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4일 오후 부산 경남여고 교정에 권옥순(57), 박명희(47), 박종옥(52), 정용선(60) 씨가 빛나는 여고시절 전리품인 산문집과 시집을 꼭 안고 있었다.
이들은 2009년부터 2011년까지 경남여고 부설 방송통신고등학교에 다녔던 학생들, 방송통신고등학교는 형편상 제때 배움을 다하지 못하 이들을 위한 학교다, 부산에는 경남여고와 동래고등학교에 과정이 개설돼 있다. 이들은 늦깍이 여고생이 돼 3년간 매주 첫째. 셋째일요일에만 학교에 나갔다.
2009년에 선생님의 도움으로 어머니들의 글을 매년 문집으로 냈다. 그 문집에서 글을 추려 산문집 꽁당보리밥과 시집 찔레꽃으로 엮었다 산문집에 64명의 글이, 시집엔 94명의 시가 실렸다.
정용선 씨의 사연이 기구했다 동래여중을 다니다가 회비를 못내 중퇴했다면서 아버지가 여자는 공부할 필요가 없다고 하시는 바람에 교복을 입은 친구들이 부러웠다. 친구들은 대학까지 나와 나중에 교장, 교감까지 됐다. 평생 열등감이 따라다녔다. 55세가 넘어 중학교 검정고시를 마치고 방송통신고 입학했다. 정씨는 못 다한 공부를 하는 게 너무 즐거웠고, 글쓰기를 통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었다 고 뿌듯해했다. 올해 방송통신대 교육학과에 입학한 정 씨는 서술형 시험에서 만점을 받았다고 으쓱해 했다. 방송통신고등학교때 시작한 글쓰기로 삶의 자신감을 되찾았다. 이제 대학 간 친구들이 부럽지 않다.
박명희 씨는 용기를 내 엄마 십대 때의 직장생활 이란 글을 섰다. 어러운 가정 형편으로 공장에서 밤샘 작업을 했던 청소년 시절의 아픔을 자녀에게 조근조근 들려주는 형식이다. 자존심이 걸린 부분이라 가족에게도 차마 하지 않았던 이야기였다. 그 글을 쓰면서 많이 울었지만 글쓰기로 마음의 응어리를 날려버릴 수 있었다. 책은 이 땅의 어머니들이 살아오면서 겪은 수많은 일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저마다 풀어내는 삶의 이야기들은 놀랍도록 닮았다. 시커먼 꽁보리밥이 부끄러워 도시락을 열지 못하고 집에 가면서 먹던 기억, 공납금을 내지 못해 비가 억수같이 오는 날 스스로 중퇴 서류를 내고 학교를 떠났던 아픔, 양잿물을 설탕물로 착각하고 먹으려다 엄마 비명에 떨어뜨리고 서러워 울던 일화들로 촘촘하다. 모진 세월을 끗끗이 이겨낸 어머니들의 값진 인생의 자취가 선연하다.
박종옥 씨는 글쓰기는 참 신비한 힘을 지닌 듯 하다 고 했다. 꼭꼭 숨겨 두었던 이야기를 실타래 풀듯 술술 풀어버렸으니 ..... 권옥숙 씨도 글쓰기를 통해 존재감을 갖게 되면서 새로운 인생을 선물받았다 고 말했다.
어머니들은 경제 상황과 성별탓에 사회적 약자로 억눌려 살 수밖에 없었다 며 이들이 연필을 잡고 자기 목소리를 냈다는 것은 사회적으로도 값진 일 이라고 생각하였다. 가난한 삶에서 피어난 어머니들의 글은 보석처럼 빛나는 이야기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