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파교회 주보에서 가져온 조현 기자님의 글입니다.
------------------------------------------------------
사랑방이 되는 교회
옛말에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했다. 동네에 있던 교회가 사라지면 마을 사람들 반응이 어떨까. 소음과 교통 체증이 사라졌다고 시원해할까 아니면 아쉬워할까.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 동화길 85번지 이원타워빌딩 건물 10층 더불어숲동산교회는 봉담 사람들의 사랑방이 되고 있다. 그 교회가 세운 ‘페어라이프센터’ 때문이다. 10층에 올라가면 입구는 카페인데, 복층 천장까지 책들이 빼곡히 들어찬 도서관이 있다. 복층 다락방들을 비롯한 곳곳의 세미나실을 봐서는 공부방이다. 이곳이 마을 사랑방 페어라이프센터다. 교회 예배당은 이 센터와 연결돼 있는데, 교회 티가 별로 안 난다. 단 5분이면 십자가가 가려지고 강대상이 치워져 마을 사람들이 연극을 하거나 강연을 들을 수 있게 변한다. 애초 이 건물 3층에서 좁게 시작한 교회는 3년 전 10층으로 확장 이전하며 마을 사랑방처럼 꾸몄다.
‘공정하고 정의로운 삶’이란 의미를 담은 ‘페어라이프’란 이름이 사랑방의 지향을 말해준다. 이 카페에서는 공정무역커피와 먹거리를 판매한다. 6개월 과정의 공정무역교실에서는 한 기당 20명 안팎씩 3기를 양성했고 그들이 벌써 공정무역 강사로 활약하기 시작했다. 제3세계 커피 노동자를 착취하고 대부분의 이윤이 중개무역상과 다국적기업에 돌아가는 부당한 무역에 맞서는 공정무역교실은 단지 커피만 생산자와 직접 계약해 판매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삶의 패러다임을 바꾼다.
이 교실은 이도영 목사의 부인 임영신 씨가 시작했다. 임씨는 녹색연합과 참여연대, 아름다운재단 초기 간사로 활동했다. 이 카페는 아름다운재단에서 출발한 공정무역커피점 아름다운커피와 협약을 맺은 1호점이다.
이곳에서 공정무역교실과 ‘가치삶마을학교’도 열었다. 이어 화성시와 함께 인근 협성대에서 공정무역국제컨퍼런스를 열었다. 이를 계기로 더불어숲동산교회와 교제하는 화성 시내 4개 교회가 공정무역에 동참하는 공정무역 교회로 거듭났다. 화성시를 비롯한 경기도 5개 도시도 ‘공정무역도시’를 선포했다. 조례를 제정해 도시 차원의 공정무역 지원을 본격화하는 경기도 공무원들은 임씨에게 공정무역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었다.
공정무역은 이곳에서 일상적 삶으로 파급된다. 마을 사람들은 천연세제나 머그컵 등을 직접 만들 뿐 아니라 도시에서 버려지는 현수막을 수거해 쇼핑백을 만든다. 헌책을 수거‧판매해 분쟁 지역에 평화도서관 건립 기금으로 보내고, 크리스마스 직전엔 벼룩시장을 열어 수익금으로 애육원 아이들이 희망하는 옷과 신발 등을 사서 그곳 트리 아래 놓아두는 깜짝 이벤트도 연다.
마을 사람들은 재료비만 식구 수대로 내고 물김치나 밑반찬을 함께 만들어 가져가기도 한다. 브런치 카페를 해보고 싶은 주민은 가게를 얻기 전에 이곳에서 브런치를 만들어 판매해 반응을 보기도 한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도 이곳에서 기를 편다. 아이들은 ‘학교 밖 학교’인 ‘화성으로 가는 스쿨버스’에 참여해 목장과 도예원 등으로 숨은 고수를 찾아 인생 강의를 듣고, 실습도 한다. 지역 인물과 새 명소들을 찾아내 새로운 화성 지도를 만들고, 자신의 희망 지도를 그린다. 또 ‘토요일만의 예술학교’ 에선 글쓰기, 노래, 춤추기를 배운다. 20여 명의 아이 중 3분의 2는 교회에 나오지 않는 지역 아이들이다. 이 아이들은 1년간 이 과정을 마치고 함께 ‘네모를 찾아서’란 뮤지컬로 만들었다. 함께 공정 여행에 나서 제주 강정마을도 다녀왔다. 이 아이들이 청계천에서 열린 세월호 국민대회 때 무대에 올라 부른 ‘기억할게 0416’도 공동으로 작사, 작곡했다. 이 곡은 세월호 유가족들로 구성된 노란리본극단의 연극 <이웃에 살고 이웃에 죽고>의 엔딩곡이 됐다.
이도영 목사는 지인들에게 목회를 하려면 서울, 과천이나 안양처럼 여건이 좀 더 나은 곳에서 할 것이지 왜 봉담에서 이러고 있느냐는 핀잔도 듣는다. 그러나 이 목사는 “이런 지역이기에 마을을 살리는 게 더 필요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여건이 어려운 곳일수록, 사람들이 정을 붙이기 쉽지 않은 곳일수록 정을 붙이고 함께할 사랑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 조현, 「우린 다르게 살기로 했다」(휴)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