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3년 5월 18일 아미앵 조약은 파기되었고 영국은 나폴레옹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하였다.
6월 나폴레옹은 브레스트, 볼로뉴, 몽트뢰유, 블뤼헤,, 위트레흐트 5곳에 대규모 침략 기지를 세우라고 명령했다.
브뤼헤 기지는 나중에 불로뉴 인근의 앙블레퇴즈로 이전했으며 이 진영은 해안선을 따라 14km에 달하도록 확장되었다.
나폴레옹이 편성한 영국 원정군은 방데의 서부군 병력을 흡수하면서 대양 해안군으로 변경되었고
1804년 1월까지 해아군 병력은 7만명, 3월에는 12만명으로 증강되었다.
이 나폴레옹의 상륙 작전 계획을 에두아르 데브리에르는 5권으로 이뤄진 '영국제도 상륙 계획과 시도'(1900~1902년 출간)로 출판하였고
이 침공 계획을 제시한 이 5권의 책 2636페이지에는 각 여단이 상륙할 장소까지도 지정되어 있었다.
1803~1805년까지 나폴레옹이 베르티에와 553회, 데크레 제독에게 236회 편지를 교환하면서 원정군을 준비시켰다.
1803년 베르티에가 나폴레옹에게 보낸 편지에 영국 원정군의 병력 목록을 보고했는데
보병 7만 9천명, 기병 1만 7천 6백명, 말 1만 5천필, 포병 4천 7백명, 짐꾼 4천 6백명, 민간인 7천 8백명이었다.
국무원위원 펠레에 따르면 함대 규모는 범선 250척, 포함 650척, 대포 6문을 탑재한 상륙선, 포병을 태운 수송선 750척이었다.
함대 규모가 가장 컸을때는 각종 선박 1,831척에 병사는 16만 7천명이 넘었다.
그러나 영국의 대비도 만만하지 않았다.
막강한 영국 함대를 제외하고도 1803년부터 침공군을 격퇴하기 위하여 대대적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영구 남부 지방에 군대가 주둔하고 봉화가 준비되었다.
풀럼과 브렌트포드, 스테인스 등에 마련한 저장고에는 비량육을 비축했으며 콘월에서 스코틀랜드까지 모든 상륙 지점을 하나하나 분류했다.
1805년부터 1808년까지 남부 해안을 따라 작은 '원형 포탑' 봉화대 73개를 세웠고 런던 남부 주변에 방어용 흉벽을 마련했다.
1804년말까지 약 60만명이 영국 육군과 해군에 입대했으며 8만 5천명의 예비군이 준비되었다.
이러한 무산된 영국 침공 계획에서 나폴레옹은 메달 하나를 남겼다.
드농에게 '영국 침공'메달을 제작하라고 지시했는데 이 메달은 벌거벗은 나폴레옹이
남성의 모습인 인어와 레슬링을 해서 이기는 모습을 모사했고 하단에 1804년 런던 제작이라고 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