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주莊周와 나비 / 박희진 (1935~2015)
죽은 사람 같네,
뼛골이 녹아내리는 잠에
곯아떨어진 장주의 얼굴.
그의 콧구멍을 나드는 것은
솔바람 소리인가, 천지의 입김인가.
그는 꿈에 훨훨 나비가 되었다.
눈부신 꽃밭, 향기 그윽한
공중을 날아 거침이 없음이여.
흰 나래 아래 스치는 실바람이
이렇게 감미로운 것인 줄은 몰랐다.
그런데 깨어 보니 분명 장주로세.
아지못게라 이 내가 누구인가,
장주가 꿈에 나비가 되었는지
나비가 꿈에 장주가 되었는지.
나비면 나비로 살고지고.
장주면 장주로 살고지고.
산중문답山中問答 / 박희진 (1931~2015)
도인道人을 찾다가 산중에서 길을 잃었지요. 일행은
네 사람, 냇가에 앉아 숨을 돌리는데 초부樵夫가
지나가기에 사유를 말하고 길을 물었더니, 망설이다가
가르쳐 주더군요, 내가 바로 그분의 암자를 지어준
사람이노라 하며. 이 속리산 산중에서 아마 그분처럼
공부가 많고 도통한 스님은 안 계실 것입니다.
아직 나이는 젊은 분인데요, 이미 몇 해를 생식만을
해 온 놀라운 어른이죠. 나는 잠시 묵묵히 있다가
불쑥 이런 질문을 해 봤어요. 당신은 무엇으로 그분을
도통한 사람이라 보십니까. 도대체 사람이 도통하면
어떻게 되는지요. 그는 나의 표정도 안 살피고,
어쩌면 심안心眼으로 살폈는지도 몰라, 그러기에
그 순간 나는 확 얼굴이 달았으나, 사뭇 의연한
어조로 타이르듯 대답을 하더군요. 사람이 도통하면
안 보이게 되는 거죠. 나무를 보면 나무가 되고,
바위를 보면 바위가 되는 마음. 안 되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하고 그는 어느덧 자취를 감췄어요.
그래 일행은 꿈에서 깨어나듯 자리를 뜨고, 그 초부가
가르쳐 준 대로 도인을 찾았으나 영 오리무중으로
끝내 찾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후일담後日譚 / 박희진 (1931~2015)
무슨 줄기찬 인연이 닿았기에 내 또다시 도인을 찾게
되나. 여기 속리산을 못 본 이는 극락에 가더라도 되돌려
보낸다는 말이 있다. 살아서 두 번째로 이곳에 오는 나,
도인을 찾아 아니 갈 수야 없지. 법주사 뒤 계곡을 끼고
한참을 가노라니, 병풍처럼 둘러선 산도 깊고 물도
잦아진 곳, 어디에 쉰 동굴이 있는 걸까. 발아래 내를
건너 울울한 풀섶 사이 가파른 오솔길을 올라갔다.
바람도 이곳까진 못 따라 오는지, 후두두 듣는 땀방울
소리. 이젠 어지간히 온 것도 같아 걸음을 멈추니
저만치 샘이 뵈네. 그 언저리엔 훤한 공간이 열려 있고,
갑자기 나를 휩싸는 적막감에 나는 잠시 멍멍해졌다.
그러자 드디어 그분이 조용히 나타난 것이다.
내 시야 한가운데 회색의 무명 승의僧衣를 입은 소박한
그 사람이. 절로 땀이 가시는 것이었다. 나는 겨우
반벙어리 인사를 했겠지. 그는 여전히 조용한 거동으로
나를 거실 앞 마루로 이끌더니 앉으라 한다. 비로소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임진왜란 때 쉰 명의 사람들이
피란을 했다 해서 쉰 동굴이라는 곳, 그 어귀에 방을
들이고 옆에는 부엌문이 달려 있어, 동굴은 그리로
넘나들게 돼 있단다. 흰 미닫이 건너편이 거실일 터이지만
그 안을 살필 도리는 없었다. 사방이 울창한 나무들로
꽉 찬 산 속이라 고요하기 짝이 없다. 툇돌 아랜
헌 나무받침 위에 대야가 하나. 사람이 처음 생식을
배울 땐 심리 밖 된장내도 난다던가. 생쌀을 씻어 건져
두었다가 한 끼에 한 홉 정도, 솔잎과 날콩, 그리고
이따금 기름 한 숟갈이 식량의 전부란다. 위장의 질이나
피부색까지 달라질밖에. 그의 가는 손마디나 핏기라곤
없는 피부를 살피니, 옛날 이차돈의 목을 베었을 때
젖빛 같은 흰 피가 솟구치더라는 고사 떠올랐다.
뭐 산중에 홀로 살자니까 자연 생식이 편리한 거겠지요.
하고 그는 그윽이 웃는가 싶었으나 여전히 가라앉은
말투가 이어질 뿐. 말이라기보다 그저 잔잔한 물소리처럼
시종여일하게 나직한 가락이지. 그것이 내 폐부에
스며왔다. 이미 그에겐 심신의 분별이 없어진 것일까.
마음 한 가지, 삼라만상이 그 안에 비치는. 경우에 따라선
그는 각각으로 흐르는 물이다. 또는 나무다. 바위다.
구름이다. 그것이 지금은 이 하찮은 속세의 티끌 몸에
귀를 열어 주는 한 줄기 음성. 본래무애本來無碍라
이상할 것이 없지. 허나 이 도인이 분명 신비스런 존재로
비치는 건 내가 아직도 살과 피의 굴레를 못 벗어난
천골賤骨인 탓이리라. 그럼 동굴이나 구경하실까요, 하고
그는 일어섰다. 안으로 파인 깊숙한 굴 속인데 처음엔
침침해서 분간이 안 되다가 차차 어둠에 익숙해지니
그 크기가 미상불 쉰 명쯤은 능히 수용하고 남음직하다.
온 나라가 왜적의 말발굽에 쑥밭이 됐을 때도 여기 모인
선남선녀의 무리들은 그 천명을 지켰단 말인가.
굴 속 흙벽은 늘 조금씩 물기를 머금어서 습습하다 한다.
이젠 다 왔어요, 하며 그는 조용히 뒤돌아 섰다. 저만치
열린 부엌문에서 비치는 한줄기 미광微光을 받고,
그때 겨우 그의 상반신만이 아련히 떠올랐다.
꿈속에서처럼, 허나 놀랍게도 선연한 그의 얼굴에 광채가
났다. 부드럽고도 거의 반투명의 청수한 이목구비.
그러한 얼굴을 나는 꼭 어디서 본 듯도 한데. 나는
그때 비로소 그 도인의 얼굴을 역력히 뇌리에 새길 수가
있었던 것이다. 한낮의 볕 속에선 감히 똑바로 보기가
안 됐거든. 귀로에 들어서자 나는 한결 걸음이 가벼워졌다.
그러나 불교도 이젠 좀 거리에 나서야 참말이 안 되겠느냐
하던 내 우문愚問이 되살아오자 또 마음이 훗훗해졌다.
산중에 혼자 있어도 말입니다. 그건 혼자 있는 게
아닙니다. 더불어 있는 거죠, 모든 것과, 하던 그분의 말.
그렇다. 참도인이 있다는 것은 어디에 있건 간에
그것만 가지고서도 족한 게 사실이다. 나는 말하리라
서울에 가서 중생을 만나거든 이렇게 말하리라.
나는 만났다고, 부드러운 부드러운 사람을 만났다고.
- 제2시집 <청동시대> 19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