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관찰사가 된 김치는 도민들을 다스리면서 틈틈이 후학들도 양성하며 지내구 있었어. 새로 정권을 잡은 서인들이 김치가 거사를 꾸미는 데 공을 세운 걸 인정해서 유배지에서 풀어주구 다시 벼슬도 줬다구 했잖어. 그런데 그 작자들이 말이여. 김치의 도움으로 인조반정이 성공한 건 맞는데 어쩐지 맘이 찜찜한 겨. 김치가 능통했던 건 자미두수라는 명학이었어. 자미두수는 열네 개의 별로 사람의 길흉화복은 물론 과거, 현재, 미래까지 점치는 학문이여. 김치는 이 자미두수로 인조반정의 성공을 정확히 예언한 겨. 도움받을 그 당시엔 한없이 고맙구 기뻤지만, 막상 반정에 성공하구 보니 반정 무리들에게 김치가 왠지 좀 께름칙하구 거치적거리는 겨. 김치가, 인조반정에 성공한 서인ㄷ늘에겐 원수나 마찬가지인 대북파에 속했던 사람이란 것도 걸렸구 말이여. 혹시라도 맘이 변해서 반역혁명을 꾀하기라도 하면 큰일 아니겄어?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그렇게 정확하게 미래를 점치니 성공할 게 분명할 테니 말이여.
서인들을 불안하구 불편하게 한 건 그뿐만이 아녔어. 김치의 자미두수로 불길한 자신의 운명을 미리 점친 경상도 선비들이 과거를 포기하는 사태가 심심찮게 벌어지는 겨. 서인들은 독화살을 곁에 두구 있는 듯 맘이 불안하던 참에, 이를 빌미로 심곡 김치를 죽이기로 했어. 심곡이 쓴 자미두수서인 <심곡비결>을 모두 수거해 태우기로 했구.
심곡 선생이 누구여? 사람들의 미래까지 점치는 사람 아녀? 그러니 이런 기미를 왜 몰랐겄어? 심곡은 죽기 전에 고향에나 내려가 있구 싶어 학질에 걸렸다구 소문을 냈어. 그러구는 검정 소를 거꾸로 앉어 타구 댕기면 학질이 낫는다면서, 소를 거꾸로 타구서 자기 관하의 고을들을 순시하며 다녔어. 그러면서 점점 멀리 떠나 고향 쪽으로 향했지.
그러던 어느 날, 고성 땅에 이르게 되었어. 그곳에서 날이 어두워져 객사에 머물게 되었지. 객사에 드니 아주 아리따운 기생이 종종걸음으로 달려와 곁에서 시중을 들었어.
"대감! 학질에 걸려 고생하신단 말을 들었는데 병은 좀 어떠신지요?"
기생은 방실방실 웃는 얼굴로 나긋나긋 물었어. 그러면서 섬섬옥수로 심곡 선생의 머리를 짚어봤지. 그런데 바로 그때부터 심곡 선생의 정신이 혼미해졌어. 정신이 혼미한 가운데 전에 중국에 갔을 때 술사가 적어준 시구가 어렴풋이 떠올랐어.
'화산에서 소를 타던 나그네가 머리에 일지화를 꽂고 있네!'
가만 생각해보니 고성을 들어가는 고개 이름이 화산이구, 소를 거꾸로 타구 그 고개를 넘었지. 심곡 선생은 시중을 들고 있는 기생의 이름을 묻지 않었어. 물어보지 않어도 '일지화'일 거라는 걸 익히 알구 있었으니 말이여. 일지화가 자신의 이마를 만지구 난 뒤부터 정신이 혼미해졌다는 것도 말이여. 중국에서 술사가 시를 적어줄 땐 미처 그 뜻을 몰랐어. 그런데 시는 곧 자신의 운명을 예언한 거였어. 그 뜻을 이제야 헤아리게 된 김치는 얼굴에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아무 미련 없이 황천길을 떠났지.
사실 소를 거꾸로 탄 건 암살자에게 맘 편히 죽이라는 뜻이었던 겨. 조선을 창업하기 전에 이방원이 정몽주를 죽일 때도, 이를 눈치챈 정몽주가 말을 거꾸로 타구서 선죽교를 지나다 죽었잖어. 심곡 선생도 이미 자신에게 다가오구 있는 죽음의 그림자를 감지했던 거지. 그래서 담담하게 소를 거꾸로 타구 고향 쪽으로 갔던 겨. 그러다가 일지화라는 기생에게 독살 당했던 거구. 전에도 말했던 것처럼 자기를 쏘는 화살은 늘 자기 가슴속에 있는 법이여. 심곡 선생은 결국 자기가 가진 비범한 재주가 화근이 되어 죽게 된 거지.
어뗘? 검은 소랑 일지화는 똑같이 나오는데 두 얘기가 완전히 다르지? 첫번째 얘기를 들으면서 드는 생각 없어? '천하의 심곡 선생도 별수 없구나! 어떻게 해서든지 좀 더 살아보겠다구 소를 거꾸로 타질 않나, 거 참 미련스럽기는... 미래를 안다구 하는 사람이나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랭이나 살려구 발버둥치는 건 다 똑같군.' 뭐? 이런 생각이 들지 않어? 두 번째 얘기는 어뗘? 천하의 심곡 선생이라면 이 정도는 돼야지 하는 생각이 들지 않어? 그래도 첫 번째 얘기가 맘에 든다면 뭐 할 수 없구.
아 참! 아까 김치가 썼다는 <심곡비결> 얘기가 잠깐 나왔었잖아. 그 책은 김치가 쓴 자미두수 명학에 관한 책인데 전부 다섯 권으로 되어 있어. 거기엔 사람들의 운명에 대한 비밀이 가득 담겨 있지. 그런데 이 책을 나라에서 불온하게 여겨 불태웠다 했잖어. 심곡 선생이 누구여? 우주가 돌아가는 이ㅍ치를 다 깨친 사람인데 자기가 쓴 책의 운명을 몰랐겄냐구. 심곡 선생은 비록 자신은 죽어도 자기가 평생 연구해 공들여 쓴 책은 길이길이 남기를 바랐어. 그래서 경상감영의 동헌 기둥 속에 <심곡비결> 한 부를 비밀리에 숨겨놓았지. 나라에서 원본은 물론 필사본까지 모두 찾어내 불태웠찌만, 이 기둥 속에 감춰놓은 책만은 무사했어. 그래서 지금가지 잘 전해지구 있어. 참, 다행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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