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로 떠나가신 어머니께 아들인 홍지용이 편지를 뛰 워 올 립 니다
어머니 안녕하세요 저는 당신이 사랑하시는 막내아들인 홍지용이랍니다 저는 1972년도 음력 1-8일에 어머니의 배 속에서 잉태 되어 나왔지요 그리고 저는 어머니의 극진하신 사랑과 보호를 받아가며 무럭무럭 커 왔답니다
그리고 5년이 지나 어머니의 알뜰 하신 힘으로 우리에게도 첫 집을 장만하게 되었지요 참 감사 드려요
그리고 저의 나이 미운 일곱살이 되어 어머니의 도우심으로 저도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답니다 그에 저도 기뻐하였고 어머니께서도 기뻐하셨지요
다음 저는 그쯤 초등학교 1학년 22반에 다니고 있었지요 그런데 저와 저의 둘도 없을 친구 황병환이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아시지요
그런데 그 어느 하루는 저와 그 아이는 학교에서 교육을 받아가고 있다 교실에서 심히 둘이 소리내고 떠들기에 선생님은 교실에서 박으로 우리를 내 보내시고 우리는 교실을 나가게 되었답니다
후 저와 친구 병환이는 같이 교실 박에서 서있었는데 병환이는 나더러 운동장에 같이 나가 놀지 안으련 하고 물어왔지요
그에 저는 아무 것도 모르고 운동장에 가 놀자 하였지요 그리고 저는 아무 생각도 없이 학교 운동장 그내에 손을 언저 놓고 놀고 있는 중에
그러나 그 친구 병환이는 나몰래 선생님께 먼저가 학교 선생님께 야단 맞지 안았고 저는 학교에서 나가라는 말을 듯게 되어 하는 수 없이 울며 집으로 들어오게 되었지요 그때 울며 집으로 돌아온 저를 보신 어머니는 왜 이리 빨리왔느냐며 물어 보셨고
저는 이제 학교를 안 다닌다며 짜증부렸지요 그에 어머니는 다시 아니 왜 그러느냐 물으셨고 그런 뒤 내가 말씀 드렸지요
그 말을 들으신 뒤 어머니는 그 저의 모든 일들을 모두 수숩하시고 다시 학교로 저를 돌려 보내어 주셨지요 저는 어머니의 도우심으로 다시 공부를 하게 되었답니다 감사 합니다
그리고 그 후가 지나가게 되어 저는 자꾸만 군 것질을 하고 싶어서 가게에 가서 빵을 이름만 거어 놓고 빵을 먹었다가 어머니에게 발각이 되어 꾸지람을 꾀 크게 내셨지요 어머니 죄송합니다
그리고 열 살이 된 후 12-25일이 되어 저에게 어머니는 크리스마스가 되어 선물로 현미경을 사 주 신다던 약속을 지켜 주 신다며 어머니와 저는 함께 사러가 슈퍼마켓에 들어가 현미경을 사 주 셨지요 저는 말 못 할 정도로 기뻣 답니다
그러나 저에게 어머니는 한 약 을달이다 노은 것이 있으니 누이에게 말 해 라 했으나 저는 그 말을 잊어 버리고 집 안에 들어간 뒤 누이에게 신나라 듯 사온 현미경 자랑만 하였지 안았겠어요 그에 어머니의 한약은 모두 불에 타버리고 야 말았고
그 뒤 어머니는 돌아 오 셨고 그에 저는 어머니께 죄송하다 말씀 드렸고 어머니는 별화를 내시지 안으신채 받아 드려 주 셨 지요
그리고 제가 만들어 노은 버선 속으로 어머니는 돈 100원을 내어 주시며 과자를 사서 먹으라 하셨지요 저는 그래 과자를 사 먹으며
밤11시 쯤이 되어 티 뷔에서는 여러 성서 영화를 하고 있었는데 저는 장난으로 예수님 처럼 기도 문을 읽어 내려 가며 손으로 성호를 그으며 사탄아 물러 가라 하며 놀았고 그를 보신 어머니는 말라 하셨고
그리고 저는 잠에 들어 있었지요 뒤 아침이 되어 어머니는 낯 11시쯤이 되어 저를 목욕시켜 주 시려 저를 누이에게 깨우라 하셨고
그리하여 누이는 나를 깨우려 하였으나 저는 잠을 깨며 머리가 심하게도 고통스러움이 찾아와 우리 마루 안에 다가가며 하느님 저 좀 살려 주세요 라며 그 목소리를 끝내며 저는 어머니에 보호를 받으며 강남성심병원으로 가게 되어 입원을 하게 되었고
그리고 제 병명은 바로 뇌출혈이라는 큰 병에 걸려 버렸다는 것이 아니 겠어요 그리하여 저의 어머니께서는 자신의 사랑과 정성 그리고 기도로 저의 빠른 치후를 바라시며 삶을 지탱 하시고 게셨으나
어머니는 저의 대한 걱정과 심한 신경 쓰심으로 몸에 과로가 다가와 어머니께서도 병원에서 실신을 하시게 되었지요 저를 병원에서 편히 돌 보아 줄 사람이 없어 어머니는 휠체어에 앉으신 체로 침대에 누워 있는 저를 보살펴 주셨지요
그 뒤 저는 첫 퇴원을 하게 되었지요 그런 뒤 어머니께서는 저의 몸이 어이해야 차도 가 좋아 질까 저의 대한 한없는 마음에 끝업이 좋은 약과 보약을 제게 사랑으로 달려 주셨지요
그 뒤 저는 2년 뒤 수술을 더 하고 그리고 저는 한번의 수술을 하게 되었지요 후 저는 어머니의 극진 하신 보호의 손과 발로 인하여 편히 지내고 있었답니다
그러나 저는 3년이 지난 후 다시 또 다른 저의 위장에 큰병이 찾아와 여러 번 병원으로 들낙 거리기를 수차래 하게 되었고 그때 어머니께서는 얼마나 애타하셨던가요 저도 잘 알고 있답니다 그리고 우리는 두 번쩨 우리의 집을 대림동 아파트로 이사를 오게 되었지요
그리고 쎄부란스 병원에 재활을 위 해 운동을 하러 입원을 하게 되었지요 그러나 내 몸이 심히 악하여 다시 속 쓰리고 딸꾹질을 하고 고개와 눈이 왼쪽으로 돌아가길 다시 시작 하였지요
그리하여 저는 운동을 모두 끝마치지도 못한체 다시 다른 입원실로 가게 되었지요 그런 뒤 다시 집으로 다시 돌아가게 되었답니다
그 뒤 저는 다시 국립재활 병원으로 입원을 하고 재활 운동을 열심히 어머니에 저의 대한 애정과 관심을 받아 가며 운동을 하고 있던 중 저는 또 다시 병에 운동을 멈추고 말았답니다
그리고 예전에 제가 94년도에 SBS방송국에 잠깐 행복 찾기 방송에 제가 출연을 하게 되어 어머니외 작은 누이는 비행기를 타고 제주 도로 여행을 다녀 오게 되었지요
그때 다녀오신 뒤 어머니께서는 참 좋아 라 행복하신모습이셔지요 그때 저의 마음도 행복함에 젓 어 있었지요
그리고 저는 기억은 잘은 안나는데 99년 가을에 시를 내어 상은 받진 못했으나 나의 글이 솟때문학이란 책에 올리게 되었지요 그리하여 어머니께서는 행복해 하셨지요 그때 저도 행복했답니다
그 후 어머니는 여러 병마에 의한 신경과민성이 다가와 또 쓰러지시고 마셨지요 그러나 어머니는 다시금 툭툭 털어 버 버리시고 다시 일어나셨지요
그리고 99년 저는 다시 배가 아파 병원으로 아버지와 어머니는 같이 저를 차에 태우시고 병원으로 대려 가지 안 았겠어요 그러나 병원에서는 다시 입원을 윈하였고 그때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는 저를 입원시키셨답니다
그리고 2000년에 우리는 동양아파트로 이사를 오게 되었고 2001년이 되어 어머니의 몸은 좀 더 심각한 위와 허리 뼈에 그리고 결핵이란 큰 병에 걸려 버리시고 마셨지요 한번 수술한 뒤
그 후 다행으로 다시 집으로 돌아오신 어머니는 2002년 뒤 다시 결핵이란 병과 항문 뼈에 병이 걸려 힘들어 하셨었지요 그때 한번 더 수술과 입원하신 뒤
2003년이 된 뒤 3-7일 어머니는 가시고 야 마셨지요 마음이 아팟답니다
참 그리고요 요즘은 제 곁에게신 아버지의 건강하시던 허리가 왼지 나의 무거운 몸을 들으셔 선지 모르게 자꾸만 안 좋아 지신 듯 느껴와요 이일을 어찌하면 좋지 요 그래 서 신경이 쓰여요
그리고 저는 지금은 또 다른 그리 큰 병마를 곁에 두고 있진 않아요 그런데 요즘 우리나라에 좋은 소식이 들려오려나 본데 그 소식이 뭔지 알아요 저 그 소식은 우리나라와 북한이 글쎄 종전협상을 시작한다지 않겠어요 전젱을 끝네자는 협상을요 통일이 우리 곁으로 바짝 다가온 것만 같아요
그리고 요즘 누나들이 자꾸만 나를 장애오에 집 같은 곳에 보내려 해요 그래 저는 신경이 쓰여요 그래 저는 시를 잘 써내어 나의 힘으로 살아 갈 수 만 있다면 좋겠는데 어머니 제발 저를 위 해 도와 주세요
그리고 어머니 저 때문에 눈물이 마를 때가 없으셨던 우리 어머니 이제 저는 당신을 위 해 약한 몸과 마음을 더 건강히 살아가도록 약속 해 드릴깨요
그리고 어머니 이만 저의 글을 줄일 깨요 그럼 안녕히
하늘로 떠나가신 어머니께 아들 홍지용이가
첫댓글 웁니다 울고 있습니다 제가 엄마를 보내드린지 11월이면 2 주기,,,,,말이 필요 없습니다 눈물로 댓글씁니다 시인님