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턱에 선 가을이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서성거리는 아침입니다. 나서는 발길이 왠지 낯선 이유도 가을을 따라 어정대는 마음 때문인듯 합니다. 나풀거리는 마음과 다르게 나뭇잎은 꿋꿋하게 날짜를 세듯 어느새 단풍으로 물들고 땅에 내려앉습니다. 우리도 이렇게 시간을 따라 찬란한 봄에는 웃음을, 뜨거운 여름엔 사랑을, 서늘한 가을엔 눈물을, 그렇게 정해진 것처럼 흘러갈 순 없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스칩니다.
서로 아끼면서도 상처를 주고, 기쁘다가도 절망에 그리 쉽게 빠지는 우리네 하루는 말 그대로 예측불허니 말입니다. 상처에서 새 살이 돋을 시간도 없이 우리는 딱지를 긁어내면서도 자신의 상처를 모를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엉뚱하고 어이없게도 아무것도 아닌 일에 화산처럼 폭발합니다. 어쩌면 그리도 우리는 서로를 화나게 하는지…
아프면 아프다 하고, 슬프면 슬프다 할 것을 우리는 우리의 아픔을 왜 이리도 표현할 줄 모를까요. 우리는 아프면서도 자존심을 세우고, 내가 받을 또 다른 상처를 두려워하나 봅니다.
시편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의 사람들의 찬송이요 기도들입니다. 그래서 찬양이 있고, 감격이 있으며, 감사가 넘칩니다. 이런 믿음의 고백들을 읽으며 우리는 위안을 얻습니다.
처음에 시편을 대했을 때, 말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도 감사하는 이 위대한 신앙인들에게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시편은 해피엔딩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찌하여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십니까?" 하며 아픔과 실망을 고스란히 뱉어내는 시인도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외치면 우리 앞에 있는 산이 깎아지고, 골짜기가 메워져서 만사가 형통한다는 하나님의 답변이 없었습니다. 문제가 극적으로 해결되고, 원수가 쓰러지고, 나에게는 평안함이 주어지는 감격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픔과 눈물의 시편들도 찬양이었습니다. 마지막 한 줄까지 어두운 그림자 속에 있는듯한 시인의 가느다란 숨길도 노래였습니다. 그제야 알 것 같았습니다. 시편들이 그토록 감동을 주는 것은 그들 앞에 놓인 돌이 치워지고, 감사할 조건들이 쏟아져서가 아니었습니다. 아프다고, 슬프다고 힘들다고 다른 누구도 아닌 하늘의 아버지 앞에 쏟아내는 그 진실이었습니다.
시인은 그의 시를 이렇게 마칩니다. 하나님, 이런 숨 막히는 힘든 일들이 물 같이 온종일 나를 에워싸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친구들도 모두 멀리 떠나갔습니다. 오직 어둠만이 내 친구입니다. (시 88편)
마지막 한 줄까지 우리가 상상하거나 기대하는 하나님의 답변은 없습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마지막 줄은 너무나 선명했습니다. 오 주님, 나에게는 주님밖에 없나이다. 그것이 시편 기자들이 증거하는 참된 형통이었고, 시인의 사랑이었습니다.
아프면 아프다고 하나님께도, 사랑하는 이에게도 진실을 말할 줄 안다면, 우리는 또 다른 사랑의 언어를 배울 것입니다. 외롭습니다. 힘듭니다. 아픕니다. 나에게는 당신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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