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담과 육가(六家)
- 사가(史家) 가운데 제자백가의 분류를 맨 처음 시도한 사람은 사마담(BC 110년죽음)
- "사기"의 사마천의 아버지이다.
1. 음양가(陰陽家)
- 이 학파는 우주론자 중의 일파로서 음과 양이라는 우주 양대 원리의 화합과 상오 작용에 의하여 만물이 생성.
2. 유가 (儒家)
- 서구에 공자학파(Confucianist School)아고 알려져 있다.
- 유(儒)는 문자 그대로 '학자' 또는 '문사'를 뜻한다.
- 서구식으로 표현이 오류가 있는 이유는 이 학파의 문하생들이 학자인 동시에 사상가였다는 함의를 상실하였기 때문.
- '유'들은 무엇보다 옛 경전에 밝은 교사들, 고대 문화 유산의 상속자.
- 유가는 공자적(Confucian) 혹은 공자주의자(Confucianists) 이상의 뜻이다.
3. 묵가 (墨家)
- 묵자의 영도하에 치밀한 조직과 엄격한 규율.
- 문하생들은 실제로 자신을 묵가라고 칭했다.
- 이 학파는 사담이 지은 명칭이 아니다.
4. 명가 (名家)
- 명(名)과 실(實)의 구분과 그 관계에 관심을 두었다.
5. 법가 (法家)
- 법이란 글자는 '본보기', '법칙'을 뜻한다.
- 유가와는 달리 훌륭한 국가는 도덕적 제도 대신 확고한 법전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고 주장.
6. 도덕가 (道德家)
- '무(無)'의 문제를 중심으로 한, 형이상학과 사회철학에 관심.
- '무'란 곧 도를 지칭, 이 도가 개체에 내재한 것을 덕이라 하는데 어떤 능력(power)을 뜻한다.
- 후에 간단히 도가로 통하게 되었다.
유흠의 제자백가론.
- 유흠(BC 46~AD 23)
- 당대 위대한 학자, 부친 유향의 뒤를 이어 전적들의 편목을 분류하고 그것이 가리키는 뜻ㅇ르 기록.
- 여러 전적을 총망라하여 목록을 작성, "칠략"이라 불리는 것으로, 반고에 의해 "전한서" '예문지'의 기초사료로 사용.
- '예문지'에 의하면 유흠은 제자백가를 모두 '10가'로 분류.
- 6가는 사마담과 동일, 4가는 종횡가, 잡가, 농가, 소설가. 하지만 소설가는 별로 중요시되지 않았다.
- 유흠은 제자의 역사적인 근원을 체계적으로 찾으려 했다.
- 유흠의 설은 근대의 학자들, 장학성(1738~1801), 최근의 장병린에 의해 한층 더 세련.
- 주대(周) 초기 사회제도가 붕괴되기 이전에는 "관리와 교사의 구분이 없었다"
- 국가의 어느 분야의 관리가 곧 그 분야의 학문의 전수자였다.
- 봉건제후와 같은 관직은 세습제였으므로 '관학' 만이 계승, '사학'은 성립할 수 없다.
- 주 말기. 왕실은 권위를 잃고 각 분야의 관리들은 실직하여 전국에 흩어져 개인적으로 특정분야의 지식을 가르치기 시작.
- 이들은 이제 관리가 아닌 개인적인 교사.
- 각 학파의 유래는 바로 교사와 관리의 분리에서 시작.
유흠학설의 수정.
- 유흠은 오류가 있지만, 제자백가의 기원을 정치적, 사회적 사오항에서 연관.
- 1937년, 일본의 침입 이전 보로 몇 년 동안 장족의 진보.
- 이 이론은 유흠의 설을 많이 채용. 새로운 각도에서 재구성.
- 주왕실의 천자가 있었고, 그 아래 제후국들이 각기 자기 영토를 통치.
- 제후국 가운데 어떤 나라는 주왕조 창건에 공을 세운 인척들에 분봉. 어떤 나라들은 주왕실과 경쟁.
- 제후국들의 영토 역시 분붕. 이들은 대개 제후들과 인척.
- 이 시대 정치권력과 경제조직은 단일체제.
- 토지 소유자가 배성의 통치자.
- 토지 소유자들은 대개 군자(君子)라 칭했는데, 보통 봉건제후를 가리켰다.
- 또 하나의 사회계층은 소인(小人), 쏘는 서민(庶民)이라 부르는 평민 대중계층, 봉건제후인 군자를 위해 경작, 전시에 전투에 참가.
- 귀족들은 통치자, 지주,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계급.
- 주왕실은 정치, 경제의 중심지, 학문의 중심지.
- 주왕실 관리들은 제 분야의 특수한 지식을 가졌던 전문가.
- 서민들은 교육의 기회가 없었따. 유흠이 "관리와 교사의 구분이 없었다"는 말은 옳다.
- 봉건제도는 BC 221년 진시황때 폐지.
- 그러나 수백년 전에 이미 이 제도는 붕괴되기 시작.
- 하지만 경제적 잔재가 지주계급형태로 남게 됨.
- 7세기 초에 전쟁, 혹은 기타 원인으로 토지와 지위를 잃은 귀족들이 생겨 평민으로 전락,
- 반면 특수한 재능과 임금의 권고를 받아 국가의 고관이 된 인물도 생겼다.
- 이 붕괴로 학문분야의 대표자였던 전직 관리들은 민간 사이로 흩어졌다.
- 귀족 출신이나 귀족의 가문에서 세습적으로 관직을 맡던 전문가들.
- 유흠의 "예가 상실되어 향촌에서 구하였다"는 말은 이에 해당된다.
- 흩어진 이들은 사적으로 자기의 특수한 재능을 발휘하여 생계를 유지.
- 사상을 타인에게 발표한 사람들은 직업적 교사가 되었다.
- 이로부터 교사와 관리의 구분이 생겼다.
- 가(家)라는 용어는 학파를 뜻하는 동시에 '가족' 또는 '가문'을 칭할 때도 쓴다.
- 가의 용어의 읭의는 '사적', '개인적'이라는 뜻도 포함.
- 이 교사들은 여러 학문, 기예 부분의 전문가. 여러 종류의 가들이 생겨났다.
- 고전을 가르치고 예악을 실천하는 전문가들은 유(儒)
- 무예의 전문가들은 사(士), 협(俠)
- 화술의 전문가는 변자(辯者),
- 무의, 복서, 술수, 점성의 전문가들은 방사(方士)
- 봉건군주의 개인적 고문으로서 활약한 정치가들은 법술지사
- 학문과 재능은 있지만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사람을 은자(隱者)
- 이 여섯 분류가 사마담이 제시한 6가의 유래.
- 유가는 문사에서, 묵가는 무사에서, 도가는 은자에서, 명가는 변자에서, 음양가는 방사에서, 법가는 법술지사에서 생겼다.
[출처] : http://www.cyworld.com/aja007/6631824
[출처] 제자백가(諸子百家) 여러 학파의 기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