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년부처 *
경주 박물관 앞마당
봉숭아도 맨드라미도,
피어 있는 화단가
목잘린 돌부처들 나란히 앉아
햇살에 눈부시다
여름방학을 맞은 초등행들
조르르 관광버스에서 내려
머리 없는 돌부처들한테
다가가
자기 머리를 얹어본다
소년부처다
누구나 일생에 한번씩은
부처가 되어보라고
부처님들 일찍이 자기 목을
잘랐구나
* 목 잘린 돌부처님 *
경주는 내 마음의 고향이다, 경주 외할머니 댁이 있어서 초등학생 때는 물론 고등학생과 대학생 때도 틈만 나면 경주에 들렸다. 에밀레종 밑에 들어가 공포에 떨면서 종 안에 이런저런 낙서들이 있는 것을 보기도 했으며, 첨성대에 있는 네모진 창속으로 들어가 오랫동안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기도 했다.
어디 그뿐인가, 안압지며, 계림이며, 반월성을 쏘다니기도 했으며, 어떤 때는 석빙고의 문이 열려 있는 것을 보고 그 안으로 들어가 얼음 녹은 물이 흘러내리도록 사방에 골이 패어 있는 것을 보고 선조들의 과학성에 감탄하기도 했다. 토함산 석굴암까지 걸어 올라간 일은 한두 번이 아니다.
슬쩍 옆으로 쳐다보았을 때 석굴암의 젖꼭지가 엄마 젖꼭지처럼 유난히 툭 불거져 나온 것을 보고 나 혼자만의 신비스러운 비밀을 간직한 듯 오랫동안 가슴이 떨리기도 했다. 그런데 경주 일대를 다녀보면 남산 등 이곳저곳에서 얼굴 없는 목 잘린 부처님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나는 목잘린 부처님들을 뵐 때마다 늘 마음이 저리도록 아팠다.
왜 저 부처님은 자신의 목을 잘라버린 것일까, 저 부처님의 잘려진 머리는 어디로 가서 뒹굴고 있는 것일까. 도대체 머리가 없고 몸만 있는데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시는 것일까. 조선시대 때는 유교를 숭상한다고 불교를 탄압했기 때문에 동네 청년들이 힘자랑할 때 도끼로 부처님 머리를 훼손했다는 외갓집 동에 어른들의 말씀은 도대체 신빙성이 있는 것일까.
가부좌하고 빈 들판에 앉아 있거나, 묵묵히 먼 산을 바라보며 서 있는 머리 없는 부처님들은 늘 내게 경외의 대상이었다. 또 몸은 없고 머리만 있는 부처님들을 뵐 때도 불두佛頭의 진정한 마음이란 무엇일까, 행여 목을 자른 인간의 만행을 원망하거나 질타하고 계시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애증의 세계를 진정 해탈하신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거듭 해보기도 했다.물론 오랜 세월을 견뎌오는 동안부처님의 몸이 많이 망가진 것이라거나, 우리 문화재를 파괴한 일제日帝의 만행 중 하나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런 역사적 사실에는 그리 관심이 가지 않았다.
그런 어느 날, 내가 어른이 되고 아버지가 되어 초등학생 아들을 데리고 여름방학 때 경주박물관에 들렀을 때였다. 경주 박물관 입구에 들어서자 목 잘린 부처님들이 몸만 남은 채 손을 벌리고 햇살 아래 고요히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이 너무나 경건하고 감동적이어서 나는 그 앞에 한참 동안 서 있었다.
'나는 언제 부처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 아마 죽을 때까지 이해하지 못할 거야'라는 생각을 하며 아들의 손을 잡고 오랫동안 서 있었다. 그런데 그때 마침 수학여행을 왔는지 관광버스에서 내린 초등학생 한 무리가 "와!부처님이다!"하고 소리치며 조르르 목 잘린 부처님한테 달려가 턱 하니 자기들의 머리르 얹고는 환하게 웃는 게 아닌가!
바로 그때, '아,부처님들이 우리 인간에게 일생에 한 번쯤은 부처가 되어보라고 저렇게 목을 잘랐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소년들이 자기 머리를 얹었으니 저건 소년 부처다!' 하고 마음속으로 소리쳤다. 일생에 단 한 번 부처가 되어보라는 의미는 무엇일까. 그것은 사랑이 많은 , 자비가 가득한 인간이 되라는 말씀이 아닐까.
초등학생들이 다시 조르를 떠나간 뒤, 나도 머리 없는 부처님의 목에 내 머리를 얹어보았다. 그리고 빙긋이 미소를 띠어보았다. 물론 내 아들도 그렇게 했다. 순간 부자지간에 마치 모든 것을 해탈하고 영원을 바라보는 자비의 부처가 뒨 느낌이 들어 자못 감동적이었다.
사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부처가 되어보지 못했다. 그래도 한 가닥 희망은 있다. 경주박물관에 가서 머리 없는 부처님의 목에 턱 하니 내 머리를 얹으면 되니까....
- 정 호 승의
시가 있는 산문집 -
첫댓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부처가 되어보지 못했다틑 시인의 글처럼
우리 모두가 죽을 때 까지 신의 모습으로 돌아가지는 못할 거에요
정호승 님의 시가 있는 산문집 감사 드립니다
무더워진 날씨에 건강 유의하시기를 바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