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부터 특이한 '킬라니(Killarney)'는 아일랜드 서남부에 위치한 국립공원 인근의 소도시.
전통적인 골수 가톨릭 국가답게 아일랜드에는 '킬(Kil)'이 들어간 지명이 많은데,
아일랜드 고유어인 갤릭으로 '교회, 성당' 을 뜻한다.
인구 절대 다수가 가톨릭인 아일랜드는 이웃 영국에 종교적으로도 무지 핍박받았는데,
그러나 이 곳 역시 젊은이들의 무교화 경향은 예외가 아니다. (나처럼 무늬만 가톨릭이랄까;;)
킬라니 국립공원
드라마틱한 장관과 서정적인 자연이 한 데 어우러진 남서부의 딩글(Dingle) 반도, 케리(Ring of Kerry),
장엄한 던로 협곡(Gap of Dunloe) 세 곳의 베이스가 되는 킬라니.
귀에 못이 박히도록 칭찬을 들은 딩글 반도 때문에 킬라니를 찾았으나 11월부터 동절기에는 딩글과 협곡 투어가 중지돼 ㅜㅜ
킬라니 국립공원에서 개별적으로 트레킹을 하기로 계획을 선회했다.
(개별적으로도 딩글 반도를 싸이클로 돌 수는 있는데,
동절기라 해도 짧고 버스 연결편이 부쩍 축소돼 최소한 이틀은 오롯이 투자해야 해서 스케쥴 상 단념)
가이드 따라 사진 찍고 턴하는 단체 투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Ring of Kerry를 개별 트레킹하려면 한 달은 잡아야 할 듯.
(바다, 협곡, 초원 등 다채로운 풍경을 볼 수 있는데 아쉽게나마 멀리서 딩글 반도도 볼 수 있다.)
아일랜드 여행의 최고 맹점은 거의 모든 것이 그 날의 '날씨'에 따라 극과 극이 된다는 것.
단순히 만족, 불만족을 떠나 운 나쁘면 그냥 그 날 야외 일정을 포기해야 하는 불상사가 적지 않다.
물론 날씨가 워낙 변덕스러워서 15분 단위로 바뀌기 때문에 아침엔 개떡 같았다가 정오쯤엔 햇빛에 눈이 부실 수도 있다.
여러모로 날씨운이 제일 중요.
아일랜드에서 곧잘 볼 수 있는 무지개.
날씨 개떡같은 건 단점이지만 짧은 빗줄기가 지나가면 종종 무지개가 보상해 준다.
해수면으로 곧장 이어지는 제대로 거대한 쌍무지개였는데 역시 찍사의 내공 부족.
여자도 정녕 뱃사람이 될 수 있을까.
Ring of Kerry 투어엔 노년 커플 포함, 대부분이 가족, 친구들끼리 참여해서, 유일하게 나만 혼자였음.
그래서인가, 우연히 앞에 앉은 아일랜드 계 캐나다 출신인 할아버지가 말도 많이 걸어주고 친한 척 해 줘 솔직히 은근 당황;
나는 창가에 바짝 붙어 앉아 조용히 상념에 잠겨 경치를 감상하고 싶은데, 예의상 대꾸를 안 할 순 없어서 고마우면서도 피곤.
이름이 Jack이었던가 Joe였던가 기억도 안 나네; (훈남이 아니어서 그랬던 거야, 분명 ㅡㅡ;)
나는 아일랜드의 자연이 빙하 등 드라마틱한 풍광을 제외하면 뉴질랜드 남섬과 비슷하다고 했고,
Jack은 내겐 참으로 의외로 남미의 에콰도르를 떠올린다고 했다.
남미는 여전히 로망으로 남아있으니 알 턱이 없지.
Jack은 내가 처음에 부부 사이라고 생각했던 곱디 고운 Sue라는 할머니(친구라고 했다. companion)와 여행 중인데,
같은 호텔에 투숙했지만 각자 싱글룸에 묵고 서로 살갑게 지내긴 했지만 확실히 이성적인 그런 사이는 아니었다.
장성해서 독립한 자녀들도 있어서 실례될까 봐 부인과 이혼했는지 사별했는지는 물어보지 않았지만,
나름 재미있고 시도해 볼 만한 관계라고 생각했다. 노년에 들어서 여행도 같이 하는 이성 친구 사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동아시아 특유의 주류에 대한 신경증적 강박, 배타적 마인드 등이 주제로 나왔다.
'그런 피로도 때문에 한국이 최저 출산률과 최고 자살률을 경신하는 거 아닐까 싶어요.
꼭 따라붙는 OECD 이런 수식어구 걷어치우고.'
그래서 의례 통과의례?에 대한 얘기가 나왔는데
(꼭 일정 나이에 결혼하고 애 낳고 키우고 나이들고 로보트처럼 그래야 할까요?)
Jack 曰,
'나도 이제는 그런 일방적인 삶의 단계랄까 하는 걸 다 겪어서 해방되고 싶어.
Sue와 여행 다니는 것도 그래서이고.
물론 지금 와서도 원한다면 가족을 새로 꾸리고 아이도 낳고(응???? 뭐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미 모두 겪었으니까.'
웬 굳이 생뚱맞게 일흔이 넘어서 2세 운운 얘기가 나와서 좀 뜨악했다.
뭐랄까.
난 이 젠틀하고 조곤조곤한 차분한 할아버지가 막내딸이나 조카딸 같은 느낌에 대화도 해 주고 질문도 많이 하고 그러는구나,
이러고 있는데 부부인 줄 알았던 여자분과는 플라토닉 친구 사이라지, 갑자기 웬 뜨악스런 2세 얘기를 하지,
이래서 괜히 혼자 오버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갑자기 Jack이 할아버지라는 제 3의 성이 아닌, 순간 '남자'로 보였다.
(이래서 남자는 믿을 놈 하나도 없다고-? ㅎㅎㅎ)
하긴 그게 남자들의 특권이라면 특권이지.
심지어 늙어 자연사할 때까지 재생산이 가능하다는 거. 정자 냉동도 수월하다는 거.
2세니 재생산ㅡㅡ?에 연연하는 타입이 아니더라도, 이같은 생물학적 구조에 대한 무의식적인 인식의 차이와 자유는 상당해서,
남자들이 세계를 주도해 온 것을 상당 부분 설명해 준다.
마초들과 여자 마초들이나 살기 유리한 세상. 후진국일수록 그게 심하지.
'이갈리아의 딸들'이 맞아. 여자들은 뱃사람이 될 수 없어. ㅜㅜ
아무리 시대가 변하고 제도적 보완이 이루어지고 부정하려 해도 모험과 자유, 성취에는 절대적으로 남자가 유리하지.
피해의식이 아니라 내가 남자였으면 인생이 0.5 배는 덜 꼬였을까.
킬라니 국립공원 트레킹.
시간이 멈춘 듯한 고요. 적요.
강가변 풀숲 바위 위에 돗자리 깔고 누워 세월아, 내월아 하루 종일 책 읽고 낮잠자고 한량놀음에 딱.
Ross Castle
정확한 화풍은 모르지만 몇 세기의 유화나 수채화가 떠오르는 풍경의 연속이다.
드리운 나뭇가지들이 거울같은 잔잔한 호수에 그대로 비쳐, 진짜와 모사의 경계가 무너진 환상적인 느낌.
투어가 끝난 후 저녁에 Sue와 셋이서 전통 펍에서 맥주를 마시자고 Jack이 제안.
'그렇게 하죠. :)'
친절하고 차분하고 재미있는 할아버지길래 (사실은 할아버지보다 혼자 가서 훈남을 찾고 싶었지만 ㅜㅜ)
약속 시각을 정하고 내 호텔 로비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웬 걸, 그렇게 열심히 내 숙소 위치를 몇 번이나 확인하고 꼭 펍에서 만나자고 다짐해 놓고는-
바람맞혔다; ㅡㅡ 당최 뭐지?
내 숙소를 미처 못 찾았나? 초저녁에 잠들어 버렸나?
하여간 독특한 Jack이었다.
역시 늘 느끼지만 한국어와 일본어 특유의 위계질서(호칭, 존대 등)가 없는 영어 대화는 자유로워 좋다.
여느 한국 할아버지와, 한국어로는, 결코 Jack과 그랬듯이 동등한 친구처럼 1:1로 대화할 수 없지.
한국에서 보통의 한국인들끼리는 단 몇 살 차이나는 또래라고 해도 언니, 형, 오빠, 동생일 순 있어도 '친구'는 될 수 없다.
요새 한국에는 갑질이니 감정노동자에 대한 진상짓이니 말이 많은데 이는 분명 한국어의 존대/반말, 호칭 문화와도 관계가 크다.
예전에 토론에서 '한국이 동방예의지국'이란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얘기가 나와,
수평 관계가 아닌 유교적 수직관계에 의거한 동방예의지국 신화는 구시대적 착각에 불과하다고 하니 다들 공감하더군.
멤버들이 젊은 사람들에 교포 2세들이 많아서 더 그랬던 듯.
역시 언어, 특히 모국어는 대부분의 경우 멘탈을 지배한다.
그래서 그건 축복이자 저주인 동시에, 갑옷이자 감옥이지.
화려한 색깔을 보건대 이건 독버섯이겠지. ㅡㅡ
트레킹하다 간혹 보는데 설마 먹는 사람이야 없겠지...?
다시 찾은 호스텔링과 알베르토
킬라니에선 Neptune이라는 꽤 유명한 호스텔에 묵었다.
사실 몇 년 전에 대만을 여행할 때 '이제 호스텔과 도미토리에서 묵는 건 마지막이겠구나. 안녕'
이랬었는데 유럽과 북미, 호주 등은 싱글룸에 묵다가는 거덜나기 십상이어서 다시 호스텔로 회귀.
사실 아일랜드에서 2주간 대중교통보다는 두 세명이서 캠핑카나 렌트카로 여행하는 게 딱이다! 아쉬워 했는데,
(그리고 물론 마음 맞는 남편이랑 다니면서 더블룸에 묵고 말이지-)
그래도 오랜만에 맛보는 특유의 젊은 활기도 반갑고 쉽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 즐거웠다.
동양인 특유의 동안 ㅡㅡ;과 여전히 무던한 내 성격 덕분에 로비에서도 방에서도 금방 대화를 트고 쉽게 어울릴 수 있었다.
어렸을 때는 짧게 여행 한 번 해도 페이스북 친구 수십명은 추가할 정도로 한 가득 인맥을 얻어왔는데,
이제는 딱히 연락처를 묻지도 이메일을 교환하지도 않고 수트케이스를 끌고 여행하지만,
여전히 호스텔링과 도미토리는 특별한 로망과 추억으로 남아있다.
젊은 피 수혈받아 회춘하는 기분;
마침 같은 방에 묵던 바르셀로나 출신의 '알베르토'와 트레킹도 같이 하고 도움도 많이 받았다.
나에게 영감을 줄 만한 명민한 지성을 제일 중시하는 내게, 알베르토는 마냥 착하고 사려깊은 남자사람이었지만,
소박하고 참 건강한 마인드를 가진 그와 동행하는 내내 유쾌하고 많이도 웃었다.
알베르토는 EU인 스페인 출신이라 워킹홀리데이 등 임시 취업비자 없이도 아일랜드에 머무를 수 있고,
그래서 영어도 늘릴 겸 휴직하고 아일랜드에서 호스텔 helper 등으 무료숙식을 제공받으며 몇 개월째 아일랜드에서 지내고 있었다.
여기저기 아일랜드 구석구석을 쏘다닌 사진을 보며 너무 부러웠는데 (절반은 인스타그램 뽀샵의 효과 ㅡㅡ;;)
내가 저녁마다 카먼룸 식탁에서 가이드북과 버스 시간표와 지도를 사방팔방 펼쳐두고,
노트북 앞에 두고 노트에다 날짜별, 시간별로 여행 일정을 짜고 계산하는 걸 보고 곧잘 딴지를 걸었다.
'헐. 너 여기 휴식하고 여행하러 온 거 아니야?
깨알같이 표까지 만들어서 '해야 할 일정' 짜는 거 보니 보기만 해도 숨이 막혀. 무슨 극기훈련하니?
그냥 좀 릴랙스해.'
'흑. 나도 너처럼 몇 개월씩 아일랜드에서 마음가는대로 발길 닿는대로 지내는 거면 충분히 그럴 수 있어. ㅜㅜ
하지만 난 단 2주 머무르는 데다 가고 싶고 하고 싶은 건 너무 많단 말이야ㅜㅜ'
트레킹을 가서도,
내가 종종 시간을 확인하고 '해 지려면 얼마나 남았지?', '
'몇 km나 더 가야 종점에 도달할까?'
등 물으면,
'걱정하지 마.
잠깐 여기 앉아서... 눈을 감고... 여기 새소리, 물결 소리를 들어봐.
하늘도 봐 보고... 아무 것도 생각하지 말고, 공기를 온전히 들이마셔 봐. 그 냄새도.'
그러면서 명상하듯 폼잡고 (도 닦냐?) 시범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면 나는 잠시 반성하며 따라해 볼까 하다가, 이내 다시 안절부절 모드... ;;;)
이렇게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킬라니 국립공원에서 트레킹을 하면서도 안절부절 못 하는 나는 당최 구제불능인가. ㅜㅜ
호수 안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나무들이 한 가득이라 신기했다.
둘째날 트레킹은 알베르토 없이 혼자 가서 또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아무도 없는 조용한 호숫가에 무릎을 얼싸앉고 앉아서 가만히 새소리도 들어보고 잔잔한 호수물결 소리도...
머리칼에 내리쬐는 오후의 아스라한 눈부신 햇빛도... 정말 말로 표현이 안 되네.
내게는 드라마틱한 설산이나 유명세는 없어도 스위스나 오스트리아의 삐가번쩍한 호수 뺨치는 것 같아.
종교, 神, 자유의지
알베르토는 자기는 바르셀로나, 카탈루니아 출신이라 스페인 사람이라 불리는 걸 별로 안 좋아한다고 매번 극구 강조.
'그나저나 스페인도 아일랜드처럼 꽤 전통적인 가톨릭 국가잖아.'
'나는 카탈루니아 출신인데 ㅜㅜ'
'아, 맞다맞다... (까칠하긴;;;) 그래서 너도 주일마다 미사 참석하고 그래?'
'아니. 아일랜드처럼 내가 사는 곳도 연령대가 낮아질수록 종교에 무관심하고 회의적이야.'
'하긴 나도 무늬만 가톨릭.'
'사람들이 점점 더 영리해져서 그런 거 아닐까?
종교에 세뇌되지 않고 덜 의지하는 거 말이야.'
알베르토는 남부유럽 출신답게 영어가 막 유창한 편은 아니라,
종교를 언급하며 'stupid'란 원색적인 단어를 사용해서 나도 모르게 약간 반발심이 일었다. 그리고 그런 나에게 놀랐지.
알베르토도 현상을 단순화시킨 감이 있지만 당시 난 뼛속까지 무신론자가 됐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그런데도 여전히 (특히 가톨릭) 신앙에 대한 인신공격적 발언에 뜨끔하는 걸 보면 역시 환경과 감정은 컨트롤 영역이 아닌가 보다.
그 날 저녁, 방으로 돌아온 우리는 더블린에서 잠시 홀로 일로 방문하신 Ann이란 할머니를 만났다.
(백발 파마머리에 안경 쓰시고 뚱뚱한- 영락없는 미세스 다웃파이어!!)
그 나이에 홀로 여행하는 것도 대단하고 도미토리에 묵는 것도 대단하다고 입을 모아 감탄했는데,
외모와는 달리? 수많은 여행경험에 모르는 게 없는 소녀같은 할머니였다. (이름도 Ann)
일본의 미션스쿨에서 몇 년 근무한 적도 있고 몇 번씩이나 입버릇처럼,
'어쩌면~ 하느님의 자비와 은혜는 정말 놀랍고 감동스럽지 않니?'
정말 순수하고 감동적인 눈길로 되뇌셔서,
Ann을 사이에 두고 맞은편에 앉은 알베르토와 나는 비밀스런 음모를 꾸미듯 조용히 눈만 마주칠 수밖에 없었다.
어중간하게 미소를 띠고 동의하면서;
'네, 물론 그렇죠. 하하... (-_-??)'
까마귀, 고성, 헐벗은 나뭇가지와 늦가을의 낙엽.
서정미와 고딕풍이 어우러진, 아일랜드와 어울리는 이미지들.
저 멀리 버려진 수도원과 묘지, 소떼들.
석양 무렵 저 너머로 보이는 교회의 첨탑.
하나같이 아일랜드와 어울리는 아이콘들이다.
겨우 아이리쉬 훈남을 만났건만... ㅜㅜ
해 떠 있는 동안 편하게 아웃도어 복장으로 차려입고 건전한 트레킹을 했다면,
해가 지면 나름 때 빼고 광 내고ㅡㅡ? 펍과 클럽에 가서 음주가무를 즐겨야지.
펍이면 모를까 클럽은 나이도 나이고 내 타입이 아닌데 이번 여행에선 어째 자주 찾게 된다.
더블린에서도, 킬라니에서도,
보통 규모가 있는 펍은 클럽과 연계된 경우가 많아 단순히 맥주 한 잔 하러 갔다가 윗층으로 올라가니 미러볼에 나이트 클럽.
런던이나 더블린에서만 해도 이렇진 않았는데,
킬라니의 펍/클럽은 온갖 사람들이 다 모여있다.
'The Grand'라는 유명한 펍.
펍과 클럽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스테이지도 따로 있고 음악 스타일도 조금씩 다르다.
그래도 분위기로나 음악으로나 분명히 젊은 사람들이 주로 모이는 클럽인데,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꽃단장하고 한 손에는 맥주, 와인 한 잔씩 들고 즐겁게 춤추고 수다 떨고 신났다.
알베르토 曰,
'헐, 내가 사는 데는 캬바레 이런 것처럼 나이 든 사람들 가는 클럽이 따로 있는데;;;'
하지만 난 보기 좋던 걸.
남 이목 안 보고 젊게 꾸미고 젊게 사는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보기 좋고,
이렇게 별별 사람들이 한데 어우러져서 흥겹게 노는 거 신선한데?
마침 주말이라 킬라니에 사는 현지인이나 인근 도시에서 놀러온 사람들도 한가득이라,
알베르토와 나는 괜찮은 현지인 찾기 미션에 나름 착수하기로 했다.
그러러면 일단 커플로 오해될 소지를 없애기 위해 각각 흩어지기로.
근데 이 놈은 아일랜드 여자들은 스페인 여자들에 비해 억세고 예쁘지도 않고 마냥 싸구려 같이 옷을 입는다며
좀처럼 나한테서 떨어질 기미가 안 보인다.
(음악 때문에 시끄러워서 대화가 힘드니까 핸드폰에
'Why Irish girls are dressed like prostitutes?!' (왜 아일랜드 여자들은 매춘부들처럼 옷을 입을까?!)'
이렇게 계속 타이핑해서 보여주는데 웃겨 죽는 줄 알았다 ㅋㅋㅋ
하여간 겨우 쫓아냈는데 마침 나한테 과분한 예쁘장한 훈남이 접근하길래 순간 정지;
'이름이 뭐니?'
드디어 아일랜드 현지에서 훈남과 대화하기 미션 리스트 가동;
훈남이라고 하기엔 너무 예쁘장하고 어린 미소년 스타일이긴 했지만 (조카? ㄷㄷㄷ)
흔녀스런 내 외모에 이런 미소년이 접근하는 건 단 하나,
지금 이 클럽 전체를 통틀어 내가 유일한 동양 여자라는 것 때문 아닐까, 혼자 설레발 쳤다.
막상 더블린 클럽에 갔을 때 죄다 호빗이라 실망했는데 ㅋㅋㅋ (내 주제파악은 물론 하고 있다;;)
검은 머리, 검은 눈의 호리호리한 훈남은 킬라니에 살고 이름은 '다니엘'이란다.
클럽이라곤 해도 접근하는 폼새나 손의 위치나 슬쩍 귓속말하는 게 너무 자연스럽지만, 뭐, 이번 컨셉은 let it go잖아.
'너 아이리쉬야?'
도통 시끄러워서 귀에 대고 쩌렁쩌렁, 제일 중요한 질문을 물으니
'응. 나 아이리쉬야.'
아아.... 드디어 현지에서 현지 훈남 만나기 미션 완료구나 ㅜㅜ
감동에 젖는데-
마침 저 너머로 알베르토가 나를 등지고 서 있는 게 보인다.
순간 혹시 알베르토가 나를 그렇고 그런 ㅡㅡ? 여자로 오해할까 봐 갑자기 걱정돼 지레 선수를 친다.
'아, 저기 쟤 보이지? 쟤 내 친구야.'
다니엘은 알베르토를 슬쩍 보더니 낮은 목소리로 묻는다.
'... 남자 친구니?'
나는 식겁해서
'응? 아니, 아니. 어제 겨우 만났는 걸. 근데 같은 호텔에 묵고 있어.'
그 순간 복잡모호한 눈빛을 남기며 사라지는 다니엘.
어엇, 어디 가니? 가지 마---------!!! ㅜㅜㅜㅜ
그냥 말 한 번 잘못 했다가 꿔다 놓은 보릿자루 돼 버렸다.
알베르토가 PT 전력이 있어 키도 크고 운동도 많이 해 체격도 좋아서 순간 쫄았나; ㅜㅜ
다음 날 그 얘기를 하면서 알베르토를 들들 볶았더니 정말 미안하다고 사과한다.
그러길래 왜 정작 가만히 있는 자기를 굳이 언급했냐며 ㅋㅋㅋ
훈남이 떠나간 후 ㅜㅜ 또다른 막내 동생 뻘 아일랜드 남자애가 접근했는데 (얘는 리머릭이라는 인근 도시에서 놀러 옴;;)
얘는 첫번째 다니엘처럼 예쁘지 않았고 ㅜㅜ 좀 노골적으로 들이대는 스타일이라 약간 깼다.
머리속은 오로지 미소년 훈남 생각 뿐.
'아일랜드 남자랑 키스해 보고 싶지 않니?'
가볍게 춤 추다가 자꾸 치근거려서 그냥 냅다 대꾸해 버렸다.
'응, 이미 질릴 만큼 했어. 그래서 궁금하지도 딱히 새롭지도 않아.'
'응????? 어디서?! 여기서? 더블린에서?'
훈남을 놓쳐버린 게 아쉽고 (딱히 뭘 바랬던 건 아니지만)
애초 계획과는 다르게 결국 짧게 스쳐가는 여행에선 이런 술집이나 클럽에서 현지 남자를 만날 수밖에 없나,
이러니 뭔가 꼼수 있는 남자들, 아주 어리거나 아주 나이 많은 남자들이나 엮이지-,
생각에 좀 우울했다.
주책이긴 하지만 킬라니에서의 최대 포인트는 입 벌어지는 풍광과 함께 다니엘이라는 1분 만난 훈남이었다.
조명빨인지는 모르지만 내가 또 언제 저런 어린 훈남을 만나보지? ㅜㅜ 두고두고 아쉬웠다.
너무 아슬아슬하게 가져봤던? 것이라 더 그런 듯.
Cork
수도 더블린에 이어 아일랜드 제 2의 도시이자 남부의 항구, 코크(Cork)는 애초에 건너뛸까 생각했다.
바다, 라이브 뮤직, 대학 도시 등 남서부의 바다에 면한 골웨이(Galway)와 비슷한 것 같았고
아일랜드 대중 교통편이 결코 저렴하지 않아서 경비 부담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골웨이와는 비슷하면서도 판이하게 다른 분위기.
꼬집어낼 순 없지만 좀더 코스믹?하고 유서깊은 미가 묻어난다.
아울러 타이타닉의 마지막 출항지로 유명한 작은 항구 마을, 코브(Cobh)를 방문하려면 코크가 베이스.
아일랜드 여행에 앞서 아이리쉬 친구인 D가 코크를 극구 추천하길래 일정에 집어넣은 건데,
백번 잘 했다. 누구는 부산 같다고 하는데 부산이 이렇게 아련한 정취가 있었나...?
화창한 날의 코크, 리(Lee) 강.
코크에서는 이렇다 할 에피소드는 없었다.
갈매기가 늘어선 리 강변(River Lee)를 따라 걷고, 구시가지를 돌아보고,
구불구불 색색이 오래된 집들이 늘어선 재미있는 골목을 따라 시내를 조망할 수 있는 언덕에 올라가 보았다.
마침 구름 너머로 해가 고개를 내밀고 저 멀리 고성당에선 아련히 종이 울리는데,
하늘에는 무망히 구름이 서쪽으로 흘러가고, 저 멀리 아스라히 은빛 지평선이 보이고,
와, 표현력이 부족해서 안타까운데 그 고요의 몇 초 동안 온 세계가 멈춘 것 같았다.
타임 슬립을 거친 느낌.
그 순간 내가 유라시아 서쪽 끝에서도 땅끝마을인 남쪽의 오래된 도시에 와 있다는 걸 온몸의 세포로 실감했다.
살아가면서 자주 경험하지 못 할 마법같은 순간.
단순히 내가 코크에 있어서, 순간 감수성이 쩔어서, 혹은 호르몬 이상으로 그 마법을 경험한 건 아니라고 자신한다.
그렇게 오롯이 세계가,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은 소중하다고밖에는 뭐라고 설명할 수가 없다.
이런 몇몇의 경험들 때문에 용케 번번히 자살하지 않고 삶을 연장해 나가는 걸 지도.
언덕위에 힘겹게 올라 바라본 코크 시내.
코크 대학교 (University of Cork) 캠퍼스에 들렀다가 돌아오는 길.
예전에는 학기 중에는 방문하는 도시 대학교에 꼭 들러 강의실도 들러보고 학생들과 친구도 되고 했는데 이제는;;;
코크의 성당.
특이하게 라틴어와 아일랜드 고유어인 게일어로도 미사가 진행된다.
가톨릭 미사의 좋은 점이라면 전세계 공통 미사 포맷이 똑같아서 어떤 언어로든 미사에 참여가 무리가 없다는 점?
신앙을 완전히 잃기 전이었다면 이국의 성당에 들러서 기도도 드리고 미사도 참여해 봤겠지만 이젠 너무 늦었다.
코크는 골웨이 못지 않게 라이브 뮤직으로 유명한 곳이다.
하루에만도 네 다섯 개 펍과 라이브 공연장을 방문했는데,
입장료도 없고 맥주 하프 파인트만 시키고도 자리를 잡고 밤 늦게까지 아마추어 open mic night을 즐길 수 있어,
늦게까지 도저히 호텔로 돌아가기가 싫었다.
아마추어 밴드라기엔 문외한인 내 눈엔 너무 프로 같아서 (실력, 열정, 무대 매너 그 모두가),
게다가 서너곡씩 부르고 내려오는 겸허한 싱어송라이터들은 아마추어라기엔 너무 곡이고 가사고 아름다워서,
게다가 모든 펍마다 분위기가 확연히 다른 라이브 뮤직을 공연하고 있어서,
한 일주일을 통째로 코크에 있지 못 한 게 안타까울 뿐.
(그러기엔 골웨이고 킬라니고 더블린이고 다른 곳들 역시 너무 좋았다 ㅜㅜ)
그 중 더블린에서 공연을 위해 당일로 방문했다는 보이쉬한 여자 싱어송라이터가 있었는데,
그 꿈결같은 음성과 미모를 보고 정말이지 반해버렸다.
안 그래도 저 여자분 레즈비언 아닐까, 혼자 이러고 있었는데 정말 세상은 공평하지 않구나.
미모에다, 재능에다, 왜 저런 사람은 레즈비언 아니면 게이가 많지? (혼자 지레 헛발질;;)
코브 (Cobh)
코크에서 기차로 15분 남짓 떨어진 코브(Cobh)는 타이타닉이 침몰 전 마지막으로 승객들을 태운 작은 항구.
100년 전의 그 모습 그대로 이민자들이 버리고 간 듯한 연기에 그을린 잿빛 벽돌집이나 굴뚝들이 남아 있어,
조금은 그로테스크하기도 하고 연민도 들고, 아마 날씨가 흐린 날엔 멜랑콜리할 것도 같다.
타이타닉은 그 자체가 계급화 등 냉정한 사회문제와 감성적인 드라마를 동시에 품고 있어 더 회자되는 듯.
이제 전설이 돼 버린, 100년도 더 전에 침몰한 비극의 선박.
단순히 선박 이상이었지.
자연을 지배하는 테크놀로지와 인간 의지의 표현이자,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고향을 떠난 아이리쉬 이민자들의 눈물과 땀이 서린 현장이었다.
실제로 타이타닉이 건조된 곳도 북아일랜드의 벨파스트고,
타이타닉 하며 건조 당시에도 아이리쉬-잉글리쉬 주민과 신교-구교도 노동자들의 갈등으로 문제가 많았다고 한다.
(이건 내가 니브 캠벨 등이 분한 '타이타닉'이란 드라마로 봐서 얼마나 사실에 근거한지는 모르겠다.
동화마을이 떠오르는 장난감 같은 알록달록한 집들.
구불구불 오르막과 내리막 언덕이 겹쳐진 코브 마을.
보기에는 예쁘지만 불과 몇 십년 전까지만 해도 생활고에 개고생하며 우울하게 살았겠지.
타이타닉 간판
여행가? 항해자?
이런 제목이 붙은 동상이었는데 인생길이란 모험의 평안을 비는 마음이 절절이 전해져서 약간 뭉클.
맞아. 나는 코브에서 여러모로 엄청 감상적이었다. 타이타닉이나 코브의 정경 때문만은 아니고 나 자신 때문에도.
아무튼 제임스 카메론의 타이타닉 개봉 당시에는 영국 리버풀을 통해 남부 사우샘프턴에서 출항하길래,
타이타닉 하면 잉글랜드 선박이란 이미지가 강했는데,
디카프리오가 분한 영화 속의 Jack이나 3등칸 대부분을 차지하는 아이리쉬 승객들의 전통음악 & 탭댄스 장면,
Jack과 Rose 두 주인공의 계급과 사회적 제약을 넘어선 사랑 등 (솔직히 어린 나이에도 너무 작위적이고 할리퀸스럽다고 생각;;),
타이타닉은 영국(잉글랜드) 선박이라기보다는 아일랜드의 정수가 더 녹아들었다고 생각.
(그래서 더 슬프다. 가난을 탈출해 본답시고 큰맘 먹고 전재산 다 팔아서 미국으로 전 가족이 이민가다가 비참하게 사고사 ㅜㅜ
얼마나 무섭고 서러웠을까. 이런 거 보면 신이나 정의를 믿지 않음에도 더더욱 회의적이 된다. 그냥 운빨이야~ )
고향을 떠나 한 켠에는 두려움을, 한 켠에는 새로운 시작과 꿈에 부풀어 신대륙으로 향했을 그 때의 아이리쉬들을 그려보며-
그들이 마지막으로 눈에 담았을 정든 고향 마을, 고향 사람들, 아스라히 사라지는 이 도시를 계속 떠올려 보면서-
아스라히 서쪽 하늘을 물들이는 유난히 붉은 핏빛 노을을 응시하며-
하나 둘 가로등이 불을 밝히는 코브와 작별하며 기차역으로 향했다.
'바이, 바이, 코브~'
타이타닉 때문도 그렇겠지만 묘하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서 감상적으로 내가 손을 흔드니,
(아마 아일랜드 일정이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어서 여러모로 복잡해서 그랬을 터)
골웨이에서 만났다 우연히 코브에서 기가 막히게 조우한 일본 여자사람 친구가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린다.
하긴 너는 모르겠지. 나의 복잡한 감정을-.
아닌가? 하긴 이것도 나의 독단일 수 있겠지.
이 일본 친구 역시 겉으로 표현을 안 해서 그렇지 속으로 온갖 복잡한 소회를 품고 다난한 인생경험을 했을지 어떻게 알리.
(근데 일본인 치고도 심하게 영어가 개판 오분 전이라 하루 같이 다니며 인간적으로 너무 답답했다.
좋은 사람이긴 한데 너무 일일이 간단한 걸 다시 풀어 설명해 줘야 돼서;;; 차라리 내 개판 오분 전 일본어가 더 낫다.
그런데 혼자 세 달 전 미국 횡단을 시작해 유럽 여행 중이라고 해서 또다시 깜놀. 영어는... 장애가 안 되나 보다.)
순식간에 또 먹구름이 몰려 와 해를 가리니 코브의 100 년 전이 머리속에 그려져 덩달아 우울해진다.
저 멀리 섬 뒤편에서 가난한 이민자들을 가득 태운 타이타닉이 출발했겠지.
당시 타이타닉이 너무 커서 코브의 정박지로는 들어올 수가 없었다고 한다.
타이타닉만 아니었으면 그냥 평범한 아기자기한 항구 마을이었을 텐데, 참...
100년 쯤 전에 마지막으로 떠난 그 사람들도 똑같이 저 지는 해를 보며 서쪽으로 항해했겠지.
사라지는 고향 마을을 마지막으로 잊지 않으려고 두고두고 눈에 담으면서-.
하늘도 석양도 해도 심지어 그들이 살던 주택도 굴뚝도 거의 그대로 모습인데 사람들만 오고 가는구나.
이제 기차 타고 코크로 돌아가야지. 이상하게 발길이 안 떨어져 힘겹게 발걸음을 옮기며-.
이쯤에서 아일랜드에서 꼭 먹어봐야 한다고 하는 (전통) 음식들.
맥주나 감자;;;; 말고도 아일랜드에 먹을 게 나름 조금 있기는 있으니까.
누가 인생은 굴(Oyster) 같다고 한 것 같은데, (껍질에서 빼 먹을 게 있어서? 맛이 오묘해서? 당최 뭐지??)
기네스 최고의 안주는 굴이라고 한다.
코크의 잉글리쉬 마켓에서 당일 아침 공수해 왔다는 굴과 기네스를 시도해 봤는데,
굴이 제철이 아니라 해서 그냥 기분만 냈다.
하프 파인트만 시켜서 기네스 전용잔에 안 나온 게 에러 ㅜㅜ
아일랜드 전통 음식.
스튜 / 셰퍼드 파이 (이건 영국 공통) / 베이컨 & 캐비지
킬케니(Kilkenny)
기네스와 함께 그나마 대중적으로 알려진 아일랜드 맥주라면 아마 스미딕스(Smithicks)와 킬케니(Kilkenny) 아닐까.
그 킬케니의 원조, 고성들로 유명한 킬케니에서의 하루.
원래 코크가 너무 마음에 들었기에 코크에서 하루 더 묵을까,
사람들이 킬케니 역시 아름다운 고성 도시라길래 킬케니도 가 볼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급하게 킬케니로 향했는데 개인적으론 (아마도 날씨 때문에) 느긋하게 코크에서 하루 더 있을 걸 그랬다.
폭풍우가 몰아쳐서 감기 걸린 데다 피로가 누적돼, 그 후로 런던을 거쳐 파리까지 톡톡히 고생했거든.
하지만 비바람이 들이치기 전 강가를 따라 거닐던 낙엽진 킬케니의 산책로,
그리고 이따금 마주치면 다정하게 Hi~ 웃으며 눈웃음 교환하던 킬케니의 신사분들,
킬케니의 라이브 연주 커플들과
(그 덩치에 안 어울리게 피리와 기타로 너무나 서정적인 켈틱 음악을 연주하시던 두 남성 듀오. cd까지 공짜로 주심;;;
서로 사귀는 사이는 아닐 테고(?) 저렇게 나이 들어서도 프로 뺨치는 음악 취미로 친구 이상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버려진 옛 성터 벽에 그려진 빛바랜 붉은 하트 표시는 유독 기억에 새겨져 있다.
중세 성곽 도시, 킬케니.
여행도 외국생활도 할 만큼 한 만큼,
여행 중에 낯선 이들과 가볍게 교환하는 눈 인사, 미소, 스쳐가는 이국적인 풍경들...
단순히 고양된 해방감에 과대평가하는 피상적인 감상들이라고 냉소하던 까칠한 나 자신인데;
(돈 쓰며 여행 중이니까 다들 너한테 친절한 거지,
여행하다 눈 마주쳐서 웃어주니까 나도 행복한 거지. 평소에 저랬어 봐, 치한이라고 오버하는 인간들도 있을 걸, 등등등)
의도치 않게 너무 차가워진 것 같다. 이렇게 지레 비판하고 분석하고 경계하는 사람이 된 게 가끔 안타깝기도 하다.
피상적인 게 싫어서라고 했지만, 어쩌면 상처받는 게 싫어서 사람들은 지레 방어막을 치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삶의 무게에 치어 순간을 즐기는 게 점점 힘들어지고,
재기발랄함과 반짝거림을 잃는 게 너무 슬프다.
그냥 이런 아름다운 걸 보고 숨쉬면서 그저 행복하고 감사하기만 할 수는 없는 걸까.
그러기엔 마음 속에 담아둔 게 너무 많고 너무 나이가 들어 버렸어.
킬케니의 펍.
평일 오후 나절이니 역시 훈남이 있을 턱이 없지. 이렇게 잠깐 스쳐가는 여행자 입장에선 우물에서 숭늉 찾는 격;;;
한계가 자명하다. 접점이 없잖아;;; 다들 다운타운에서 겁나 열심히 일하고 있겠지?! ㅡㅡ;;;
그래도 저기 할아버지는 아일랜드 풍경이 실린 신년 달력까지 공짜로 주심.
킬케니에서 공짜 cd도 얻고 카렌다도 얻네~ 이러고 있다가 종교 선교 달력이라 걍...;;;;
갑자기 비바람이 휘몰아 치는데다 더블린 행 버스는 족히 15분 이상 늦어서 ㅜㅜ
게다가 버스 정류장에는 마침 하교한 10대 여자애들이 화장 빡세게 하고 담배 뻐끔거리면서,
겁나 빡센 아이리쉬 액센트로 떠들어대길래 (내용도 하나같이 SNS에서 만난 남자를 만나러 간다는 둥 어쩐다는 둥;;;)
살짜기 쫄아있었는데 애들이라 순수한가, 자리 없어서 비 맞으며 서 있으니까 정류장 처마 밑으로 들어오라고 자리 만들어 준다;;;
마침 선연히 떠오른 무지개.
진짜 무지개만 아니면 아일랜드 사람들은 이 날씨를 버텨내지 못 할 듯.
아일랜드 정리.
* 미션 리스트 네 가지 -> 죄다 어설프게 완료. 훈남은 뭐.......
* 그래서 아일랜드 본토에 가서 직접 아이리쉬 훈남이 어떤가 확인했느냐 하면?
원래 아이리쉬가 북유럽, 독일, 이탈리아 등에 비해 그다지 훈남 이미지는 아닌 것 같다.
(개인적으로 리암 니슨, 킬리안 머피 등도 전형적인 훈남 배우라기보다는 뭔가 독특한? 아이리쉬다운 마이너 이미지고,
마이클 패스밴더 이 사람도 너무 노안에다 ㅜㅜ 독일 혼혈이라 아이리쉬로 보기는 그렇다.)
애초에 영국이나 독일, 네덜란드, 북유럽에 비해, 소박하고 정 많고 털털하고 이미지라 C같은 아이리쉬 훈남 찾기는 실패.
요상하게 주로 잘 생긴 사람들은 하필 버스 스탭이 많았음. 후아...
(운전사 말고, 트렁크에 짐 넣어주고 예약 확인해 주고 이런 스탭 말이다. 이건 독일에서도 마찬가지 ㅜㅜ
참고로 암스테르담에선 박물관 스탭이 전형적인 이상화된 북유럽 남자답게 조각같은 얼굴, 금발벽안에다 큰 키라 허걱했는데
(관심은 잿밥에- ㅡㅡ;;)
내가 뭘 물어보니 너무 친절하게 적극적으로 막 알려주고 그래서... 도리어 좀 깼다;;;
네덜란드 사람들이 영어 엄청 유창한데 영어도 좀 어설펐고, 너무 친절하다 보니 나의 환상? 도전의식??이 사그라 들었다.
그 어마어마한 마스크가 차도남에서 갑자기 어설픈 순딩이로 변한 느낌.
하여간 내 피곤한 성향 탓에 나는 있는 복도 발로 차는구나;;;;
* 드디어 직접 본토를 방문하고 나서 신비주의(mysticism)를 탈피했냐 하면,
오히려 더 커진 듯. 달랑 2주 동안 대여섯 도시나 부리나케 둘러보는 것만도 정신없는데 무슨;;;
아무리 못 해도 어떤 나라를 알려면 최소 1-2년은 살아봐야지;;;
어설프게 둘러보니 오히려 목마름만 심해졌다. 역시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는 듯.
* 후회하는 것:
- 킬라니에서 아이리쉬 훈남과 달랑 1분 얘기해 본 것.
- 둘린(Doolin), 아란 섬(Aran Island), 딩글(Dingle) (추가로, 벨파스트(Belfast)) 못 간 것.
사실 난 정보 부족보다는 스케쥴 상 못 간 게 큰데, 아일랜드 가시는 분들은 꼭 가시기를-!
런던으로 돌아오는 라이언 에어 안에서 내려다 본 아이리쉬 해.
아~ 이번 여행의 포커스였던 너,
감개무량하구나~
첫댓글 진정한 여행자의 지존이심^^
전혀요;;;
최고의글과사진들입니다~~
과찬이세요;
님의 글을 읽으면 읽을수록 저에 가장 이젠 저쪽에 있는 마음,생각과 너무 흡사합니다. 난 묻어두어 이제는 감각이 무듸어졌고 님께선 실천에 옮겨 너무 부러워하면서 글을 재미있게 읽으면서 대리만족과 상상만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저도 너무 무뎌졌단 걸 이번에 새삼 깨닫고 심난했답니다.
이성이 너무 깨어있고 불안에 잠식되어 마냥 행복하지 못 한 안타까움.
영화,원스의 나라 아일랜드 인가요, (저의 가고 싶은 나라 중 한 곳이랍니다.)
아일랜드 국민 감성이 우리랑 맞을 거 같다는 생각을 영화를 보면서 했거던요,
여행기와 사진 정말 잘 쓰셨구여 감사하게 대리 만족 하고 갑니다.
네, 원스 :) 스웰 시즌 최근에 한국에서 공연했다고 들은 거 같아요.
글렌이랑 마리아도 방문하고. 이 사람들 커플이었다 깨지고 마리아는 다른 사람이랑 결혼해 애도 있는데 ex끼리 여전히 프로답게 활동하고... 서양은 이런 케이스가 적지 않지만 항상 그 멘탈이 재미있다고 느꼈어요. :)
지식도 많으시고 글도 재미있게 잘 쓰시고 ^^ 님의 박학다식에 부러움만~~~
감사해요.
와~~~우~~!!
너무 재밋고 신나고~~
이렇게 좋은 글은~~~대박입니다.ㅎ^^*
감사하고~~
조용히~~읽고 또 읽습니다.
먼나라 이웃나라 여행을~~~~눈으로 할수 잇도록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또 다른 글 기대할께요^^*
신나다니... 감사합니다.
하긴 클럽 탐방은 재미있었네요, 하하;
이제 독일편 에필로그 하나만 쓰면 될 거 같네요. 이젠 피곤해서 짧게;
감사 감사~~ 참으로 평온한 풍경들 속에 빠져보고싶내요~~ 저도!!
아일랜드에서의 트레킹... 소박하면서도 정말 평온하고 안락하고 행복한 순간이었는데 ;)
이미 약발 다 됐습니다. ㅜㅜ 항상 감질맛만 더 나는 거 같아요 XD
글 잘 읽었습니다~ 아일랜드에서 5일 정도 머문다면 꼬 가야할 곳을 추천해주셔요^^ 영국 거쳐서 갈려는데 더블린밖에 모르겠네요.,.
골웨이가 지리적으로나 오가는 시간/비용 상 제일 적합할 듯 하네요. 개인적으로 더블린보다 골웨이가 훨씬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