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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싶은 곳 스크랩 [밀양여행] 600년 수명의 차나무가 있는 혜산서원
무무 추천 0 조회 110 15.05.05 07:59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청담(淸談: 명리를 떠난 맑고 고상한 이야기)과 검박(儉朴: 검소하고 소박함))의 상징이었던 옛 선조들의 차문화..빈곤한 생활속에서도 밥은 굶더라도

차는 즐겨마시며 차담을 즐기고 시를 주고 받앗던 선비들의 마지막 자존심과도 같은 상징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밀양에는 산외면 다죽리 다원동에는 세그루의 차나무가 있습니다. 다원동 들머리 재실 입구의 신도비 옆에 한그루, 재실안 다원서당에 한그루, 그리고

혜산서원 앞마당에 한그루, 지명 이름에도 알 수 잇듯이 밀양은 차와 관련된 지명이 있는 것으로 보아 예로부터 차 생산지였던 것은 분명합니다.

 

산외면 다죽리 죽서마을에 있는 혜산서원은 일직(一直)손씨(孫氏)의 5현(賢)을 받드는 서원입니다. "일직 손씨의 밀양 입향조인 손관옹께서 진관현감으

로 재직할 때 진성(지금의 경남 산청군 단성면)에서 차나무를 가져와 식수하였다. 차나무와 연대를 진성현감으로 있을 당시를 유추하여 다시 600년으로

명명했다. 이 차나무는 소엽종으로 노엽(묵은 잎)은 길이가 8cm, 폭이 약 4cm로 관목 차나무에 비해 잎이 큰 편이다"라고 차나무앞의 안내판에 적혀 있

습니다. 은은한 돌담과 어우러져 고택의 풍미가 아름다운 혜산서원에서 다기(茶器)의 장인 청봉요 청봉3대인 장기덕님이 직접만든 다기로 차 한잔을 마

시며 차의 정을 느껴봅니다.

 

 

 

 

 

 

혜산서원은  조선 초기 단종의 왕위를 찬탈한 세조의 횡포에 분개하여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두문불출하며  오직 도학에만 전념하였던 학자 격재

손조서의 서산서원이 있던 자리였습니다.  고종 5년 서원철폐령에 의해 훼철된 후 그 집을 서산고택 또는 철운재(徹雲齋)로 편액하였다고 합니다.

그후 1971년에 서원의 경역을 확장 정비하고 각지역에 분산 봉인되었던 일직손씨의 5현을 후손들의 세거지인 이곳으로 옮겨 복설하고 혜산서원으로 중건

하게 되었던 것 입니다.  ▲

 

 

혜산서원 편액이 걸린 고택의 앞마당에 심어져 있는 고차수..이 나무가 600년이 되었다는 그 차나무 입니다. 앞에 안내판이 없었다면 차나무인지도 모르고

그냥 지나칠 뻔 했습니다.  평상시 봐 왔던 모양의 차나무가 아닌지라 그리고 이렇듯 홀로 서 잇는 차나무도 처음이어서 알아 볼 수가 없었습니다. ▲

 

 

 

 

 

도예가 집안에서 태어나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대를 이어 도예가의 길을 걷고 있는 청봉 3대 청봉 장기덕님이 이곳

혜산서원에서 본인이 직접만든 다기로 차를 만들어 직접 내어주십니다. 따사로운 햇살이 스며드는 마루에서 푸르른

풀내음을 담고 지나가는 바람을 느끼며 은은한 차 한잔의 시간은 잠시 세상을 잊고 삼매경에 빠져 자연을 느끼는

기분좋은 시간이 됩니다. ▲

 

 

 

길 양옆으로 나란히 도열되어 있는 소나무가 떠나는 발걸음을 자꾸 머물게 합니다.

발길을 내딛는 걸음마다 선조들의 넉넉한 마음을 느낄수가 있었고 정감어린 혜산서원의 풍경과 그윽한 향이 풍겨나왔던 차향은 아직도 입가에서

계속 맴돌고만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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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5.05.05 18:50

    첫댓글 저도 가고 싶어요..

  • 작성자 15.05.05 18:52

    가자 . 나 신청햇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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