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사하다 *
태풍이 지나간 이른 아침에
길을 걸었다
아름드리
플라타너스나 왕벚나무들이
곳곳에 쓰러져 처참했다
그대로 믿동이 부러지거나
뿌리를
하늘로 드러내고 몸부림치는
나무들의 몸에서
짐승 같은
울을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키 작은
나무들은 쓰러지지 않았다.
쥐똥나무는 몇 알
쥐똥만 떨어뜨리고 고요했다
심지어 길가의 풀잎도
지붕 위의 호박넝쿨도
쓰러지지 않고
햇볕에 젖은 몸을 말리고 있었다
나는 그제서야 알 수 있었다
내가 굳이 풀잎같이
작은 인간으로 만들어진 까닭을
그제서야 알고
감사하며 길을 걸었다.
* 태풍에 대하여
여름이 오면 폭염보다 사나운 태풍을 먼저 생각한다. 첫눈이 내리기 때문에 겨울이 더 아름답듯 천둥 번개가 치는 폭풍의 밤이 있어 여름은 더 아름답다. 여름이 와도 폭풍우가 몰아치는 밤이 없다면 그 여름은 진정한 여름이 아니다. 그것은 마치 봄이 와도 꽃이 피지 않거나 가울이 되어도 낙엽이 떨어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어릴 때 태풍이 지나간 뒤 물이 불으면 강으로 물구경을 나갔다. '동신교 '라는 목교가 떠내려가버린 범어천 천변에 서서 도도히 흐르는 황톳물을 바라보았다. 돼지와 사람이 떠내려가는 모습을 어른들 틈에 끼여 보면서 자연의 거대한 숨소리를 들었다.
만일 홍수가 없다면 인간은 그 얼마나 오만해질 것인가. 지금쯤 허물어버릴 수 있는 산이란 산은 다 허물어버리고 베어낼 수 있는 나무란 나무는 다 베어버렸을 것이 아닌가 번개와 천둥이 치는 것을 보면 인간은 오만해질 수가 없다.폭풍이 몰아치는 날 창밖을 내다보다가 번개치는 하늘을 보면 무섭다. 마치 잘 익은 수박이 칼을 대기만 해도 쫙갈라지듯 하늘이 갈라진다.
하늘의 어디에 그런 강력한 빛줄기가 숨어 있다가 한순간에 내리치는지 절대자의 걷잡을 수 없는 분노의 눈길처럼 느껴진다. 번개가 칠 때마다 그 눈길이 죄 많은 내 가슴을 향해 내리치는것 같아 두렵다. 그 동안 지은 죄를 한순간에 뉘우친다.만일 번개가 치지 않고 벼락이 치지 않는다면 나는 또 얼마나 오만해질 것인가.
태풍이 몰아쳐야 고여 있던 생태계도 새로이 숨을 쉬고, 사나운 천둥 번개가 몰아쳐야 인간도 고개를 숙이고 겸손해진다. 태풍이 몰치는 것을 보면 세상의 모든 풀과 나무와 새가 다 쓰러져 죽을 것만 같다. 그러나 태풍이 지나간 뒤 살펴보면 더러 뿌리째 뽑혀나간 나무들이 있지만 대부분 참고 견뎌 살아남은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이 자연의 질서다.인간도 마찬가지다. 인생의 여름에도 폭풍우는 몰아친다. 푹풍이 몰아치지 않는 인생은 없다. 누구의 인생에나 폭풍우가 몰아쳐서 고통스럽다. 문제는 그 폭풍을 어떻게 견뎌내느냐에 달려 있다. 두려워 피하고 샆
싶다고해서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언젠가는 다가올 폭풍우를 기다리는 자세가 필요하다.
나는 꽃과 나무와 새들처럼 내 인생의 태풍을 참고 견딜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꽃들도 천둥 번개를 두려워 하지 않는다. 꽃들은 오히려 천둥 번개가 어떻게 치는지 알고 싶어한다. 나무들도 아무런 시련 없이 고요히 자라는 게 아니다. 비바람이 몰아칠 때 온 몸이 뒤흔들리는 나무의 고통을 보라 나무도 그런 고통과 시련을 통해 더 튼튼하고 아름다운 나무로 자란다. 한여름의 폭풍을 통하여 꽃과 나무와 새들도 삶의 인내를 배우는 것이다.
독일의 동화작가 프란츠 휘브너가 쓴 《우리 할머니》라는 동화를 보면 천둥 번개에 끄떡없이 견디는 한 송이 꽃 이야기가 나온다. 토미의 할머니는 죽음을 앞둔 어느 날 침대에 앉아 어린 손자 토미를 불러놓고 "쑥부쟁이꽃이 시들어 없어질 때쯤이면 할머니도 이곳에 없을 것" 이라고 말한다. 그 말을 들은 토미는 쑥부쟁이꽃을 지키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벌레들이 다가오지 못하도록 꽃 둘레에다 종이 상자를 둘러 담을 쳐주기도 하면서 한시도 관심의 눈길을 떼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우르릉 쾅! 번쩍번쩍!"하고 천둥 번개가 쳤다. 토미는 꽃들이 바람에 쓰러져 죽을까 봐 얼른 뜰에 나가 꽃에 우산을 받쳐준다. 그러자 토미 아빠가 토미한테 다가가 말한다.
"토미야, 꽃들은 천둥 번개가 어떻게 치는지 알고 싶어한단다. 우산을 치우렴." 토미는 아빠의 말씀이 믿어지지 않았지만 우산을 치워주었다. 꽃들은 쏟아지는 비바람에 온몸을 내 맡기고 아파도 가만히 참고 있었다. 다음 날, 비가 그치자 토미는 아빠의 말씀이 옳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꽃은 무섭게 천둥 번개가 친 거친 날씨를 아무 일도 업다는 듯 끄떡업시 견뎌내고 더 아름답게 피어 있었다.
그 후 토미는 폭풍우를 견뎌낸 쑥부쟁이꽃를 보호하는 일로 하루해을 다 보낸다. 아빠가 잔디을 깎을 때도 꽃 주위에 돌로 바리케이드를 쳐서 꽃을 보호한다. 토미 아빠도 토미한테 그 꽃이 얼마나 소중한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잔디를 깎을 때도 꽃이 절대 다치지 않게 조심했다. 그러나 겨울이 오고 첫눈이 내리전 날 꽃은 시든다. 결국 토미 할머니도 세상을 떠나버린다.
토미 아빠는 슬피 우는 토미를 안아주면서 울지 말라고 위로한다. 꽃은 디시피어나고, 꽃이 피어날 때 할머니도 우리 마음속에 다시 살아나기 때문에 언제까지나 슬퍼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아버지의 말씀대로 토미도 결국 슬픔과 눈물이 언제까지나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왜냐하면 꽃이 진 그자리에 봄이 오자 더 많은 꽃이 피어났기 때문이다.
만일 천둥 번개가 치는 고통의 밤을 참고 견디지 못했다면 꽃은 열매를 맺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렇듯 고통은 인내를 낳고, 인내는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킨다. 세상의 누구든 고통을 참고 견디지 못한다면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폭풍우를 견딜 수 있는 꽃과 나무와 새들만 살아남듯이 사람도 마찬가지다.
한 사람이 한 생을 살면서 따스한 햇살과 시원한 바람만 맞으며 살아갈 수는 없다. 따스한 햇살을 맞기 위해서는 혹한의 겨울이 있어야 하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살기 위해서는 뜨거운 폭염의 여름을 견뎌야 한다.
- 정 호 스의
시가 있는 산문집-
첫댓글 따스한 햇살을 맞기 위해서는
혹한의 겨울이 있어야 하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살기 위해서는 뜨거운 폭염의 여름을 견뎌야 하겟지요
손주의 모습을 보면서도 귀엽고 이쁘기만 한 어린아이가
이다음에 커서는 많은 풍파를 겪으면
성숙한 어른으로 성장하겠지요 ㅎ
정호승 님의 글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운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