간과 전혀 다른 우주적 시간이라는 것을 전혀 의식하지 못했다.
이영욱박사의 말에 의하면, 하느님의 그 일주일은 물리적으로 환산하거나 계산할 수 없는 무한대의 시간이다. 시간의 속도와 총량을 가늠할 수가 없다. 내가 아무리 상상해보려고 해도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시간이다. 그러한 시간을 인간이 내가 상상하려는 것 자체가 이미 오만이다.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타임머신'이 나오는 영화를 보면 미래의 세계에 잠시 갔다가 돌아온 주인공은 떠날 때와는 전혀 다른 몇백 년이 지난 현재의 시간을 만나게 된다. 떠날 때 존재했던 사람들은 만날 수 없고, 그 후손들을 현재에서 만나게 된다, 똑같은 시간인데도 미래의 시간과 현재의 시간이 서로 다르다, 어쩌면 그런 영화에서나마 하느님의 시간을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인간의 세계에서도 개인적인 경험에 따라 시간과 양의 속도가 달라진다,어떤 사람한테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을 수가 있다. 그런데 이 경우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시간은 본질적으로 그 양과 속도가 변화될수 있지만 인간의 시간은 그 본질이 불변한다는 사실이다. 다만 시간을 대하는 인간의 느낌이 다를 뿐이다.
내 경우엔 시를 쓸 때 시간의 속도가 가장 빠르다,몰입해서 시를 쓰다 보면 하루가 언제 지나갔는지 모른다. 아침이 바로 한 시간 전이라고 느꼈는데 금세 창가에 저녁 어둠이 몰려온다. 그러나 몸살이라도 나 집에서 쉬고 있으면 하루가 마흔여덟 시간이라도 되는 듯 좀처럼 시간이 가지 않는다.
뭔가 간절히 기다리는 것이 있으면 그 기다림의 시간 또한 그렇다, 군 생활을 하는 병사들의 경우, 똑같은 시간인데도 제대할 날을 기다리는 병장들은 시간이 잘 가지 않는다. 그러나 이등병들은 하루가 한 시간 처럼 후딱 지나가버린다. 이런 일은 누구나 다 겪는 시간에 대한 경험이다. 물리적 시간의 본질은 변하지 않지만 경험에 따라 절대적 시간으로 변모한다. 그래서 우리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물리적 시간을 자신만의 절대적 시간으로 전환시키면서 살아갈 줄 알아야 한다. 비록 물리적 시간 안에 있다 해도 스스로 창조해 나갈 수 있는 시간이 바로 자신만의 절대적 시간이다.
이렇게 인간에게 시간은 절대적이지 상대적인 것을 아니다. 당신의 시간이 천천히 가면 나의 시간도 천천히 가고,, 당신의 시간이 빨리 가면 나의 시간도 빨리 가는 것이 아니다. 물리적 시간은 똑같지만 절대적 시간은 다 다르다, 개인의 삶이 다르듯 개인에게 주어진 시간의 문양과 속도는 제각각이다.
언젠가 모교에 들러 본 교정의 나무들도 마찬가지였다. 40여 년의 세월이 지났으나 나무들의 모습은 크게 변한 게 없고 나만 청춘의 모습을 잃어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한 해를 하루처럼 살지만, 나무는 하루를 한 해처럼 산다"고 시의 첫 행을 써보기도 했다.
시간은 있는 그대로 변함없이 존재한다, 스스로 매듭짓지 않는다. 과거와 미래도 구분하지 않는 객관적 존재다. 시간이 물처럼 흘러갔다고 생각하는 것은 주관적 생각이다.
시간은 기다려주는 법이 없다. 시간의 힘은 강해서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 그 변화가 긍적적이고 발전적인 변화일 수도 있고 부정적이고 퇴보적인 변화일수 있지만 시간의 힘 앞에 무릎 꿇지 않는 인간은 없다. 인간뿐 아니라 모든 물질과 사물의 현상조차도 변화된다. 그것은 시간이 하느님의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시간은 어쩌면 신의 또 다른 얼굴인지도 모른다.
- 정 호 승의
시가 있는 산문집 -
첫댓글 시간역시 하나님의 피조물이란 것을 깨닫게 해주는 글이네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는 말씀이기도 하지요
정호승 님의 글 감사합니다
어느새 저녁 시간이네요
정말 한해가 하루 같이 빠르게 흘러가는 세월입니다
건강에 유의하시기를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