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선은 ‘민주당 박근혜'가 될 수 있을까
“박영선 기자와 출장 가서 같은 방에 묵었다. 다음 날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오프닝 멘트 하는 방송이 예정돼 있었는데, 한밤중에 방문 열고 들어오는 연습을 3000번은 하더라.”
30년 전 들은 얘기인데 잊혀지지도 않는다. 그렇게 집요할 만큼 치열하게 노력했으니 MBC 첫 여성 단독 앵커도 되고 정계 입문 10년 만에 첫 여성 원내대표,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이 탄생했을 것이다.
그래도 그게 전부일 리 없다. 나는 ‘박영선 정치’를 움직이는 힘이 정의감이라고 본다. 그는 2011년 서울시장 출마 때 ‘진실과 정의의 아이콘’을 자처했고 올 초 원내대표 출사표를 던질 때도 “무너진 대한민국의 정의를 되살리겠다”고 강조했다. 자신이 옳다는 확신에 좌고우면 없이 나서다 보면 어느새 맨 앞에서 짱돌을 던지는 일은 순수하고도 고지식한 사람만 할 수 있다. 그래서 “이념적으로 완전 진보는 아닌데 강경으로만 치면 상중하 가운데 상”이라고 평한 의원도 있다.
문제는 그의 정의감과 세상의 정의가 꼭 같지는 않다는 데 있다. 오죽하면 서울시장 후보단일화 토론 때 “정치인이 모금 전문가와 다른 점은 정의의 십자가를 어깨에 짊어지고 간다는 것”이라는 그의 말에 당시 박원순 변호사가 “박 의원 혼자 정의를 세웠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며 각자 자신의 영역에서 한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겠나.
안타깝게도 박영선은 지금도 혼자서만 정의를 붙들고 있다고 믿는 것 같다. 외국인투자촉진법을 막으려 든 것이 여전히 옳다고 주장하는 것도 1980년대 운동권 논리와 다를 바 없다. ‘강경 영선’에 대한 재계의 우려에 “나를 반대하는 기업은 꼼수를 써서라도 돈만 벌면 그만이라는 여기는 기업일 것”이라더니, 7·30 재·보선 직전엔 “세월호 특별법 통과 없이는 국회에서 그 어떤 법도 우선할 수 없다”며 늘 자기만 정의롭다는 식이다.
야당의 패배엔 이런 박영선의 막무가내 정의감도 크게 작용했다. 운동권 출신 486을 업고 강한 야성을 주장하며 김한길 안철수 공동대표의 온건노선에 대립각을 세운 것도 박영선이었다. 그런데도 지도부가 퇴진하면서 그가 비상대권을 쥐게 되었으니 불공정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쯤에서 박영선은 자신의 정의감이 그리도 옳은 것인지 가슴에 손을 얹고 따져보기 바란다. 정치에선 옳은 일만 중요한 게 아니라 되는 일도 중요하다. 486에 대한 부채의식에서, BBK 수사 후폭풍으로 이산가족이 됐다고 정의감을 불태우는 것이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는 “만사를 선악의 논리로 보는 운동권 정서가 허상에 지나지 않음을 통렬하게 보여준 것이 이번 선거 결과”라고 했다. 그런데도 486은 “야당이 야당답지 못해서 패한 것”이라며 박영선이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나서 개혁성과 선명성의 각을 더 세워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 친노(친노무현)가 '만만한' 한명숙 전 총리를 당대표로 내세워 결국 ‘종북 연대’ 공천을 해버린 2012년 총선 직전을 연상케 하는 모습이다.
박영선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롤모델로 들며 “정치적 스승이었던 헬무트 콜 총리의 비리를 지적하면서 성장했다”고 한 적이 있다. 더 놀라운 건 메르켈이 마초들에게 배웠고 이용당하는 척 이용했으며 나중엔 가차 없이 버리는 정치력도 지녔다는 점이다. 독일까지 갈 것도 없다. 2012년 총선 직전 비대위를 맡은 박근혜 대통령도 외부인사를 수혈하고 당명까지 바꿔 그야말로 가죽을 벗기는 혁신을 했다. 당시 박영선은 “2004년엔 차떼기 오명 씻겠다고 천막당사 치고 국민을 현혹했지만 이젠 안 속는다”고 비웃었으나 국민은 감동했다. 지난 총선에서 이긴 쪽은 새누리당이었고 야당은 지금까지도 처절한 패배다.
이제 박영선은 자타가 공인하는 대선주자 후보급이다. “앞으로 큰일을 하실 분인데 강경하면 국민이 안 좋아한다고 말하면 수그러들더라”는 말도 당 안팎에서 나온다. 영국의 진보당도, 보수당도 한참 더 중간으로 가야만 집권이 가능해진다고 영국 맨체스터대 제인 그린 교수는 강조했다. 이번에 그가 비대위원장을 맡고 안 맡고보다 중요한 것은, 강경 진보 좌클릭을 외치는 뻔한 그들을 메르켈처럼 끊어내는 일이다.
‘새 정치’의 허망함이 드러난 지금, 시대착오적인 친노486당으로 도로 갈 수 없도록 당명까지 정통민주당으로 바꿨으면 좋겠다. 그래야 야당이 살아나고 박영선도 ‘민주당의 박근혜’가 될 수 있다.
김 순 덕 논설실장
(동아일보, 2014, 8. 4)
맺음말: 평소에 글의 논지와, 글솜씨에서 실망시키는 적이 드문 여성 논객 김순덕이 야권의 여성 정치인 박영선을 가혹하거나 인색하게 평가하면서도, 그의 타고난 품성이 지나친 정의감으로만 치달리는 한계를 제대로 지적하고 있다. 그래도 나는 요즘 완전히 궤멸되다시피 한 정통 민주당을 되살릴 자격을 갖춘 유일한 인물로서 단연코 그녀를 꼽고 싶다. 그녀야말로 민주당 안에 똬리를 틀고 있는, 박지원, 이해찬, 문재인, 정동영, 한명숙 따위의 구닥다리 빨갱이들 가운데서, 혹은 맨날 땡깡만 부리는 486 학생운동권 출신의 철딱서니들 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미끈한 팔등신의 몸채와 건강한 정신의 소유자라고 믿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조간신문에 일제히 실린 “다들 독배를 마시라고 하니 마시고 죽겠다”는 그녀의 비장한 출정사, 혹은 간간이 보이는 눈물의 의미를 ‘쇼’라고 격하시키고 싶지는 않다. 더구나 그녀 자신이, 위에서 말한 대로, “앞으로 큰일을 하실 분인데 강경하면 국민이 안 좋아한다고 말하면 수그러들더라”는 말도 당 안팎에서 나올 정도로, 겸허해지고 있다니,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거는 기대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첫댓글 그러나 세월호 법이 않되면 모든 법을 통과시키지 않겠다는 말에서
정의 보다는 어떤 아집을 보이고 있는데~~~ 누구라도 먼저 말해 놓고 보면 퇴로가 차단되는 것을 아는지?
아, 그건 재보선 선거전략으로서 먹힐 거라는 짐작으로 그랬겠지만, 이제는 그게 안 먹혀 선거 패배로 끝났고, 일반 국민들도 세월호 유가족의 억지 주장에 피로감을 느기고 있는 판이니, 앞으론 얘기가 달라지겠지.
볼때마다 얄밉다싶은감이 자주들었었는데, 이 글을 읽고는 그녀가 다시뵘을 느낍니다.
흥클어진 야당전선을 수습하고 자신도 더 무딘날을 세워야 "난시가 맨든 영웅"쏘릴 들으리라봅니다.
힘이야 들겟지만 그녀자신에겐 일생일대기회로 알아 멜켈이되던 근혜가되던 someone이 되능게 운명인것 같습니다.
저도 크게 기대하고 있습니다. 새민연이 Left Wing 에서 Left Inner 로 변화 되었으면 합니다.
여하튼 건강한 비판 정신을 지닌 건전한 야당이 있어야, 집권당의 부패와 횡포를 감시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반대할 분들이 없겠지. 흔한 말로 여당은 부패로 망하고, 야당은 분열로 망한다는 명제는 고금의 진리이니까. 헌데 전북 임실 생에다 서울대 교수 출신의 한상진은 맨날 야당의 패배분석 보고서에다 DJ가 '지하에서 통곡한다'는 식으로 DJ를 여전히 우상화하고, 486출신들은 '놈현의 가치'를 아직도 최우선으로 치는 판에, 오늘 아침 조선일보에는 'DJ와 놈현을 다 버려야 야당이 산다'고 가인의 손자 김종인이 다시 일갈했더군.
오늘치 조선일보에는 경기도 평택에서 3선을 한 이력으로 이번 보선에 출마했다 낙선한 새민련 정장선 전 의원이 '야당이 운동권 위주로만 공천을 하는 한, 선거에서 절대 이길 수 없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민주화 이후 사회는 다변화하는데, 야당은 이를 반영할 만한 다양한 인적 자원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2012년 총선이 비례대표 공천이야말로 운동권 위주로 이뤄진 공천이라고 했다.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 비례대표가 한 명도 없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했다. 고려대 학생회장 출신으로 3선을 한 전형적 운동권 신계륜은 5천만원 먹고 학교 명칭 바꿔주는 법안 만들다가 이제 쫓겨날 일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