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인선 협괘열차 하면 흔히들 김종철 시인의 '오이도 연작'과 소설가 윤후명의 '협괘열차 연작들' 등을 떠올린다. 나는 그러한 연상작용에 신경림 시인의 시 한편을 덧칠하고자 한다. 물론 나의 빈곤한 상상력은 김소진의 단편소설 '용두각을 찾아서'와 함정임의 소설 '행복'도 수원이라는 공간이나 협괘열차를 연결시키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기도 하다.
수인선 협궤열차는 일제 식민지 시대에 경기도 여주-이천 지역의 쌀과 군자-소래-남동 등의 염전에서 생산되는 소금을 인천항을 통해 반출하기 위한 목적으로 1937년에 개통되었다. 수인선 협괘열차는 1931년에 개통된 수여선 협괘열차와 더불어 조선경동철도 주식회사라는 일본인 소유의 사설철도였다. (참고 : 수여선은 1930년에 수원-이천간 협궤열차가 개통되었고, 1931년에는 이천-여주까지 노선이 확장되었다.)
'협궤열차'라는 말은 일반적인 철도 레일사이의 간격(궤간)보다 훨씬 좁은 선로를 달리는 기차를 말한다. 일반적인 광궤철도의 궤간이 1.435m(우리나리 표준)인데 반해 수인선 협궤열차는 그것의 절반밖에 안되는 0.762m의 선로를 달렸다.
해방후 수여선, 수인선 사설열차는 국유화되어 계속 운행되었다. 그러나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수여선은 1972년에, 수인선은 1995년에 운행을 중단하게 되었다. 최근 이들 협괘열차들을 관광상품으로 개발하거나 복선전철이나 경전철로 운행을 재개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신경림 시인이 노래한 '군자'는 이러한 수인선 협괘열차 구간에 있었던 군자역을 말한다. 이곳은 염전이 있었던 곳인데 시화호가 건설되면서 염전은 거의 사라졌다.
수인선 군자역 일대는 조선 말까지 경기도 안산군에 속해 있었다. 대동여지도에서 '군자산' '정왕산' '의이(도)'를 확인할 수 있다.
군자역은 수인선이 없어지면서 역도 사라졌으나 그 자리에 지하철 안산선 정왕역이 들어섰다. 원래 이름인 군자역을 잃어버린 이유는 서울지하철 5,7호선 환승역인 군자역과 혼동이 된다고 하여 행정구역명을 따서 정왕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정왕역 다음역은 안산선의 종착역인 '오이도역'이다. 안산시 정왕동지역은 본래 내륙지방은 '정왕리', 해면과 오이도 일원은 '오이도리'라고 불렀다.
오이도는 시흥시의 서남쪽 끄트머리에 위치한 섬이다. 옛날에는 오질애(吾叱哀), 오질이도(吾叱耳島)라고 불리기도 했으며, 1922년 일본인들이 군자염전을 만들기 위해 제방을 쌓기 시작하면서 육지와 연결이 되었다. 그 후 1988년부터 시화공단이 조성되고, 서쪽으로 제부도와 연결하는 제방을 만들면서 횟집이 밀집된 관광지로 변화하였다.
힘든 삶과 노동의 현장이었던 염전지대가 협괘열차라는 추억을 회상시키는 여행지로 바뀌었다가 이제는 양식장에서 건져온 횟감을 소비하는 관광지로 바뀐 것이다.
특정 공간을 해석하는 우리의 상징체계도 이와 같이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를 향해 진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 해동지도 (제작시기: 1750년대 초, 규격: 47.0×30.5cm, 구성: 8책)
해동지도 안산군 지도에서 '정왕산봉대(正往山峰臺)', '오이도(烏耳島)'를 확인할 수 있다.
첫댓글 좋은정보 감사드립니다.
음 그런것이군요. 인제 알았습니다.
아~~그렇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