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으로 간다. 내원암 계곡 시린 물에 발을 담그고 더위를 쫓는다. 내원암까지 울울창창한
숲길을 따라 걸어도 좋다. 짙푸른 동해바다가 펼쳐지는 진하해수욕장과 둥근 몽돌이 깔린 주전해변,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간절곶도 가보자. 맛있는 한우불고기도 여행의 즐거움을 더한다.
▲ 대왕암
무더위가 절정이다. 땀에 젖은 와이셔츠를 입고 도심을 걸어다니다 보면 시원한
계곡이 절로 떠오른다. 셔츠 단추를 한두 개쯤 풀고 바지를 걷어올린 채 발을 담그면 시원한 바람이 이마를 씻어주는 그런 계곡
말이다. 몇백 년 전 조선시대 선비들의 피서법 역시 지금과 별반 다를 것 없었다. 여성은 계곡에서 물맞이를 즐겼고, 남성은 탁족을
했다. 주자학이 통치이데올로기로 자리 잡았던 조선시대는 남자든 여자든 대낮에 훌렁 벗고 몸을 물에 담근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던 때라 피서라고 하면 그저 조용히 한밤에 우물가에서 물을 끼얹거나 계곡을 찾아 발이나 담글 정도였으니, 이를 탁족(濯足)이라
했다.
한글로 편지 쓰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언간독(諺簡牘) 예문에도 탁족이 실려 있으니 탁족은 꽤나
성행하던 풍습이었음을 알 수 있다. “더위에 괴롭습니다. 마침 술과 안주가 있기에 소식을 전하니 산수 좋은 곳에 가 탁족이나 하면
어떠하오리까.”
마음마저 얼게 만드는 차가운 계곡
▲ 내원암
자,
그럼 여름 초입 탁족을 즐길 만한 곳이 어디가 있을까. 울주군 내원암 계곡을 추천한다. 영남 제일의 탁족처로 손꼽히는 곳이다.
울산 울주군과 경남 양산시의 경계에 있는 대운산(742.7m) 자락에 자리한 계곡이다. 대운산은 ‘영남의 소금강’이라 불릴 만큼
절륜한 비경을 자랑한다. 해발고도는 높지 않지만 산세가 우락부락해 산줄기마다 박치골이며 시명골, 도통골, 내원암 계곡 등 시원한
물줄기를 쏟아내는 계곡을 숨겨두고 있다.
여름철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상대마을 입구에 자리한
계곡이다. 마을을 지나면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나오는데 여기서부터 내원암 계곡이 시작된다. 다리 옆으로 난 길을 따라 내려가면
곧 계곡에 접어든다. 동글동글한 돌멩이가 깔려 있고 수정처럼 맑은 물이 흐른다. 계곡 끝에서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땀에 젖은
목덜미를 훑고 지나간다.
내원암 계곡은 수심이 얕다. 대운산 정상에서 흘러내린 물이 크고 작은 바위를 거쳐
돌면서 많은 애기소(沼)들을 만들었는데, 아이를 둔 가족들이 많이 찾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물이 얕아 아이들이 안심하고
물놀이를 즐기기에도 좋다.
8월, 아직은 한적한 계곡, 울창한 참나무 가지를 뚫고 초여름의 햇살이 어깨
위에 떨어진다. 손바닥에 물을 가득 담아 얼굴에 갖다대니 이마가 서늘해진다. 계곡을 따라 계속 거슬러 오른다. 10분 정도 더
올라가면 고개를 돌리는 곳마다 폭포와 함께 소(沼)와 담(潭)이 펼쳐진다. 소는 푸르고 담은 검다. 한적한 바위에 걸터앉아 흐르는
물에 발을 담근다. 세상 시름이 저만치 달아나는 기분이다.
물에 발을 담그고 십여 분 앉아 있었을까. 어느덧 몸에 한기가 느껴지기 시작한다. 피부에는 소름이 오슬오슬 돋는다. 조금 더 있자니 목덜미가 뻣뻣해진다. 20분을 그대로 있기가 어려울 정도로 차갑다.
영남 최고의 명당에 자리 잡은 암자
▲ 장생포
발을 말리고 계곡에서 나와 내원암으로 향한다. 시멘트로 포장된 길을 따라 울창한 숲이 펼쳐진다. 한 호흡 깊게 숨을 들이마시니 머릿속에 깨끗해지는 것 같다.
숲
길은 깊다. 굽이치며 돌아가는 길이 꼬리를 치며 달아난다. 끝이 보이지 않는다. 울산광역시에 자리한 산과 골이라고는 여겨지지
않는다. 강원도 오지를 걷는 기분이다. 걷다 쉬기를 반복하면서 땀을 한 바가지 흘리며 한 시간 정도 올랐을까. 커다란 팽나무 한
그루가 모습을 드러낸다. 수령이 450~500년, 둘레 6.5m, 높이 18m에 달한다. 팽나무 뒤로 내원암의 지붕이 수줍은 듯
보인다.
내원암은 작다. 대웅전을 비롯해 5채의 당우만이 고즈넉히 산자락에 들어서 있다. 신라 중기 고봉
선사가 창건했다고 전하는데, 남아 있는 자료가 거의 없어 정확한 연혁은 알 수 없다. 고봉 선사는 창건 당시 내원암이 들어선
자리를 ‘영남 제일의 명당’이라고 극찬했다고 한다. 실제로도 내원암은 대운산의 꽃봉오리 모양을 이룬 다섯 봉우리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다. 내원암에 서 있는 팽나무는 원래 내원암의 본사였던 대원사가 있던 자리다.
내원암 계곡 못지않은
계곡이 또 있다. ‘신불산폭포자연휴양림’ 계곡이다. 자연휴양림 입구부터 정상을 향해 장대한 계곡이 이어진다. 신불산폭포자연휴양림은
신불산(1159m)과 간월산(1069m) 자락에 걸쳐 있는 휴양림으로 서어나무와 박달나무, 노각나무, 들메나무가 가득한 숲이다.
계
곡은 탐방로 오른쪽을 따라 길게 흐른다. 커다란 바위 사이를 흐르는 계곡물은 위로 갈수록 속도도 빨라진다. 활엽수들은 계곡 위로
넓은 잎사귀를 가득 매단 가지를 길게 늘어뜨렸다. 잠시 다리도 쉴 겸 바위에 앉아 발을 담그니, 그 차가움에 이 사이로 짧은
비명이 새어나온다.
다시 20여분을 갔을까, 갑자기 우당탕거리는 요란한 물소리가 들린다. 파래소 폭포다.
울산 12경 가운데 하나다. 높이 15㎜. 수직으로 우뚝 서 있는 병풍 바위 아래로 힘차게 낙하한다. 물이 떨어져 만든 소의
빛깔은 짙푸르다. 주변의 원시림과 어우러진 그 색이 하도 신비로워 이무기라도 살고 있을 것만 같다. 소에는 명주실 한 타래를
풀어도 바닥에 닿지 않는다는 전설이 깃들어 있다. 파래소 폭포의 원래 이름은 ‘바래소’였다. 가뭄이 심할 때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내면 바라던 대로 비가 내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처음 맞는 아침
▲ 신화마을
자,
이제 계곡을 벗어나 바다로 가보자. 내원암 계곡에서 진하해수욕장까지는 10분 거리. 진하해수욕장의 자랑은 백사장이다. 40m의
넓은 폭을 자랑하는 하얀 백사장이 1㎞ 이상 길게 펼쳐져 있다. 모래는 밀가루를 뿌려놓은 듯 곱고 희고, 동해 특유의 맑고 푸른
물빛이 백사장을 희롱하고 있다. 백사장 뒤편으로는 해송 숲이 짙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파도가 밀려오는 북쪽으로 살짝 비껴 앉은
곳에 자리하고 있어 잔잔한 데다 수심도 깊지 않아 아이들과 함께 해수욕을 즐기기에 좋다.
동해의 맨
아랫자락, 남해와 물을 섞는 귀퉁이에 자리한 간절곶은 한반도에서 해가 가장 먼저 드는 곳이기도 하다. 포항의 영일만 호미곶보다
서쪽에 위치하지만 위도가 낮아 1~2분 정도 먼저 뜬다. 바다에서 보면 긴 ‘간짓대(막대기)’처럼 보인다 해서 간절곶(艮絶串)이란
이름이 붙었다. 울산지역 읍지에도 ‘울산 간절곶에 해가 떠야 한반도의 새벽이 온다’는 기록이 내려온다.
간
절곶 언덕배기에는 새하얀 등대가 서 있다. 간절곶은 지형상으로 태평양을 향해 열려 있는 중요한 뱃길이었다. 한때 장생포의
포경선들이 태평양의 고래떼를 쫓았고 지금도 원유를 실은 유조선과 자동차를 싣고 가는 컨테이너선 등 수많은 화물선과 어선들이
오간다. 울산 앞바다는 석유나 가스 등 액체화물 수송량이 전국에서 가장 많은 곳이기도 하다. 그런 까닭에 등대도 일찍 들어섰다.
간
절곶은 자그마한 공원처럼 꾸며 놓았다. 제법 거센 파도가 쉴 새 없이 부딪히는 바다 끝자락 해안엔 운치 있게 벤치도 놓여 있다.
남편을 기다리다 망부석이 됐다는 신라 충신 박제상 부인 석상도 세워져 있다. 5m 높이의 거대한 우체통도 눈길을 끈다. 무게가
7t이나 된다. 그냥 형식적으로 세워놓은 게 아니라 남울산우체국에서 관리하고 있는 진짜 우체통이다. 매일 오후 1시에 우편물을
거둬 간다고 한다.
간절곶과 견줄 수 있는 곳이 대왕암공원이다. 문무대왕의 왕비가 호국룡이 돼 바다에
잠겼다는 전설을 간직한 곳. 바다 위에 솟아난 크고 작은 기암괴석들이 장관을 연출하며 서 있는데 육지와 연결된 다리를 통해 바위에
오를 수 있다. 대왕암 가는 길은 산책코스로도 좋다. 수령 100년이 넘는 아름드리 해송이 1만5000여그루나 심어져 있다.
숲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온몸이 개운해지는 것 같다.
대왕암에서 세계 최대의 조선소인 현대중공업을 바라다보며
주전해변으로 간다. 주전해변과 강동해변을 지나 신명해변까지 이어지는 이 길은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다 드라이브 코스 가운데 한
곳으로 꼽히는 곳. 길은 나즈막한 언덕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진다. 오른쪽 차창으로는 푸른 동해바다가 일렁인다.
드
라이브 막바지에 자리한 화암포구에는 비경 하나가 숨어 있다. 해안을 따라 200m 정도 펼쳐져 있는 ‘강동 화암주상절리’.
주상절리는 분출된 용암이 냉각되면서 열수축 작용으로 만들어진 바위. 단면이 육각형이나 삼각형으로 된 긴 기둥 모양의 바위가 겹쳐
있는 지질을 가리킨다. 2000만년 전에 형성된 화암마을의 주상절리는 마치 육각형의 연필을 쌓아놓은 듯하다. ‘화암(花岩)’, 즉
꽃바위라는 마을 이름은 주상절리의 단면이 꽃무늬 모양을 하고 있어 붙여졌다.
귀신고래의 흔적을 찾아서
▲ 간절곶
울
산 하면 고래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1912년 미국의 고고학자인 로이 채프먼 앤드루스(1884〜1960)는 ‘악마
물고기(Devil’s Fish)’를 찾아 일본의 포경선을 타고 울산 장생포를 찾는다. 장생포에서 1년 동안 머물며 고래를 연구하던
앤드루스는 귀신이 곡할 정도로 신출귀몰하던 이 악마 물고기에게 ‘한국계 귀신고래(Korean Gray Whale)’라는 학명을
붙인다. 길이 16m에 무게가 35t이나 되는 귀신고래는 여느 고래와 달리 피부가 회색인 데다 따개비 등이 붙었다 떨어진 자국들이
많아 무섭게 생겼다. 하지만 성질은 순하고 친근감 있다. 반구대 암각화와 ‘연오랑과 세오녀’ 설화에 등장하는 고래도 바로
귀신고래다. 한때 우리 동해바다를 놀이터 삼아 돌아다녔지만 지금은 남획으로 멸종되다시피 해 1970년대 말 이후로는 울산을 비롯한
동해안 연안에서는 공식적으로 발견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한다.
장생포는 한국 고래잡이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곳. 전성기엔 한 해에 대략 1000여마리의 고래가 인근 앞바다에서 잡혔다고 한다. 하지만 1986년 세계 여러 나라가
고래를 잡는 포경업을 금지하면서 장생포는 일반의 기억에서 점점 사라져갔다. 지금은 그물에 걸려 올라온 고래고기를 파는 음식점과
고래박물관이 옛 추억을 반추하고 있다.
아이들과 함께 울산을 여행한다면 신화마을에도 가보자. 장생포에서
차로 5분 거리다. 1960년대 석유화학단지가 건립될 당시 매암동 주민들이 집단 이주하면서 형성된 신화마을은 ‘2010 마을 미술
프로젝트’에 선정되면서 울산을 대표하는 벽화마을로 자리매김했다. 영화 ‘고래를 찾는 자전거’ ‘친구2’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12가지 맛이 나는 고래고기
▲ 파래소 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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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가들에게 울산은 고래고기의 맛 기행지이기도 하다. 고래고기는 예로부터 ‘12가지 맛’이 난다고 한다. 바다에서 살기 때문에
육질이 생선회처럼 부드럽고, 또 포유류이기 때문에 쇠고기와 비슷한 맛을 내는 것이 바로 고래고기다. 장생포항 주변에 고래고기를
내는 식당이 20여곳 있고 울산시 전체에 80여곳에 이르는 고래고기 식당들이 있다. 식당에서 내는 고기들은 먹기 위해 일부러 잡은
것이 아니라 그물에 걸려 죽은 고래를 해체 후 유통한 것이다. 언양불고기도 맛보자. 파래소 폭포 가는 들목인 언양읍은
한우숯불구이로 유명한 곳. ‘한우불고기특구’로 지정되어 있을 만큼 불고기로 이름난 동네다. 일제강점기 때부터 봉계, 경주, 울산,
영천과 더불어 영남의 5대 우시장으로 유명해 양질의 한우 공급이 가능했고 여기에 언양식 불고기 조리법이 어우러져 언양불고기가
탄생했다. 그리고 1960년대 고속도로 건설을 위해 언양을 드나들던 건설 근로자들의 입을 타고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얇게 저민
불고기를 석쇠에 구워 먹는데, 배와 양파즙으로 재워 부드러운 데다 석쇠의 불맛이 더해져 입안에서 살살 녹는다.
여행의 마무리는 울산 시내 태화강변의 울창한 대나무숲인 십리 대숲이다. 울산 시내를 흐르는 태화강을 따라 십 리(약 4㎞)에 걸쳐 대나무숲이 이어진다. 시원한 대숲 산책을 즐기며 울산 여행을 마무리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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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정보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언양분기점에서 언양·울산고속도로로 갈아탄다. 14번 국도를 이용해 진하해수욕장을 거쳐 간절곶
방향으로 가면 된다. 서생면 해돋이마을에는 민박집과 펜션 등 소규모 숙박시설이 즐비하다.
울산시관광협회(052-275-2412)에서 숙박시설을 안내해 준다. 신화마을에서는 미술 해설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좋다. 마을
중앙에 있는 신화예술인촌에 해설사가 상주하며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운영한다. 장생포 고래박물관(052-256-6301)은
고래잡이 금지 이후 사라져가는 포경 유물 250여점을 전시하고 있다. 12.4m 길이의 브라이드고래 골격과 13.5m 길이의
한국계 귀신고래 모형, 반구대 암각화관 등 볼거리가 다양하다. 야외에는 국내 유일의 포경선인 제6진양호도 전시돼 있다. 고래고기는
원조고래할매집(052-261-7313), 고래막집(052-266-1585) 등이 유명하다. 수육, 육회, 생고기, 우네,
오베기를 골고루 담은 고래고기모둠을 주문하면 골고루 맛볼 수 있다. 언양불고기는 기와집불고기(052-262-4884)가 유명하다.
첫댓글 울산에 사는사람으로서 아직도 못간본데가많아 좀더 살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