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횡가(縱橫家)
중국 전국시대의 제자백가(諸子百家) 중 정치적 책략으로써 당시 국제외교상에서 활약한 유세객(遊說客)들.
특히 소진(蘇秦)이나 장의(張儀)로 대표되는 합종연횡(合縱連衡)의 책략이 그 중심을 이루었으므로 이 이름이 생겼다.
소진 등이 주장한 합종책(合從策)이란 당시 동쪽에 있던 연(燕),초(楚),한(韓),위(魏),조(趙),제(齊)의 6국이 연합하여 서방의 진(秦)나라에 대항하려고 한 정책이며, 장의가 내세운 연횡책(連衡策)이란 진나라와 6국이 각각 손을 잡게 함으로써 진나라의 발전을 꾀한 책략이다. 그들의 언동을 많이 수록한 서책이 《전국책(戰國策)》이다.
귀곡자 鬼谷子 ( ? ~ ? )
중국 전국시대 초(楚)나라의 사상가.
성명과 행적(行蹟)이 모두 알려지지 않았다. 영천(潁川),양성(陽城)의 귀곡지방에 은둔하였기 때문에 귀곡자라고 하였다. 진(秦),초(楚),연(燕),조(趙) 등 7국이 천하의 패권을 다투던 시대에 권모술수의 외교책을 우자(優者)의 도(道)라고 주장한 종횡가(縱橫家)이며, 소진(蘇秦)과 장의(張儀)도 그의 제자였다고 한다.
천지간의 현상은 천지를 생성하는 도에 의하여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는 일정한 법칙에 지배된다고 보았으며, 자신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동정변화(動靜變化)를 알아야 한다고 설명하였다. 저서로서 《귀곡자》 1권이 전해지며, 소진의 가탁(仮託)으로 간주되었다. 현행본은 내용도 천박하고, 문장 자체도 전국시대의 것이 아니어서 위서(僞書)임이 명백하다.
소진 蘇秦 ( ? ~ ? )
중국 전국시대(BC 5세기~ BC 3세기) 중엽의 유세가(遊說家).
허난성[河南省] 뤄양[洛陽] 사람. 장의(張儀)와 함께 귀곡자(鬼谷子)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처음에 진(秦)나라의 혜왕(惠王)을 비롯하여 제후 밑에서 유세를 하였으나 채용되지 않았다. 강국인 진나라와 한(韓)나라 두 나라가 서로 교전하고 있어 산둥 지방의 제국들은 진나라의 침략을 두려워하고 있던 때이므로, 연(燕)나라의 문후(文侯)에게 6국 합종(合縱)의 이익을 설득하여 받아들여졌다. 다시 조(趙),한(韓),위(魏),제(齊),초(楚)의 여러 나라를 설복하는 데도 성공하여, BC 333년 연나라에서 초나라에 이르는 남북선상(南北線上)의 6국의 합종에 성공하였다. 이로써 혼자서 6국의 상인(相印:재상의 인장)을 가지게 되었고, 스스로 무안군(武安君)이라 칭하여 이름을 떨쳤다. 이 때문에 동방으로 진출을 꾀하고 있던 진나라는 십 수년간 그 진출을 저지당했다. 그러나 그의 합종책은 장의 등이 헌책한 연형책(連衡策:連橫策이라고도 함)에 패배하여 실패했다. 그 후 연나라의 관직에 있다가 다시 제나라에 출사했으나, 제나라 대부(大夫)의 미움을 사 암살당하였다.
소진이 일개 서생 출신으로 지모변설(智謀辯舌)로써 공명부귀를 얻어 그 이름을 천하에 떨쳤기 때문에 진나라를 위해 연형책을 썼던 장의와 함께 전국시대 책사(策士)의 제1인자로 병칭(竝稱)되고 있다. 그의 동생 소대(蘇代),소여(蘇잿)도 역시 유세가로서 알려졌다. 진에 대한 것은 《전국책(戰國策)》에 자세히 기재되어 있으나, 당시의 역사적 사실과 부합되지 않는 점이 많아 후세에 와서 억지로 뜯어맞춘 것이라는 설도 있다.
장의 張儀 ( ? ~ BC 309 )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 위(魏)나라의 모사(謀士).
종횡가(縱橫家)의 비조. 합종책(合從策)을 제창한 소진(蘇秦)과 더불어 귀곡선생(鬼谷先生)에게 사사하였다. 처음에 초(楚)나라에 가서 벽(璧:옥으로 만든 儀器)을 훔친 혐의를 받고 태형(苔刑)의 벌을 받은 뒤 추방되었으나 제후에 대한 유세(遊說)를 계속하였다. 소진의 주선으로 진(秦)나라에서 벼슬살이를 하게 되어 혜문왕(惠文王) 때 재상이 되었다. 연형책(連衡策)을 주창하면서, 위(魏),조(趙),한(韓)나라 등 동서[橫]로 잇닿은 6국을 설득, 진(秦)나라를 중심으로 하는 동맹관계를 맺게 하였다. 혜왕이 죽은 뒤 실각, 위나라로 피신하였으며 재상이 된 1년 만에 죽었다.
합종연횡 合從連衡
중국 전국시대의 최강국인 진(秦)과 연(燕),제(齊),초(楚),한(韓),위(魏),조(趙)의 6국 사이의 외교 전술.
BC 4세기 말 여러 나라를 유세하고 있던 소진(蘇秦)은 우선 연에게, 이어서 다른 5국에게 '진 밑에서 쇠꼬리가 되기보다는 차라리 닭의 머리가 되자'고 설득하여, 6국을 종적(縱的)으로 연합시켜 서쪽의 강대한 진나라와 대결할 공수동맹을 맺도록 하였다. 이것을 합종(合從:從은 縱)이라 한다.
뒤에 위나라 장의(張儀)는 합종은 일시적 허식에 지나지 않으며 진을 섬겨야 한다고, 6국을 돌며 연합할 것을 설득하여 진이 6국과 개별로 횡적 동맹을 맺는 데 성공하였다. 이것을 연횡(連衡:衡은 橫)이라고 한다. 그러나 진은 합종을 타파한 뒤 6국을 차례로 멸망시켜 중국을 통일하였다.
[출처] 종횡가(縱橫家)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