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국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신정아 학력위조 사건과
연예인들의 학력위조 및 양심고백에 이어 일부 국회의원 당선자들의
학력 및 경력위조 사건들을 접하면서 아직 학력 및 학벌을 중시하고 있는
한국사회에 대하여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그것은 나역시 한국에 있을때 자의반 타의반 학벌을 속여 왔었기 때문이다.
동인을 졸업한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경험을 하였을 것으로 상상이 된다.
내가 동인을 졸업할 때는 소채귀선생님 등 많은 선생님들의 노력으로
검정고시 합격여부와 무관하게 소사공고에 진학할 길이 열렸고,
많은 친구들이 그 학교로 진학할 수 있었지만
나는 끝이 안보이는 가난 덕분에 졸업 후 주안공단에 위치한 철근공장을 다녀야만 했었다.
그러나 나는 너무나도 학교를 다니고 싶었기 때문에 졸업 후 3년쯤 되던 해에
“유신청소년고등학교” (동인과 같은 무인가학교로서 대학생 선생님들이 봉사하던 야간학교)
1학년 2학기에 편입하여 3개월 정도 다니던 중에 그 학교선생님의 소개로
다시 “항도실업고등기술학교”(검정고시 일부면제)를 들어갈 수 있었는데,
나는 1학년부터 다니고 싶었지만 교무 선생님의 권유로 3학년 2학기(12월)에 편입하여
그렇게 입어보고 싶었던 교련복과 교복도 못입어 보고,
수업도 한번 받아보지 못한채 졸업장만 받게 되었다.
그 이후 그 학교 졸업장을 이용하여 고졸행세하며 군에 지원입대하였으나
실제로 학교를 다니지도 않고 졸업장만 돈주고 산 결과가 된 것 때문에
늘 마음 한구석이 죄를 짓고 있는 생각이 들어서 군복무중에 부대원들 몰래
공부하여 간신히 고졸학력검정고시에 합격하였고, 예비고사를 거쳐 야간대학에 진학하였었다.
그때만 해도 대학만 졸업하면 지나간 중고등학교는 누가 관심도 안 가질줄 알았는데,
막상 대학을 졸업한 후 대기업체의 입사 필기시험에 합격하였지만
중고등학교 과정을 검정고시로 이수하였다고 입사원서에 기재하였더니
조직생활에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편견으로 인해 면접에서 떨어뜨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은행에 지원했을때에는 대학교 졸업증명서와 성적증명서만 제출하는 것을 알고
중학교란에 “동인중학교”("자매"는 슬쩍빼버리고)
고등학교란에 “항도고등학교”("기술"을 또 슬쩍 빼버리고)라고 기입하였고
드디어 합격해서 직장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이후 직장 동료들은 내가 “동인천중학교”를 졸업한 것으로 착각하게 되었고,
고등학교는 “항도”가 아닌 “송도”고등학교로 오해하는 일도 있었다.
그때는 이미 동인도 항도도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동인이라는 중학교를 다녔다고 설명하면 그 누구도 믿으려 하지 않았고
내가 워낙 농담을 좋아하니 그저 농담이려니 하곤 웃어 넘기기 일쑤였다.
그리고 은행 입사후 다시 대학원에 진학하여 은행내에서도 몇명 안되는
소위 명문대학교 출신 석사학위 소지자가 된 이후에는
누구도 나를 중학교부터 대학원까지 야간만을(그나마 고등학교는 다니지도 않고)
졸업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나도 이제 적당히 먹고 살만 해 졌기 때문에
굳이 구차하게 인가도 나지 않은 야간 중학교와 고등학교 다닌 것을
떠들고 다닐 이유도 없고 해서 그냥 남들이 인정하는 대로 지내왔다.
하지만 이제 어느 누구도 나의 학력이나 학벌에 대하여 관심조차 두지 않는
남의 나라에서의 이민생활을 하다보니 지난 날이 한없이 부끄러워지기 시작했고,
한줌의 먼지와 같이 어느날 사라지면 흔적도 찾아 볼 수 없는 것에
집착하며 살아온 인생에 대하여 자괴감마저 든다.
혹시라도 과거 나의 이러한 위선과 교만한 행동으로 인하여
상처를 받은 친구들이나 동인가족들이 있다면 진심으로 용서를 구합니다.
첫댓글 친구여 상처가 깊었어 마음까지 아파했구먼 이젠 그 아픔 잊으시게 양심선언 하였으니 !!!!!? 그곳 캐나다에서 등산자주 하시나 산을찾으시게 아픈 마음 버리고 오시게!!!!! 건강하고 소주 한잔 해야지 그날을 기다림세
오늘 이 글을 읽고, 이 아픔을 많이 겼었을 제자들의 마음을 다시 헤아려 봅니다. 지금도 그 아픔을 이기기 위하여 만학하는 몇몇제자들의 모습을 그려 봅니다. 이제, 사회에 나와 어렸을 적의 그 아픔을 치유하기 위하여, 남들 보다도 더한, 각고를 견뎌낸 제자들에게 큰 박수와 포옹을 보냅니다. 그래서 제자들의 오늘 모습이 더 자랑 스럽습니다.^^
이글을 읽다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우리들이 사회에 나왔을때 학력차별이 심했던 시절이었던건 사실이었지요? 중학교란에 자매를 슬쩍 뻬버리고 저역시 그랬던 시절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내가 사랑하는 가족들 한테는 동인자매중학교를 자랑스럽게 얘기합니다. 과연 우리가 동인자매중학교가 없었다면 지금쯤 어느길에서 어디쯤 가고 있을까.... 열심히 사는 후배님 앞날에 건강과 행운이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만식군의 자서전을 읽는 기분이었네. 대부분의 동인가족이 겪어온 아픈 과정이었겠지만... 나는 과정 보다는 결과를 중시하는 사고를 갖고 싶다네. 역으로, 그때의 아픔을 상기하며,동인가족 모두들 남보다 두배 이상의 노력들을 해 왔을터... 나는 이점이 늘 자랑스럽고, 격려해주고 싶다네. 이제 모두들 중년의 나이에, 지나온 삶에만 연연하지말고 길게 남지않은 여생에 같은 추억을 안고 살아온 사람들끼리 격려와 위로를 해가며 사는것도 보람되지 않겠는가....동인을 부끄러워 하지않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뱃장을 키워보세...지금에 이르러 무엇이 두렵고, 무엇이 부끄럽겠는가...열심히 살아온 만식군...장하네...대단하네...
역시 사람은 객지에서 고생을해야 철이 드는 모양이구나..... 한국에 있을때 말도 잘 안듣고 하더니 이제사 성숙한 발언 하는것을 보니 사는 맛을 느낀다(ㅎㅎㅎㅎㅎ)... 별로 잘난 행동 같은 것을하여 주변 사람들을 가슴아프게 한것도 없는것 같은데 새삼 반성하고 있다니 남모르는 가책이 있었는 모양인지 모르나 너의 친구들중에는 그로인해 상처받은 사람은 없는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괜한 기우에 불과하다..... 건강하기를 빈다......
보고픈 후배님! 자신의 말 속에 본인의 인격이 들어 있거늘 그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십니까? 참으로 열심히 살아왔군요...우리 동인의 귀감이 되는 싼타님! 괜한 자괴감 갖지 마시고 즐거웠던 추억으로 생각하고 지냈슴 좋겠군요.... 가족모두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음~동감이 간다!누군고 했더니만 그대였군..본지가 한참인데..별고 없었는지? 다 씁쓸한 기억일까 한다..
나도 비슷한경험이 있어서 가슴 한구석이 아려오는데 ....그시절에 동인 2학년도 못마치고 4공단에 취업을 하려했으나 나이가적어서 사촌형 등본 떼어다 입사해놓고 여러가지 어려움을 격었는데 ....그래도 3년동안 잘 버티다가 형편이 조금 나아져서 항도실업고등학교에 들어가게되고 학생회 일을하다 지금에 내아내를 만나게되고 ,2년후에 같은병과에서 근무하게디어 군생활 하면서도 한두번 만난적이 있었는데 지금 다시만나면 웃으면서 그이야기 할수 있을 텐데 정말 보고싶다.
안녕하세요, 5회방에 오랫만에 들어 왔는데 , 참 좋으신 후배님 의 고백을 읽고 가니 가슴이 찡합니다. 부디 타국에서도 하루 하루 생활이 행복으로 이어지기를 기원합니다.
ㅎㅎㅎㅎ....남의 일같지가 않아서 웃어봅니다.그랬지요.....저도 고졸 검정고시를 패스했는데, 더 기막힌 얘길 해볼까요? 지금도 그얘길 하면 명영덕이 놀리지만( 그 아인 대학시절 동인 같은 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쳤기 때문에) 국어 만점 받아놓고 영어 국사 윤리 다 통과하고 수학 40점을 못 받아서 7번 시험을 봤다는것.... 7번째 낙방인줄 알고 점수도 알아보지 않고 8번째 접수하러 갔다가 합격증을 받았지요 참으로 가슴 아프지만 아름다운(?) 추억이라고 할수있죠 후배에게도 지난날의 수고를 위해 박수를 보냅니다 짝!짝!짝!!!!!!!!!!!
몸도 마음도 힘들게 살아온 자네의 그 아픔 삶의 스토리가, 이젠 지천명의 생에서 즐거운 추억이 되기를 바라네. 언제나 삶을 진지하게 살아온 자네의 인고에 박수를 보내내,이젠 나이도 있고 건강 잘 챙기시게나.........
글도 모다들 어린나이에 검정고시를 보고 사회생활도 열심히 하고 했잖아... 난 40이 넘은나이에 남편과 애들 안혀놓고 시험공부를 해야한다고 했었어... 하긴 그나마 건강해져서 할수 있었지만 ..... 무엇보다 자네도 건강한 몸과 맘이 있었으니 행했던 일 같다... 아무조록 앞으로도 항상 건강하게 지내길 바랄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