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를 여행하면서 겪은 일이다. 1인당 국민소득이 세계 2위의 나라지만 호텔에 엘리베이터가 없는 곳이 많았다. 그래서 모든 객실을 고객이 직접 무거운 여행 가방을 들고 오르내려야만 한다. 동남아의 호텔처럼 짐을 날라다 주는 서비스를 기대하는 것은 엄두도 못 낸다. 1달러의 팁을 받고 만족한 웃음을 선사하는 값싼 노동자를 국민소득이 높은 나라에서 구할 수조차 없을 것이다. 간혹 층이 높은 호텔은 엘리베이터가 있긴 하지만 규모가 아주 작아 엘리베이터에 여행용 가방 두 개와 한 사람만이 겨우 탈 수 있을 정도로 작고 속도도 느리다. 걸어가는 게 오히려 편할 정도다. 건물 계단 조명도 전기를 절약한다면서 누르스름하니 어둡다. 그뿐이 아니다. 선물용으로 많이 판매하는 두꺼운 양말은 스위스 방문 기념상품인 줄만 알았는데 실제로 겨울에 일반 가정 실내에서 신는다고 했다.
우리 일행은 엘리베이터가 없는 한 호텔에서 가위바위보를 했다. 꼴찌가 가장 위층에 배정되는 게임이다. 나는 꼴찌로 4층을 배정받았다. 아내의 여행 가방과 내 가방 둘을 들고 열심히 올랐다. 4층이라고 생각하고 가방을 내려놓고 심호흡을 하며 둘러보니 3층이란 표시가 되어있다. 잘못 계산한 줄 알고 한 층을 더 올랐더니 4층이란 표시가 되어있다. 분명 5층이어야 맞는데. 잘못 왔나 하면서 열쇠로 확인을 해보니 분명 401이 맞다. 4층의 첫 번째 방 401호인 것이다.
뒤 따라 오던 아내도 머리를 갸우뚱했다. 분명 1층에 있는 로비에서 가위바위보에서 꼴찌 한 덕분에 자업자득으로 고생한다지만 그래도 미안해하는 눈치다. 열 개의 계단 정 방향과 반대 방향, 두 줄을 오르면 2층이고, 또 두 줄을 오르면 3층, 마지막 두 줄을 젖먹던 힘까지 내어 올라와서 4층이라고 계단을 새며 올라와 다 왔다고 좋아했는데, 또 1층을 더 올라야 하는 것이 가위바위보에 진 형벌로는 너무하다 가혹하다 싶었다.
우리가 가위바위보를 했던 로비가 영(0)층이었다. 한국의 건물에는 0층이 없다. 0층은 처음부터 만들어지지 않았다. 층수를 계산할 때 우리는 지붕을 생각하고 서양인들은 사람이 서 있는 바닥을 생각하는 모양이다.
나이도 그렇다 우리식으로 나이는 0세는 없다. 태어나면 바로 1세다. 그리고 설만 지나면 한 살이 추가된다. 그러나 서구의 나이는 태어나서 첫 생일이 지나야 1세가 된다. 우리는 배속의 나이를 포함한다고 하지만 태아도 뱃속에서 열 달밖에 채우지 못하고 태어난 것이 아닌가. 서양식의 나이, 태어난 날을 기준으로 몇 살 몇 개월이라는 정확한 표현이 다만 부러울 뿐이었다.
단순히 문화적 차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람의 생각이 어떤가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것이 합리적인 사고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내가 한 층을 더 오른 것이 억울해서 트집을 잡는 것은 아니다.
1인당 국민소득이 높은 것은 합리적인 사고와 근검, 절약이 바탕이 된 것이 아닐까 싶다. 수학의 수열을 생각하다 우리에게는 0층이 없다는 오류를 발견했다. 4층에 올라갔다가 4층을 내려오면 0층이 되어야 정상이 아닐까. 4-4=0이라는 수학의 답과 일치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에서 7층에 살고 있다. 항상 6층만 내려오면 1층이 되기는 하지만 7층을 내려가면 지하 1층 즉 -1층이 된다. 1층에서 1개의 층을 내려가면 0층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실재는 그렇지를 못하다. 우리 집 1층에서 한 층을 내려가 봤더니 지하 주차장, -1층이다.
수열에서 -2, -1, 0, 1, 2 이 맞다. 우리의 건물을 수열로 정렬하면 -2,-1, 1, 2, 다. 0이 없지만 당연하다는 생각으로 지금까지 살았다. 사소한 생각의 차이가 선진국과 후진국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지금까지 서양이 동양보다 잘 사는 이유는 서구의 합리주의에 있다고 한다. 매사에 논리적이고 정확하다.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를 한다는 그것은 잘살 수 있는 것이다. 어떤 마음으로 출발하느냐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된다. 긍정적인 사고는 긍정적 결과를 가져오고 부정적 사고는 부정적 결과를 가져오듯 합리적이고 정확한 사고에서 합리적이고 정확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서구의 합리주의는 수학에서 두드러진다. 수학의 모든 법칙이나 원칙은 서구의 수 개념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런 연장선에서 우리는 곰곰 생각해야 할 점이 많다. 예컨대 정부 기관들이 비합리적으로 마련한 정책들이 잘되기를 바란다면 과연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는 국민이 소득이 높아지기를 바란다는 것은 뭔가 모순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