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닭*
통닭이 내게 부처가 되라고 한다 어린 아들을 데리고 통닭을 먹으러 전기구이 통닭집에 갔더니 뜨거운 전기구이 오븐 속에 가부좌하고 앉아 땀을 뻘뻘 흘리며 통닭이 내게 부처가 되라고 한다.
부다가야에 가서 높푸른 보리수를 향해 엎드려 절을 해본 적은 있지만 부처의 제자는 커녕 부다가야의 앉은 뱅이 거지가 될 수 없는 나에게 통닭은 먼저 마음의 배고픔에서 벗어나라고 한다 어머니를 죽이고 아내를 죽이고 끝내는 사랑하는 자식마저 천만번을 죽이고 이 화염의 도시를 떠나 부다가야의 숲을 가서 개미가 되라고 한다
나는 오늘도 사랑을 버리지 못하고 땅바닥에 떨어진 돈이나 주우려고 떠돌아 다니는데 돈과 인간을 구분하지 못하고 부동산임대차 계약서에 붉은 도장을 찍고 있는데 사랑하는 모든 것은 곧 헤어지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씀하시며 플라스틱 쟁반 위에 목 잘린 부처님처럼 가부좌하고 나오신 전기구이 통닭 한마리
* 도계장[屠鷄場],
닭들의 아우슈비츠-
우리나라 사람들은 닭고기를 좋아한다. 나도 닭고기라면 그리 싫어하는 편은 아니다. 삼계탕도 좋아하고 전기구이 통닭도 좋아한다. 특히 어머니가 해주시는 닭찜이라든가 한여름 닭국은 사양하지 않고 잘 먹는다. 그런데 연전에 경주에 사는 사촌형이 경영하는 도계장에 가보고는 닭들이 어떻게 죽는지 알게 되어 한동안 닭고기를 입에 대지도 못했다.
도계장은 말 그대로 닭을 잡는 도축장이다. 예전에는 아무나 아무 데서 닭을 잡을 수 있었으나 이제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시골집에서 식구들끼리 먹기 위해 한두 마리 잡는 것이야 괜찮겠지만 닭을 잡아서 육계로 파는 경우, 원칙적으로 도계장 시설을 이용하지 않고는 잡을 수 없게 되어 있다.
형은 경주와 포항 일대에 포장육이나 삼계탕용 생닭을 공급하는 사업을 일찍이 하고 있었다. 한번은 경주에 간김에 도대체 닭들을 어떻게 잡는지 궁금해서 일부러 도계장 구경을 갔다. 낮에 가면 아무것도 볼 게 없다고 해서 일부러 형과 같이 새벽 1 시에 일어나 갔다.
"도계 작업은 새벽 1.2시에 시작해서 3,4시면 끝난다. 아무리 늦어도 날 밝기 전에는 다 끝난다. 왜 그런고 하니 닭의 생리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닭이라는 놈은 어두우면 맥을 못 추고 멍청해지거든,야간에는 잡아도 가만히 있지 마는 날이 밝을 때는 시끄럽게 꼬꼬댁거리고 뛰어다녀서 일을 하지 못한다.
여기서 우리가 보통 하루 새벽에 오천수 이상 도계하는데, 닭 오천마리가 한꺼번에 울어댄다고 생각해봐라. 어떻게 일을 할 수 있겠노? 그래서 닭이 꼼짝 못 하는 새벽에 해치운다."도계장엔 대낮처럼 형광등을 켜놓고 있었다. 경북일대에서 닭장차에 실려 밤새도록 어둠 속의 국도를 달려 온 자기들이 죽으러 온 줄도 모르는 듯 눈만 멀뚱 거리며 가만히 있었다.
닭들은 철망 높이가 20센티미터 정도 되는, 닭 한 마리가 겨우 다리를 펴고 설 수 있는 닭통에 담겨 있었는데, 대부분 흰색의 털을 가진 레그혼들로 더 이상 알을 낳지 않는 폐계廢鷄들이었다. 형은 먼저 계류장鷄留場이라는 데로 데리고 가서 내게 내게 설명을 해주었다.
여기를 하역대라고 하는데, 닭장차에 실려온 닭들을 내리는 곳이다. 닭장차 트럭들이 닭을 가득 싣고 들어오면 사람이 직접 손으로 닭을 끄집어내어 저 아래 컨베이어 홈에다 던진다. 그러면 밑에 있던 사람들이 '샤클'이라고 하는 닭발걸이에다가 닭을 거는데, 그렇게 거꾸로 매달린 닭들이 대가리만 잠깐 잠긴 채 물통을 통과하면서 감전이 되어 깜박 정신을 잃는다.
그때부터 닭들은 모가지가 잘리고 털이 뽑히고 내장이 적출되고 다리가 잘려 통닭 모양을 갖추어 수의사한테 검인 도장을 받는다. 왜 마트에서 파는 생닭을 보면 몸에 퍼렇게 도장 찍히 거 있제? 그게 바로 검사를 받는 표시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세척도 하고 냉각도 한다.
냉각할 때는 닭이 얼기 직전의 상태인 영상 2도 정도의 물을 써서 닭의 육질이 꼬들꼬들해지도록 만든다. 니 닭살 돋았다는 말 일제? 닭은 육질이 그런 상태가 되어야 최상품이 된다. 보통 닭 한 마리가 정확한 공정에 의해 상품용 생닭으로 만들어져 나오는 데는 이십분이 채 안걸린다. 일단 한 마리가 생산되면 그 다믐부터는 일 분당 서른 마리 정도가 연속적으로 생산된다 봐라, 저기서 닭들이 막 끌어내려지기 시작한다."
무릎까지 올라오는 고무장화와 손목을 덮는 고무장갑을 착용한 일꾼 한 사람이 닭들을 꺼내기 좋게 계류장 승강기를 닭장 높이와 일정하게 조정한 다음, 닭통 속에 있는닭들을 끄집어내어 컨베이어 홈 속에 마구잡이로 집어 던졌다.
그 일을 사람이 서서 일일이 손으로 해야 하는 일로 무척 힘들어 보였다. 닭들이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어주면 괜찮겠지만 닭들은 사람 손에 잡히지 않으려고 거의 필사적이었다. 닭들은 캄캄한 어둠 속에서 희뿌옇게 형광등 불빛을 받으며 가만히 숨을 죽이고 있다가 사람이 팔만 뻗으면 일제히 비명을 지르며 난리를 쳤다.
닭통 문 앞에 있는 닭들이야 도망갈 데가 없으니까 끌어내는 대로 끌려 나왔으나 어는 정도 닭들을 끄집어내고 나면 나머지 닭들은 뒤편으로 몰려가 손에 잘 잡히지 않았다. 그러면 일꾼은 한껏 발돋음을 하고 팔을 뻗어 최후의 순간까지 안 나오려고 발버둥치는 닭들을 끌어내었다. 어떤 닭은 끝까지 잡히지 않으려고 모가지를 닭통 철망 밖으로 내밀고 발버둥을 첬다.
"닭들이 지금 그냥 끌려 나오는 게 아니다, 안 끌려 나오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물똥을 찍찍 갈긴다. 그라믄 똥이 얼굴에 막 튀는데, 잠깐 한눈이라도 팔고 딴 생각이라도 하다간 그만 똥이 눈에 들어간다. 그라믄 아이고, 말도 마라, 한 열흘은 안약을 눈에 넣고 살아야 한다.
똥이 눈안에 안 들어가게 할라카믄 닭 발모가지를 탁 잡을 때 눈을 가늘게 뜨고 고개를 돌리거나 숙여야 한다. 그라믄 제아무리 똥을 내갈겨도 눈에는 안 들어간다. 형은 계속 신이 나서 이야기를 해나갔다.
일꾼은 닭을 끄집어내는 족족 발아래 컨베이어 홈 속에다 힘껏 던졌다. 닭 한 마리를 끄집어내어 홈 속에 던지는 데에는 이삼 초도 걸리지 않았다. 그러면 밑에서 또 다른 일꾼이 기다리고 있다가 닭의 다리를 잡아 샤클에 걸었다. 샤클에 걸린 닭들은 대가리와 날개를 밑으로 축 늘어뜨린 채 꼼짝도 하지 못했다.
이렇게 닭들은 컨베이어 홈 속에 일단 던져지면 그만이었다. 그때부터는 원했건 원하지 않았건 예정된 죽음의 수순을 밟았다. 샤클에 두 다리를 걸고 날개를 아래로 축 늘어뜨린 채 전기가 통하는 물통에 다리를 쳐박히는 순간 감전이 되어 몸을 한번 푸드덕거리다가 정신을 잃는다.
그 다음엔 기계의 작동 순서에 따라 모가지가 잘리고, 털이 빠지고, 항문이 절개되고 내장이 적출되고, 두 다리가 절단되는 순서를 밟게 되었다. 나는 끌려 나오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닭들을 보자 마음이 아팠다. 닭들한테 저렇게 강한 생명의 집착이 있었는지 미처 알 수 없었던 일이었다.
그런데 그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컨베이어 홈 속에 내던져진 닭 한 마리가 기어이 밖으로 기어나와 달아나기 시작했다. 다른 닭들은 다 가만히 있는데 유독 그 닭만은 날개를 푸드덕거리며 힘껏 계류장 밖으로 달아났다. 그러자 한쪽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닭장차 운전사가 담배를 비벼 끄고 달을 향해 달려갔다.
나는 그 운전사가 가만히 있기를 바랐다.그러나 그는 심심해 죽겠는데 잘되었다는 듯 입가에 슬쩍 웃음기까지 띠고 닭을 향해 달려갔다. 닭은 잡히지 않으려고 허겁지겁 다급한 김에 닭장차 밑으로 기어들어갔다. 아, 그러나 닭은 운전사의 작대기질을 견디지 못하고 밖을 나왔다가 결국 붙잡히고 말았다.
그리고 그 닭도 결국은 샤클에 두 다리가 걸린 뒤 죽음의 수순을 밟아 통닭 모양의 생닭이 되어 나왔다. 모가지와 발목이 잘리고 온몸의 털이 다 벗겨진 채 꼬들꼬들 냉각된 몸으로 리어카에 실리는 그 닭을 보자 나는 기가 막혔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살기 위하여 그렇게 몸부림치던 닭이 아니었던다. 아,인간은 이렇게 잔인해도 되는 거인가, 닭들은 저렇게 비참하 최후를 맞이해도 되는 것인가, 닭들의 아우슈비츠였고, 일꾼들은 닭들의 저승사자였다. 나는 지금도 희미한 형광등 불빛 아래 악착같이 도망가던 그 닭의 모습을 잊지 못한다. 그 닭이 평생을 두고 나 자신의 모습이 아니기를 간절히 바랄 따름이다.
- 정 호 승의
시가 있는 산문집 -
첫댓글 도계장에서의 닭들이 통닭이 되기까지의
아찔한 순간들을 나열한 글이네요 ㅜㅜ
인간 또한 늘 누군가에게
쫓기며 살기위해 발버둥치고 있지는 않은지 ~
정호승 님의 글 감사드립니다
편안한 주말 보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